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슬린 케년이 밝혀낸 여리고성의 실체
바벨탑과 여리고성을 비롯한 성서의 이야기들을 역사적 사건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마음은 고고학이 시작된 이래로부터의 열망이었다. 이에 성서의 이야기에 매료된 많은 고고학자들이 유럽 제국주의의 아시아 진출과 함께 중동의 모래바람 속으로 뛰어들었는데, 그중에는 캐슬린 케년(Kathleen Kenyon, 1906-1978)이라는 영국의 여성 고고학자도 있었다.
그녀가 주목한 곳은 이스라엘 중부의 제리코(여리고)로서, 기원전 854년 선지자 엘리야가 UFO에 의해 끌어올려져 승천한 바로 그곳이었다. (☞ 'UFO의 모선에 끌어올려진 선지자 엘리야') 하지만 그녀가 찾고자 했던 것은 이와는 무관한 것으로, 그녀의 목표는 오로지 옛 여리고성의 발굴이었다.
이에 백성들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여호수아 6:20)
이스라엘 백성들이 6일간 성의 주위를 돌고 크게 소리 질러 무너뜨렸다는(여호수아 6:1-21) 이 청동기 시대의 성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매력적인 데가 있었다. 게다가 가나안 침공군이 최초로 점령한 성이라는 의미 또한 깊었던 바, 성을 찾기 위한 노력은 전부터 지대하였다. 대표적으로는 영국의 찰스 웨렌(1867-1868), 오스트리아의 에렌스트 젤린과 독일의 칼 바징거(1907-1909), 영국의 존 가스탕(1930-1936) 등의 발굴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괄호 안은 발굴 기간)
캐슬린 케년의 발굴은 1952년부터 시작되었는데,(~1958년) 그녀 역시 오랜 기간 이렇다 할 성과물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텔 엘 술탄, 즉 성서의 여리고로 추정되는 지역의 지하 20m 되는 지점에서 고대의 성벽과 망루와 유물을 발견하였다. 그녀는 당연히 이 성채를 성서의 여리고성이라 생각했을 터, 하지만 당대의 최신 측정법인 탄소-14 연대 측정법을 도입해본 결과 이 성은 여호수아 시대, 즉 청동기 시대의 유적이 아닌 기원전 8000년(지금으로부터 1만년 전)에 건설된 성채도시라는 것이 밝혀졌다.
세계 최고의 문명인 수메르 문명을 무려 4000년이나 상회하는 이 불가사의한 도시의 발견에 세상 사람들은 아연하였다. 전(前) 문명과도 연결되지 않으며(그전에는 문명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그후의 문명인 수메르 문명과도 현격한 시차를 두는 엄청난 도시의 출현에 여리고성의 유무 따위는 이제 이슈에서 벗어나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것은 케년에게도 그러했던 듯, (발굴된 1만년 전의 성채는 일단 덮어둔 채) 성서 속의 여리고성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써 긴 발굴을 마쳤다. '군사적 정복설과 후기 청동기 시대의 참고자료들을 가지고 내린 결론은 청동기 말기(BC 1400년)에 도시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는 설을 뒷받침할 만한 여타의 고고학적 자료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말을 에둘렀다 뿐 여리고성의 역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실한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럼에도 여리고성의 존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은 그 전의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된 텔 엘 술탄의 시대 미상의 성벽들을 근거로, '이것이 바로 여리고성의 흔적이며 성서의 이야기 또한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다' 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 주장은 21세기에 이른 오늘날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 관련 홈 페이지에서 주장하는 여리고성의 역사성은 그저 신앙적 희망일 뿐 정설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성서의 시대적 배경(청동기 말기에 해당하는 여호수아 시대)에 부합하는 여리고성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문제는 케년이 발굴한 제리코의 신석기시대 고대 성곽을 어떻게 결론 지을까 하는 것인데, 나는 그것을 외계인에게 영향을 받은 후기 신석기인의 문명이라고 보고 싶다. 기원전 4000년 황량한 사막의 땅에서 불쑥 솟아난 거의 완벽한 시스템의 인류 문명(이른바 수메르 문명)이 남방으로 이주한 셈의 후손들이 가져온 선진문명(사마라·Samarra 문명)에의 영향이었듯, 1만년 전의 이 불가사의한 도시문명을 외계인 선진문물에의 영향을 받은 셈의 조상들이 만든 문명이라고 해석하고 싶은 것이다.
