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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로아스터교와 통일신라수수께끼의 나라 신라 2020. 11. 29. 20:01
앞서 두 개의 잡담을 통해 기독교가 신라시대에 전파되었을 가능성을 타진해 보았다. 결론은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것이었으니, 그에 관련된 사료는 물론이요 흔적조차 없기 때문이었다.(☞ '기독교 전래 시기와 구원의 문제에 관한 잡담 I, II') 그러면서 신라시대 기독교 전래의 증거로써 전시된 숭실대 박물관의 유물들은 모두 가짜이며 금강산 장안사 비석에서 탁본했다는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 비문도 장안사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피력했다.(이에 대한 숭실대 측의 해명을 요구했지만 아직까지 듣지 못했다)
앞서 얘기했듯 '한국기독교회사'(민경배 저/연세대학교 출판부)의 내용을 비롯한 여러 지면에서 경교(景敎), 즉 네스토리우스계 기독교가 마치 통일신라 시대에 들어온 것처럼 여기게 만들려는 의도가 엿보이나 한반도에 경교가 전래된 증거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나아가 이를 이를 유추해 볼 수 있는 단초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그랬으면 좋지 않았겠나'하는 희망사항을 마치 사실인 양 적었던 것 뿐이니, 그저 주목되는 것은 그 이단의 기독교에 매달리는 한국 기독교계의 심리다. '이단'에는 경기를 일으키며 입에 거품을 무는 그들이 과거의 이단에는 왜 그리 천착하는지.....
~ 칼케돈 종교회의에서 이단으로 최종 판명된 네스토리우스계 기독교와 '대진경교유행중국비'에 대해서는 「창세기의 수수께끼 단어 '우리', 그 비밀의 열쇠를 찾아서 (III)」에서 충분한 설명을 드린 바 있다. 포인트는 아래와 같다.
451년 10월 동로마제국 마르키아누스는 황제는 동방교회의 명망 있는 주교와 사제 500여 명을 칼케돈으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장기간의 회의 끝에 네스토리우스계 기독교를 이단으로 판명했다. 이제 남은 것은 네스토리우스파의 처신이었다. 이에 불복해 싸우느냐, 승복하느냐의 문제였겠으나, 실제적으로 싸움은 끝난 셈이어서 남은 것은 항복하느냐, 떠나느냐의 양자택일뿐이었다. 그들은 거기서 떠나는 쪽을 선택했다. 세상에서 로마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
그리고 또 일파는 아라비아와 인도와 중국으로 진출하였던 바, 635년에는 당나라의 수도 장안에 도착하였고 이후 '경교'라는 이름으로 약 150년 간 당 황실의 비호 속에 성장하였다. 그들이 중국까지 오게 된 사연이 아래의 '대진경교유행중국비'에 자세히 적혀 있는데, 781년 서역인으로서 당나라 관리로 중용된 이자드부지드(중국명 李斯)라는 사람이 거금을 출자해 경교 사찰인 대진사(大秦寺)에 세운 비석이었다. 한자 외에 시리아어로 경교 승려 70인의 이름을 적었다.
그렇다면 앞서 말한 조로아스터교는 어땠을까? 그것은 신라시대 이 땅에 들어왔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독교와 달리 조로아스터교가 전래되었을 가능성은 다분하다. 무엇보다 그것을 유추할 만한 증거가 있기 때문인데, 이를 추적하기 앞서 중국에 전래된 조로아스터교를 잠시 살펴보자.
당나라 시절 현교(祆教)라고 불린 조로아스터교는 경교, 마니교와 함께 삼이교(三夷敎, 3개의 이방 종교)로 대표되는 외래 종교였다. 그중 현교는 경교보다도 훨씬 세력을 떨쳤던 바, 초당(初唐)시대 멀리서 시리아인들이 가져온 경교와 달리, 현교는 수당(隋唐)시대 이전부터 중국과 무역을 해왔던 이웃 소그드인에 의해 자연스럽게 전래되었다. 그들 소그드인은 중국 장안(長安, 서안)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외인촌(村)을 형성하며 살았는데 20세기 들어 그곳 외인촌의 무덤이 다수 발굴되었다. 그중 조로아스터교 관련 유물이 출토된 묘와 대표적 유물을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다.
