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중국으로부터 서해와 서(西)격렬비도를 지키자.

기백김 2025. 5. 30. 22:42

 

청일전쟁은 요시노(吉野)·나니와(浪速) ·아키스시마(秋津州)라는 3척의 순양함으로 이루어진 일본함대가 조선 서해안 풍도(豊島) 부근에서 청나라 순양함 제원호(濟遠號)와 경순양함 광을호(廣乙號)에 포격을 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894년 7월 24일 오전 6시 30분경이었다.

 

발단은 동학난이라는 조선의 내전을 진압하기 위해 온 청군에 증파할 군대와 무기를 싣고 아산만에 접근 중이던 중국 함선에 대해 일본 요시노의 함장 쓰보이 고조(坪井航三)가 철수를 요구한 것에서부터 비롯됐다. 하지만 제원호 함장 방백렴(方伯谦)은 당연히 거절했고 이에 요시노호가 제원호를 향해 냅다 포를 쏴버린 것이었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은 완승을 거두었고, 이어진 육상전인 성환전투에서도 일방적 승리를 거둠으로써 서전을 기분 좋게 장식할 수 있었다. 

 

 

풍도해전을 그린 동판화 / 인천시립박물관
풍도해전에선 일본군이 노획한 중국 종 / 인천시립박물관
풍도의 위치
풍도전투가 벌어졌던 안산시 단원구 풍도 앞바다 / 안산도시공사 제공 사진
성환전투를 묘사한 동판화
청일전쟁 성환전투가 벌어졌던 안성천 물왜보
안성천
일본군이 집결했던 소사평
성환전투에서 무라타 소총을 갈겨대는 일본군

 

청일전쟁에 대해서는 풍도 앞바다에서 벌어진 풍도전투를 포함해 이미 몇 차례 언급한 바 있어 다시 말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아무튼 청일전쟁은 풍도해전으로부터 시작됐고 황해해전으로 끝났다. 두 전투 모두 중국이 참패했다. 평안북도 앞바다 압록강 어귀에서 벌어진 황해해전에서 도고 헤이하치로 일본 함대 제독은 고속 순양함 15척으로 청나라 북양함대 정원함, 진원함 포함한 25척을 격파하며 전쟁을 사실상 끝냈다.

 

풍도해전에 이어 황해해전에도 패전했던 제원함 함장 방백렴은 이홍장의 명령으로 정여창 제독의 조사를 받고 군사법정으로 넘겨졌는데, 1894년 11월 결국 사형이 확정되어 처형당했다. 북양함대의 지휘관 정여창은 겨우 빠져나와 산동의 웨이하이웨이로 가 방어에 전념했으나 4개월 후 일본육군이 웨이하이웨이 포대를 점령하고 항구를 봉쇄하자 북양함대는 포위되어 궤멸당했고 정여창은 음독자살했다. 

 

 

정원함(定遠艦) / 독일 아크티엔 게젤샤프트사(社)가 1883년 건조한 최고속력 15노트, 배수량 2,355톤의 철갑순양함으로 21cm의 주포 1문, 15cm 함포 2문, 개틀링포 6문, 어뢰발사기 3기를 갖췄다. 전장 94.5m, 선폭 18.4m의 아시아 최대 함선.
침몰한 정원함
방보첸(方伯谦,1853~1894)/ 복건 해군사관학교 영어학교와 영국 그리니치 해군학교를 졸업한 엘리트였으나 두 번의 해전에서 연패하며 처형당했다. 당시 41세였다.
젊은 시절의 정여창(丁汝昌, 1836~1895) / 안휘성 출신으로 1882년 임오군란 때 북양함대 군함 5척을 이끌고 조선에 가서 임오군란을 진압하고 대원군을 납치했다. 훗날 북양함대의 제독이 되었으나 1895년 웨이하이웨이 해전에서 패한 후 자살했다.
정여창의 최후를 그린 동판화 / 정여창이 독배를 마시기 전 불타는 함선들을 마지막으로 돌아보고 있다.
풍도해전 당시 도고 헤이하치로가 탔던 나니와호(浪速號) / 영국 암스토롱 휘트워스(社)가 1886년 건조한 최고속력 18노트, 배수량 3710톤의 철갑순양함으로 26cm의 주포 2문, 15cm 포 6문을 갖췄다. 전장은 91.4m, 선폭은 14m이다.
도고 헤이하치로(東郷平八郎, 1848~1934) / 유신 지사들을 배출한 사쓰마번 출신으로 영국 포츠머스에서 수학 후 버니 해군 아카데미를 졸업했다. 황해해전에이어 러일전쟁 중 제물포해전에서 승리하고 동해해전에서 러시아 발트함대를 궤멸시킴으로써 일본의 국민영웅이 되었다.

