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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릉의 보물 지정 국가유산 4가지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5. 5. 1. 23:30
구리시는 서울 동쪽에 있는 인구 20만 명의 작은 도시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적은 면적의 시로 알려져 있다. 구리의 명칭은 예전부터 존재해온 아홉 개의 마을로부터 유래되었는데, 신기하게도 지금도 9개 동으로 존속되고 있다. 그중 인창동에 조선 최대의 왕릉 동구릉이 존재한다. 도로명 주소로는 구리시 동구릉로 197이다.
동구릉은 서울 동쪽에 있는 9개의 능(陵)이라 하여 불려지게 된 이름으로,
조선의 창업군주인 태조 이성계의 능인 건원릉(健元陵),
제5대 왕 문종과 그의 비 현덕왕후의 능인 현릉(顯陵),
제14대 왕 선조와 그의 정비 의인왕후, 계비 인목왕후가 묻힌 목릉(穆陵),
제16대 왕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의 능인 휘릉(徽陵),
제18대 왕 현종과 그의 비 명성왕후의 능인 숭릉(崇陵),
제20대 왕 경종의 정비였던 단의왕후의 능인 혜릉(惠陵),
제21대 왕 영조와 그의 계비 정순왕후의 능인 원릉(元陵),
제23대 왕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문조로 추존)와 그의 비 신정왕후의 능인 수릉(綏陵),
제24대 헌종과 그의 정비 효현왕후, 계비 효정왕후의 능인 경릉(景陵)에 이르기까지
총 9개의 능, 15개의 봉분이 검암산 기슭에 들어차 있다.
이렇듯 많은 능이 자리잡다 보니 무덤의 형태도 다양하여 단릉(單陵), 쌍릉(雙陵),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 합장릉(合葬陵), 삼연릉(三連陵) 등 거의 모든 형식의 왕릉을 볼 수 있는 왕릉의 전시장 같은 곳이기도 하다. 특히 삼연릉은 조선왕릉 중에서 오직 동구릉에서만 볼 수 있는 신기한 형식이기도 한데, 삼연릉인 경릉에 대해서는 '최고 명당이라 하는 동구릉 헌종 능의 허망함'에서 이미 자세한 설명을 마친 바 있다.
단릉인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 동원이강릉인 목릉 / 동원이강릉은 같은 묘원 안의 다른 언덕에 능묘가 형성되었다는 뜻이다. 합장릉인 수릉 쌍릉인 숭릉 삼연릉인 경릉
아울러 왕릉의 전시장 답게 보물로서 지정된 국가유산이 네 가지나 되니, 이 역시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함이다. 오늘은 그 네 가지보물을 소개하려 하는데, 그중 1개는 왕의 신도비이며 나머지 3개는 정자각이다. 신도비는 건원릉 태조의 것으로 1409년 조선시대 왕릉에 최초로 건립된 것이다. 그 뒤 태종의 헌릉, 세종의 영릉까지 세워졌고 이후로는 실록에 왕의 업적과 행적이 기록되므로 일부러 세울 필요가 없다 하여 더 이상 건립되지 않았다.
건원릉 신도비의 앞면에는 태조의 탁월한 무공과 정치력을 찬탄하는 권근의 서술이 새겨졌으며 뒷면은 변계량이 찬(撰)했다. 이 신도비는 피어나는 연꽃 위에 앉은 거북 모양의 받침돌 위에 세워졌으며 용의 형상을 새긴 머릿돌을 이고 있다. 이 비(碑)는 현존 왕릉 신도비 중 유일하게 건립 당시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조선 초기의 귀중한 유물로 평가받아 2013년 보물(제1803호)로 지정되었다.
건원릉 신도비 '태조 건원릉비'라는 두전이 새겨져 있다.
정자각은 '丁'자형 형태의 건물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제향(祭享, 제사)을 올리는 곳이다. 건원릉 정자각은 태조가 세상을 떠난 1408년(태종 8)에 건립된 건물로 이후 여러 차례 걸친 수리가 있었으나 건립 당시의 형태가 남아 있고, 건립 이후 모든 정자각의 모본이 되었던 까닭에 2011년 보물(제1741호)로 지정되었다.
금천교에서 바라본 건원릉과 정자각 건원릉 정자각과 신도비각 정자각에서 보이는 건원릉 건원릉 능침 능침에서 내려본 정자각
목릉 정자각은 1630년 조선 14대 왕 선조와 원비 의인황후 박씨, 계비 인목황후 김씨 능의 제향을 위해 건립된 건물이다. 목릉 정자각은 정전이 정면 3칸, 측면 2칸, 배위청이 정면 1칸, 측면 2칸인 전형적인 형태이나, 조선 왕릉의 정자각 중 유일한 다포형식의 건물로 임진왜란 직후의 목조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까닭에 2011년 보물(제1743호)로 지정되었다.
목릉 정자각 목릉 정자각 뒤로 보이는 선조의 능침 정자각 정전의 다포 다포가 장식된 부분 / 동구릉 역사문화관 다포 형식으로 화려함이 돋보인다. / 동구릉 역사문화관 목릉 정자각 부감 / 동구릉 역사문화관
숭릉 정자각은 제18대 왕 현종과 명성왕후의 쌍분 앞에 자리한 건물로 1674년(숙종 즉위년)에 현종의 능을 조성할 때 같이 만들어졌다. 숭릉 정자각은 정전 5칸, 배위청 3칸의 전체 8칸 규모로서, 조선왕릉 정자각 중 유일하게 팔작지붕(여덟팔·八 자 모양으로 생긴 지붕의 형태)을 하고 있다.
<숭릉산릉도감의궤> 등의 기록에 따르면 숭릉 정자각은 영릉(효종의 능) 정자각의 예에 따라 팔작지붕으로 조성됐고, 그밖에도 강릉(명종의 능), 장릉(인조의 능) 등의 정자각이 팔작지붕이었는데, 후대에 모두 일반적인 맞배지붕(사람인·人 자 모양으로 생긴 지붕의 형태)으로 바뀌어 현재는 숭릉만 팔작지붕 형태로 남아 있다. 이에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1년 보물(제1742호)로 지정되었다.
숭릉 전경 팔작지붕의 숭릉 정자각 정자각에서 보이는 현종과 명성왕후의 쌍분 숭릉 정자각은 1674년 건립 이래 규모나 지붕 형식이 크게 변형되지 않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옆쪽에서 보면 다른 정자각과의 차별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팔작지붕 정자각 처마 단청을 입히기 전의 숭릉 정자각 / 국가유산청 제공 사진 다른 왕릉에도 보물이 있을까요?
효종이 묻힌 여주 영릉의 재실이 2007년에 보물(제1532호)로 지정됐고 헌인릉 태종 이방원의 신도비가 2013년 건원릉 신도비와 함께 보물(제1804호)로 지정됐다. 원 신도비의 마모로 숙종 때 새로 세운 신도비가 바로 옆에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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