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의 나라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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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임신서기석 이두문과 기독교의 하나님수수께끼의 나라 신라 2024. 11. 27. 12:23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은 1934년 5월 경주 북쪽의 현곡면 금장리 석장사(石丈寺) 터 부근 언덕, 현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자리에서 발견된 돌로, 유교 경전을 습득하고 실행할 것을 맹서한 내용이 새겨져 있다. 과거에는 이를 새긴 사람이 신라의 화랑이라고 가르쳤으나 사실 화랑이라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바, 지금은 신라의 두 젊은이라고 설명된다. 글자는 냇돌의 자연석에 5행으로 74자를 새겼다. 돌의 크기는 작은 편으로 길이는 약 34 cm, 너비는 윗부분이 12.5 cm이며, 아래로 내려갈수록 좁아지는 형태이다. 두께는 약 2 cm이며, 1행 18자, 2행 16자, 3행 14자, 4행 16자, 5행 10자로 되어 있는데, 맨 처음 임신년(壬申年)이라는 간지가 적혀 있어 '임신년 맹서를 기록한 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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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샘지구에 잠든 신라 소녀수수께끼의 나라 신라 2022. 4. 22. 06:15
2007년 경주 쪽샘지구가 발굴된다고 했을 때 내심 기대가 대단했었다. 쪽샘지구는 경주시 황오동, 황남동, 인왕동 일대에 조성된 무덤군으로 일찍부터 초기 신라(4~6C)의 왕족・귀족 무덤으로 추정되어 왔다. 왕릉급 무덤군인 노동・노서동, 그리고 대릉원에 인접해 있으되 그보다는 고분의 규모가 작았기에 그리 여겨지게 된 것이다. 까닭에 이곳은 그간 다른 곳에 비해 좀 만만하게 여겨졌는지 터미널 여관 주택 등이 들어서며 훼손이 진행했다. 그래도 그때는 그것을 바라만 보아야 했다. 그후 국가유산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고 시(경주시)가 어느 정도 재정자립도가 이루진 2000년대 이후, 국비 지원 하에 일대의 사유지들을 매입하기 시작했고, 2007년부터 발굴에 들어갔다. 신문에 발굴 공고가 났을 때 나는 정말로 가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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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마민족국가 신라의 유물 3점수수께끼의 나라 신라 2022. 4. 15. 05:28
앞서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에서 말했듯 신라 김씨 왕족은 흉노족의 후예이다. 아울러 금관가야의 김씨 왕조 역시 흉노족의 후예로서, 학계 한 구석에서만 설왕설래되던 흉노족의 한반도 남부진출설은 1990년도부터 발굴이 시작된 부산 대성동 고분에서 기마민족의 지표유물인 청동 솥, 즉 동복(銅鍑)이 출토되면서 정설로 굳어졌다. 동복은 역사상에서 오직 북방 유목민족만이 사용하던 물건이었던 바, 흉노족의 일파가 이 한반도 땅 끝에 와서 정착했음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적시된 것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기마민족의 후예들') 신라 경주 김씨가 흉노족의 후예라는 사실은 뜻밖에도 'KBS 역사스페셜'로 밝혀졌다. 교양 프로그램으로서는 보기 드문 높은 시청율로 주말 황금시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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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왕의 사천왕사와 감은사수수께끼의 나라 신라 2022. 4. 14. 05:22
역사적으로 우리나라가 대륙 세력에 완전히 병합될 위기가 세 번 정도 있었다. 첫 번째는 당나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신라까지 넘볼 때, 두 번째는 몽골이 세계 대제국을 형성했을 당시 원나라에 의해, 세 번째는 티베트와 위구르와 대만을 병합시킨 청나라가 조선의 편입을 망설였을 때였다. 그 첫 번째 위기를 막아낸 나라는 신라였다. 흔히들 신라가 외세를 끌어들여 삼국을 통일한 점, 그리고 그것이 고구려의 영토를 상실한 불완전한 통일이라는 점을 들어 감점을 주고 있지만 신라는 당나라 50만 대군과의 싸움에서 이겨 한반도를 지켜냈던 바, 신라의 노력이 절대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냉정히 말하자면 고구려는 당나라의 침입 앞에서 내분을 보임으로써 스스로 무너진 것이다. 이후 당나라는 다시 신라마저 병합하려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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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국(伊西國)의 침입을 물리친 신라의 수수께끼 군대 죽엽군(竹葉軍)수수께끼의 나라 신라 2021. 10. 9. 23:58