 

청일전쟁 이후로 중국의 해군이 굴기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사실 관심도 없었다. 관심이라면 일본의 해상자위대 전력이 증강되는 것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을 뿐 중국은 벗어나 있었다. 아마도 대한민국 사람들은 거의가 그랬을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중국 해군의 굴기가 와닿은 적이 있다. 1988년 12월 4일 항공모함 랴오닝함을 진수했을 때였다. (나의 생일과 같아 날짜까지 기억한다)

 

당시 이 항모의 이름은 바랴그(Варяг)호로, 바랴그 호의 이름은 성공회 인천 내동교회와 인천 연안부두 상트페테르부르크 광장에 조성된 순양함 바랴그호 추모비에서 그 이름을 볼 수 있다. 내동교회 명판에는 "1904년 이 자리에서 진료를 받았던 순양함 '바랴그 호'와 포함 '코레이츠 호' 러시아 선원들을 추념하며 감사드리는 러시아 국민들로부터. 2004년 2월 11일" 이라는 내용의 글이 러시아어, 한글, 영어로 표기되어 있다.

 

즉 1904년 인천 앞바다에서 벌어진 러일전쟁의 개막전에서 일본군의 선전포고 없는 선제 기습공격에 부상을 입은 러시아 해군들이 성공회 내동교회에 있던 성누가병원, 인천 적십자 병원 등에서 치료를 받은 사실이 기록돼 있는 것이고, 연안부두 상트페테르부르크 광장에 조성된 순양함 바랴그호 추모비는 제물포 해전에서 희생된 러시아 수병의 넋을 기리고자 건립한 것이다.

 

 

내동교회 옛 건물 앞의 명판
내동교회 내에 남아 있는 성누가병원 진료소 건물(왼쪽)
인천 적십자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러시아 수병들
바랴그호
포격당하는 바랴그호
스스호 폭파시켜 자침된 바랴그호
이 배를 일본군이 인양해 요코스카항의 구경거리로 삼았다. 배에 어마어마하게 탔음에도 보트로부터 구경꾼이 계속 오르고 있다.
연안부두 바랴그호 추모비
바랴그호 추모비 안내문
2013년 방한한 푸틴 대통령은 1박2일의 짧은 일정에도 추모비를 찾아 헌화했다.

 

러시아는 그때 침몰된 바랴그호를 기려 1985년 소련의 니콜라예프 조선소에서 같은 이름으로 6만t급의 항모를 건조했다. 그러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자 1992년 공정률 70% 상태의 배를 우크라이나 정부가 구입했는데, 이 배를 다시 중국이 2000만 달러에 사들여 2002년에 다롄조선소로 가져왔고 이를 완성해 2012년 취역시켰다. 이때 우리나라의 모든 뉴스가 이를 크게 보도했는데, 어느새 랴오닝호로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모습을 드러낸 랴오닝함 / 최고속력 32노트(약 59㎞/h) 만재 배수량 67,500톤, 갑판길이 304.5m 선체길이 270m 폭 70m, CIWS(근접방어 무기체계) 3문, 30mm 개틀링형 CIWS, HQ-10(중국 개발 함대공 미사일) 발사기 3기, 대잠 로켓 발사기 외 함재기를 지닌다.
중국은 꼼수를 써 이 배를 중국으로 가져와 취역시켰다. / 중국은 마카오의 한 회사를 앞세워 재정이 달리는 우크라이나로부터 건조 중인 배를 사들였다. 자체 기술력 없으므로 꼼수를 쓴 것이었다.
겉으로는 마카오에 해상 카지노를 만든다는 명목을 내세웠지만 2002년 중국 랴오닝성 다롄으로 옮겨졌고 10년 뒤인 2012년 중국의 첫 항공모함 랴오닝함으로 재탄생했다.

 

이후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재래식 무기를 갖춘 연안해군 정도의 레벨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중국 해군은 어느덧 대양해군 으로 성장해 있었으니, 무엇보다 잠수함 전력이 뛰어났다. 현재 중국군의 공격잠수함은 70척(핵추진 13척), 탄도미사일 잠수함은 7척(핵추진 6척) 등 총합 77척으로 손원일-장보고급-안창호급 모두 합쳐서 21척에 불과한 한국군보다 4배나 양적으로 압도적이다.(나무위키 자료)

 

중국이 껍떡대는 것이 다 이유가 있었으니, 앞서 '이순신의 국토수호의지로 중국의 서해 침탈을 막자'에서 말한 바와 같이 동남아해를 거의 먹은 중국이 이제 대한민국의 서해에 침을 바르고 있는 것이다. 동남아해에서 익힌 땅 따먹기 노하우를 이제 대한민국에 들이밀고 있는 것인데, 첫 번째로 써먹은 것이 물고기 양식장이라면서 서해 잠정조치수역(PMZ)에 건설한 인공구조물 선란(深蓝) 1, 2호 기이다.

