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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순신의 국토수호의지로 중국의 서해 침탈을 막자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5. 4. 28. 23:33

     
    충무공 이순신은 1545년 4월 28일 한성부 건천동이라 불렸던 지금의 중구 인현동에서 태어났다. 서울 중구 인현동 1가 40번지에 있는 신도빌딩 자리이다. 사실 이 충무공 탄생지가 적시된 <이충무공전서>에는 한성부 건천동에서 태어났다고만 돼 있어 정확한 생가 자리를 알 수 없었는데, 한글학회와 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가 일대를 답사해 고증한 끝에 1965년 12월 5일 현 신도빌딩 자리를 이순신 장군의 탄생지로 확정했다. 

     

     

    옛 세운상가 건물 건너편 을지로 인쇄골목으로 들어가면
    골목 중간 쯤에 4층 짜리 신도빌딩이 있다.
    그 건물 입구 기둥에 이순신 생가터를 알리는 동판이 붙어있다.
    을지로3가 명보 아트홀 앞 충무공 이순신 생가터 표석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을지로 인쇄골목 안 생가터가 워낙에 눈에 안 띄어 길가 쪽으로 빼놓은 것이다.


    그가 태어난 날은 조선 인종 1년(1415) 음력 3월 8일로, 양력으로 환산하면 바로 오늘이다. 까닭에 서울시와 서울 중구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행사를 열었던 듯한데, 지난 금요일에는 학계·일반인을 망라한 <서울특별시 국제학술대회 '이순신 서울에서 만나다'>라는 심포지엄이 있었다. 사전 안내문을 보니 참석자 전원에게 핸드폰 보조배터리를 증정한다 되어 있어 겸사겸사 가고도 싶었지만 (사실 증정품에 더 혹했지만^^) 결국 시간을 내지 못했다. 아무튼 많이 아쉽다.  


    이순신이 태어난 건천동은 건천(乾川)이 흘러 생긴 지명이다. 건천은 우리말로는 '마른내'로 동네 이름도 우리말로 '마른내골'이었다. 건천이나 마른내나 유래는 수량이 적은 하천이었기에 붙여진 이름일 텐데, 남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현 남산한옥마을~서울중구청~덕수중학교~인현동을 거쳐 청계천으로 흘러들어 갔다. 물론 지금은 복개되어 흔적일랑 찾을 수 없다.

     

    이순신과 떼어 놓을 수 없는 인물인 류성룡은 건천동과 가까운 지금의 필동에 살았다. 필동은 이 동네에 조선시대 중등교육기관인 남부학당이 있어 부동(部洞)으로 불렸던 데서 유래됐다. 부동은 학당에서 쓰는 붓과 연관돼 붓동으로도 불리다가 갑오개혁 당시 지명 등록을 할 때 '붓 필(筆)' 자의 필동이 되었다. 류성룡은 필시 집에서 가까운 남부학당을 다니며 열심히 공부를 해 과거에 패스하고 죽죽 잘 나가게 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류성룡 집 부근의 남부학당 터 표석 / 남부학당은 조선시대 사부학당에 속했다. 사부학당은 한성부의 중,동,서,남부에 설치된 중등교육기관으로, 사학(四學)이라고도 하였다.
    퇴계로3가 SK주유소 앞 류성룡 집터 표석
    두 사람이 살던 곳은 그리 멀지 않았다. / 1901년 한성부 한글 지도로서 건천동과 필동 앞에 표시된 물줄기가 건천이다. (한겨레21 DB)

     

    반면 이순신은 어릴 적부터 전쟁놀이를 즐기며 학업에 게으르다 뒤늦게 무과에 응시하였다. 29세 때인 1573년(선조 6) 지금의 을지로 입구에 있던 훈련원에서 무과의 일종인 훈련원 별과를 보았던 것인데, 잘 알려진 대로 낙마(落馬)해 탈락했다. 그러다 1576년 2월, 식년 무과에 드디어 급제해 종9품 훈련원 봉사로 첫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반면 류성룡은 1566년 별시 문과에 급제한 후 탄탄대로를 내달아 20대 초에 요직인 이조정랑에 올랐다. 

     

    1591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 류성룡은 벌써 우의정이 되었다. 이순신은 전라도 정읍 현감을 지내고 있었는데, 이때 류성룡은 종6품 지방 사또에 불과하던 이순신을 천거해 정3품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의 자리에 앉혔다. 무려 7계급을 뛰어넘는 파격 승진이었다. 이와 같은 파격 승진은 당대에도 드문 것이어서 사간원을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심한 반대가 있었으나 류성룡은 갖은 편법을 써가며 기어코 이순신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임명했다.

     

    왜 그랬을까? 이에 대해서는 앞서도 답을 말한 바 있다. 약술하자면,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2년 전인 1590년, 동래의 왜인들이 조만간 풍신수길이 쳐들어 올 것이라며 하도 떠들어 대는 통에 조정에서 사신을 보내 일본의 사정을 정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정사와 부사의 보고 내용이 달랐으니, 정사 황윤길은 "풍신수길의 눈빛이 반짝반짝한 것이 반드시 병화(兵禍)가 있을 것이다"라고 했고, 부사 김성일은 "마치 쥐새끼처럼 생긴 것이 두려워할 인물이 못 되며 전쟁은 없을 것이다"라는 정반대의 의견을 냈다. 
     
