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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 열차를 타고 가는 둔지미 과거로의 여행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5. 3. 31. 22:56
어릴 적 보았던 '은하철도 999'라는 만화영화를 자주 인용한다. 일본 만화가 마츠모토 레이지의 SF 만화영화 속 운송수단이었던 은하철도 999는 안드로메다 성운의 어느 별로 가기 위해 우주 공간을 달린다. 그 열차의 탑승객인 호시노 테츠로(철이)와 신비의 여인 메텔이 중도에 정거장과 같은 여러 별에 기착하며 별의별 상황에 처하고 또 극복해가는 과정이 그려진 스토리는 어린이들이 보기에는 꽤 무거운 주제였음에도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그래서였는지 시청자층의 연령도 어린이에 국한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철이와 메텔 & 은하철도 999의 역무원 신비의 여인 메텔이 안드로메다로 가는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철이의 경우는 분명하니 안드로메다의 어느 별에서 무료로 시술되는 기계인간의 몸이 되어 영생을 찾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데 저 안드로메다 은하는 무려 2,500만 광년이다. 지구의 가장 빠른 우주선을 타고 가도 2억 년이 걸리는 거리인데, 게다가 중간중간 다른 별을 거쳐 가니 인간의 수명 내에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게 볼 때 비록 언급은 없었더라도 은하철도 999는 미래로 가는 타임머신 열차였음이 분명한데, 외형은 뜻밖에도 구식 증기기관차에 달린 객차일 뿐이다.
은하철도 999 안드로메다 갤럭시 오늘은 구식 열차 은하철도 999를 타고 미래로 가는 대신 최신형 틸팅열차를 타고 과거로 가려 한다. 과거로 가는 열차가 오히려 최신형이라니 왠지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출발역은 용산철도고등학교이고 목적지는 둔지미이다. 둔지미는 지금 용산의 옛 이름으로 1906년 러일전쟁 후 일제가 일대에 거대한 규모의 병영을 설치하면서 사라진 곳이다. 둔지미 마을 사람들은 보광동 일대로 쫓겨나고, 둔지미 땅은 일본인을 위한 새로운 도시, '신용산'으로 개발됐다.
더불어 말하자면 조선시대 용산(龍山)의 이름을 가진 진짜 용산은 지금은 복개된 만초천(蔓草川)의 서쪽인 청파역과 공덕리, 그리고 마포나루 일대의 땅이었다. 도성 서쪽 인왕산과 무악(안산)에서 뻗어나간 산줄기가 만리현과 효창묘를 너머 한강 변으로 달리다 툭하고 멈춰 선 곳이 용산으로, 그 형세가 한강으로 물을 먹으러 가는 용과 같다 하여 그렇게 불렸다. 과거에는 그 땅에 대원군의 별장 아소당(我笑堂)과 조선여류시인들의 무대였던 삼호정(三湖亭)이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 (☞ '조선 여류시인들의 살롱 삼호정')
동도 디자인고등학교 내의 아소정 터 표석 용산구 리버힐 삼성아파트 옆의 삼호정 터 표지판 둔지미는 한성부 남부 둔지방(屯芝坊) 내 지역으로서 이곳에 있던 나지막한 산의 이름인 둔지산(屯芝山)에서 비롯됐다. '미'는 '메'나 '뫼'와 마찬가지로 산을 뜻한다. 둔지산은 현재 용산성당이 자리하고 있는 곳으로 해발 77m다. 말하자면 과거 둔지미 지방이 진짜 용산이고 신용산인 현재의 용산은 가짜 용산인 셈이나 지금은 도시의 팽창과 더불어 과거의 행정구역이 재편되며 그런 것을 따지기가 좀 애매하게 됐다. 아무튼 오늘의 목적지는 옛 둔지미 땅이다.
조선시대 <경조오부도> 속의 옛 용산과 둔지산 / 손가락이 가리키는 노란 박스가 옛 용산이고 오른쪽 노란 박스가 둔지산이다. (2020년 용산공원 사전 설명회 사진) 그런데 틸팅열차를 타러가는 길에 '와서(瓦署) 터'라는 흥미로운 표석이 있다. 무슨 뜻일까? 표석에 쓰인 글을 보니 '태종 5년(1405)부터 고종 19년(1882)까지 기와를 굽던 관아 자리'라고 한다. 이곳에 조선초부터 구한말까지 기와 공장이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조선시대 내내 이 일대에는 아무것도 없이 그저 너른 벌에서 흙을 채취해 기와를 찍어내는 노동의 현장이었다는 것이니, 지금의 용산시티파크 아파트단지나 용산철도고등학교 일대가 모두 와서 터였다는 소리가 된다.
