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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시열의 모화사상과 이재명의 셰셰 발언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5. 5. 17. 22:57

     
    앞서 언급한 윤휴를 죽인 송시열은 당연히 사대주의자요 모화(慕華)사상가였다. 모화사상이란 문자 그대로 '중화(중국의 높임말)를 사모한다'는 거의 스토커 수준의 중국바라기를 가리킨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공자는 <춘추>를 지어 천하 후세에 '대일통(大一統)'의 의리를 밝히심에, 무릇 혈기가 있는 무리는 모두 마땅히 중국을 높이고 이적(夷狄)을 미워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오직 우리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 명태조 주원장)와 우리 태조강헌대왕(太祖康獻大王, 태조 이성계)께서는 같은 때에 창업하고 곧 군신의 의를 맺었으니, 소국을 사랑하는 은혜와 대국에 충성하는 절개가 거의 300년간 바뀌지 않았다. 만절필동(萬折必東)이야말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인 것이다." 
     
    위의 말대로 이성계와 주원장은 비슷한 시기에 나라를 세웠다. 1368년에 건국한 명나라가 조금 앞선다. 이후 주원장은 끊임없이 고려를 괴롭혔던 바, 영토적으로는 고려의 북방 강토이던 동녕부와 쌍성총관부를 명나라에 편입시켰다. 주원장이 만주의 몽골족을 북쪽으로 밀어내 만주를 제 것으로 만들며 고려의 영토까지 빼앗은 것이었다. 이에 고려 우왕은 빼앗긴 땅을 되찾으려 이성계에게 북벌을 단행시켰지만 그는 오히려 그 군사들을 되돌려 개경을 함락시키고 이씨의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 이것이 바로 1392년에 건국된 조선이다.   
     
    건국 초기의 안정된 기반을 도모했던 이성계는 향후 철저한 사대정책으로 일관하였던 바, 국호마저 주원장에게 지어달라 의뢰했다. 오래전부터 이 땅에 존재했던 '조선'(고조선)이라는 이름과 제 고향 '화령'(함흥)의 두 가지를 사신에게 들려 보내 둘 중에 하나를 골라 달라고 부탁한 것이었다. 주원장은 조선을 골랐다. 주원장이 조선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훗날의 성호 이익은 이렇게 말했다.  
     
    "화령은 원나라의 옛 땅이다. 원나라의 위소(危素)는 원 태조(칭기즈칸)가 창업한 땅이라 하여  <화령지(和寧誌)>를 지었던 바, 족히 그 증거를 삼을 수 있다. 까닭에 명태조는 고려가 제 영토라고 주장하는 북방의 지명을 기피힐 수밖에 없었을 터, 조선을 국호로 삼고자 했던 태조(이성계)께서는 그저 형식적으로 화령을 껴 놓았던 것이다."
     
    성호 이익이 말하는 화령은 중국에서는 화림(和林)으로도 썼는데, 곧 원(元)의 수도 카라코룸을 의미했다. 즉 '화령=화림=카라코룸'인 셈이었다. 까닭에 이성계는 처음부터 선택지를 하나 보낸 것이라 다름없다는 것이 이익의 말이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성계가 처음부터 제후국을 자처해 국호까지 선택받았다는 것이 문제인데, 아무튼 이 같은 사대주의는 구한말까지 이어지며 내내 조선의 아픈 손가락으로 남았다. 
     
    그 사대주의를 애오라지 신봉했던 조선의 쩔었던 관료 중에 으뜸은 과연 누구일까? 사실 하도 많아 고르기가 쉽지 않으나 우암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을 꼽지 않으면 그가 몹시 섭섭해할 것 같다. 송시열에 모화사상에 대해서는 앞서 여러 번 말했으므로 새삼 언급할 것은 없겠고, 오늘은 미처 소개하지 못했던 가평 조종암(朝宗巖)을 조명해볼까 한다.
     
     

    조종암
    조종암 바위와 조종암기실비
    청평천
    조종암에서 내려 본 청평천


    조종암 경기도 가평군 하면 대보간선로 399에 위치한 암벽 바위다. 그 앞으로는 청평천이 굽이쳐 흘러 빼어난 풍경을 연출해 내는 바, 세종조의 문사(文士) 이맹균은 조종암을 지나며 다음과 같이 찬했다.
     
