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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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흥 탑동의 탑과 보문동 탑골승방의 탑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5. 4. 24. 23:51
돌아다니다 보면 탑동, 탑말, 혹은 탑리(塔里)라는 지명을 만날 때가 있는데, 의외로 그곳에 탑이 없을 적이 많다. 대표적인 예가 경주시 탑동으로, 경주가 탑이 흔한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근방에는 탑이 없다. 궁금한 마음에 좀 더 알아보니 이곳에 신라 때의 담암사(曇巖寺)라는 절이 있었고 폐사 후에도 탑이 남아 탑리라 불렸다고 한다. 그것을 보면 담암사 탑은 근자에까지 존재했던 듯하나 지금은 찾을 길이 없다. 반면 탑이 흔하지 않은 서울 속 탑동에는 탑이 존재한다. 그래서 첫 번째로 서울탑동초등학교 부근 금천구 시흥동 탑골로에 있다는 려말선초(고려시대 말~ 조선시대 초) 삼층석탑을 찾아 나섰는데, 조금 어려웠다. 사실 시흥동 탑골로(路) 탑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데다 GPS에도 표시되지 않는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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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대표 배신자 친중파 김자점의 최후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5. 4. 11. 21:39
앞서 말한 노량진 유원강변아파트와 래미안 트윈파크아파트 단지 앞으로는 바로 한강이다. 그리고 뒤로는 사육신묘 공원이 있는 바, 뷰(VIEW)로서만 따져본 주거환경으로는 가히 서울의 으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곳에는 사육신묘 외에 절의(節義)의 또 다른 표상 박태보의 위패를 모신 노강서원이 있었던 바, (유원강변아파트 103동 자리) 곱으로 의미가 깊은 장소라 하겠다. 이렇게 놓고 보니 갑자기 부동산 영업소의 블로그처럼 되어버렸다. 하지만 부동산 쪽은 평소에도 그리 관심이 없고, 앞서의 소개도 사육신묘를 강조하고 싶음이다. 물론 사육신묘 자체보다는 그 충절을 강조하고자 함인데, 더불어 가슴 아픈 배신의 역사 또한 더듬어 보고 싶었다. 우선 사육신의 단종 복위 운동을 좌절시키고 그들 모두를 형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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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강서원이 있던 노량진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5. 4. 9. 21:02
용산에만 머물다 이윽고 눈앞에 보이는 한강대교를 건넜다. 그리고 취지에 맞게 옛 흔적들을 더듬어보았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용양봉저정(龍驤鳳翥亭)이라는 정자로 조선 22대 왕 정조 임금의 화성 행차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잘 알려진 대로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는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혔고 여드레째 되는 날 죽었다. (8일간 버틴 것은 아니고 여드레째 되는 날 확인해 보니 죽어 있었다) 정조는 그렇게 원통히 죽은 아비를 연모해 재위기간 동안(1776~1800) 총 12회에 걸쳐 노량진 쪽의 한강을 건너 사도세자의 묘(현륭원)가 있는 수원 화산(華山)에 능행했다. 아래 사진은 서울역사아카이브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에서 발췌한 근세 노량진의 모습으로 '1910년 전후 노량진 일대'라는 제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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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 열차를 타고 가는 둔지미 과거로의 여행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5. 3. 31. 22:56
어릴 적 보았던 '은하철도 999'라는 만화영화를 자주 인용한다. 일본 만화가 마츠모토 레이지의 SF 만화영화 속 운송수단이었던 은하철도 999는 안드로메다 성운의 어느 별로 가기 위해 우주 공간을 달린다. 그 열차의 탑승객인 호시노 테츠로(철이)와 신비의 여인 메텔이 중도에 정거장과 같은 여러 별에 기착하며 별의별 상황에 처하고 또 극복해가는 과정이 그려진 스토리는 어린이들이 보기에는 꽤 무거운 주제였음에도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그래서였는지 시청자층의 연령도 어린이에 국한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신비의 여인 메텔이 안드로메다로 가는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철이의 경우는 분명하니 안드로메다의 어느 별에서 무료로 시술되는 기계인간의 몸이 되어 영생을 찾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데 저 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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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남은 개성 현화사와 연복사의 흔적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5. 3. 24. 21:37
