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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 서림의 배신으로 죽은 임꺽정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6. 9. 21. 19:26
우리나라에도 로빈 후드와 같은 의적(義賊)이 있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아쉽게도 '없다'이다. 반만년(半萬年)이라고도 말하는 5000년 가까운 우리나라의 장구한 역사에 있어 의적이라고 불릴 만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음이니, 성호 이익은 에서 우리가 흔히 의적이라 일컫는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을 조선의 대표적인 3대 도적이라고 단정해 말했다. 그들이 백성들을 위해 도적질했다는 흔적이라도 있었다면 차마 남기기 힘든 기록이다. 그중에서 홍길동은 가장 평이 나쁘다. 조선 연산군 때 충청도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한 도적 홍길동은 본때를 보이기 위해 밀고자의 얼굴 가죽을 벗겨 죽인 후 나무에 매달아 놓았다고 할 만큼 잔인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와 같은 흉적들이 의적으로 둔갑한 것은 오직 문사(文士)들의 붓끝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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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신윤복의 '기다림'과 설도의 '춘망사'그리 멀지 않은 옛날의 우화 2026. 9. 19. 18:59
훗날 누군가 '기다림'이라고 이름을 붙인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는 간단한 오브제만으로도 충분히 애절하다. 먼저 주목되는 것은 여인이 등뒤로 감춘듯 들고 있는 송낙(松蘿)이다. 송낙은 여승이 주로 쓰던, 송라(소나무겨우살이 풀)를 우산 모양으로 엮어 만든 모자로 이 여인이 어느 정도의 거리를 얼굴을 가리고 왔다는 것을 의미하며 아울러 기생이 아닌 여염집 여자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조선시대 기생은 외출시에 주로 전모(氈帽)를 썼다. 아울러 기녀들의 화려하고 화사한 스란치마나 삼회장저고리와 달리 수수한 치마저고리에 앞치마를 두른 모양새하며, 당혜(가죽신)가 아닌 짚신을 신고 있는 모습(그럼에도 발이 예쁘다)에서 여염집 평민 여성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한쪽 발이 살짝 들려져 있어 여인의 조바심과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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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신윤복의 '연소답청'과 김XX 장관 후보자그리 멀지 않은 옛날의 우화 2026. 9. 18. 16:50
'연소답청'(年少踏靑)은 혜원 신윤복이 그린 그림으로, 젊은 양반들과 기생들이 삼짇날 교외로 봄나들이를 떠나는 풍경을 담은 그림이다. 삼짇날은 음력 3월 3일로, 한자로는 답청절(踏靑節)이다. 삼짇날은 양(陽)의 기운을 뜻하는 홀수 '3'이 두 번 겹치는 날이라 하여 예로부터 길(吉)하고 경사스러운 날로 여겨 명절로 삼았다. 남자들의 양기가 두 배로 뻗치는 날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무튼 양반들은 기생을 끼고 봄나들이에 나섰다. 그림 속에는 총 8명의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중 기생이 탄 말의 고삐를 잡고 있는 두 사람의 구종(驅從)이 있다. 그중 봄바람을 비끼려 장옷을 뒤집어쓴 기생의 말고삐를 잡은 사람은 시동(侍童)이니 자연스러운 반면, 곰방대를 빨고 있는 기생의 말고삐를 잡은 사람은 뜻밖에도 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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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와 금석학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6. 9. 17. 23:04
추사 김정희는 "나는 옛것이 좋아 때론 깨진 빗돌을 찾아다녔다"(好古有時搜斷碣)고 했지만 사실 조선에는 금석학이 존재하지 않았다. 조선에서 금석학을 처음 연구한 사람은 실학자인 영재 유득공으로 알려져 있으며 김정희도 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다 북학파 박제가로부터 본격적으로 고증학을 배우며 금석학을 배웠고, 이후로는 청나라 학자 옹방강(翁方綱)과 완원(阮元)의 영향을 받았다. 그의 추사체가 금석학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은 이제는 정설이 됐다. 김정희는 연행사(燕行使)로 연경을 오가며 당대 최고의 대학자였던 옹방강과 완원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로부터 금석학을 연구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리고 옹방강의 아들 옹수곤과의 금석문에 대한 서신을 통한 교류는 김정희에게 새로운 인생을 선사했다. 서로의 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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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신윤복이 말년의 삶을 보냈던 은평구 구산동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6. 9. 16. 15:00
