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위안의 평범한 혐한 발언
엊그제 방송인으로 활동한 중국인 장위안이 한 발언이 지속적인 논란을 빚고 있다. 장위안은 과거 프랑스인 이다도시의 경우처럼 한국에서 외국어학원 강사로 일하다 방송계로 진출한 중국인으로, '비정상회담'을 비롯해 '냉장고를 부탁해', '안녕하세요' 등에 출연하며 유명세를 탔다. 나도 그를 '비정상회담'이란 프로에서 다른 외국인 청년들과 함께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지금은 한국 생활을 접고 중국으로 돌아간 모양이었다.
논란이 된 것은 그가 자신의 틱톡 방송에서 한 "한국이 중국 문화를 훔쳤다"등의 발언 때문이었다. 물론 듣는 대상은 중국인들이었겠지만, 한국인에 대한 노골적인 도발도 있었다. 그는 자신이 곧 한국을 방문할 것이라며 "(한국인이 중국 문화를) 훔치는 것에 대해서 묻겠다"고 했다. "나도 (중국 문화를 훔치는 한국인들 생각을) 알고 싶기 때문에 길거리 인터뷰를 할까 한다"는 언급도 했다.
덧붙여 그는 한국인과의 인터뷰에서 "단오절, 공자, 한자, 중국 절기와 관련된 것 등이 중국 것임에도 이것을 왜 전부 한국 거라 생각하는가" 같은 내용을 묻겠노라며 한때 양국 간에 논란이 있던 문제를 상기시켰다. 그리고는 또 "명나라나 송나라 때 황제 옷을 입고 한국의 궁 같은 데 가서 한 번 돌아보겠다" 하면서, 그러면 "마치 황제가 속국을 시찰 나온 느낌일 것"이라 했다. 아울러 "(그 복장 그대로) “시찰 나온 기분을 가지고 지하철을 타거나 번화가, 왕궁을 다니면서 중국 남자 복식의 아름다움을 선보이겠다"고 도발했다.
나아가 장위안은 그룹 아이브 신곡 티저를 언급한 후 해당 뮤직비디오 티저 영상 속 한 장면이 만인갱(万人坑, 완런갱)을 떠올리게 한다고 주장하며, 티저 공개일과 콘서트 날짜 등이 아픈 중국 역사와 관련 있으니 "실수라면 해명하라"라고도 요구했다. (※ 만인갱은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남경대학살 때 중국인들을 살육해 묻은 갱이다. 1937년 12월 13일 남경을 점령한 일본군은 이듬해 1월까지 6주 동안 무려 30만명에 이르는 무고한 중국인을 학살했는데, 중국정부는 일제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난징 도심에 난징대학살기념관을 마련하고 죽은 이들이 묻힌 만인갱을 재현해 놓았다)
아울러 그는 "한국에서 아무나 붙잡고 확인해서 3, 4대를 올라가면 그 조상 상당수가 중국인"이라며 "한국 언론이 보도해도 전혀 상관없다. 오히려 나는 보도되기를 바란다. 고민해 보고 해명이 필요하다 싶으면 우리 중국인에게 해명하라. 변명이라도 좋고, 진심 어린 참회도 좋으니 들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장위안은 "나는 한국을 싫어하지 않는다. 청춘의 십수 년을 한국에서 보냈기에 긍정적인 감정이 크다. 물론 안 좋은 점도 분명히 있다"면서 “한국에 가서 중립적인 입장에서 진정한 한국을 보여주겠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우리나라가 시끄럽게 된 것인데, 사실 나는 그의 발언이 별로 자극적으로 와닿지 않는다. 이것은 장위안뿐 아니라 모든 중국인들이 가지는 일반적인 사고이기 때문이다. 그간 한국에서 활동 중인 중국 출신 K팝 아이돌이 문제적 발언을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니, 피에스타 출신의 차오루는 '남중국해 영유권'을 공개 지지했고, EXO의 레오와 fx의 빅토리아는 '항미원조 70주년' 기념 글을 SNS에 올려 논란을 빚기도 했다. '항미원조'란 중국이 6.25 전쟁을 이르는 말로, '침략자 미국에 대항해 조선(북한)을 도와준 전쟁'이란 뜻이다.
그들의 발언은 우리로서는 열받는 일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따지고보면 이들은 자신들이 배워 알고 있는 내용을 피력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들의 생각은 대다수 중국인들의 생각이기도 하니, 앞서 '우리의 사대주의 언제까지 갈 것인가? (I)'에서도 말했거니와 나는 우리 조상님들이 신봉한 사대사상에서 비롯된 저들의 고약한 중화 우월주의를 아주 오랜 전부터 경험해 왔다. 앞서의 내용을 옮기자면 이렇다.
나는 고등학교 3년 동안을 서울 성동구에서 마포까지 통학했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했으며 통학시간도 1시간 반이나 소요되는 먼 거리였다. 당시 이른바 공동학군이라 불리던 고등학교 배정 범위의 동쪽 끝에 살던 내가 서쪽 끝의 학교에 배정됐기 때문인데, 까닭에 꼼짝없이 그 먼 거리를 3년 내내 왔다 갔다 해야 했다. 그런데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인근에 한성 화교학교가 있었다. 재한 중국인 학생들, 즉 화교 학생들이 다니던 학교였는데, 그 학생들과 3년 동안 같은 버스를 타고 다니다 보니 막판에는 친해져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몇 번 술자리도 가지게 되었다. 그때 그 녀석들이 술이 취해 물어보던 말이 있다.
“야. 너희 나라에 황제 있었냐?”
