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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판동의 괴상한 서울미래유산 '연막탄 지주'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3. 10. 20. 17:32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지명은 8명의 판서가 살았다는 데서 유래됐다. 판서는 육조의 으뜸 벼슬로 요즘의 장관에 해당한다. 그래서 그게 과연 가능한가 하는 의심부터 들게 되는데 아래 사진을 보면 우선 개연성은 느껴진다. 팔판동은 삼청동, 청운동, 소격동과 더불어 경복에 인접해 있는 유서 깊은 동네로서, 이중 궁궐이나 육조거리로의 출퇴근이 가장 용이한 곳에 위치해 있다.
팔판동 입구에서 바라본 경복궁 쪽 또 조선시대의 판서는 6명을 넘은 적이 한 번도 없으니 팔판동에 살던 8명의 판서는 전·현직 관료를 통칭하였을 것이다. 그렇게 보자면 비록 8명 판서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지만 이 동네가 조선시대 전·현직 관료 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그 한때의 영화를 뒤로 하고 팔판동은 서울에 이런 동네가 있었나 싶게 알려지지 않은 조용한 동네로 오래 존속해 왔다.
팔판동의 위치 그러다 2017년 무렵 문재인 대통령이 광화문으로의 집무실 이전 필요성을 주장하고, 유홍준 교수가 '대통령 광화문 시대 자문위원'에 임명되며 "청와대 관저는 반드시 이전해야 한다"는 소신을 피력하자 팔판동 부동산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팔판동의 옛 영화가 다시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서였다. 더불어 젠트리피케이션을 우려하는 때 이른 걱정도 일었지만, 지금은 다시 예전의 조용한 동네로 돌아간 상태다.
고즈넉한 팔판동 거리 기실 주민들이나 세입자들이 기대한 것은 이곳으로의 거주인구 유입이 아니라 청와대가 이전할 경우 청와대에서 불과 100m에 불과한 이곳이 관광 중심지로 급부상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었다. 그런데 그 5년 후 대통령 집무실이 실제로 이전했고 즈음하여 작은 카페, 레스토랑, 베이커리 숍이 팔판동에 들어섰지만 동네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물론 내가 방문했을 때가 평일 늦은 오후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동네 초입쯤의 전봇대에서 이상한 안내팻말 같은 것을 하나 발견했다. (팻말은 아래 사진과 같다) 그와 같은 팻말이 붙어있던 전봇대는 길을 걸어가며 차례로 발견되었는데 우선 사진을 살펴보자.
이상한 팻말 위 팻말이 부착된 팔판길 16의 전신주 위 팻말이 부착된 팔판길 30의 전신주 위 팻말이 부착된 팔판길 31의 전신주 결론부터 말하면 이것들은 전봇대가 아닌, '연막탄 지주'라는것이었다. 즉 '연막탄을 쏘는 기둥'이라는 것이니 그 기둥에 부착된 설명문은 다음과 같다.
1968년 1.21 무장게릴라 침투사건 이후 청와대 방호와 군사작전 수행을 위해 연막탄과 조명탄을 발사할 수 있도록 설치된 군사시설물이다. 종로구는 2013년 도시 비우기 사업을 추진하면서 발사장비가 폐기된 68개의 설치물을 확인하고 그 일부를 서울미래유산으로 보존하고 있다.
설명을 좀 더 덧붙이자면 '연막탄 지주'는 일종의 군사무기이다. 즉 낮에는 짙은 연기를 내뿜는 연막탄을 발사해 (적의) 시야를 어둡게 하고, 밤에는 반대로 조명탄을 쏘아 주변을 밝히는 용도로써 설치된 것으로, 대상은 당연히 침투간첩이나 무장공비였다. 1968년 1·21사태는 그만큼 큰 사건이었으니, "박정희 모가지를 따러 왔다"는 김신조의 발언은 대한민국 사회에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 (31명 무장공비 중 29명이 사살되고 김신조 1명은 생포되었다. 1명은 행방불명)
백악마루의 1.21사태 소나무 / 1968년 1월 21일 무장공비와 우리 군경이 총격전이 벌인 현장에 총탄 자국 15개가 남아 있는 수령 250년 된 소나무가 서 있다. (일명 김신조 소나무) 그리하여 대한민국에는 주민등록증이라는 신분증이 만들어졌으며,(있으면 우리 국민, 없으면 간첩) 군에는 유격훈련이 신설되었고,(북에서 인공구조물을 설치해 격렬하게 훈련받았는 김신조의 말에 따라) 우수한 초급장교 양성의 필요성에 육군3사관학교가 설립되었으며, 향토예비군과 전투경찰대가 신설되었다. 아울러 학교에는 교련 과목이 생겨나며 독재정권 명분 쌓기와 반공사상 강화의 일환으로 이용되었다.
