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남양주 호평동의 후기구석기 유적과 슴베찌르개

기백김 2025. 5. 13. 07:34

 

 

서울 동부의 선사시대 유적지는 우리의 관심에서 멀리 벗어나 있으나 일제강점기에 일어난 동관진(潼關鎭) 소동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금석지감이 새롭지 않을 수 없다. 동관진 소동은 1935년 일본인 고고학자 나오라 노부오(直良信夫)가 함경북도 종성군의 두만강변 동관진에서 구석기 유적을 발견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가 헌병대로 끌려간 치도곤을 당한 사건이다. 당시 일본의 주장은 '한반도에는 구석기시대가 존재하지 않았다' 였다.   

 

한마디로 일제 사관(史觀)의 모토는 '조선의 역사가 일본보다 앞설 수 없다'는 것이었다. 까닭에 일본에서도 출토되지 않은구석기시대 유물이 한반도에 나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에 나오라 노부오는 헌병대에서 쌍코피가 터져야 했고 논문은 폐기되어야 했다. 그는 1948년 일본 효고현 아카시(明石)시 니시야기(西八木) 해변에서 홍적세 인류의 것으로 추정되는 아카시원인(明石原人)의 요골(腰骨)을 발견함으로써 결국 일본 선사시대의 기원을 마련했다. 

 

 

나오라 노부오(1902~1985)
나오라 노부오가 구석기 유물을 발견한 동관진 / 멀리 보이는 강이 두만강이다.

 

우리나라에서 최초 발견된 선사시대 유물은 그렇게 묻혔는데, 해방 후 한반도에서의 구석기 유물 발굴은 북한이 앞섰다. 1963년 5월 4일자 북한 <노동신문>은 '함북 웅기 굴포리에서 구석기 유적에서 1962년 차돌(석영)로 만든 깬석기 1점이 발굴된 데 이어, 1963년 4월 추가 조사에서 깬석기 5점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앞서도 말한 한흥수와 도유호라는 걸출한 고고학자가 이룬 성과였다.

 

 

도유호(1905~1982) /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 고고학을 전공하고 비엔나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나 월북했다. 이후 한흥수와 함께 고고학의 태두가 되었으나 1960년대 후반 숙청돼 함경북도 회령 탄광으로 보내졌다.
남양주에서 출토된 석영 석기 / 국립중앙박물관
남양주 호평동에서 출토된 석영 석기와 몸돌 / 남양주시립박물관

 

이에 자극을 받은 한국의 고고학계도 발굴에 박차를 가했던 바, 1964년 충청남도 공주시 석장리 앞을 흐르는 금강 유역에서 손보기(1922~2010) 박사가 드디어 구석기시대의 유적을 발굴했고, 이 유적에서 실시된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가  BP 30,690±3,000년과  BP 20,830±1,880년으로 나와 3만 년 전의 구석기가 한반도에 존재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이후 충청북도 제천군의 점말동굴과 청원군의 두루봉동굴,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유적, 충청북도 제원군 창내유적과 명오리유적, 단양군 금굴유적과 수양개유적, 전라남도 승주군 우산리유적·금평리유적·대전리유적 등 수많은 곳에서 구석기유적이 발굴되었다. (대략 40여 군데가 된다)

 

 

공주 석장리에서 발굴 작업을 벌이는 손보기 / 1968년 석장리에서 남한 최초로 출토된 주먹도끼 (동아일보 DB)

 

서울에서는 앞서 '서울 면목동에 살던 네안데르탈인'에서 언급한 대로 1967년 중랑구 면목동 면목고등학교 인근 택지개발 공사장에서  3만 년 이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구석기 유물이 발굴되었지만 그대로 묻혔고 그 위에 아파트가 지어졌다. 그리고  남양주시 호평동에서는 2000년대 초 LH공사의 공동주택 신축에 앞서 시행된 조선시대 기와가마터 조사 과정에서 구석기시대의 석기가 발견되었는데, 2002년~2004년, 2007~2008년 2차에 걸친 경기문화재연구원의  발굴 조사가 있었다.

 

결과는 놀라워서 이 일대에서는 구석기 유적뿐 아니라 및 신석기시대의 주거지 3기, 수혈유구 2기, 야외 취락지 4기 및 청동기시대 장방형 주거지 1기가 발굴되었던 바, 호평동 일대가 구석기~청동시시대에 이르는 오랜 기간 동안 선사시대인의 주거지로 자리 잡았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 장방형 주거지 일대에서는 신석기시대의 유물인 빗살무늬토기가 발굴되었으나 주거지 형태와 나머지 토기편의 조사에서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판단됐다)

 

 

호평동 출토 빗살무늬토기편 / 남양주시립박물관
빗살무늬토기가 나온 호평동 구릉지대

 

오늘 말하려는 것은 구석기유적 관련 사항으로, 모두 4개 지역에서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출토 유물은 무려 1만 점이 넘었다.(총 10,561점) 유적은 천마산 구릉 끝자락인 해발고도 138~161m에 이르는 산록 구릉지대 하단부에 입지한다. 전체 층위는 화강편마암 기반암을 포함하여 7개의 층으로 구분되었다.

