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회암사 나옹선사의 회한(悔恨)

기백김 2024. 1. 22. 21:40

 

 

앞서 I편에서 양주 회암사(檜巖寺)가 중창불사를 거쳐 동국제일의 대가람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았다. 약술하자면, 고려를 방문했던 인도승려 지공(指空, śūnyā-diśya, 1300~1363)이 양주의 작은 절 회암사에 들렀다가 인도 나란타사와 비슷한 지형을 보고 "이 절을 중창하고 머물면 불법이 크게 일어날 것이로다"는 예언을 했고, 이에 나옹(懶翁, 1320~1376)이 3년간의 중창불사 끝에 대가람을 완성시켰다. (☞ '인도승려 지공의 승탑이 회암사에 있는 까닭')


※ 나옹선사, 혹은 나옹화상으로 불린 그 인물의 법명은 혜근(惠勤)이고 나옹은 아호다. 따라서 혜근선사나 혜근화상으로 불리는 것이 옳겠으나, 당대에는 호를 붙여 부르는 게 유행이었던 것 같다. 다른 예로 나옹의 제자 무학대사를 들 수 있는데, 무학(無學) 역시 아호이고 법명은 자초(自超)다. 현재 불교중앙박물관에 있는 '선각왕사비'에는 나옹의 시호인 선각(禪覺)이 쓰였다.

 

 

회암사에 있을 때의 선각왕사비 (보물 387호) / 경기문화재단 사진
지금은 귀부만 남아 있는데 앞쪽에 모조비가 건립됐다.
뽀샵한 선각왕사비 탁본 / 회암사지박물관
회암사 지공선사 승탑
회암사 지공선사 승탑과 석등

 

나옹은 경북 영덕에서 태어났다. 속명은 원혜(元惠)로서 20세 때 어릴 적 친구의 죽음에 인생무상을 느껴 문경 대승사 묘적암(妙寂庵)으로 출가해 요연(了然)에게 계를 받았다. 그 뒤 여러 사찰을 순력하다가 1344년(충혜왕 5) 양주 천보산 회암사에서 4년간 좌선수련하였다. 1347년(충목왕 3) 원나라로 건너가 연경 법원사(法源寺)에서 인도승려 지공에게 사사하고 다시 정자사(淨慈寺)로 가서 임제의현의 법을 이은 평산처림에게 배웠다. 

 

이후 1355년 원나라 순제(順帝)의 명으로 연경 광제사(廣濟寺) 주지가 되었다가 (순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시 법원사로 가 좌선하다 1358년(공민왕 7) 귀국했고, 귀국 후 전국을 돌며 일시 설법하다가 오대산 상두암(象頭庵)에 은거했다. 이후 공민왕의 간곡한 청으로 1361년 상경하여 개성 만월대의 내전에서 설법하고 해주 북숭산 신광사(神光寺)와 양주 회암사의 주지가 되었다.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해주 신광사 무자비(無字碑) / 신광사는 원나라 순제가 중건한 사찰이다.


1371년 왕사(王師)가 된 나옹은 1374년 회암사를 중창했다. 회암사 중창불사는 1376년에 마무리가 되었고 그 해 4월 15일 낙성식을 겸한 문수법회(文殊法會)가 열렸다. 그러자  개경과 각 지방에서 몰려든 많은 사람 사람들이 길이 메워질 정도로 몰려들어 성황을 이루었는데, 이것은 오히려 나옹에게 독이 되었다. 나옹의 영향력을 두려워한 권문세족들이 우왕을 움직여 그를 밀양 영원사(瑩源寺)로 옮기게 한 것인데, 사실상 유배라 할 수 있었다.

 

나옹은 왕명을 받들어 출발하였으나 중도에 여주 신륵사에서 입적하였다. 때는 우왕 2년(1376), 나이는 57세였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회암사에서 수행 중이던 29세 때의 겨울, 눈이 쌓인 뜰을 거닐다가 눈 속에 핀 매화를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하는데 대체 무엇을 깨달았는지 모르겠다. 중창불사 후 이렇듯 내쫓기는 몸이 되었다가 결국은 유배길에서 죽었으니 말이다. 나옹의 작(作)이라고 전해지는 아래의 시는 필시 나옹이 유배길에서 읊었을 법하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사랑도 벗어 놓고 미움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靑山兮要我以無語 

蒼空兮要我以無垢 

聊無愛而無憎兮 

如水如風而終我 

 

靑山兮要我以無語 

蒼空兮要我以無垢 

聊無怒而無惜兮 

如水如風而終我 

 

 

눈 내리는 회암사 일주문
옛 가람 위쪽에 새로 지어진 회암사
회암사 삼성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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