고려 수도 개경의 현화사(玄化寺)와 연복사(演福寺)는 개성을 대표하는 사찰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큰 절이었다. 이중 현화사는 고려 현종(재위 1009∼1031)이 돌아가신 부모 명복을 빌기 위해 경기도 개성군 영북면 영추산 남쪽에 지은 사찰이다. 앞서 '합스부르크 왕가와 고려왕조의 근친혼'에도 말했지만, 현종은 부모의 근친상간 + 불륜으로 태어난 자식인 데다 어미 아비가 모두 일찍 죽는 바람에 보호막이 없이 성장했다. 그럼에도 그 부모를 그리워해 즉위 후 대찰 현화사를 완공했다. 현종은 성장과정도 기구했으니, 당시의 실권자인 천추태후(981~997)는 불륜상대 김치양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제위에 올리고자 왕손인 현종을 북한산 신혈사(지금의 진관사)로 보낸 후 여러 번 암살을 시도했다. 현종은 다행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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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장수 · 새우젓장수가 살았던 마포 염리동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5. 3. 20. 22:01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때 염리동이 소금동네(鹽里)라는 의미임을 알았지만 소금과 관계된 무엇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 동네에 과거 염창(鹽倉, 소금창고)이 있어 유래된 말이라 했고, 또 어떤 이는 염전(鹽廛, 소금시장)이 있어 그렇게 불려졌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후자가 좀 더 정확한 말인 듯하다. 소금창고에서 유래된 보다 확실한 지명은 강서구 염창동일 것이다. 조선시대 서해에서 올라온 소금이 한강을 통해 도성으로 이동되는 루트에 만들어진 임시 관영소금창고가 그곳에 있었고, 그래서 유래된 곳이 염창동이다. 사상(私商)들은 따로 지금의 동막역 부근에 창고를 지어 서해에서 올라온 소금을 저장했는데, 그 소금들이 염리동 염전에서 거래됐다. 근자에 설치된 염전머릿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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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백사마을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5. 3. 17. 00:02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는 노원구 백사마을의 철거가 시작됐다기에 빗속에 서둘러 현장을 다녀왔다. 백사마을의 마지막 풍경을 담기 위해서였다. 앞서도 말했지만 철거가 결정 나면 곧바로 움직여야지 조금이라도 꾸물거리면 공터나 공사판과 대면하게 된다. 다행히 비는 오후 들며 그쳤지만 되돌아온 추위가 만만치 않았다. 백사마을은 노원구 중계본동에 있다. 노원구는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양주군 노원면에 속했는데 그 노원면을 지금은 남양주시(별내동), 구리시(갈매동), 서울시(상계동·중계동·하계동·월계동·공릉동)의 3개 지방자치단체가 나누어 가진 형국이 됐다. 옛 경기도 땅을 2개 지방자치단체가 나누어 가진 경우는 흔하지만 3개로 나뉜 곳은 이곳이 유일하지 않나 싶다. 상계동과 중계동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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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걸어본 남산길(I) - 경성미술구락부에서 외교구락부까지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5. 3. 7. 23:38
지난 주말 서울 남산을 찾았다. 예전에는 당연히 둘레길 한 바퀴 도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지만 지금은 살라미로 하지 않으면 안 될 처지가 됐다. 요즘 많이 쓰이는 살라미의 뜻은 하나의 큰 목표를 여러 개의 작은 단계로 나누어 점진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방법으로, 고대 이탈리아에서 고기를 오래 보관하기 위해 짐승의 고기를 작게 썬 후 소금을 발라 염장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그 전략이 통해 목표한 남산 소파로를 무사히 걸었다. 출발은 지하철 4호선 명동역 2번 출구로부터 시작되었다. 2번 출구 바로 앞에서 만날 수 있는 프린스호텔은 앞서 설명한 대로 일제강점기 경성미술구락부가 있던 곳이다. 경성미술구락부는 1920년대 식민지 조선에 불기 시작한 조선 미술품 수집 열풍에 편승해 세워진 미술품 거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