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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안사가 기획한 10.27법난과 적조암 신중상
    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3. 10. 21. 22:47

     
    1979년 10.26사건 후의 권력공백기, 전두환 국군보안사령관을 필두로 하는 하나회 세력은 12.12군사반란을 일으켜 기존의 세력을 몰아내고 군부를 장악했다. 이들은 새로운 군인 세력이라는 의미의 신군부로 불리었다. 이후 전두환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이하 국보위) 의장에 올라 정권창출을 꾀했고 전국에서는 이에 반대하는 시위가 끊이지 않았는데 그 정점에 5.18민주항쟁이 있었다.
     
    신군부는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며 국보위 의장 전두환을 대통령을 만들려는 계획에 박차를 가했는데, 그 과정인 1980년 8월 6일 한경직·정진경·김준곤 목사 등 22명의 저명한 개신교 목사들을 호텔로 불러들여 전두환을 위한 조찬기도회를 가졌다. 충장로에 흐른 5.18의 피가 채 씻기지도 않은 때였다.
     
    이때 참석한 목사들은 한결 같이 전두환을 칭송해 마지않았으니 어떤 목사는 전두환을 나라를 구한 여호수아에 비유하며 기도했고, 어떤 목사는 전두환과 신군부 모든 지휘관들에게 솔로몬에게 주신 지혜와 다윗에게 주신 용기와 모세에게 주신 지도력을 달라는 폭넓은 축복의 기도를 올렸다. 이 조찬기도회는 공중파 방송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되었다.
     
     

    5.18민주항쟁 관련만화에 등장한 80년 국가조찬기도회

     
    신군부는 조찬기도회가 성공적이라고 자찬했으며 같은 퍼포먼스를 불교식으로도 하려고 했다. 이에 국군보안사령부(이하 보안사) 대공처장 이학봉은 이와 같은 계획을 불교계에 통보했으나 뜻밖에도 전혀 호응이 없었다. 이에 신군부는 크게 열을 받았으니, 1980년 10월 27일 보안사의 지휘를 받는 군인들이 종로 조계사를 비롯한 전국의 주요 사찰에 난입해 조계종 총무원장이었던 월주스님을 비롯한 승려 153명을 강제 연행했다. 명분은 '사회정화'였다.
     
    아울러 신군부는 추가로 전국 3000여 개 사찰에 난입해 승려와 항거하는 신도 1776명을 연행했으며, 이중 스님 10명과 신도 8명이 구속되고 스님 32명이 종적을 박탈당했다. 당시 연행자들에게는 각종 폭행 및 고문이 가해졌으며 일부 승려는 삼청교육대로 보내지거나 교도소에서 순화교육을 받기도 했는데, 이중에는 여파로 불구가 되거나 유명을 달리한 사람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조계종 총무원장 월주스님은 모처로 끌려가 32일간 구금된 채 총무원장직 사퇴와 신군부 지지 요구를 강요받았으며, 낙산사 주지 원적스님은 당시의 고문과 충격으로 풀려난 후 입적했고, 도선사 주지 혜성스님은 반신불수가 되어 거동하지 못하게 되었다. <나무위키>에는 불교닷컴에 게재됐던 피해자의 다음과 같은 글이 소개돼 있다.
     
    참으로 참담했다. 이미 많은  스님 들이 도착해 있었다. 옷을 늦게 갈아입는 스님에게 그들은 발길질과 쇠몽둥이질을 서슴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퍽퍽 내려치는 소리와 고통의 비명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어떤 스님은 벌써 얼굴에 피멍이 들었고, 어떤 스님은 고통스럽게 가슴을 부여잡고 울부짖었다.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발길질과 쇠몽둥이로 닥치는 대로 내려치니 시멘트 바닥에 피와 울부짖음이 낭자했다.
     
    그들은 나를 의자에 거꾸로 세워 콧구멍에 수건을 씌우고, 고춧가루를 퍼 넣고 거기다 양동이의 물을 들어부었다. 이름 하여 고춧가루 물고문. 다짜고짜 고문을 강행하면서 나에게 몇 차례나 허위 진술을 강요했다. 계속 잠을 재우지 않고 눈에 서치라이트를 비추면서 고문을 가하면, 정신이 몽롱해져 사뭇 헛소리를 했다.
     
    혼몽 중에 나는 최면에 걸린 듯 까마득하게 잊었던 어린 시절의 어느 날로 돌아가 있기도 하고,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생하게 앞에 다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다가 기절하여 시멘트 바닥에 쓰러져 버리면, 양동이 물을 냅다 끼얹는 바람에 정신이 들곤 했다. 정신이 드는가 싶으면 다시 일으켜 책상 앞에 앉히고 내게 볼펜과 메모지를 밀쳐놓으면서 다그쳤다....
     
