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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곳 중 하나는 사라질 한남동 부군당
    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4. 12. 31. 22:35

     

    앞서 '용산의 부군당'에서도 언급했거니와, 서울에서도 용산에만 부군당이 유독 많은 이유에 대해서 누구도 시원한 대답을 해주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누구라도 한강의 일부였던 옛 용산강과 관련짓기를 주저하지 않으니, 뱃일로 삶을 영위하는 마을 주민들이 안녕을 기원한 장소일 것이라 미루어 짐작한다. 이태원·동빙고동·서빙고동·한남동의 부군당 외에 용문동 고개에 있는 남이장군 사당이나 보광동 오산중·고등학교 부근의 흥무대왕 김유신 사당도 부군당에 속한다. 

     

     

    보광동 168번지 흥무대왕 김유신 사당
    용산구 내 부군당(신당) 분포현황 / 용산역사박물관 전시자료

     

    아무튼 전래의 무속행위가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데 의미를 두고 이상의 장소를 두루 살펴보았으나 유감스럽게도 한남동에 있다는 두 곳의 부군당을 찾지 못했다. 이 일에 대해서도 앞서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오늘 그 두 곳의 장소를 모두 찾았던 바, 한 해의 숙제를 마무리한 기분이다. 이것이 엉뚱하게도 대통령 입건과 관련이 있으니, 영장이 집행되리라 여기지는 않았지만 오늘 체포 영장이 발부된 대통령에 대한 찬반 인파를 보고 싶어 대통령 관저(한남동 726-491)에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에 득템한 것들이다.

     

    언젠가 쓰일 때가 있을는지 없을는지 모르겠으나, 나름 역사적 순간이라고 생각해  대통령 관저 앞에서 정말로 많은 사진을 찍었다. 기자도 아니면서 말이다. 그리고 주체 측이 나눠주는 손 피켓 등을 애써 회피하며 (받으면 주저앉아 들고 있어야만 될 거 같아서) 돌아오는 길에 먼저 한남동 제2 부군당을 찾아보았다. 일전에도 말했지만 재개발을 목전에 두고 있는 이 일대는 지금의 거의 폐허 상태인데, 앞서 '아직 주민이 남아 있는 곳'이라고 사진을 올렸던 장문로49길 골목의 가구들도 지금은 모두 이사를 갔다. 

     

     

    한남동 재개발지 / 꼭대기에 한광교회가 보인다.
    한광교회는 1957년 건립된 유서 깊은 교회다. 이 교회 건물의 존치 여부를 두고 서울시와 갈등을 빚고 있다. 일반적 경우에서는 교회는 건물을 지키고 싶어 하고, 재개발 조합이나 지자체는 철거하고 싶어 하는데, 오히려 서울시가 존치를, 교회는 철거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귀추가 주목된다.
    마지막 가구들이 살았던 장문로 골목

     

    한남동 제2 부군당은 지금은 주민들이 모두 떠난 장문로49길 17번지 가파른 골목길에 있었다. 이번에도 자칫 지나칠 뻔하다 우연히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린 곳에서 기적적으로(?) 발견됐다. 문 틈으로 보이는 내부는 예전 사진에서 보았던 그대로 폐허 상태였으나 외관은 비교적 온전했다. 대문을 밀어보니 시건장치가 빈약해 문득 침입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CCTV도 주민도 없는 곳이기에^^) 들어가봐야 볼 것도 없을 듯해 밖에서만 촬영했다.

     

     

    앞집 계단에서 찍은 사진
    입구 / (사)한남동부군당 보존위원회가 부착한 '한남동 작은한강 부군당'이라는 표지가 걸려 있다.
    문 틈으로 보이는 내부
    '한남동 작은한강 부군당'에 모셔진 신령님 / 서울시 자료
    장문로 48길에서 보이는 한강 / 예전에는 부군당에서 이 강물이 바로 보였을 것이다.

     

    일설에는 한남동 제2 부군당에 모셔진 그림이 임경업 장군이라고 하나 부군당과의 연결 고리가 미약하다. 흔히 원통한 죽음을 맞은 장수, 이를 테면 관우, 최영, 남이, 고경명, 임경업 등이 무속신으로 받들어지기는 하나 용산과의 연결성이 너무 없다. 남이 장군은 용산 새남터에서 죽었으며, 김유신은 북진할 때 용산강을 건넜다고 한다. 그것이 각각 용문동과 보광동에 사당이 있는 이유이나 임경업 장군은 좀 쌩뚱맞다. 그저 부군신과 부군부인으로 보는 편이 옳을 듯하다. 

     

    제2 부군당을 찾은 후, 역(逆)으로 다시 가 한남동 제1 부군당을 찾아 보았다. 예전 한남역 부근 마트 앞에 모인 어르신 중의 한 분이 수첩을 찢어 그려준 약도를 들고도 찾지 못했던 곳인데, 이번에는 무슨 조화인지 길을 잘못 든 곳에서 짠! 하고 나타났다. 아마도 부군당 앞 건물이 철거된 것이 시야를 확보해주었으리라. 주소는 한남대로8길 9-9이며, 부군신 외 부군부인, 삼불제석, 좌제장군(左諸將軍), 용궁부인, 산신, 우장군(右將軍)의 총 일곱 분이 모셔졌다.

     

     

    길가에서 부군당의 지붕이 보였다.
    뒤로 대나무 숲이 울창해 뭔가 있어 보인다. 오른쪽 지붕이 부군당이다.
    입구
    내부
    사당 안
    부군신 · 부군부인 · 삼불제석을 중앙에 모셨다.
    왼쪽에는 좌제장군(左諸將軍)과 용궁부인,
    오른쪽에는 우장군(左將軍)과 산신이 모셔졌다.
    부군당 앞으로 보이는 한강
    오는 길에 한남힐스 옆 공동주택을 찍어보았다. 이 건물도 철거 예정이다.
    내가 '한국의 몽셀미셀'이라 불렀던 한남동 모습을 곧 볼 수 없을 것 같다.

     

    ▼ 2025년 1월 3일 영장 1차 집행 때 찍은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 사진

    의외로 청년들이 많아 놀랐던 집행 반대 시위대
    해질 무렵 대통령을 직접 체포하겠다며 몰려든 민노총 깃발부대
    충돌을 막기 위해 막아선 경찰버스와 경찰
    전운 감도는 하늘에 뜬 달과 별
    민노총과의 결사항전을 다짐하는 집행 반대 시위자들
    점점 더 몰려드는 민노총 깃발부대
    이수라장이 된 현장 / 다행히 심한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로 인해 밀리는 차량들
    무슨 영문인지 그 길은 처연히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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