용산철도고등학교 정문 건너편의 '와서 터' 표석 '와서 터' 표석 주변 그러고보니 2019년 서해안 태안에서 발견된 취두와 잡상이 생각난다. 총 4점이었던 조선 초 형식의 이 지붕 기와 장식은 이곳 와서에서 만들어져 남쪽으로 옮겨지던 중 배가 침몰하며 수장됐던 것인데, 조개 캐던 어부가 발견해 신고했다. 1m 이상의 크기여서 어부는 결국 인양해 실패하고 당국에 신고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렇다고 어부가 흑심이 있었다는 뜻은 아니다 ^^) 이것이 용산 와서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단정하는 이유는 취두와 잡상이 오직 이곳 와서에서만 취급되었던 까닭이다.
발견된 취두와 잡상 / 국가유산청 사진 지붕머리 장식 기와의 명칭 / 국가유산청 사진 불탄 숭례문 위의 잡상 / 대당사부(삼장법사)만이 남았다. 대당사부는 손행자(손오공) · 저팔계 · 사화상(사오정) · 이귀박 · 삼살보살 등을 거느린다. 대한불교조계종 원각사 사진 자.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용산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보자. 우선 틸팅열차가 전시돼 있는 용산철도고등학교를 잠시 들여다보자. 이 학교는 1905년 5월 철도이원양성소로 개교한 이래 철도관련 종사자를 배출해 온 유서 깊은 학교로서, 굳이 나와의 연관성을 찾자면 중학교 졸업 무렵 잠시 진학을 염두에 두었던 아스라한 기억이 있다.
용산철도고등학교 창조관 앞의 틸팅열차 그 옆에 있는 용산역사박물관도 유서가 깊은 건물로, 1907년 용산철도병원의 전신인 용산동인병원으로 개원한 이래 줄곧 철도관련 병원으로 사용되다 1984년부터 중앙대학교 부속 용산병원이 되었다. 이후 2008년 구(舊) 용산철도병원 본관이 국가등록문화재(제428호)가 되었고 이 건물을 리노베이션해 용산역사박물관이 꾸며졌다. 개인적으로는 큐레이팅이 뛰어난 박물관이라고 생각한다.
개관 포스터 / 용산우편국 앞을 지나는 전차를 도안했다. 용산역사박물관 / 용산전자상가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길 건너에서 본 모습 안내문 자.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과거 여행을 떠나보자. 여행은 당연히 철길을 따라가게 될 터이나 군데군데 철길을 벗어난 인상적인 장소도 조명했다. 또 당연히 한강대교를 넘지 않을 것이니 그 앞의 새남터에서 멈추게 될 것 같다. 조선 초에는 남이 장군이 역모의 죄로 참수당하고 이후로도 사형장으로 쓰이다 조선말에는 다수의 천주교도가 참수당했던 그곳이다.
이촌역 앞 교차로 건널목 / 이촌역 방면 용산역 방면 건널목을 지키는 철도원 열차가 용산파크빌딩 앞을 지나간다. 기차길 옆 오막살이가 시작됨. 역사와 전통의 한양철우 아파트 앞 용산세무서 앞 여기서 잠시 현재로 돌아왔다가 열차가 지나면 다시 과거로 들어간다. 주변에는 이런 데도 있다. 이 기찻길 옆 오막살이는 왠지 짠하다. 동부이촌동 부촌 시대를 선도했던 한강맨션 옛 용산역전 창고건물을 개조한 이국적 분위기의 가게들 땡땡거리 빙창 빗물펌프장 다시 과거 속으로 들어가면 영화에도 나왔던 그 유명한 백빈 건널목을 만난다. 반대편 이촌동 쪽 사진 철길 / 태평양 사옥 쪽 철길 / 우림아파트 쪽 다시 보이는 기차길 옆 오막살이 멀지 않은 곳의 새남터 표석 새남터는 특정 장소가 아니라 일대의 한강변을 통칭했다. 강 건너 노량나루가 보인다. '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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