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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한미관계 두 번째 시즌에 쓴 조지 포크에 관한 세 번째 이야기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6. 10. 19. 22:09
지금으로부터 44년 전인 1982년 12월 14일, 한미수교100주년기념사업위원회는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100주년을 기념해 인천시 동구 화수동 화도진공원에 있는 화도진(花島鎭) 앞에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100주년 기념 표지석을 건립했다. 화도진은 1879년(고종 16년), 서구 열강과 일본 등 외세의 해안 침입 및 개항 요구에 대비하기 위해 어영대장 신정희 등이 주도하여 축조한 군영으로 미국 아시아함대 사령관 로버트 슈펠트와 조선전권대사 신헌과의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장소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지가 화도진이 아니라 제물포구 항동 바닷가 언덕인 해망대(海望臺)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해망대는 개항 이후 영국영사관, 미군휴양시설, 파라다이스호텔, 올림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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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년 전 이 땅에 왔던 우크라이나인이 남긴 큰 흔적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6. 10. 17. 21:39
2026년 9월 23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우전쟁에서 붙잡힌 북한군 포로 2명의 한국 송환 사실을 언급했다. 그러자 마침 유엔총회에 참석했던 대한민국 대통령 이재명이 거의 발작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포로 한국 송환을 조용히 비공개로 처리하기로 해놓고 합의를 어기고서 공개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젤렌스키는 그러한 사실이 없었노라 일축했다. 그러자 이재명은 다시 이를 부정한 후 북한군 포로의 국내 송환은 남북 관계와 국가 안보에 매우 예민한 사안이므로 비공개하기로 했다며, 우크라이나가 합의를 어기고 이를 공개한 것이라고 재반박했다. 그러자 젤렌스키 역시 즉각 반박 성명을 냈던 바, 비공개로 하기로 합의한 적 없다고 재천명한 후, 더 나아가 "한국이 북한 군인들을 넘겨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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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소장 친일파 유물 전시 사건에 대한 자세한 내막그리 멀지 않은 옛날의 우화 2026. 10. 16. 19:02
위 사진은 어제 모바일 뉴스에 뜬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사과하는 모습이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궁금했다. 그 정중한 자세는 과거 문화재청장 재임 시절 국보 1호 숭례문을 태워먹었을 때를 연상케 해 이번에는 국중박의 유물이라도 훼손시킨 것일까 생각했는데, 아닌 게 아니라 그에 필적할 만한 사고를 쳤다. 2건 1조(組)로 이루어진 사건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사건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 7월부터 기획 전시 중인 '우리들의 밥상'이라는 타이틀의 전시회에서 독립운동가의 애국 유묵으로 소개되었던 '일반시국은(一飯是國恩)'이라는 유묵 전시품이 알고 보니 친일파의 글씨였다는 것이 1차 사건이다. 그런데 이 유물이 유홍준 관장 개인의 소장품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부실 검증 및 이해충돌 논란으로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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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로 영추문의 가을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6. 10. 15. 21:48