 

 

중국이 서해에 설치한 선란 1호기
선란 1, 2호 기

 

선란 1호(2018년)와 2호(2024년)의 설치에 이어 지난달에는 PMZ에 관리시설이라며 석유 시추설비 형태의 구조물도 설치했다. 요미우리 신문을 비롯한 일본 언론은 중국의 한국 서해 구조물을 현상변경 시도를 위한 수단으로 평가한 후, "해상에 구조물을 만들어 자신의 권익을 주장하는 것은 중국이 늘 써온 수단"이라며 "남중국해에 인공섬을 만든 뒤 비행장을 지어 실효 지배를 강화한 것 이외에 새로운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고 염려했다.  

 

 

석유 시추천 형태의 구조물 / 부유물이 아닌 파일을 박아 설치한 고정 구조물이다. 서해 수심은 30m에 불과해 설치하자고 들면 일도 아니다.
중국이 설치한 구조물의 위치

 

일본은 중국이 일본 연해에 인공구조물을 설치하면 즉각 반응하고 강력히 대응해 반드시 쫓아내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물거리고 있는 바, 오죽하면 옆 나라인 일본이 한국을 걱정해 지적해 주고 있는 것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중국은 서해 인공구조물은 12개까지 늘리겠다고 말한 바 있는데, 이미 12개를 넘어 13개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 중국이 우리나라의 가장 서쪽에 있는 섬을 구입하려는 시도를 또 다시 했다고 해서 블로그에 올리게 되었다. 아마도 2023년 한 중국 여성이 일본 오키나와의 섬을 구매한 것에 자극을 받은 듯했다. 

 

 

2023년 2월 14일 중국인 여성이 일본 무인도를 구매한 사실을 인터넷에 올리며 일본 내에서 큰 논란이 일었다. 게다가 구매한 섬이 오키나와 미군기지와 가까이 있어 더욱 화제가 되었다.
보도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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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말했듯 일본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음에도 뚫렸다. 우리나라는 격렬비열도가 타깃이다. 격렬비열도는 충남 태안군 신진도항(안흥항)에서 5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충남 최서단의 섬으로, 중국 산둥반도와는 270km 거리의 중국에서 가장 가까운 우리나라 섬이다. 격렬비열도는 북격렬비도·서격렬비도·동격렬비도의 큰 섬 3개와 부속 도서 9개로 구성돼 있는데, 그중 가장 서쪽에 있어 영해기점표가 설치돼 있는 서격렬비도라는 무인도가 최근 문제가 되었다. 이 섬을 한 중국인이 매입하려 했기 때문이다. 

 

 

격렬비열도의 위치
충남도 제공 격렬비열도 사진 / 세 마리 새가 간격을 유지하며 날아가는 모양새라 하여 '격렬비(格列飛)'라는 이름이 붙었다.
서해의 독도라고도 불리는 서격렬비도

 

중국인의 매입 시도는 서격렬비도가 사유지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격렬비도의 소유주는 2명이라고 한다) 물론 성사되지는 않았으나 그것이 현실이 되어 중국령으로 바뀌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선 위에서 말한 12해리의 영해, 접속수역, EEZ 등이 모두 무너지게 되어 해양영토가 크게 축소될 뿐 아니라 기타 여러 가지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게다가 중국은 과거의 연안해군 정도의 국가가 아니라 항공모함을 2척이나 보유한 해양대국이다. 만일 중국이 격렬비도를 사들여 군사기지를 설치한다면 우리나라는 서해 전체를 빼앗긴 것이나 다름없을 뿐더러 본토에도 커다란 위협이 될 것이 뻔하다.   

 

섬의 소유주에 따르면 2012년부터 두차례나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며, 최근 다시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과거에도 섬의 구입을 원하던 조선족은 협상안을 들고왔다가 중국 측의 누군가의 승인을 받기 위해 중국 본토를 왕래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하는데, 무척 긴장된다. 내가 특히 걱정하는 것은 이번에 친중파 인사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일이다. 만일 그리 된다면 격렬비열도 중의 하나가 속절없이 중국 섬이 될 것 같기에.... 

 

 

2020년 사건의 동영상

그러한 가운데 중국의 최신예 항공모함이자 세 번째 항모인 푸젠(福建)함이 5월 하순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PMZ)에서 시험항해를 한 사실이 확인됐다. 아직 취역 전인 푸젠함이 서해에 나타난 이유는 굳이 물을 필요도 없다.
푸젠함은 랴오닝함과 산둥함에 이은 세 번째 중국 항모로 2022년 진수됐다. 푸젠함은 배수량 8만톤으로 랴오닝함에 월등히 앞서며 중국 항모 최초로 전자기식 캐터펄트를 정착했다. J-15 전투기와 J-35 전투기 등 70여대의 함재기를 탑재할 예정이다.
푸젠함이 지난 해 5월 1일 상하이 장난 조선소에서 시범항해를 위해 출항하고 있다. / CNN방송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