- 강업묘(康業墓, Kang Ye Tomb), 북주(北周) 천화(天和) 6년 (571년), 중국 서안(西安) (2004)。
- 청주(青州) 전가촌(傅家村墓), 북제(北齊) 무평(武平) 4년 (531년) 중국 산동(山東) 청주(青州) (1971)。
- 안가묘(安伽墓, An Jia/An Qie Tomb), 북주(北周) 대상(大象) 원년(元年) (579년), 중국 서안(西安) (2000)。
- 사군묘(史君墓, Shi Jun Tomb), 석곽(石槨), 북주(北周) 대상(大象) 2년 (580년), 중국 서안(西安) (2003)。
- 우홍묘(虞弘墓, Yu Hong Tomb), 석곽(石槨), 수(隋) 개황(開皇) 12년 (592년), 중국 태원(太原) (1999)。
- 감숙(甘肅) 천수묘(天水墓), 수(隋)~당(唐)시기, 중국 감숙(甘肅) 천수(天水) (1982)。
- 안양 출토라고 전해진 유물. 미국 보스톤미술관, 프랑스 기메(Guimet)박물관, 독일 쾰른(Koln)동양미술관 등에 소장
- 일본 미호미술관(美秀博物館, MIHO Museum)(http://www.miho.or.jp/ ) 소장 북위시대
- Vahid Kooros소장 (소위 Kooros collection); 현재 프랑스 파리 소재 기메미술관에 대여중이라 알려짐.
- 이탄묘(李誕墓, Li Dan tomb), 석관, 북주(北周) 보정(保定) 4년(564년)
동시대의 신라에도 소그드인들이 무역을 위해 자주 들락거렸는데 경주에서는 그들의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위에서 소그드인에 관한 글을 쓰신 분은 "소그드인들이 상업에만 종사한 것이 아니라 중국 당나라 시대에 군사력에도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이에 대한 연구는 좀 부족한 편"이라고 아쉬워 했지만, 길게 설명할 것도 없이 안사(安史)의 난을 일으킨 소그드인 안록산(安綠山)을 떠올리면 아쉬움은 금방 사라진다. 이와 같은 족속의 사람들이 신라에도 있었으니 원성왕(재위 783~798)의 능묘 앞에 서 있는 서역인 상이 바로 그들이다.
또 그 능묘 앞에서는 여러 마리의 사자상도 만날 수 있는데 사자가 우리나라에 없는 동물임을 상기하면 그 석상들은 페르시아 지방의 사자를 옮겨 놓은 것이라 할 수밖에 없다.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 페르세폴리스 왕궁 터나 파르티아 조각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자들로서, 바로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했거나 신봉했던 나라들이다. 그 지방에서 조로아스터교가 얼마나 성행했는지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도 나온다. 혜초는 불교국인 다섯 천축국을 거쳐 페르시아 나샤푸르까지 갔는데 "이곳의 여섯 나라는 모두 화현교(火祆敎)를 섬기며 불법(佛法)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자신의 여행기에 적어 놓았다.
또 신라말 최치원이 지은 '향악잡영'(鄕樂雜詠)이란 한시를 <삼국사기>에서 만날 수 있는데 거기에는 「금환 金丸」·「월전 月顚」·「대면 大面」·「속독 束毒」·「산예 狻猊」 등 오기(五伎, 다섯 기예)의 춤이 나온다. 이중 「대면」은 음악과 함께 하는 가면극이며, 그 중에서도 「속독」(Sogd)은 처용무와 같이 서역인의 탈바가지를 쓰고 추는 서역춤을 말한다.(헌강왕 때 서라벌에 온 처용은 당연히 서역인이다) 그리고 「산예」는 사자춤으로서 이 또한 서역에서 들어온 춤임을 알 수 있다. 「속독」과 「산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속독
쑥대머리 파란 얼굴의 이상한 사람들이
떼를 지어 뜰에 와서 난새춤을 추네.
북소리는 둥둥둥 바람은 살랑살랑
남으로 달리고 북으로 뛰며 그칠 줄을 모르네.
蓬頭藍面異人間 押隊來庭學舞鸞
打鼓冬冬風瑟瑟 南奔北躍也無端• 산예
멀고 먼 사막을 건너 만 리 길을 오느라고
털옷은 다 찢어지고 먼지를 뒤집어썼네.
머리를 흔들고 꼬리를 치며 인덕을 길들이니
뛰어난 그 재주가 어찌 온갖 짐승과 같으랴.
遠涉流沙萬里來 毛衣破盡着塵埃
搖頭掉尾馴仁德 雄氣寧同百獸才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페르시아 사자와 소그드인(혹은 페르시아인)으로 짐작되는 사람의 형상은 구정동 방형분(方形墳)에도 출현한다. 일반적 원형(圓形)이 아닌 네모난 형태를 취하고 있는 이 통일신라 시대의 무덤은 오래 전 도굴된 탓에 특별한 무엇을 기대할 수 없지만 그 모서리 돌에는 서역인과 사자상이 확연하다.(이 돌은 경주박물관으로 옮겨졌다) 특히 그 서역인은 폴로 스틱을 들고 있어 이채로운데, 최근 발견된 <쿠쉬나메>라는 이란 고대 서사시를 보면 (사라센의 침입으로) 신라로 망명한 페르시아 유민들과 신라인들이 폴로 경기를 하는 내용이 등장해 구정동 무덤 돌에 다시 눈을 두게 만든다.(<쿠쉬나메>는 지금 브리티시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겸해서 말하자면 <고려사>에는 '태조 2년 아자개 일행의 투항 환영식을 격구장에서 했다'는 기록이 있어 후삼국 시대 이전, 그러니까 통일신라시대에 이미 페르시아의 격구가 들어왔음을 알 수 있다. 중국에서는 당태종 시절(627~649) 페르시아에서 격구 경기를 들여왔는데, <쿠쉬나메>의 기록을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힘들겠지만 구정동 무덤 돌을 보자면 격구라는 스포츠가 중국을 거치지 않고 페르시아에서 직수입되었음을 유추해볼 수 있으며, 더불어 이때 조로아스터교도 묻어왔을 가능성 또한 생각해볼 수 있겠다.