    일찍이 포천 가는 길에 굴파(屈坡)를 넘어서 말안장을 내리고 잠시 가평에서 쉬었다. 어지러운 산, 깊은 골을 뚫고 가다 구불구불한 길에서 이곳을 발견했는데 천 가지 모습, 만 가지 형상이 다 기이하고 절묘하다. 시냇물이 일렁거려 햇볕도 푸르고, 그 속에는 교룡의 굴 있는가 의심된다. 사시로 아침저녁 훌륭한 경치, 그리기도 어렵고 말하기도 어렵다. 나의 걸음은 이틀을 묵어도 돌아갈 줄 모르나니, 내일 아침 발길을 돌려 홍진(紅塵)에 들어가면, 꿈속에서 옛길 찾느라 수고하겠지.
     
    지금은 조종천으로도 불리는 청평천은 이곳 조정암까지 이르는 동안 몇 번을 S자 형으로 굽이치고 다시 이 앞에서 굽이친다. 그래서 이 바위가 조종암이 되었다. 조종(朝宗)이란 제후가 천자를 알현한다는 뜻으로, 만절필동(萬折必東)'의 그것과 너무도 어울리는 곳이기에 그 이름을 갖다 붙인 것이다. 만절필동은 「황하는 아무리 굽이가 많아도 반드시 동쪽으로 들어간다」라는 뜻으로 '중국에 복종한다'는 화이(華夷)개념을 담고 있다. 출전은  선조가 조선을 구원해 준 명나라의 은혜에 감사하며 올린 상소문이라고 한다.  
     
    그와 같은 화이개념과 모화사상에 쩌든 자들 가운데 숙종 10년(1684) 이곳 가평군수를 지낸 이제두가 조종암을 꾸몄다. 그는 선조 임금의 친필인 萬折必東 再造蕃邦(만절필동 재조번방)의 글자를 구해 와 조종암 절벽에 새겼다. 「황하는 아무리 굽이가 많아도 반드시 동쪽으로 흐르니, 명나라 군대가 왜적을 물리치고 우리나라를 다시 만들어주었도다」라는 뜻이다.   
     
     

    '만절필동 재조번방'의 각자 바위
    '만절필동' 각자
    '재조번방' 각자

     
    그 바위 절벽의 꼭대기에는 명나라 사신 허격(許格)이 구해다 주었다는 명나라 마지막 임금 의종이 쓴 '思無邪'(사무사)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생각할 때는 어떤 사악함도 없도록 하라」는 뜻으로 출전은 <시경>과 <논어>이다. 또한 효종이 척화대신 이경여에게 내린 「해는 저물고 갈길은 먼데 지극한 아픔이 마음속에 있네」라는 뜻의 '日暮道遠 至痛在心'(일모도원 지통재심)을 송시열의 글씨를 집자해 새겼으며, 선조의 손자 낭선군 이우(李俁)가 득의의 전서체로 朝宗巖(조종암)을 새겼다.
     
     

    '사무사' 각자
    '일모도원 지통재심' 각자
    '조종암' 각자

     
    아울러 순조 4년(1804년) 왕명에 의해 조종암의 역사를 기록한 조종암기실비(朝宗巖紀實碑)가 세워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구한말 위정척사파의 거두 이항로의 제자 유중교가 「마음을 보는 정자」라는 뜻의 '見心亭'(견심정) 글자를 입구 바위에 새기며 조종암 모화사상 산실 만들기의 대미가 장식됐다. 하지만 끝난 줄 알았던 사대주의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으니 1958년 중국 명나라 황제에 대한 제향이 재개되고, 1977년 그들의 제사를 모시는 재실 조종재(朝宗齋)와 1979년 사당인 조종암 대통묘(大統廟)가 근방에 건립되었다. (사진은 싣지 않겠다) 
     
     

    조종암기실비
    비의 두전(頭篆)
    '견심정' 각자
    견심정 각자 바위에서 내려본 청평천
    청평천 하류

     
    그러나 이것으로도 아직 끝이 아니었으니, 금번 대선 후보로 나선 이재명은 연신 중국에 대한 "셰셰"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2024년 3월 당진시 당진 전통시장을 찾은 자리에서 "왜 중국을 집적거려요. 그냥 셰셰, 대만에도 셰셰, 이러면 되지. 중국과 대만 국내 문제가 어떻게 되든 우리가 뭔 상관있어요?"라고 발언해 세상을 놀라게 한 데 이어, 엊그제 다시 "작년에 '셰셰'라고 했다. 중국에도 셰셰, 대만에도 셰셰, 다른 나라들과도 잘 지내면 되는 것 아닌가"라며 "제가 틀린 말을 했느냐?"고 목청 높여 반문했다.