     

    인천 능인사의 10.27법난 흔적

     
    신군부는 그들 스님에게 엄청난 사회적 모독을 가하기도 했으니, "낮에는 주지 행세를 하고 밤에는 요정을 경영했다"는 등의 자극적인 발표가 이어졌고, 그중 도선사 혜성스님은 190억을 착복하여 부를 축적했다며 기소당했다. 이 일은 당시 크게 보도되었지만 그가 무혐의로 풀려난 사실은 조명되지 않았다. 국민들은 현혹될 수밖에 없었으니 신군부가 조작한 가짜뉴스에 기만된 많은 불교도들이 개종을 하거나 불교계를 떠났다. 
     
     

    승려들을 파렴치범으로 보도한 당시의 신문 내용

     
    그런 가운데 당시 인천 흥륜사 불자이던 이기만 씨는 분신으로 저항했다. 군인들은 법당에 군화발로 난입하여 스님들을 마구잡이로 붙잡아가고, 비자금을 찾는다며 불상을 뒤엎고 좌복(불상이 얹힌 방석)을 대검을 찢은 데 대해 소신공양과 같은 마음으로써 항거한 것이었다. 
     
    5.18의 주범은 전두환으로 알려진 반면, 10.27의 주범은 노태우라는 게 통설이다. 노태우는 10.27법란 당시 국군보안사령관으로 재직 중이었다. 그는 12.12사태 때 9사단 병력을 출동시켜 반란의 일등공신이 되었고 덕분에 공공연히 전두환의 후계자로 지목받게 되었지만 이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이에 노태우는 공적을 쌓으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니 10.27법난을 기획해 자신의 존재감을 알림과 동시에 국보위 의장을 엿 먹인 불교계에 보복함으로써 전두환에 대한 충성을 표했다. 
     
    신군부의 군화발은 서울 성북구의 조용한 암자 적조암(寂照庵) 에도 밀어닥쳤다. 적조암은 흥천사에 속한 암자로, 1849년(헌종 15)에 혜암성혜(慧庵性慧)스님에 의해 창건된 후 염불관선(念佛觀禪)의 선(禪)도량으로 존속되었다. 이후 6.25전쟁으로 파괴되었다가 1960년대 정비되었는데, 1977년에는 학월경산(鶴月京山)스님에 의해 옛 당우가 복원되며 흥천사로부터 독립해 적조사가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적조사가 정확한 명칭이겠지만 내비 등에서는 여전히 적조암으로 되어 있고, 내 기억에도 예전의 조촐한 암자가 그 아래의 큰 절 흥천사보다 각인돼 있어 개인적으로는 적조암의 명칭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곳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네 번이나 역임한 학월경산스님이 수도에 용맹정진하다 입적한 장소로 의미 있는 곳이다.(1979년) 이후 학월대종사로 불리기도 한 경산스님은 동화사 주지와 조계종 총무원장으로 재직하며 당시 난맥상을 보이던 교단정화와 화합에 힘쓴 인물로 알려져 있다.
     
     

    적조사 대웅전과 1982년 건조된 경산스님 승탑

     
    경산스님 이후 적조암의 법맥은 자공스님과 자성스님에게 이어졌는데, 그 기간 동안 지금의 석가삼존상(1974년)과 칠성탱, 독성탱, 산신탱 조성이 이루어졌다.(1975년) 그리고, 자성스님에 이어 주지가 된 탄성스님은 1890년 제작되어 적조암 칠성각에 봉안되었다가 사라진 <신중도(神衆圖, 신중탱화)>를 찾아내 100년만의 귀환을 이루어냈다. 후문으로는 소장자를 여러번 찾아가 간곡히 설득한 끝에 뜻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적조사 대웅전에서는 그 신중탱을 볼 수 있는 안복을 누리게 되었는데, 시기를 추정해보니 10.27법란이 일어났을 때 적조암에 주석하던 이가 바로 탄성스님이었다. 여러가지로 고생이 많았던 분이다. 세로 95.2cm 가로 80.4cm의 <신중도>는 보관상태가 뜻밖에도 훌륭하여 2018년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신중도>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그림 아래 붙어 있는 '光緖十六年庚寅九月十八日'(광서십육년경인구월십팔일/1890년 9월 18일 제작)이라는 글 이하의 화기(畵記)다.
     
    화기에 따르면 <신중도>의 시주자는 하정덕헤(河淨德慧), 윤법상화(尹法相華), 박법성화(朴法性華) 등의 상궁이고, 화주는 인담자훈(印潭慈訓)스님, 증명은 서응보계(西應普戒)스님이며, 긍조(亘照)·혜산축연(蕙山竺衍)·경은(敬恩)스님 등의 화승(畵僧)이 제작에 참여했는데, 이렇듯 자세한 화기가 달려 있는 불화는 예가 드물다. 
     
     

    적조사 신중도 / 남방증장천(南方增長天, 수미산 남쪽의 남염부주)을 지키는 팔장군 가운데 하나인 위태천(韋太天)이 날개달린 투구를 쓰고 보봉(寶棒)을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위태천 주위에는 칼을 든 신장(神將)과 과일을 공양하는 시녀 및 동자가 묘사됐다.
    적조사 석가삼존상불과 금동후불탱
    적조사 신중도 인내문
    적조사의 10.27법난 흔적
    학월대종사 사리탑비
    자공스님 숭덕비
    1960년대 말의 흥천사
    옛 성북동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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