앞서 말한 평창동 고급주택가도 그 영향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1.21사태 이후 청와대 뒤쪽으로 민가가 형성되는 편이 오히려 무장공비의 방어에 유리하다 의견에 따라 자연녹지였던 이곳에 주택지가 조성되었다. 북악스카이웨이가 탄생한 것도 그 때문이었으니 수도권 경비 강화를 위해서는 폐쇄적인 지향보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을 만드는 편이 더 유리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아울러 청와대 주변 주택가인 종로구 청운동, 삼청동, 팔판동 일대에는 위에서 말한 '연막탄 지주'가 세워졌다. 기존 전봇대보다 높이가 3∼4m 더 높으면서도 전봇대의 역할은 전무한, 역사에 없던 괴이한 시설물이었다. 이 시설물은 오랫동안 존치되었으나 2000년대 들어 '연막탄 지주'는 통행에 불편을 초래하고 전깃줄과 통신선이 제멋대로 설치돼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민원이 제기되었다.
이에 종로구는 '도시 비우기 사업'의 명목으로 수도방위사령부와 협력해 삼청동 51개, 청운동 17개 등 총 68개의 지주를 철거했는데, 미처 파악이 안 됐는지 어쨌는지 팔판동의 것은 이후로도 존속되었다. 그러나 팔판동의 것도 2013년 '도시 비우기 사업'이 적용되며 차례로 제거되었는데, 다만 그해' 서울시 미래유산'이라는 제도가 생겨 그중의 3개가 남게 된 것이 위의 '연막탄 지주'이다.
* '도시 비우기 사업'에는 신호등, 전신주, 통신주 등에서의 불필요한 지주 외 각종 안내표지판, 교통표지판, 보도블록, 간판, 우체통, 소화전, 노점, 가판대, 공중선 정비 등이 대상으로 포함되었다.
어지럽게 그지 없는 팔판동 '연막탄 지주' 참고로 <다음백과>에서 실린 '서울시 미래유산'에 대한 설명은 아래와 같다. '서울시 미래유산'은 처음에는 '서울시 근현대 문화유산'이란 이름으로 만들어졌으며 지금은 '서울미래유산'으로 불린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2020년 말까지 등록된 '서울미래유산'은 총 2023개라 하는데,(관련 영상 및 사진 포함) 길을 길으며, 혹은 지하철 내부에서 아래와 같은 동판을 많이 보셨을 것으로 여겨진다.
서울의 근현대 문화유산을 지정하는 제도다. 문화유산이란 특정 사회의 문화적 소산 중에서 전승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말한다. 문화재보호법으로 보호받는 문화재를 포함해 기술이나 풍습, 문화 등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서울시는 2013년부터 매년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미래에 전달할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근현대 유산을 선정하고 있다.
서울시 미래유산은 크게 ‘문화적 인공물’과 ‘문화적 행위나 이야기’, ‘배경’의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문화적 인공물’은 건조물이나 서적, 예술품, 공산품 등 문화적 활동으로 만들어진 물건이다. ‘문화적 행위나 이야기’는 음악과 의식, 전통이 있거나 명성이 있는 경우, 뛰어난 기술 등 무형의 문화유산을 뜻한다. ‘배경’은 산업단지나 시장, 마을과 골목, 경관처럼 문화적 인공물이나 문화적 행위가 이뤄지는 물리적 배경을 말한다.
서울시 미래유산 제도는 급속한 사회 변화로 훼손·멸실 가능성이 큰 서울시의 문화유산을 보전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서울시 지정문화재나 등록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은 근현대 유산이 선정 대상이다. 미래유산 후보는 시민과 자치구, 전문가의 추천으로 정해진다. 서울시는 미래유산 홈페이지나 SNS 등을 통해 시민제안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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