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 멀지 않은 옛날의 우화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기백김 2024. 5. 11. 12:08

 

홀로 행하고 게으르지 말며

비난과 칭찬에도 흔들리지 말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불교 초기의 대표적 경전인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문장으로 흔히 인용되는 명구(名句)이다. 이 문장을 접한지는 꽤 된다. 하지만 당시에는 별로 와닿지 않았다. 이후로 공지영 작가의 동명 소설도 읽었지만 페미니즘 쪽을 다룬 주제여서 그런지 역시 와닿지 않았다. 같은 시기에 읽었던 같은 작가의 다른 소설, 이를 테면 '인간에 대한 예의' 등은 재미있었던 반면. 

 

그런데 최근 갑자기 이 문장이 떠 올랐다. 그래서 다시 읽어보았는데, 과연 명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나아가 이 문장의 가치는 '홀로 행하고 게으르지 말며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앞뒤 문구 하나로도 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일 게다. 

 

나이를 먹으면 굳이 인간 관계에 매달릴 필요도, 집착할 필요도 없어 편하다. 그리고 그것은 오히려 타인에 대한 배려일 수 있다. 쇼펜하우어의 말 그대로, 추위를 피해 뭉치는 고슴도치들이 그 털로 인해 주변 고슴도치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처럼, 남들이 주는 불편함을 내가 겪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남들에게 본의 아닌 피해를 주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홀로 행하고 게으르지 말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것이 필요하다. 되도록 조심히. 

 

 

북한산 문수봉·비봉 등산로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