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 따라 삼백만리

CNN 선정 '세계에서 가장 소름 돋는 장소' 곤지암 정신병원 터의 놀라운 반전

기백김 2025. 4. 27. 18:02

 
앞서 말한 신립장군의 묘소에 다녀오면서 부근에 있는 신대리 161-1의 공터를 방문했다. 과거 남양 신경정신병원이 있던 곳이다. 2012년 광주시 곤지암 정신병원 터라는 이름으로 미국 CNN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소름 돋는 7곳의 장소' 중의 하나로 선정되며 유명세를 탔던 곳이기도 하다. 같이 소개된 장소로는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공원 ▲체코 세들렉 납골당 ▲'자살의 숲'으로 불리는 일본 아오키가하라 숲 ▲아프리카 토고 로메의 동물 부적 시장 ▲멕시코 '인형의 숲' 호수 ▲일본 나가사키 군함도가 있었다. 
 
 

CNN이 소개한 곤지암 정신병원
일본 아오키가하라 숲 / 일본 야마나시현 미나미쓰루군에 있는 이 숲에서는 1998년에 73구의 시체가 발견되었고, 2002년에 78구, 2003년에 100구, 2004년에 108구로 자살자가 늘어갔다. 2010년에는 247명이 자살을 시도해서 54명이 사망하였다. (위키백과의 사진과 글)

 
늘 뉴스거리를 갈구하는 CNN인 바, CNN 뉴스는 자회사인 세계적 여행잡지 '론리 플래닛'을 통해 지난 2011년에는 강원도 화천의 얼음낚시 제전인 산천어 축제를 '겨울철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소개하며 이 지역축제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적도 있다. 

 
 

화천 산천어 축제
스페인에서 온 기자가 직접 참가해 보도한 장면

 
사실 남양신경정신병원 관련 CNN 뉴스는 좀 엉뚱한 구석이 있는 보도였지만, 한편으로는 구체적인 면도 있었으니 이 정신병원에서 10년 전 환자들이 의문사했고 이후 강제 폐쇄되어 문을 닫았다고 했다. 그리고 현재는 건물 잔해와 철조망 등만 남았다'고 소개했다.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사실에 기인한 보도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후 꼬리를 물고 퍼진 괴담이었으니, '환자가 하나둘 죽어나가자 곤지암 정신병원 병원장이 스스로에게 마취제를 놓아 자살했고, 두 아들도 잇달아 죽었으며, 건물주는 실종되었다'는 등의 루머가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었다.
 
소문의 중심점은 1997년 돌연 문을 닫은 뒤 20년 넘게 야산 속에 폐건물로 버려진 정신병원 건물이었다. 그리고 급기야 2018년 3월에는 이 정신병원 건물을 무대로 한 공포영화 <곤지암>이 개봉했는데, 시놉은 환자 42명이 집단 자살하고 병원장이 실종된 이후, 섬뜩한 괴담이 퍼지고 있는 곤지암 정신병원으로 공포 체험을 떠난 7명의 멤버들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들이다. 문제는 소소한 흥행을 올린 이 영화의 개봉 이후로서, 영화 속 주인공이 돼 보려는 간 큰 청소년들이 나타나며 시작됐다. 
 
 

영화 <곤지암>의 포스터
영화 <곤지암>의 스틸컷

 
그 청소년들로부터 야기된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이때부터 건물의 방비가 강화되기 시작했던 바, 그 침입방지 시설을 한 주체가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곧 주체로 보이는 사람이 나타나며 주목을 받았다. 그 사람은 미국에 살던 건물주였는데, 난데없이 <곤지암> 영화제작자들에 대한 고소를 운운했다. '당신들 때문에 건물의 매매가 파기됐다'며 영화제작진을 상대로 건조물 무단침입 등의 혐의로써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었다. 
 
제작진에서는, 자신들은 괴담을 유포한 적이 없으며, 건물주가 말하는 영화의 부분은 CG이고 실제로도 촬영은 부산의 폐교 건물에서 이루어졌다며 맞대응했다. 건물주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낸 상영금지 가처분신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사건은 병원부지를 포함한 인근 땅 6만9천400여㎡가 주택건설업자에게 매각되며 급 사그라졌다. 이것을 보면 이 일대는 향후 전원주택지로 전용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그런데 이곳은 지금껏 공터로 남겨져 있다. 왜일까? 
 
 

철거되는 남양 신경정신병원 / 2018-05-28 경인일보

 
시종 경계심을 버리지 않던 이곳 주민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니, 의외의 답이 나왔다. 무언가를 짓기 위해 공사를 시작했을 때 굴착기의 첫삽부터 깨진 조선백자편이 나왔고, 곧바로 공사가 중단되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이 일대는 조선시대 사옹원(司甕院)의 분원(分院)이 있었던 곳으로, 이른바 분원자기라 불렸던 관요(官窯) 자기가 제작된 가마터이다. 광주 분원은 일제강점기 시절까지도 존속하였는데, 382,738㎡에 이르는 면적에 300여 개의 가마터가 있었을 정도로 넓은 부지였다.
 
그러고 보니 광주시에서 광주 분원 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준비 중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 것도 같다. 그 정도라면 향후로도 이곳에 건물이 들어설 리는 없을 듯하다. 지금은 옛 가마터로 짐작되는 곳이 펜스로 보호되고 있어 들어가 볼 수는 없고, 관련 안내문도 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그냥 돌아오기도 뭐해서 무덤이 산재한 주변 야산과 야산 입구의 신비스러워 보이는 연못, 그리고 야산 일대를 둘러보다 거짓말처럼 조선백자편 몇 점을 발견했다. 
 
집에 와서 물로 씻어보니 빛깔이 유백색으로 빛나며 두께도 아주 얇은 것이 고급 관요 백자임에 틀림없었다. 비록 파편이라도 횡재를 한 기분이었다. 안내문에 따르면, 이곳 신대리 유적에서는 여러 개의 가마와 불량품 폐기장 2곳, 공방지 8곳이 확인되었다 하며, 광주 관요에서 제작된 자기 중 국보로 지정된 것이 17점, 보물로 지정된 것이 40점이라고 한다. 이 자기도 깨지지만 않았다면 필시 국보급 유물이었으리라.
 
 

도요지 유적이 된 옛 정신병원 자리
광주 조선백자 요지와 안내문
안내문
안내문 상세
신비로워 보이는 연못
야산 오르는 길
위에서 내려본 철제 다리
야산 기슭의 묘표 없는 무덤
야산에서 바라본 신대리 마을
신대리 새텃말 표석
신대리에서 보이는 광주~원주간 고속도로의 터널
부근의 곤지암천
아름답게 해가 진다.
볼수록 예쁜 자기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