이상의 서역인은 흥덕왕(재위 826~836)의 능묘에도 출현한다. 그리고 그 능묘에서는 이들의 정체를 확인해줄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 발견되었던 바, 아래의 흥덕왕릉비(興德王陵碑)가 그것이다. 1937년부터 1977년까지 파편으로 몇 개 만이 수습된 그 비석 돌은 무덤의 주인공이 흥덕왕이라는 것,('흥덕대왕'이라는 글자가 판독되었으므로. ☞ '신무왕릉을 찾아서') 그리고 무덤을 지키는 석상이 장사를 하러 왔다 신라 땅에 눌러 앉은 소그드인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파편에서 '무역지인간'(貿易之人間), 즉 '무역하는 사람'이라는 글자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던 까닭이다.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에서 발생한 조로아스터교는 7세기 중엽까지 천여 년 간 성세를 누리다 이슬람에게 잠식당한다. 그동안 그 종교는 서쪽으로는 그리스, 동쪽으로는 신라 땅까지 미쳤다. 하지만 그것을 들여온 소그드인은 신앙의 전파가 목적이 아니라 장사가 목적이었던 바, 불교가 전래될 때와 같은 치열한 전도 과정은 없었다. 아울러 보수적인 신라 불교의 텃세로 인해 뻗어나가지도 못했으니 신문왕 때의 승려 혜통이 마귀와 외도(外道)를 모두 서라벌에서 멀리하게 했다(盡敎魔外遠京華)는 <삼국유사>의 내용은 조로아스터교의 신라 포교가 쉽지 않았던 현실을 증거한다.
다만 월지(안압지)에서 발견된 아래의 각석은 한때 이 땅에 조로아스터교가 자리했음을 짐작케 해주는데, 지금은 경주박물관 뜰에 전시된 그 돌은 새겨진 문양으로 인해 '공작무늬돌' 혹은 '페르시아 문양석'으로 불린다. 나무를 가운데 두고 대칭을 이루고 있는 공작무늬가 전형적인 페르시아 문양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학자들은 이와 같은 문양을 입수쌍조문(立樹雙鳥紋)이라 이름 붙였다. 나무를 가운데 두고 새 등의 동물이 서로 대칭을 이루고 있는 모양이 사산조 페르시아에서 유행한 전통 문양이라 따로 이름을 붙인 것이다. 앞서 '프레디 머큐리와 조로아스터교, 그리고 기독교'에서 말했듯 사산조 페르시아는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했던 나라다.
2014년 경주를 방문했던 테헤란대학 역사학과 무함마드 바헤르 보수기 교수는 이 입수쌍조문과, 그 옆의 사자를 새긴 입수사자문(立樹獅子紋)이 사산조 페르시아의 전통 문양임을 확인했다. 이와 같은 동물 문양은 이슬람 왕조가 들어서면서 우상숭배를 금지하고 그것을 대신한 아라베스크 문양이 유행하며 사라졌지만 지금도 이란의 곳곳에서, 심지어 카펫에서까지 유사 문양이 발견된다고 했다.
그는 또 <삼국사기> 헌강왕(재위 875~886) 조에 기록된 처용이 페르시아 사람이라고 추정했던 바, 처용이 동해 용왕의 아들이라는 설화의 내용이 페르시아 서사시 '쿠쉬나메' 주인공 아브틴의 이름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즉 아브틴은 ‘물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동해를 통해 '바실라'(신라)로 망명한 아브틴의 출현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자면 같은 헌강왕 조에 기록된, '헌강왕 앞에서 춤을 춘,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모습이 무섭게 생기고 옷차림이 괴상한 네 사람' 역시 페르시아인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상의 상황들을 미루어볼 때 '공작무늬돌' 입수쌍조문 왼쪽의 알 수 없는 또 하나의 문양은 조로아스터교의 신 아후라 마즈다의 상징인 파라바하르(Favahar Symbil)일 가능성이 있으며, 나아가 망실된 각석의 윗부분에는 조로아스터교에 관한 내용과 그것이 전래된 과정이 새겨져 있었을 가능성 또한 배제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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