나아가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그렇다면 외계인은 최초 팔레스타인의 제리코 인근에 착륙했을 것이고, 한동안 그곳에서 생활하다 이후 에덴, 즉 이란 서북부 우르미아 호수 근방의 서쪽 산록으로 근거를 옮겼을 것이라는 것이다.(에덴의 위치는 일전 출간한 책 '성서의 불편한 진실들'에서 도해와 함께 많은 지면을 할애해 설명했으나, 사실 에덴의 위치를 찾는 일은 이제 식상한 감이 드는 바, 더 이상의 언급은 피하기로 하겠다. 혹 장소가 궁금하신 분은 '수메르, 그 문명의 새벽을 돌아보다-고대의 민족 대이동'을 참조하시길)
나의 제리코성에 대한 주장은 어디까지나 추정이다. 하지만 이것이 아니고는 케년이 발견한 제리코의 돌출 문명을 설명할 길이 없다. 아니 그보다도 앞서 I 편에서 언급된 질문, 즉 '여호와는 대체 무슨 권리로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에게 주었는가' 하는 데 대한 어떠한 답도 만들어낼 수가 없다. 그에 대한 답은 역시 창세기 첫머리의 재해석뿐인데,(☞ '성서 속 최초의 UFO' 참조) 제리코성에 대한 답도 여기서 유추될 수 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본인이 성서의 여러가지 문제점의 해법으로서 누누이 강조한 창세기의 첫머리..... 다시 말하거니와 이 문장은 지구라는 미지의 별을 발견한 외계인들이 물 위를 비행하는 광경이다.(이 물은 당연히 지중해가 될 것이다) 이후 창세기에서 줄곧 '우리'라고 표현된 그들 외계인이 착륙한 곳이 바로 지중해 오른쪽에 위치한 제리코이며, 그 일대에서 지구 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이 확장된 나의 견해이다. 여호와가 그곳을 제 땅처럼 여기며 ‘주겠다’고 나선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인즉, 이른바 무주물 선점(無主物 先占)의 원칙 같은 것을 들이대지 않더라도 여호와가 그 땅의 주인임을 당당히 주장하고 나서는 것이 절대 무리로 보이지는 않는다.
성서에서는 본문은 물론, 그 어느 행간에서도 그곳이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줄 수 있는 하나님의 땅인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성서를 읽는 사람 역시 그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으며 따지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코 어떤 식으로라도 설명이 뒤따라야 될 아주 중요한 문제이기에 나는 내 식으로서의 해법을 제시했음이다.
사실 문제를 만들자면 이 이외에도 산더미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질문들이 대기하고 있다. 이를테면 진실로 하나님이 이 땅의 창조주라면 세상의 좋은 땅을 다 내어주지 왜 팔레스타인이라는 그 좁고 척박한 땅으로 아브라함을 인도했겠는가? 게다가 과거와 달리 이제는 임자가 있는 땅이었던 바,(창세기 12:6) 가나안에 도착한 아브라함 일행은 평원이 아닌 벧엘 동쪽의 산록에 겨우 터전을 마련해야 했으며(12:8) 그것도 여의치 않아 점점 남방으로 옮겨 다니다가(12:9) 결국은 기근에 밀려 이집트로 동냥 가는 신세가 되게 만들었겠는가?(12:10)
― 하긴 이럴 때 기독교인이 하는 말이 있기는 하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기 전 시련을 먼저 주신다."
아무튼 여리고 성채에 대한 나의 단상은 이와 같은데, 끝으로 그곳에서 출토된 조개껍질 장식의 인골들을 평가 없이 소개하려 한다. 아울러 제리코성의 발굴로써 유명 고고학자가 즐비한 영국에서도 특별한 대접을 받는, 그리하여 브리티시 박물관의 한 부스를 마련해 전시되고 발굴 당시의 캐슬린의 모습까지 특별 전시한 브리티시 박물관의 사진을 여기서도 다시 한번 특별히(?) 소개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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