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제동의 어두웠던 현실과 빛나는 지하 '홍제유연'
앞서 홍제동의 어두웠던 과거를 말했다. 연원을 따지자면 그 옆 홍은동도 임금의 은혜가 조금은 미쳤다고 할 수 있으니, 홍은동은 홍제동에 고양군 은평면이 합쳐져 생긴 이름이기 때문이다. 물론 홍은동이 생겨난 것은 훨씬 이후인 1950년으로 은평면의 구석을 떼어 홍제동의 마을 하나와 합쳐져 만들어졌다. 그러고보면 당시의 은평면은 엄청났던 듯하니, 지금은 서울시가 된 녹번리・응암리・역촌리・신사리・대조리・불광리・갈현리・구산리・구기리・평창리가 모두 속했다.
하지만 임금의 은혜 따위는 어디까지나 역설이고, 오히려 관(官)의 횡포가 유독한 땅이었을 듯하니 근방의 홍제원이 이를 방증한다. 한양 서쪽의 홍제원은 남쪽의 이태원, 동쪽의 보제원·전관원과 더불어 서울을 대표하는 4대 역원이었는데, 특히 홍제원은 중국 사신들이나 중국으로 가는 조선 사신들까지 이용한 터라 주민들에 대한 이러저러한 간섭과 부당한 차출이 빈번했다.
홍제동과 홍은동은 근래에 들어서는 북한의 공격에 대한 마지노선 비슷한 역할을 하였던 바, 1970년에 지어진 유진상가(이하 유진상가아파트)는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건립된 건물이라는 설명을 이미 마쳤다. 부연하자면 유진상가아파트는 1972년 만초천 위에 건립된 서소문아파트와 더불어 하천 위에 지어진 대규모 건물로, 도로 위에 지어진 낙원상가아파트와 함께 대지지분이 없는 건물이다. 유진상가아파트가 지어질 때와는 달리 건축법이 바뀌어 지금은 하천 위에 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재개발·재건축이 불가능하게 되었는데, 까닭에 슬럼화될 것 같았지만 안은 의외로 깨끗하며 럭셔리하다.
유사시 북의 남침에 대비한 대전차방어 목적으로 지어진 태생적 불안을 안고 출발한 유진상가아파트는 1992년에는 내부순환도로 고가도로 공사로 B동 상층부가 잘려나갔고, 국회의원 선거 때는 입후보자들이 철거하네, 재개발하네 말도 많다. 하지만 변화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 2020년 오히려 어둡고 냄새나던 유진상가아파트 밑의 홍제천에서 이변(?)이 생겼다. 깜깜한 지하 홍제천에 예술가들이 빛을 불어넣은 것인데 이름하여 '홍제유연'(弘濟流緣)이다. 지하 입구의 안내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예술이 흐르는 물길 홍제유연 : 홍제유연은 50년만에 다시 흐르는 홍제천과 유진상가의 지하 예술공간을 부르는 새로운 이름이다. 흐를 '유'(流)와 만날 '연'(緣)의 이음과 화합의 뜻을 담아 예술과 함께 '유연'한 태도로 다양한 교류를 이어나가는 새로운 문화발상지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