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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산미군기지 캠프 서빙고 장교숙소 5단지
    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3. 9. 16. 23:46

     
    용산은 러일전쟁 전인 1904년 2월 23일 한·일 양국 간에 체결된 <한일의정서(韓日議定書)> 제4조에 따라 일본군이 수용해 주둔한 곳이다. <한일의정서> 4조는 일본이 요구하는 땅을 임의로 군사용지로 전용할 수 있는 권리조항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3국의 침해, 혹은 내란으로 인하여 대한제국 황실의 안녕과 영토 보전에 위험이 있을 시에는 일본 정부는 임기(아무 때나)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데, 이때 대한제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행동이 용이하도록 십분 편의를 제공해야 하며, 일본 정부는 전항의 목적 달성을 위하여 군략상 필요한 지점을 수시로 수용해 사용할 수 있다.
     
    여기서 제3국은 러시아를 말하는 것으로서, 러시아가 대한제국 황실의 안녕과 영토 보전에 위험이 되므로 한국의 영토를 수용해 일본군의 주둔지로 쓰겠다는 것이었는데, 이때 일본이 요구한 곳이 평양, 한성, 마산이었고, 한성에는 용산 둔지미 마을이 군사용지로 전용됐다. 용산 둔지미 마을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살던 땅을 빼앗기고 쫓겨났지만, 힘이 없고 무능한, 그리고 돈을 밝히시는 황제께서 이미 <한일의정서>에 사인을 했던지라 달리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일본은 용산에 조선주둔 일본군 사령부를 두어 2개 사단급의 군대를 주둔시키고 러일전쟁을 넘어, 만주침략과 중일전쟁 때의 본부로 사용했다. 그것이 1945년까지였다. 그리고 해방 후에는 미군(군정청 산하 미군7사단)이 주둔하다가 철수했는데,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부터 다시 미군에 양여되어 미군기지로 이용되었다. 면적은 255만㎡로 축구장 340개의 크기이다. 다. 그중 2022년 6월 3일까지 63.4만㎡를 반환받았다. 하지만 우리가 가볼 수 있는 곳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문자 그대로 중요시설이 밀집돼 있는 메인 포스트와 남쪽의  사우스 포스트는 아직 미군이 사용 중이며, 01캠프킴은 반환되었으나 공사 중이고, 과거 국방부였다가 대통령집무실이된 지역에는 여전히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다. 반면 일본군 보병 78연대와 79연대 막사가 남아 있던 02지역과 06, 08지역에는 전쟁기념관과 국립중앙박물관이 건립되었고, 07지역은 일찌감치 용산가족공원으로 꾸며져 개방되었다.(1992년) 가장 오른쪽의 장교숙소 5단지는 2022년 8월 개방된 핫플이다.
     
     

    용산미군기지 지역 지도 / ▨은 반환지역
    용산미군기지 장교숙소 부지 내 전시관 조형물 / 오른쪽 화살표가 2022년 개방된 장교숙소 지역이다.
    전시관 외관

     
    장교숙소 5단지는 조선시대 얼음을 저장했던 '서빙고'가 있던 곳으로, 동네 이름도 용산구 서빙고동이다. 이름이 마음에 들었던지 미군부대가 용산에 주둔한 이후 '캠프 용산'이 아닌 '캠프 서빙고'로 오랫동안 불려졌다. 장교숙소 5단지는 1986년 대한주택공사(현 LH)가 주거용 빌라를 지어 미군에게 임대했는데, 미국풍으로 지은 데다 조경에도 신경을 써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그래서인지 작년 개방했을 때는 Younger의 핫플이 되어 줄을 서야 할 정도로 붐볐지만 지금은 한가한 편이다. 이곳은 특히 가을이 고혹적이다.
     

     

    부근의 서빙고 터 표석
    용산미군기지 장교숙소 입구의 안내문
    장교 숙소의 이곳저곳
    아직 남아 있는 장교 숙소 담장의 경고 문구
    용산미군기지 사우스 포스트 내의 드래곤힐 호텔
    메인 포스트 내의 구 미8군사령부 한미연합사령부 청사
    용산기지 내에 있던 조선총독관저
    당초 일본군 사령관의 관저로 1910년 지어진 건물이었으나 너무 화려하다는 비판 속에 총독관저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후로도 한 달 전등 사용값만 4백여 원이 소용될 만큼 어마어마한 유지비가 드는 탓에 예산 낭비의 불충관(不忠館)으로 지목돼 총독관저로도 사용되지 못하고 가끔씩 연회장 정도로만 쓰였다. 이 건물은 해방 후까지도 존재했으나 한국전쟁을 전후로 사라졌다. 사우스 포스트 121종합병원 자리에 있었다.
    다소 소박하게 지어진 일본군 사령관저 / 1913년 사진
    용산 일본군 사령관저 엽서 / 이 건물도 언제 사라졌는지 불분명하다.
    1943년 일본군 사령부 사진 / 일본군 사령부는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지어졌다.
    용산 일본군 야포부대
    용산 보병 제79연대
    1945년 9월 미군이 촬영한 용산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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