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으로부터 서해와 서(西)격렬비도를 지키자.
청일전쟁은 요시노(吉野)·나니와(浪速) ·아키스시마(秋津州)라는 3척의 순양함으로 이루어진 일본함대가 조선 서해안 풍도(豊島) 부근에서 청나라 순양함 제원호(濟遠號)와 경순양함 광을호(廣乙號)에 포격을 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894년 7월 24일 오전 6시 30분경이었다.
발단은 동학난이라는 조선의 내전을 진압하기 위해 온 청군에 증파할 군대와 무기를 싣고 아산만에 접근 중이던 중국 함선에 대해 일본 요시노의 함장 쓰보이 고조(坪井航三)가 철수를 요구한 것에서부터 비롯됐다. 하지만 제원호 함장 방백렴(方伯谦)은 당연히 거절했고 이에 요시노호가 제원호를 향해 냅다 포를 쏴버린 것이었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은 완승을 거두었고, 이어진 육상전인 성환전투에서도 일방적 승리를 거둠으로써 서전을 기분 좋게 장식할 수 있었다.
청일전쟁에 대해서는 풍도 앞바다에서 벌어진 풍도전투를 포함해 이미 몇 차례 언급한 바 있어 다시 말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아무튼 청일전쟁은 풍도해전으로부터 시작됐고 황해해전으로 끝났다. 두 전투 모두 중국이 참패했다. 평안북도 앞바다 압록강 어귀에서 벌어진 황해해전에서 도고 헤이하치로 일본 함대 제독은 고속 순양함 15척으로 청나라 북양함대 정원함, 진원함 포함한 25척을 격파하며 전쟁을 사실상 끝냈다.
풍도해전에 이어 황해해전에도 패전했던 제원함 함장 방백렴은 이홍장의 명령으로 정여창 제독의 조사를 받고 군사법정으로 넘겨졌는데, 1894년 11월 결국 사형이 확정되어 처형당했다. 북양함대의 지휘관 정여창은 겨우 빠져나와 산동의 웨이하이웨이로 가 방어에 전념했으나 4개월 후 일본육군이 웨이하이웨이 포대를 점령하고 항구를 봉쇄하자 북양함대는 포위되어 궤멸당했고 정여창은 음독자살했다.
청일전쟁 이후로 중국의 해군이 굴기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사실 관심도 없었다. 관심이라면 일본의 해상자위대 전력이 증강되는 것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을 뿐 중국은 벗어나 있었다. 아마도 대한민국 사람들은 거의가 그랬을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중국 해군의 굴기가 와닿은 적이 있다. 1988년 12월 4일 항공모함 랴오닝함을 진수했을 때였다. (나의 생일과 같아 날짜까지 기억한다)
당시 이 항모의 이름은 바랴그(Варяг)호로, 바랴그 호의 이름은 성공회 인천 내동교회와 인천 연안부두 상트페테르부르크 광장에 조성된 순양함 바랴그호 추모비에서 그 이름을 볼 수 있다. 내동교회 명판에는 "1904년 이 자리에서 진료를 받았던 순양함 '바랴그 호'와 포함 '코레이츠 호' 러시아 선원들을 추념하며 감사드리는 러시아 국민들로부터. 2004년 2월 11일" 이라는 내용의 글이 러시아어, 한글, 영어로 표기되어 있다.
즉 1904년 인천 앞바다에서 벌어진 러일전쟁의 개막전에서 일본군의 선전포고 없는 선제 기습공격에 부상을 입은 러시아 해군들이 성공회 내동교회에 있던 성누가병원, 인천 적십자 병원 등에서 치료를 받은 사실이 기록돼 있는 것이고, 연안부두 상트페테르부르크 광장에 조성된 순양함 바랴그호 추모비는 제물포 해전에서 희생된 러시아 수병의 넋을 기리고자 건립한 것이다.