용성국 출신 석탈해 세력이 왜(倭) 출신의 호공 세력과 주도권 싸움을 벌여 승리한 사실에 대해 앞서 다룬 바 있다. 그리고 호공이 건너온 바다는 대한해협이 아니라 당시 울주 내륙까지 이른 바다의 내만(內灣)이며, 당시의 '왜'는 울산을 포함하는 일대의 땅이라는 사실을 신라본기 혁거세왕 38년조의 기사를 빌려 말했다. 그리고 이것은 나의 생각이 아니라 의 저자 장한식의 탁견임을 밝혔다.(☞ '왜인' 호공에 대한 놀라운 해석) 야철족(冶鐵族, 철기세력) 석탈해가 귀화인 세력인 왜(倭)의 호공 집단에 승리한 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그 아이가 지팡이를 끌며 두 종을 데리고 토함산 위에 올라가 돌집을 지어 칠일 동안 머무르며 성 안에 살만한 곳을 살펴보니 마치 초승달 모양으로 된 봉우리가 하나 보이는데 그 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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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월성에서 나온 흉노족의 인골수수께끼의 나라 신라 2021. 4. 27. 21:47
삼국통일을 이룬 자신감의 발로일까, 문무왕은 자신들 신라 왕족의 조상이 흉노인임을 스스럼없이 밝혔다. 경주김씨의 조상이 흉노족이었다는 이 충격적인 스토리는 2005년 벽두 KBS가 삼국통일의 주인공인 신라 제30대왕 문무왕의 비문에 대한 판독결과를 '역사스페셜'에서 공개하며 밝혀졌는데, 족보상 내물왕과 원성왕의 후손이요 경순왕의 직계라는 나도 몰랐고, 경주김씨 종친회마저 몰랐던(심지어 불쾌한 반응까지 보였던) 그 충격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비문은 처음에는 문무왕의 업적을 늘아놓다가 앞면 하단 5행에 이르러 이렇게 말한다. 문무왕의 신령스러운 근원은 멀리서부터 내려왔던즉 화관지후(火官之后)의 창성한 터전을 이어 높이 세워져 융성하니, 투후(秺侯)로서 하늘에 제사지냄이 7대를 전해 왔고,(秺侯祭天之胤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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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로아스터교와 통일신라수수께끼의 나라 신라 2020. 11. 29. 20:01
앞서 두 개의 잡담을 통해 기독교가 신라시대에 전파되었을 가능성을 타진해 보았다. 결론은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것이었으니, 그에 관련된 사료는 물론이요 흔적조차 없기 때문이었다.(☞ '기독교 전래 시기와 구원의 문제에 관한 잡담 I, II') 그러면서 신라시대 기독교 전래의 증거로써 전시된 숭실대 박물관의 유물들은 모두 가짜이며 금강산 장안사 비석에서 탁본했다는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 비문도 장안사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피력했다.(이에 대한 숭실대 측의 해명을 요구했지만 아직까지 듣지 못했다) 앞서 얘기했듯 '한국기독교회사'(민경배 저/연세대학교 출판부)의 내용을 비롯한 여러 지면에서 경교(景敎), 즉 네스토리우스계 기독교가 마치 통일신라 시대에 들어온 것처럼 여기게 만들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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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대는 진흥태왕의 무덤이다수수께끼의 나라 신라 2020. 9. 27. 03:05
경주 노서동 고분군과 노동동 고분군은 지금은 봉황대 고분 앞의 길을 사이로 구역과 명칭이 나뉘었으나 본래 같은 무덤군이었다. 이곳에서는 일제시대 금관총, 금령총, 서봉총이 발굴되며 화려한 금관을 선보였고, 이후 '금관=마립간시대'라는 등식을 고착화시키는 계기가 마련됐다. 일제시대의 학자들이 별다른 근거도 없이 마련한 그 등식을 우리나라 학자들이 아무런 생각 없이 그대로 따른 것인데, 해방 후의 첫 발굴이라는 은령총, 호우총 발굴에서도 그 등식은 고찰 없이 그대로 적용되어졌다. 은령총과 호우총은 같이 붙어 있던 표형분으로 짐작되나 지금 은령총은 없어지고 호우총만 남았다. 호우총에서는 그 유명한 광개토대왕의 명문이 새겨진 청동 호우가 발견되며 일대가 5세기 무덤이라는 추정을 굳어지게 만들었다. 호우가 광개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