    류성룡은 부사 김성일의 말을 들어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선조에게 말했다. 그가 김성일의 편을 든 이유는 간단했다. 같은 정당(동인)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전쟁이 일어날 것이니 확실한 대비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서인의 황윤길은 이후 여타의 기록 없이 역사에서 사라졌다. 정쟁에 패해 몰락한 것이다. 반면 김성일은 승승장구했는데 어처구니 없게도 1592년 4월 13일, 그가 결코 없을 것이라 장담했던 일본의 침입이 있었다.

     

    같은 정당이라 김성일의 말을 따르기는 했어도 국무총리 류성룡은 못내 찜찜했던 바, 임진왜란 발발 전, 어릴 적 이웃 동네에서 살았던 친구 이순신을 발탁해 파격승진으로 전라도 해군사령관에 앉혔다. 그(이순신)라면 왜적의 침입이 있더라도 어느 정도의 방비를 해주리라 믿었던 것인데, 임진왜란에 있어 이순신은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활약을 하였다. 정말이지 그가 없었으면 어찌 되었을까? 상상조차 뛰어넘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장군 상

     

    일본이 잠잠하니 지금은 중국이 설친다. 중국 관영 매체 글로벌 타임스는 지난 25일  중국 국경 관리국(CCG) 관계자 4명이 산호섬 위에서 중국 국기를 펼치고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도하였다. 그곳은 중국의 영토가 아니라 필리핀과 영유권 분쟁 중인 남중국해의 한 산호초 암초이다. 말하자면 중국령도 필리핀령도 아닌 섬임에도 마치 제 섬처럼 점령해 오성홍기를 펼친 것이다.  

     

     

    문제의 사진

     

    게다가 보도된 사진 속 산호섬은 중국 본토로부터 먼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중국명 난사군도)에 속해 있다. 반면 필리핀이 영유하고 있는 티투 섬(중국명 중예다오·필리핀명 파가사 섬)에서는 불과 4.6㎞ 거리에 불과하다. 중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남중국해의 85%가 자신의 영해라고 주장하며 '남해구단선'이라는 말도 안 되는 해상국경선을 설정했다. 그리고 무력으로 야금야금 그것을 현실화시켰던 바, 현재는 대부분의 분쟁지역을 실효지배 중이다. 

     

     

    중국이 주장하는 영해선과 스프래틀리 군도의 위치
    중국이 스프래틀리 군도에 조성한 인공섬 / 2017년 4월에 촬영된 것으로 중국은 2013~2014년 스프래틀리 군도에 산호초 기반 암초 7곳에 인공섬을 만들었다. 총면적은 18.82㎢에 이른다.
    중국이 스프래틀리 군도에 조성한 인공섬 주비자오(渚碧礁) / 건물 400동이 건립됐다. 중국은 인공섬 가운데 주비자오, 메이지자오(美濟礁), 융수자오(永暑礁) 등에는미사일과 장갑차를 감출 수 있는 대형 해저터널 공사까지 완료했다.
    중국이 조성한 인공섬의 위치
    남중국해의 모든 나라와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

     

    이런 짓을 벌이던 중국이 어느덧 우리나라의 서해에 침투했다. 대통령 탄핵으로 혼란 중이던 작년 말, 2018년에 설치한 인공구조물 선란 1호에 이어 또다시 비슷한 형태의 인공구조물 선란 2호를 설치했다. 그리고 이것들을 연어 양식장이라고 주장했는데, 우리 정부의 대응이 뜨뜨미지근하자 지난 4월 중순 다시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PMZ)에 석유시추선 모양의 대형 고정 구조물 1기를 추가로 설치했다.

     

     

    선란 1, 2호기에 관한 신문기사
    중국이 이번에 설치한 대형 철골 고정구조물

     

    중국이 이런 짓을 벌이고 있는 이유는 물어보나 마나이다. 남중국해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서해도 야금야금 먹겠다는 것이다. 우리의 해양 주권을 위협하고 있는 이 같은 행태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지만, 중국은 '연어 양식장이니 합동조사를 하자'거나, '중국 구조물이 안 된다면 대한민국의 이어도 기지 설치도 안 된다'는 식의 억지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만일 이번 대선에서 이재명이 승리한다면 중국의 이 같은 도발은 더욱 노골화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여러가지로 자유 우파쪽이 불리한 듯 보여 불안하기 그지없다. 만일 좌파가 승리한다면 대한민국은 남미 형태의 포퓰리즘 사회주의 국가로 바뀔 것이고, 종국에는 중국의 속국으로서 공산화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이것이 좌파들이 원하는 시나리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량해전에 앞서 한 이순신 장군의 외침을 다시 간절히 외쳐보게 된다.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신(臣)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 

     

     

    전에는 함께 섰지만,
    설사 이 자리에 아무도 없다 해도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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