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기'의 여호와가 퍼뜨린 까닭 모를 전염병
앞서도 여러 번 강조했지만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야 했던 이유는 오직 하나, 예수가 다윗 대왕의 후손임을 주지하기 위해서이다. 이름 없는 건축노동자 요셉의 아들로서는 도저히 사람들에게 예수의 존재를 어필시킬 수 없었을 터, 지금은 영락(零落)했지만 사실은 요셉이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다윗의 직계후손이며 예수는 그 후손의 아들임을 강조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실제로 신약은 첫머리에 그것을 적었다.(마태복음 1:1-17)
마태복음의 내용을 담고있는 파피루스. 3세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성서는 위 기록의 잉크도 마르기도 전, 예수는 성령으로 태어났다고 말하고 있다.(마태복음 1:18-20) 즉 바로 위의 내용과 달리 예수는 아비 요셉의 피는 단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신(神)적인 존재임을 주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성서의 기록은 이율배반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 문제에 대해 다루지 않으려 한다. 여기서는 '사람의 아들 예수'를 다루려고 하니 그의 조상인 다윗의 이야기를 하려 하기 때문이다. 물론 요셉이 아우구스투스의 인구조사에 응하기 위해 천 년 전 조상의 고향인 베들레헴까지 왔을 리는 만무하지만,(☞'예수는 어디서 태어났는가 I') 다윗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사무엘상 17:12)
임신 9개월의 여인을 나귀에 태우고 175km를 온 남자에게 여관주인이 묻는다.
"뭐라고요? 갈릴리에서....? 당신 제 정신이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아 기존의 독자가 아니라면 이해가 힘들지도 모르겠다. 본론으로 돌아와 이새의 아들 다윗에 대해 말해보자. 블레셋 민족으로부터 나라를 해방시키고 최대의 강역을 개척한 군주이자 낭만적인 시인이며 음악가이기도 한 다윗은 역대 이스라엘 군주 중에서 가장 위대한 왕으로 칭송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와 같은 공(功)에 비해 과(過)도 만만치 않은데, 그 중 가장 지탄받아야 될 일은 부하 장수의 부인인 밧세바와의 간통, 그리고 발각이 두려워 남편인 우리아를 죽인 일일 것이다.
다윗은 궁전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다 목욕하는 여인에 음심을 품고 그녀를 궁 안으로 불러들인 것인데, 개역성서에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했다'고 순화돼 표현된 것은 월경이 끝난 몸이었음을 말한다. 이에 밧세바는 쉽게 임신되었고 다윗은 나쁜 결심을 하게 된다. 물론 당시 다윗도 유부남이었으니 부인이 다섯 명이나 있던 때였다.(게다가 예루살렘을 수복한 후에는 처첩을 더 두었지만 왕이니까 그건 이해해 주기로 하자)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격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그 여인이 임신하매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임신하였나이다 하니라.(사무엘하11:1-5)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임신을 하자 이를 은폐하기 위해 전장에 나가 있는 우리아를 불러들여 술을 먹히고 밧세바와 동침시키려 들지만 번번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우리아가 집에 가서 자지 않고 막사에서 병사들과 함께 취침하며 군인으로서의 본문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한 다윗은 결국 우리아를 죽일 결심을 하는데 그 방법이 참으로 비정하고도 잔인하였다.
아침이 되매 다윗이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들려 요압에게 보내니 그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라가서 그로 맞아 죽게 하라 하였더라. 요압이 그 성을 살펴 용사들이 있는 것을 아는 그 곳에 우리아를 두니 그 성 사람들이 나와서 요압과 더불어 싸울 때에 다윗의 부하 중 몇 사람이 엎드러지고 헷 사람 우리아도 죽으니라..... 우리아의 아내는 그 남편 우리아가 죽었음을 듣고 그의 남편을 위하여 소리내어 우니라. 그 장례를 마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를 왕궁으로 데려오니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낳으니라.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사무엘하11:14-27)
다윗은 "우리아를 최전선에 세우고 너희들은 뒤로 물러나 우리아를 죽게 하라"는 편지를 우리아 본인의 손에 들려 암몬 종족과 싸우고 있는 장수 요압에게 보낸다. 요압은 명령대로 우리아를 고립무원 상태로 만들어 죽게 하였던 바, 이에 다윗은 밧세바를 궁으로 데려와 아내로 삼고 그녀에게서 아들을 얻는다. 하지만 이 일이 여호와의 노여움을 사 태어난 아들은 7일만에 죽는다. 그러자 다윗은 여호와 앞에 반성하고 여호와가 화를 거두게 된다. 그리하여 다음에는 무탈하게 자식을 얻게 되니 그가 바로 유명한 솔로몬 왕이다.
소설 표지와 영화 속의 밧세바
1951년 영화 '다윗과 밧세바'
이와 같은 소재가 영화화되지 않을 리 없을 터, 1951년 헐리우드에서 그레고리 팩, 수전 헤이워드 주연의 영화가 제작됐다. 여주인공 수전 헤이워드가 방사능 피폭으로 죽은 사실을 '연운16주(II)'에서 말했다.
2012년 TV 시리즈 '킹 다비드'
다윗과 밧세바 이야기는 이외에도 수차례 영상화되었다.
다윗의 그따위 행동이 용서를 받았기 때문일까, 요즘의 교회 목사들은 거리낌없이 성폭행과 간통을 일삼는다.(참! 일부 목사다. 이 말을 붙이지 않으면 또 고발당할지 모르니.....) 그래서 나는 그 같은 그릇됨을 범한 요즘 목사보다도, 부하의 아내를 빼앗고 그 부하마저 죽인 철면피 다윗보다도, 그런 다윗을 용서한 여호와를 이해할 수가 없다. 게다가 다윗은 '아내를 많이 두어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라'는 여호와의 계명(신명기 17:17)도 아무렇지 않게 씹었음에도..... 이는 또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의 죽음과도 극명히 대비된다.
