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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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초천 청파교와 캠프킴 내의 일본 다리서울의 다리 2022. 11. 17. 02:10
만초천(蔓草川)은 지금은 생경한 이름이지만 1960년대까지도 서울 서쪽을 가로질러 흐르던 큰 하천으로, 서울역사편찬원에서 펴낸 서울지명사전>은 만초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서대문구 현저동 무악재(길마재)에서 발원하여 서대문 사거리, 서울역, 서부역, 청파로, 원효로를 따라 원효대교 지점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 가는 물줄기로서, 옛날 이 냇가에 만초(덩쿨이 무성한 풀)가 무성하였다 하여 유래된 이름이다. 넝쿨내, 만천, 무악천, 욱천이라고도 하였다. 길이는 7.7㎞이고 유역의 폭이 매우 좁은 장방형이며 중, 하류로 내려오면서 점점 넓어져 호리병 형상을 하고 있는데, 1967년 이후 복개가 시작되어 지금은 물줄기를 찾을 수 없다. 욱천은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이름이다. 조선 고종대에 편찬된 서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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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전교 / 청계천 다리의 대표적 엉터리 복원서울의 다리 2022. 7. 14. 23:59
청계천의 첫 다리인 모전교는 청계천에 걸쳐 있는 22개 다리 중 가장 엉터리 복원된 경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사진에는 분명 평교(平橋) 형식의 돌다리였음에도 궁궐 금천에나 놓였을 법한 휘황찬란한 다리가 놓였기 때문이다. 보다 멋있는 다리를 만들겠다는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으나 혼자 따로 노는 까닭에 볼수록 안습이다. 그래서 과정을 알아보았더니 과연 사연이 있었다. 중앙일보 2005년 3월 18일 자 기사에서 밝힌 사연은 다음과 같다. ▼ 기사 내용의 축약 완공 예정의 청계천 모전교가 이명박 서울시장의 지시로 모양을 바꿔 새로 만들게 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이명박 시장은 8일 청계천 복원 공사 현장을 둘러본 뒤 "모전교 하단 아치의 곡선미가 떨어져 청계천 시점부 첫 교량으로의 상징성이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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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비윤씨와 지혜의 다리 종침교서울의 다리 2022. 4. 18. 06:35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廢妃) 윤씨가 어떻게 폐비가 되었는지는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의외라는 것은 우리가 드라마에서 익히 보아 알고 있는 내용과 다르다는 뜻이다. 즉 드라마에서는 성종의 와이프 윤씨가 폐비가 되어 궁에서 쫓겨나게 되는 것은, 그리하여 결국은 사약을 받고 죽게 되는 것은 왕의 얼굴을 손톱으로 긁어 피를 낸 일이 단초이다. 그리고 용안 스크래치 사건이 발생한 이유는 왕이 그녀의 몸종 일홍과 관계를 가졌던 까닭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중전 윤씨는 자신의 생일날 성종이 자신의 처소를 찾아줄 것을 기대했으나 야심토록 왕은 코빼기도 안 보였다. 그래서 나인에게 왕의 소재를 알아보게 하니 모처(某處)에서 일홍이라는 무수리와 함께 있다는 것이었다. 윤씨로서는 눈이 돌아갈만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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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 북창교와 삼청교육대서울의 다리 2022. 4. 3. 07:24
청와대 춘추관과 총리공관을 만날 수 있는 서울시 삼청동은 총리공관 입구 북촌 쪽 절벽에 삼청동문(三淸洞門)이라는 커다란 각자(刻字)가 있어 마을 입구 표지판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삼청동의 지명 유래에 관해서는 정확한 기원이 없는데, 도교에서 모시는 3신 태청(太淸) 상청(上淸) 옥청(玉淸)의 삼청성신(三淸星辰) 전각인 삼청전(三淸殿)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고, 산과 물과 인심이 모두 맑은 산청(山淸) 수청(水淸) 인청(人淸)에서 유래됐다는 말도 있다. 이 두 가지 유래는 모두 타당성을 가지고 있어, 정조 때의 학자 성해응은 에서 "산 동쪽 맥(脈)에 세 봉우리가 있고 봉우리 아래 삼청전이 있는데 그 옛날 하늘에 제사 지내던 곳이다. 산 동북쪽으로 물이 흐르고 그 앞 깎아지른 듯한 바위절벽에 삼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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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정동의 총성과 신교파출소와 신교서울의 다리 2022. 3. 22. 01:37
