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곳 중 하나는 사라질 한남동 부군당
앞서 '용산의 부군당'에서도 언급했거니와, 서울에서도 용산에만 부군당이 유독 많은 이유에 대해서 누구도 시원한 대답을 해주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누구라도 한강의 일부였던 옛 용산강과 관련짓기를 주저하지 않으니, 뱃일로 삶을 영위하는 마을 주민들이 안녕을 기원한 장소일 것이라 미루어 짐작한다. 이태원·동빙고동·서빙고동·한남동의 부군당 외에 용문동 고개에 있는 남이장군 사당이나 보광동 오산중·고등학교 부근의 흥무대왕 김유신 사당도 부군당에 속한다.
아무튼 전래의 무속행위가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데 의미를 두고 이상의 장소를 두루 살펴보았으나 유감스럽게도 한남동에 있다는 두 곳의 부군당을 찾지 못했다. 이 일에 대해서도 앞서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오늘 그 두 곳의 장소를 모두 찾았던 바, 한 해의 숙제를 마무리한 기분이다. 이것이 엉뚱하게도 대통령 입건과 관련이 있으니, 영장이 집행되리라 여기지는 않았지만 오늘 체포 영장이 발부된 대통령에 대한 찬반 인파를 보고 싶어 대통령 관저(한남동 726-491)에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에 득템한 것들이다.
언젠가 쓰일 때가 있을는지 없을는지 모르겠으나, 나름 역사적 순간이라고 생각해 대통령 관저 앞에서 정말로 많은 사진을 찍었다. 기자도 아니면서 말이다. 그리고 주체 측이 나눠주는 손 피켓 등을 애써 회피하며 (받으면 주저앉아 들고 있어야만 될 거 같아서) 돌아오는 길에 먼저 한남동 제2 부군당을 찾아보았다. 일전에도 말했지만 재개발을 목전에 두고 있는 이 일대는 지금의 거의 폐허 상태인데, 앞서 '아직 주민이 남아 있는 곳'이라고 사진을 올렸던 장문로49길 골목의 가구들도 지금은 모두 이사를 갔다.
한남동 제2 부군당은 지금은 주민들이 모두 떠난 장문로49길 17번지 가파른 골목길에 있었다. 이번에도 자칫 지나칠 뻔하다 우연히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린 곳에서 기적적으로(?) 발견됐다. 문 틈으로 보이는 내부는 예전 사진에서 보았던 그대로 폐허 상태였으나 외관은 비교적 온전했다. 대문을 밀어보니 시건장치가 빈약해 문득 침입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CCTV도 주민도 없는 곳이기에^^) 들어가봐야 볼 것도 없을 듯해 밖에서만 촬영했다.
일설에는 한남동 제2 부군당에 모셔진 그림이 임경업 장군이라고 하나 부군당과의 연결 고리가 미약하다. 흔히 원통한 죽음을 맞은 장수, 이를 테면 관우, 최영, 남이, 고경명, 임경업 등이 무속신으로 받들어지기는 하나 용산과의 연결성이 너무 없다. 남이 장군은 용산 새남터에서 죽었으며, 김유신은 북진할 때 용산강을 건넜다고 한다. 그것이 각각 용문동과 보광동에 사당이 있는 이유이나 임경업 장군은 좀 쌩뚱맞다. 그저 부군신과 부군부인으로 보는 편이 옳을 듯하다.
제2 부군당을 찾은 후, 역(逆)으로 다시 가 한남동 제1 부군당을 찾아 보았다. 예전 한남역 부근 마트 앞에 모인 어르신 중의 한 분이 수첩을 찢어 그려준 약도를 들고도 찾지 못했던 곳인데, 이번에는 무슨 조화인지 길을 잘못 든 곳에서 짠! 하고 나타났다. 아마도 부군당 앞 건물이 철거된 것이 시야를 확보해주었으리라. 주소는 한남대로8길 9-9이며, 부군신 외 부군부인, 삼불제석, 좌제장군(左諸將軍), 용궁부인, 산신, 우장군(右將軍)의 총 일곱 분이 모셔졌다.
▼ 2025년 1월 3일 영장 1차 집행 때 찍은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