은 실직자였던 정철(鄭澈, 1536~1593)이 45세의 나이에 강원도관찰사 직을 제수받아 경험하게 된 강원도의 아름다움을 가사체 형식을 빌어 쓴 글이다. 그 서두는 이렇게 시작한다. 강호(江湖)에 병(病)이 깁퍼 듁림(竹林)에 누엇더니,관동(關東) 팔백리(八百里)에 방면(方面)을 맛디시니,어와 성은(聖恩)이야 가디록 망극(罔極)하다.연추문(延秋門) 드리달아 경회남문(慶會南門) 바라보며,하직(下直)고 물너나니 옥절(玉節)이 알페 셧다. 당시 서울에는 죽림(竹林, 대나무 숲)이 없었으니 누우려야 누울 곳이 없었던 바, 여기서 강호(江湖)는 전라남도 창평을 말하는 것이 되겠다. 정철의 4개 가사 중 나머지 셋인 사미인곡>, , 이 모두 그곳 창평에서 쓰여졌다. 까닭에 흔히 송강 정철의 고향을 전남 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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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에서 발견된 신라왕자 김영의 무덤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6. 10. 14. 20:41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후 더욱 노골화된 중국의 대한(對韓)간섭에 열이 받아 차라리 신경을 끊자고 내심 다짐하면서도 불쑥불쑥 터져 나오는 중국인 관련 뉴스에는 순간순간 화를 참을 수 없다. 저들은 왜 이토록 한국에 대해 오만한가....? 이를 역사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도서관에 가 관련서적을 뒤져보고, 근자에는 (서해문집)라는 책을 사 읽어보기도 했지만 신발 신고 가려운 곳을 긁는 격화소양(隔靴搔癢)의 답답함만 더할 뿐이다. 이는 아마도 오랜 한중관계에 있어 체득화된 약자의 삘에 쩔어 있는 결과인 듯 보이니, 사실을 사실 대로 기록하지 않고 우리 쪽에 유리하게 미화하거나 혹은 애써 감추려는 고의도 엿보인다. 이를 테면 서대문독립공원에 있는 독립관이 중국 사신을 영접하는 모화관을 부수고 지은 것이라는 얘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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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왕 조조의 무덤 & 조조가 도굴한 양효왕릉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6. 10. 13. 21:48
지난 2009년 중국 허난성 안양시 안양현에서 위왕 조조(曹操,155~220)의 무덤이 발견되어 화제를 모았다. 그동안 도굴을 막기 위해 72개의 의총(疑塚, 가짜 무덤)을 만들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설이 전해지며 조조의 진짜 무덤 위치는 1,800년 동안 베일에 싸여 있었다. 발견된 무덤 역시 진위를 둘러싼 설왕설래가 이어진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후 면밀한 연구를 거쳐 2018년 중국 당국에 의해 조조의 진짜 무덤인 '안양 고릉(安阳 高陵)'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하지만 조조의 무덤은 이미 도굴로 인한 심각한 약탈이 이루어진 상태로서 값어치 나가는 보물과 유물들은 모두 도굴당하고 유물에 매달려 있던 석표(돌로 된 명문 표식)들과 유골만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상태였다. 따라서 고증에 문제가 있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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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한 이장으로 도굴당한 중종의 정릉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6. 10. 12. 16:41
앞서 말한 조강지처를 버린 지아비 중종은 1544년 세상과 이별했다. 그는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의 무덤인 고양시 희릉 옆 서쪽 언덕에 안장되었다. 장경왕후와 중종은 살아생전 사이가 좋아 1남 1녀를 생산했고 그중의 사내아이는 반듯이 성장해 훗날 12대 임금 인종이 되었다. 하지만 장경왕후는 아들을 낳은 후 산후병으로 7일 만에 죽었던 바, 왕의 안타까움은 한량없었는데, 이제 두 사람은 인접한 장소에 누워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중종의 세 번째 왕비인 문정왕후는 그 꼴을 두고 보지 못하겠다는 양, 1562년 풍수지리상의 이유로 이장을 단행했다. 기존 희릉 자리가 장마철에 물이 차오르고 지세가 불길한 흉지라는 주장이 봉은사 주지 보우대사로부터 제기된 것이 시작이었는데, 보우는 자신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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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경왕후의 온릉에서 생각해본 중독된 권력전설 따라 삼백만리 2026. 10. 10. 22:02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에 있는 온릉(溫陵)은 조선 11대 왕인 중종의 첫 번째 부인이었던 단경왕후 신씨의 무덤이다. 신씨는 정승인 신수근(愼守勤, 1450~1506)의 딸로 13살 때 성종의 차남인 진성대군(晉城大君)과 혼인했다. 두 사람은 혼인 후 지금의 교동 부근에 살았는데, 1506년 박원종 등이 일으킨 쿠데타에 휘말렸다. 오랫동안 지속된 연산군의 폭정에 떨쳐 일어난 군사들이었다. 반정은 성공하여 쿠데타 세력은 창덕궁에서 연산군을 피체했다. 그리고 그 일군(一軍)은 다시 말머리를 세워 진성대군의 집으로 몰려갔다. 그러자 진성대군은 자신을 죽이라 온 군사들이라 생각하여 겁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였다. 그때 부인 신씨가 남편을 말리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보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