앞서 말한 자수교가 자수궁과 경복궁을 연결하기 위해 만든 다리라면 신교(新橋)는 선희궁(宣禧宮)과 육상궁(毓祥宮)*을 연결하기 위해 만든 다리였다. 까닭에 같은 백운동천(白雲洞川)을 건너는 다리라 해도 만든 시기는 크게 차이가 난다.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자수궁은 세종의 후궁들이 거처할 곳을 마련하기 위해 만든 궁이니 다리 역시 국초(國初)에 만들어졌겠으나, 선희궁은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이씨(暎嬪李氏)를 모신 사당인 만큼 다리 역시 조선말에 만들어졌다. * 육상궁은 영조의 생모인 숙빈최씨(淑嬪崔氏)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영빈이씨나 숙빈최씨나 모두 정비(正妃)가 아닌 까닭에 종묘에 배향되지 못하고 따로 사당을 지어 제사 지냈는데, 영조는 선희궁과 육상궁, 두 사당의 참배의 편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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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의 난과 자수궁과 자수교서울의 다리 2022. 3. 17. 05:09
지난주 드라마 에서 이성계의 7번째 아들이자 신덕왕후 강씨의 첫째 아들인 무안군 이방번이 이성계의 4남 이방간이 보낸 수하들에게 살해되는 장면이 나왔다. 강씨의 소생을 살려둘 수 없다는 이방간의 소신에 따른 일이었다. 그러자 이방원이 방간에게 아무런 힘도 무안군을 무엇 때문에 죽였냐고 항의하며 격하게 충돌하였다. 그러면서 2차 왕자의 난을 예고하고 있었는데, 이상은 제법 실록에 충실한 대목이었다. 실록은,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켜 세자 이방석을 없앴지만 이방번은 살려 유배 보내는 인정을 기록하며, 무안군 이방번을 죽인 이방간을 나쁜 놈으로 치부했다. 그러면서 이방간과의 싸움인 2차 왕자의 난을 일으킨 이방원의 정당성에 대한 명분을 제공한다. 아무튼 무안군 이방번은 형제들 간의 힘겨룸 속에 희생되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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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릉 석재는 경복궁 영제교의 것이 맞을까?서울의 다리 2022. 3. 15. 09:07
올해 1월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전나나 학예연구사가 국립문화재연구소가 펴내는 학술지 최신호에 "동구릉에 있는 석조문화재 부재가 경복궁 광화문 월대와 영제교의 것"이라는 주장을 실어 조용한 파문을 일으켰다. 사실 여부를 파악하기 앞서 우선 놀랐다. 집주소가 '동구릉로'로 되어 있을 만큼 사는 곳이 동구릉과 가깝고, 까닭에 자주 산책을 가는 곳이지만 그 입구에 놓인 석물을 보면서도 그와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 다만 그곳에 놓인 석물의 일부가 명성황후를 시해 후 일제가 급조한 무덤의 돌이라는 견해를 밝힌 적은 있다. ☞ '명성황후 시해사건 전말 III - 살해범들은 어찌됐나?') 그와 같은 생각을 못한 이유에는 그 석물 앞 안내문의 내용이 선행되니, 내용은 다음 같다. 이곳에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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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건설된 서울의 다리 금청교서울의 다리 2022. 3. 8. 01:59
서울에 고려시대 다리가 있었다고 말한다면 생소하게 들릴는지 모르겠지만 경복궁 동쪽 자하문로 초입에는 고려 충숙왕(재위 1313∼1330년) 때 건설된 돌다리가 놓여 있었다. 그것은 모양도 특이하게 3개의 아치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일제시대인 1928년 백운동천을 복개하는 과정에서 없어졌으니 무려 600년 이상을 버텨온 셈이다. 그 다리의 이름은 금청교(禁淸橋) 혹은 금교(禁橋)로, 필시 조선시대에 붙여진 이름일 게다. 근방에 조선시대 5군영의 하나인 금위영(禁衛營)이 있었던 까닭인데, 어쩌면 고려시대의 이름일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근방에 고려시대 남경(南京)의 도성이 있었던 까닭이니 통상적으로 궁궐 앞을 흐르는 물길은 금천(禁川), 금천에 놓인 다리는 금천교(禁川橋)이다. (☞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