     

    1차 셰셰 발언
    2차 셰셰 발언

     
    앞서도 말했지만 이재명의 1차 '셰셰' 발언 후 중국 매체에서는 해당 발언이 대서특필되며 이 대표에 대한 상찬 기사가 쏟아졌다. 중국 매체들은 이 대표의 '집적거린다'는 표현을 '자오러'로 번역했는데, 이는 약자가 강자의 심기를 거스른다는 의미이다. 이 대표가 중국을 한국보다 강자로 인정했다는 전제를 깐 것이다. "보기 드물게 사리 밝은 한국인"이라는 황감한 칭찬도 있었다.  
     
    최대 포털인 바이두에서는 이 대표의 발언이 당일 인기검색어로 자리했다. 댓글에는 '예의 바른 사람'이라거나 '마침내 한국에도 정신이 멀쩡한 인물이 나타났다'는 식의 칭찬인지 비아냥인지 알 수 없는 댓글이 연이어 올라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중국의 반응보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의 "(지도를 보이며) 이 삼각형으로 연결되는 국가들은(한국, 일본, 필리핀)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으로 밀접하게 연결된 국가들이고, 분명히 타이완 해협에서 발생하는 어떠한 위기나 충돌에도 영향을 받을 나라들입니다."라는 발언이 주목받았다. 
     
    주한미군 사령관이 타이완에서 무력 충돌이 생길 경우 한국이 영향을 받는다고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으로 다분히 이재명의 발언에 대한 대응으로 보인다. 앞서도 나는 이재명의 문제적 발언에 대해 '대만해협에서 문제가 생기면 주한미군이 이동하게 되고 그 경우 북한의 남침 야욕의 빗장이 풀리게 된다는 것쯤은 삼척동자도 알 것 같은데,(아마도 중국이 먼저 사주를 할 것이다) 왜 그러한 발언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평을 했지만, 요행히 전쟁에 안 말려든다 해도 경제는 6개월 안에 마비될 것이다.
     
    경제 마비의 가장 큰 요인은 대만해협이 봉쇄됨으로써 오는 피해 때문으로, 우리나라를 포함해 대만해협을 통과하는 해양 물동량은 2조4500억 달러(약 3350조원)로 전 세계 해양 무역의 5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2022년 기준) 대한민국의 경제가 무너지지 않을 재간이 없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대만 침공이나 봉쇄가 일어난다면 수조 달러 규모의 해양 무역이 막히며 한국의 GDP가 20% 넘게 감소할 것이라고 했다. 전쟁 당사국인 대만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경제적 피해이다. 
     
    이에 국민의힘은 "소중화(小中華)에서 벗어나지 못한 지적 빈곤을 드러낸 이재명의 굴종"이라며 비난했지만, 그보다도 이재명의 이번 발언은  안보·경제 개념의 문제성을 드러낸 심각한 후보 리스크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자가 대통령이 되면 정말이지 대한민국의 경제는 끝장난다. 양안문제가 현실이 된다면 그는 과연 어찌하려나? 지역화폐를 발행해 막으려나?   

    ▼ 우리나라 곳곳에 새겨진 송시열의 모화사상

    송시열이 화양서원 계곡에 새긴 '만동필절' 글씨 .
    송시열이 화양서원 계곡에 쓴 '대명천지 숭정일월' / 이미 망한 '명나라의 국왕 숭정제를 해와 달처럼 떠받들자'고 썼다.
    송시열이 살던 명륜동 집 터의 '증주벽립' 각자 / 송시열이 중국의 증자와 주자의 뜻을 벽처럼 세워 그들처럼 살겠다는 각오를 새겼다.
    도봉동 옛 도봉서원 입구에 새겨진 송시열의 글씨
    18세기 심사정이 그린 <도봉서원도> / 많은 건물들이 들어선 상당한 규모의 서원임을 알 수 있다. 조광조와 송시열을 배향한 이 서원은 그 이름 하에 호가호위하다 흥선대원군에 의해 철폐되었다.
    제주 오현단의 '증주벽립' 각자 / 1856년(철종 7) 제주 목사 채동건과 판관 홍경섭이 복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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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스페르츠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