 

주목할 곳은 하부의 1문화층과 상부의 2문화층으로, 1문화층에서는 석영을 이용한 격지 제작과 응회암을 활용한 돌날 제작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긁개, 홈날, 밀개를 비롯하여 후기구석기의 표지 유물인 슴베찌르개(Tanged point)가 나왔다. 유물과 함께 출토된 다량의 숯에 대한 연대측정 결과, 1문화층은 BP 30,000~27,000년 사이에 형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1문화층에서 발굴된 찍개, 돌날몸돌, 돌날격지, 긁개, 밀개, 슴베찌르게
1문화층에서 발굴된 찍개, 망치돌, 흑연

 

상부의 2문화층에서는 보다 다양한 종류의 뗀석기가 출토되었는데, 특히 흑요석을 활용한 좀돌날석기가 눈길을 끈다. 그 밖에도 긁개, 밀개, 뚜르개(송곳), 새기개, 조합식도구 등 다양하고 새로운 종류의 석기가 출토되었다. 숯과 토양시료에 대한 연대측정 결과, 2문화층은 BP 24,000~16,000년전 사이에 형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2문화층에서 발굴된 석영몸돌, 좀돌날몸돌, 좀돌날, 뚜르개
2문화층에서 발굴된 새기개, 홈날, 밀개,

 

이중 주목할 만한 석기는 앞서 말한 슴베찌르개, 슴베찌르개는 석장리와 단양 수양개 유적을 비롯해 순천 우산리, 밀양 고례리, 대전 용호동, 철원 장흥리 등 24개 유적에서 270점 남짓이 출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전국적 분포로 인해 슴베찌르개한반도 후기구석기 문화의 표지 유물로 여겨지는데, 수양개 유물의 연대측정 결과를 바탕으로써 한반도가 '슴베찌르개의 발상지'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다수다. (※ 슴베는 자루에 끼워지는 부분을 말한다)

 

 

단양 수양개유적 슴베찌르개 / 수양개 출토 슴베찌르개 중 가장 오래된 것은  4만6000년 전의 것으로, 세계에서 발굴된 것 중 가장 시기가 빠르다.
대전 용호동 유적 슴베찌르개 / 슴베찌르개는 후기 구석기시대를 대표하는 수렵 도구다. 끝이 뾰족한 모양의 날과 자루에 끼우는 슴베가 일체형으로 만들어졌다. 길이는 평균 6~8cm로 슴베를 긴 나무에 끼워 사용했다.
슴베찌르개의 용례

 

아래의 뗀석기들은 기존 호평동 유적 조사 과정에서 경춘선 이설 지연으로 조사범위에서 제외된 철도부지에 대한 추가 발굴 중 수습된 유물이다. 추가 발굴은 2002년 5월~2004년 11월까지 총 3차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석영, 혼펠스, 흑요석을 비롯해 다양한 돌감이 출토되었으며, 석기의 용도 또한 다양해 주목받았다.

 

 

3차 추가조사 지역에서 발견된 석영 몸돌과 격지
3차 추가조사 지역에서 발견된 돌날과 좀돌날

 

호평동 유적지는 전체적으로는 현재 유적공원이 조성된 1지역(현 한라비발디아파트가 있는 곳 / 아래 사진)을 중심으로, 현 중흥S클래스아파트가 있는 2지역, 구룡초등학교가 있는 3지역, 북쪽 도로 지역인 4지역으로 나뉜다. 당시 1지역은 1/6만 발굴하고 도포해 현재 구석기역사공원으로 꾸몄으며, 나머지 2, 3, 4지역은 발굴 완료 후 택지와 도로가 조성됐다. 조사지역의 전체면적은 20,208㎡였고, 유물은 1지역에서 2지역에서 거의 대부분이 출토되었다. (1지역 83%, 2지역 15%) 

 

 

발굴이 이루어진 호평동 679번지 일대의 당시 사진
발굴지역 지도
1지역에 건설된 한라비발디아파트
유물 발굴지였던 한라비발디아파트 앞 놀이터
유물 발굴지에 조성된 구석기역사공원
구석기역사공원 전경 / 뒤에 보이는 산이 백봉산으로, 유적지는 북쪽의 천마산(해발 812.4m)에서 남쪽의 백봉산(해발 589.9m)으로 이어지는 산지에 의해 형성된 분지에 입지한다.
구석기역사공원 입구의 안내문
2지역에 건설된 중흥S클래스아파트
3지역 구룡초등학교 건너편 호평동 65-1의 유물 출토지
4지역 발굴지 뒤로 보이는 백봉산 연봉
남양주시립박물관의 호평동 출토 구석기 / 오른쪽이 주먹도끼다.
남양주시립박물관의 호평동 출토 구석기 / 아래가 좀돌날이다.
남양주시립박물관의 호평동 출토 돌날 석기
호평동 출토 도토리 씨앗 / 신석기시대의 것이다.
발굴 당시의 호평동 신석기 유적지 / 신석기학회 제공 사진
남양주시 진접읍 장현리 출토 반달돌칼 / 청동기시대의 것이다.
남양주시 장현리 출토 항아리형 토기 / 청동기시대의 것이다.
남양주시의 선사유적지와 호평동 유적지(O) / 호평동 유적은 광주 삼리, 의정부 민락동, 철원 장흥리 유적 등과 함께 중부지방의 후기 구석기 시대 문화상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빋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