러시아는 그때 침몰된 바랴그호를 기려 1985년 소련의 니콜라예프 조선소에서 같은 이름으로 6만t급의 항모를 건조했다. 그러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자 1992년 공정률 70% 상태의 배를 우크라이나 정부가 구입했는데, 이 배를 다시 중국이 2000만 달러에 사들여 2002년에 다롄조선소로 가져왔고 이를 완성해 2012년 취역시켰다. 이때 우리나라의 모든 뉴스가 이를 크게 보도했는데, 어느새 랴오닝호로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이후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재래식 무기를 갖춘 연안해군 정도의 레벨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중국 해군은 어느덧 대양해군 으로 성장해 있었으니, 무엇보다 잠수함 전력이 뛰어났다. 현재 중국군의 공격잠수함은 70척(핵추진 13척), 탄도미사일 잠수함은 7척(핵추진 6척) 등 총합 77척으로 손원일-장보고급-안창호급 모두 합쳐서 21척에 불과한 한국군보다 4배나 양적으로 압도적이다.(나무위키 자료)
중국이 껍떡대는 것이 다 이유가 있었으니, 앞서 '이순신의 국토수호의지로 중국의 서해 침탈을 막자'에서 말한 바와 같이 동남아해를 거의 먹은 중국이 이제 대한민국의 서해에 침을 바르고 있는 것이다. 동남아해에서 익힌 땅 따먹기 노하우를 이제 대한민국에 들이밀고 있는 것인데, 첫 번째로 써먹은 것이 물고기 양식장이라면서 서해 잠정조치수역(PMZ)에 건설한 인공구조물 선란(深蓝) 1, 2호 기이다.
선란 1호(2018년)와 2호(2024년)의 설치에 이어 지난달에는 PMZ에 관리시설이라며 석유 시추설비 형태의 구조물도 설치했다. 요미우리 신문을 비롯한 일본 언론은 중국의 한국 서해 구조물을 현상변경 시도를 위한 수단으로 평가한 후, "해상에 구조물을 만들어 자신의 권익을 주장하는 것은 중국이 늘 써온 수단"이라며 "남중국해에 인공섬을 만든 뒤 비행장을 지어 실효 지배를 강화한 것 이외에 새로운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고 염려했다.
일본은 중국이 일본 연해에 인공구조물을 설치하면 즉각 반응하고 강력히 대응해 반드시 쫓아내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물거리고 있는 바, 오죽하면 옆 나라인 일본이 한국을 걱정해 지적해 주고 있는 것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중국은 서해 인공구조물은 12개까지 늘리겠다고 말한 바 있는데, 이미 12개를 넘어 13개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 중국이 우리나라의 가장 서쪽에 있는 섬을 구입하려는 시도를 또 다시 했다고 해서 블로그에 올리게 되었다. 아마도 2023년 한 중국 여성이 일본 오키나와의 섬을 구매한 것에 자극을 받은 듯했다.
위에서 말했듯 일본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음에도 뚫렸다. 우리나라는 격렬비열도가 타깃이다. 격렬비열도는 충남 태안군 신진도항(안흥항)에서 5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충남 최서단의 섬으로, 중국 산둥반도와는 270km 거리의 중국에서 가장 가까운 우리나라 섬이다. 격렬비열도는 북격렬비도·서격렬비도·동격렬비도의 큰 섬 3개와 부속 도서 9개로 구성돼 있는데, 그중 가장 서쪽에 있어 영해기점표가 설치돼 있는 서격렬비도라는 무인도가 최근 문제가 되었다. 이 섬을 한 중국인이 매입하려 했기 때문이다.
중국인의 매입 시도는 서격렬비도가 사유지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서격렬비도의 소유주는 2명이라고 한다) 물론 성사되지는 않았으나 그것이 현실이 되어 중국령으로 바뀌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선 위에서 말한 12해리의 영해, 접속수역, EEZ 등이 모두 무너지게 되어 해양영토가 크게 축소될 뿐 아니라 기타 여러 가지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게다가 중국은 과거의 연안해군 정도의 국가가 아니라 항공모함을 2척이나 보유한 해양대국이다. 만일 중국이 격렬비도를 사들여 군사기지를 설치한다면 우리나라는 서해 전체를 빼앗긴 것이나 다름없을 뿐더러 본토에도 커다란 위협이 될 것이 뻔하다.
섬의 소유주에 따르면 2012년부터 두차례나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며, 최근 다시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과거에도 섬의 구입을 원하던 조선족은 협상안을 들고왔다가 중국 측의 누군가의 승인을 받기 위해 중국 본토를 왕래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하는데, 무척 긴장된다. 내가 특히 걱정하는 것은 이번에 친중파 인사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일이다. 만일 그리 된다면 격렬비열도 중의 하나가 속절없이 중국 섬이 될 것 같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