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간판 중국집 공화춘과 서울의 간첩 중국집 동방명주
점심식사 거리가 마땅치 않을 때는 짜장면 한 그릇이 최고다. 망설일 필요도 없다. 짜장면은 이렇듯 우리에게 신뢰를 얻은 친숙한 음식이 되었지만 그것이 생겨난 초창기에는 조선인은 거의 먹기 힘든 음식이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조선인에게는 비싼 음식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일본인들이 주고객이었다. 지금 우리가 중국집에서 짜장면과 함께 먹는 노란 무(다꾸앙)과 양파(다마네기)는 일본 사람들을 상대하던 그 시절의 습관이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짜장면이 화교로부터 비롯된 음식임에는 논쟁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그 화교는 임오군란 당시 고종의 청병(請兵)으로 입국한 청나라 오장경이 청군의 보급책으로 데려온 650명의 중국 민간인을 기원으로 보고 있다. 그 화교들은 이후 조선에 정착하며 주로 요식업 쪽으로 진출했다. 그런데 과연 그 시절에 짜장면이 존재했는지는 지금도 논쟁거리이다. 짜장면은 지금은 중식당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했지만 정작 중국에는 없는 요리이기도 하다. <조선일보> 기사에서는 아래와 같이 설명하기도 했다.
짜장면은 한때 그 유래를 두고 첨예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으나, 중국 산둥성의 '작장면(炸醬麵)'에서 기원해 한국식으로 변주된 음식이라는 것이 다수설이다. 1882년 임오군란 때 청나라 군대를 따라 들어온 중국 상인들이 인천에 정착했고, 1948년 인천에서 화교(華僑) 왕송산이 춘장을 첨가한 짜장면을 개발하며 우리가 오늘날 즐겨 먹는 짜장면이 탄생했다는 것. 짜장면은 1907년 화교 우희광이 설립한 인천의 고급 음식점 ‘공화춘’에서 판매되며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짜장면 그릇에 근대의 한∙중 관계 역사가 담겨있는 셈이다. (<조선일보> 202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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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됐든 짜장면의 고향은 인천이다. 그리고 역사와 전통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인지 인천의 어느 중국음식점을 가도 전부 맛이 뛰어나다. 그래서 이런 우스개도 있다. 인천 어느 맛집 중식당에 간 손님과 주인 할머니의 대화다.
손님 : 와. 맛있다! 과연 소문대로네요. 할머니, 이 집 짜장면은 왜 이렇게 맛있죠?"
주인 할머니 : 응, 간단해. 우리집은 전부 중국산만 쓰거든.
손님 : ???
하지만 인천 외의 도시에서는 맛이 들쑥날쑥 이어서 서울에서도 특히 어느 집이 맛있다는 소리가 없다. 다만 그 반대의 소문은 들었다. 그런데 그 집은 무척 유명하다. 잠실에 있던 '동방명주'(東方明珠) 얘기다. (사실 나는 가보지 않았다. 맛이 없고 불친절하다는 소문을 익히 들었기에.....)
동방명주는 서울 송파구 잠실 한강변에 위치한 중국음식점이었다. 한강 수상택시 승강장 인근에 위치한 동방명주는 식당 외부와 내부가 진짜 중국에 있는 식당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대형음식점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평범치 않은 뉴스를 탔다. 겉으로는 중국음식점을 가장하고 있지만 사실상 중국 정부의 ‘비밀경찰’ 역할을 하는곳으로, 한마디로 중국 간첩소굴이라는 것이다. 그러자 곧바로 무더기 댓글이 달렸다. 아래의 댓글들은 그중의 것을 무작위로 추출한 것이다.
식당 맞아?"…악평 줄줄이 달린 '고급 중식당'의 정체는? / JTBC 사건반장
댓글 :
● 정말 충격입니다. 저기 출입자들에 대한 명단을 만들어서 특별관리해야 합니다.
● 한강 지날 때마다 너무 불쾌했어요. 왜 공원에 저딴 시설물이 들어왔죠?
● 세무조사 한번이면 답 나옴. 몇년을 운영했다면 장부상 자금 흐름이 정상적이어야하는데 과연 그럴지? 장사를 저렇게 하면 수입이 개판일거 같은데, 저 규모의 식당을 몇년간 유지한다? 말이 안됨.
그래서 '동방명주'의 대표 왕해군(45)은 경찰의 조사를 받았는데, (3월 24일 서울 송파경찰서) 혐의는 '비밀경찰 운영'과는 무관한 옥외광고물법 위반 혐의였다. 비밀경찰서라는 의혹이 제기된 후 이를 해명하기 위해 옥외전광판을 이용해 반박 의견을 낸 혐의였다.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에 따르면 네온류 또는 전광류를 이용한 디지털광고물과 옥상간판을 설치하려면 관할 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 그저 어처구니없다. 아무튼 '동방명주'는 이후 곧 폐업했고, 한국 정부는 동방명주의 처리를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는 후문이다. 왕하이쥔의 탈세 혐의에 대해서도 송파구와 국세청 등이 함께 검토 중인 것으로도 알려졌다. '스파이 활동'에 대한 직접적 처벌보다 경고성 벌주기로 방향을 잡은 것이란 평가인데, 처벌 수위를 높일 경우 중국이 보복 조치에 나설 것에 대한 염려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 이래서 우리가 중국의 속국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밝혀진 것이 '동방명주' 대표 왕해군(왕하이쥔)은 단순한 음식점 사장이 아니라 신화통신 한국지사 대표를 겸임했다는 것이다. 신화통신은 겉으로만 통신사일뿐 중국정보기관이라는 것은 이제는 거의 상식 같은 이야기다. 그런데 그가 간첩행위를 했다고 해도 그를 구속하거나 처벌할 방법은 없다. 우리나라 법에서 간첩행위 처발의 대상이 되는 나라는 오직 북한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민의 힘이 다른 외국으로 대상을 넓히려 법안을 제출했지만 친중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반대해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