“있었지. 고종도 있고, 순종도 있고..... 고려 시대 광종도 있고.....”
나의 동창 친구들은 즉각 학교에서 배운 대로 몇 마디 답했다. 그러자 녀석들이 곧바로 이렇게 되물었다.
“그리고, 또 누구 있었는데?”
“고구려 광개토왕도 사실은 황제였어. 태왕이란 곧 황제를 의미하는 것이거든. 영락이라는 연호도 썼고.....”
제법 공부를 잘했던 동창생 한 명이 다시 몇 마디 답했지만, 아무래도 끝은 좀 우물거렸던 듯싶다.
녀석들이 다시 되물었다.
“그리고 또....? 없어? 시간 줄 테니 천천히 생각해 봐.”
이쯤 되면 묻는 이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캐물어보지 않아도 알 일이었다. 자기들 나라 중국은 대대로 황제국이었고, 너희 나라 한국은 대대로 우리의 속국이자 제후국인 왕의 나라였다는 것이다. 또 친절하게 그러한 설명을 단 녀석도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술자리는 그쯤에서 흐지부지 끝이 났다. 그리고 그들과의 관계도 그쯤에서 끝난 것 같은 바, 사실 그렇게 되면 앞으로의 관계는 더 이상 지속하기 힘들 터였다. 사실을 말했지만 실제 의도는 모욕을 주자는 것이었기에.
이와 같은 그들의 중화 우월감과는 이후 사회에서도 몇 번 부딪쳐야 했는데, 그다음의 모욕감은 중국무역대표부에서 겪은 일이었다. 우리나라가 대만과 단교를 하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기 직전, 저들은 종로 관철동에 있는 현대빌딩에 무역대표부를 설치하고 그곳에서 중국 비자 발급 같은 것을 해주었는데, 관광 목적 등의 비자를 받으러 오는 여행사 직원이나 나처럼 무역 회사에 근무하던 사람들은 자주 출입을 해야 했다.
그때 창구의 중국인 직원들은 그렇게 고압적일 수가 없어서,(당시 목격한 상황들은 차마 쪽팔려 필설로 옮기기조차 싫다) 나는 갈 때마다 매번 자존심의 스크래치를 감내해야만 했다. (그래도 당시는 우리가 그들보다 훨씬 잘 살 때여서 중국에 가서는 칙사 대접을 받던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때 나는 염려했다. 이제 머잖아 중국은 한국을 따라잡게 될 터, 지금도 그러한 데 저들의 부흥이 시작되면 우리 한국은 정말이지 발뒤꿈치의 때보다 못한 대접을 받게 되겠구나.....
그런데 결국 그날이 오고 말았다. 그리하여 급기야 일국의 야당 대표 입에서 "왜 중국에 집적거리냐"며 "그냥 셰셰, 대만에도 셰셰 이러면 되지"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그는 또 "중국과 대만 국내 문제가 어떻게 되든 우리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우리만 잘 살면 되는 것"이라고도 했다. (대만해협에서 문제가 생기면 주한미군이 이동하게 되고 그 경우 북한의 남침 야욕의 빗장이 풀리게 된다는 것쯤은 삼척동자도 알 것 같은데 말이다)
아무튼 이 대표의 '셰셰' 발언이 나오자 중국 매체에서는 해당 발언이 대서특필되며 이 대표에 대한 상찬 기사가 쏟아졌다. 중국 매체들은 이 대표의 '집적거린다'는 표현을 '자오러'로 번역했는데, 이는 약자가 강자의 심기를 거스른다는 의미이다. 이 대표가 중국을 한국보다 강자로 인정했다는 전제를 깐 것이다. "보기 드물게 사리 밝은 한국인"이라는 황감한 칭찬도 있었다.
최대 포털인 바이두에서는 이 대표의 발언이 당일 인기검색어로 자리했다. 댓글에는 '예의 바른 사람'이라거나 '마침내 한국에도 정신이 멀쩡한 인물이 나타났다'는 식의 칭찬인지 비아냥인지 알 수 없는 댓글이 연이어 올라왔다. 아울러 중국 언론에서는 '현재 지지율 우위를 보이고 있는 야당이 집권당을 누르고 승리할 것이며, 향후 한국에서는 친중세력이 득세할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결과는 중국의 예상대로 되었다. 하지만 아직 친중세력이 득세한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아직 희망이 남았다. 우리 대한민국이 살 길은 중국에 '셰셰'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한국에 대한 외교 개입이나 경제적 압력이 환영받지 못한다는 점을 차갑게 인식시켜 주는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POWER OF BALANCE를 위한 서방 민주주의 국가와 강력한 동맹을 형성하고, 중국의 경제 보복에 대해서는 똘똘 뭉쳐 감내하고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 줘야 중국이 겁을 먹고 함부로 하지 못한다.
물론 다른 살길도 있다. 무조건 '셰셰'하고 조선시대처럼 조공을 바치며 굽실대면 된다. 어쩌면 그것이 더 쉽고 안전한 방법일 수 있다. 조선이 600년 동안 그리 했던 것처럼. 그리하여 '한국이 중국 문화를 훔쳤다'거나 '너희 조상 3, 4대를 올라가면 그 조상 상당수가 우리 중국인'이라는 말쯤은 감내하고, 마치 황제가 속국을 시찰 나온 것처럼 황제복장으로 으스대는 중국인을 지하철에서나 번화가에서나 고궁에서 보게 되면 '셰셰'하거나 애써 모른 척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조선이 600년 동안 그리했음에도 멸망했다는 사실만큼은 잊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