앞서 단원 김홍도가 살던 지하문 터널 부근의 집 터를 찾아보았다. 이번에는 혜원(蕙園) 신윤복(1758~1814·추정)이 살던 곳을 찾아보려 한다. 신윤복은 조선시대 여인을 그린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이니, 그가 그린 '미인도'와 '월하정인'(月下情人) 등이 특별전시된 2011년 간송박물관 가을 개장 때는 오전 9시 전부터 인파가 몰려 성북동 큰길까지 300여m 넘게 줄을 서는 그야말로 '신윤복 신드롬'을 일으켰다. '미인도' 속 여인은 필시 기녀였겠으나 '월하정인' 속 여인은 여염집 아낙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 신윤복의 그림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사진 이야기를 하려 한다. 조선시대 최초로 사진 모델이 된 사람는 누구일까 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명성황후로, 아래 사진은 여주 출신의 여흥민씨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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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와 김가진이 살던 백운동천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6. 9. 14. 11:44
'단원도'(檀園圖)는 김홍도가 자신의 집 단원(檀園)을 그린 그림으로 알려져 있으나 장소에 대해서는 설(說)만 무성할 뿐이다. 김홍도는 자신의 집을 너무 사랑해 호를 '단원'으로 삼았는데, 아래 '단원도'를 보면 집 자체보다는 주위 환경을 사랑한 듯하니, 사립 문 밖에는 늘어진 버드나무가, 담장 안에는 파초, 벽오동, 수련, 관음죽, 소나무 등이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치를 연출한다. 바위 뒤의 나무들은 필시 박달나무일 것이다. '단원'은 '박달나무숲'이란 뜻이다. 나름대로의 판단으로 김홍도가 살던 '단원'을 찾아보았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종로구 청운동 자하문터널 위의 공터에서 발길이 멈췄다. 근거는 역시 박달나무였다. '단원도'에 그려진 대로 이곳은 수종들이 다양하니 소나무, 신갈나무, 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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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별 이위종 삼대(三代)토박이가 부르는 서울야곡 2026. 9. 13. 10:37
다시 삼대(三代)의 이야기를 이으려 한다. 이번에는 구한말 선각자 이위종(李瑋鍾, 1884~?)의 삼대이다. 이위종은 언뜻 낯설 수도 있는 인물이지만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간 황제(고종)의 특사들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이위종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특사단에 합류하여 목적지인 회의장 앞에서 '한국의 호소(A Plea for Korea)'라는 유창한 연설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일제와 열강의 방해로 회의장 입장이 거부되자 이위종은 회의장 입구에서 능통한 영어와 불어로 한국의 억울함을 알리는 호소를 한 것이었다. 즉 특사단은 회의장 밖에서 외교전을 펼쳤던 것이고, 이들 특사단의 활약은 을사늑약의 부당함과 일제의 침략상을 세계 주요 언론에 알리는 효과를 거두었다. 비록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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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달사지 쌍사자 석등과 거돈사지 승탑의 귀향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6. 9. 12. 14:48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놓여 있는 '여주 고달사지(高達寺址) 쌍사자 석등'이 원래 있던 여주 고달사 터로 돌아간다. 68년 만의 귀향인 셈이다. 국가유산청과 국립중앙박물관, 여주시는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을 본래 자리로 이전한다고 9일 밝혔는데, 유홍준 관장 취임 후 잇따르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석조 유물 '제자리 찾기'의 일환인 듯하다. 일전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고려초 번성했던 여주 고달사는 그 중건에 당대(신라말 고려초)의 명장들이 총출동한 듯 잔존 유물 중에서도 우수한 작품들이 즐비하다. 그중의 백미는 단연 고달사지 승탑으로 국보 제4호다. 서울에 있는 국보 1, 2, 3호에 이어 여주 폐사지에 있는 승탑이 '느닷없이' 지정된 것인데, 이 하나만을 보아도 고달사지 승탑이 얼마나 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