~ 여기서 유래된 말이 바로 '밧세바 신드롬'(Bathsheba Syndrome)으로 권력자의 몰락 현상을 통칭해 이른다. 하지만 이 말이 제대로 된 조어인지는 모르겠다. 다윗도 밧세바도 몰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밧세바는 말년까지 후궁으로서 권력을 향유한 듯하니 다윗 왕 말기, 다윗의 넷째 아들 아도니아가 왕 행세를 하자 밧세바는 예언자 나단과 함께 그를 밀고해 반란의 싹수를 제거하는 등, 자리에 대한 집착을 보인다.
앞서도 말했지만, 사울 왕은 적을 쳐죽이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어기고 관대히 대한 죄로 길보아 산 전투에서 블레셋의 대군에 포위된 채 부상당해 자살한다.(사무엘상 31장) 이에 지금도 그는 여호와에게 불순종한 못된 사람으로 취급받으며 (여호와에게 불순종한 자의 말로가 어떠한지) 본보기로 삼아지고 있다.(여호와 앞에 불순종한 사울의 예는 설교에 자주 인용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죽을죄 같아 보이지는 않았으므로 '사무엘기'와 '역대기'를 뒤져보았지만 그외 다른 죄를 찾을 수 없었다)
다시 말하거니와 이때 사울 왕의 죄는 여호와의 '헤렘'(herem)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히브리어 헤렘은 하람의 명사형으로 '진멸'(destroy everything)이란 뜻이다. 즉 아무 것도 살려두지 말고 싸그리 죽이라는 것이 여호와의 명령이었다. 하지만 사울 왕은 아말렉 성 안의 겐(Kenites) 종족들을 피신시키고,(그들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으므로) 유용한 가축은 죽이지 않고,(여호와가 소, 양, 낙타, 나귀 등을 모두 죽이라 했음에도) 아말렉 왕과 그의 모친을 살려주어(남녀노소를 싸그리 죽이라 했음에도) 여호와의 진노를 사게 된 것이었다.(☞ '사무엘에 관한 잡담 I - 사울 왕의 안타까운 죽음')
~ 이때 사울 왕이 살려준 아말렉 왕과 그의 모친을 사무엘이 직접 여호와가 보는 앞에서 칼로 쪼개 죽였음도 앞서 말한 바 있다.(사무엘상 15:33)
'아각의 죽음'
유명한 구스타프 도레의 그림으로 왼쪽에 터반을 쓰고 있는 사람(?)이 여호와, 칼을 들고 있는 사람이 사무엘, 무릎 꿇린 채 여호와를 올려보는 자가 아멜락 왕 아각이다. 이때 아각은 '진실로 사망의 괴로움이 지났다'며 즐겁게 끌려와 죽임을 당하는 바, 여호와가 더욱 열받았을 것 같다.(사무엘상 15:32-33)
'사울의 죽음'
길보아 산에서 자살하는 사울을 그린 매우 유명한 그림이다. 이스라엘을 건국한 사울 왕이 죽은 이유는 오직 하나, 적들에게 관용을 베푼 죄 뿐이다. 이에 여호와는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해 그를 죽음으로 내몬다.(사무엘상 15:11)
이와 같은 사울의 죄에 비해 부하의 아내를 범한 다윗의 죄는 가벼운 것인지 어쩐지 그것은 잘 모르겠다. 구약의 하나님께서 척도하는 잣대는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니 '사무엘기'에는 그 고무줄 잣대의 또 하나의 예가 등장한다. 정말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여호와의 가장 잔인한 형벌로서 '사무엘기'에 전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전염병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 명이라.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의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리심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 곁에 있는지라.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 이 날에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아뢰되,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소서 하매 다윗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바, 갓의 말대로 올라가니라.....
다윗이 은 오십 세겔로 타작 마당과 소를 사고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사무엘하 24:15-25)
여호와가 왜 전염병을 퍼뜨려 7만 명이나 되는 생명을 빼앗았는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성서에는 이에 대한 설명이 없고 이를 유추해볼 수 있는 내용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그 이유에 접근할 수 있는 문장인즉 여호와가 다윗에게 인구조사를 시켰다는 것 뿐인데, 이를 다윗이 거부하지 않고 행했음에도 여호와는 전염병을 퍼뜨려 이스라엘 전토(全土)의 백성 7만 명을 죽인 것이다. 반면 '역대기'에서는 인구조사를 시킨 주체가 여호와가 아니라 사탄이라고 말하고 있는 바, 무엇이 어떻게 된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역대상 21:1)
다만 한가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외계인 천사가 UFO를 타고 병원균을 살포하였다는 사실이니, 사흘째 되던 날 예루살렘에도 뿌리려는 찰나('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의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무엇 때문인지 급히 마음을 돌이킨 여호와가 살포를 금지시킴으로써 더 이상의 희생이 발생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UFO는 아라우나라는 사람의 농장 마당에 착륙한다.('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리심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 곁에 있는지라')
어찌됐든 전염병에 의한 대학살은 중지되니 다윗은 은 오십 세겔로 타작 마당과 소를 사서 여호와와 그 일행에게 번제를 올린다. 여호와와 그 일행이 소고기를 좋아함은 이미 누차에 걸쳐 말한 바 있으므로 더 이상 설명할 필요는 없겠다. 다만 '사무엘기'의 마지막 문장('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이 순서가 바뀌었음은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번제물을 받고 기도를 받아들여서 재앙이 그친 게 아니라 재앙을 그쳐주었기에 번제물을 바치고 감사의 기도를 올린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