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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 북창교와 삼청교육대서울의 다리 2022. 4. 3. 07:24
청와대 춘추관과 총리공관을 만날 수 있는 서울시 삼청동은 총리공관 입구 북촌 쪽 절벽에 삼청동문(三淸洞門)이라는 커다란 각자(刻字)가 있어 마을 입구 표지판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삼청동의 지명 유래에 관해서는 정확한 기원이 없는데, 도교에서 모시는 3신 태청(太淸) 상청(上淸) 옥청(玉淸)의 삼청성신(三淸星辰) 전각인 삼청전(三淸殿)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고, 산과 물과 인심이 모두 맑은 산청(山淸) 수청(水淸) 인청(人淸)에서 유래됐다는 말도 있다.
이 두 가지 유래는 모두 타당성을 가지고 있어, 정조 때의 학자 성해응은 <동국명산기(東國名山記)>에서 "산 동쪽 맥(脈)에 세 봉우리가 있고 봉우리 아래 삼청전이 있는데 그 옛날 하늘에 제사 지내던 곳이다. 산 동북쪽으로 물이 흐르고 그 앞 깎아지른 듯한 바위절벽에 삼청동문(三淸洞門)이라는 커다란 글자가 새겨 있다"고 했으며, 허균과 허난설헌의 스승이었던 시인 이달(李達)이 삼청동을 읊은 시에서도 삼청전이 출현한다.
북촌 시장은 거리와 잇닿았고
무성한 가을 숲은 성곽을 덮었네
삼청보전은 옛 모습 그대로인데한번 종소리 울리니 대궐문이 닫히네
흐르는 물은 차가운 바위 아래로 떨어지고
이슬 맺힌 풀 사이로 반딧불이 날아드네
멀고 먼 세상근심 잊고자
밤은 이미 깊었건만 돌아갈 줄 모르네
北市連街路
秋林近郭山
三淸留寶殿一磬閉雲門
水落寒岩下飛螢露草間
悠悠忘世慮
夜久不知還
손곡(蓀谷) 이달이 말한 삼청보전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으며 그 위치도 알려져 있지 않다. 항간에서 전해지는 말대로 백련봉 영월암(影月岩) 각자 바위 아래 있었다고 하면 지금 군부대가 있는 아래 장소가 가장 유력하나, 부근의 강일암(康日菴)을 배후로 두었을 가능성도 있다. 아무튼 조선 최고의 도교 전각(殿閣)이 조명받지 못하고 간과되고 있음은 좀 안타까운데, 다만 차가운 바위 아래로 떨어져 흘렀던 맑은 물은 지금도 존재하니 그 또한 삼청동의 유래가 되었다.
청와대의 배후인 백악산은 좌우로 두 개의 수원(水源)을 품어 내[川]를 만들었다. 그중 하나가 앞서 말한 서쪽 사면의 백운동 청풍계를 이루는 백운동천이고, 또 다른 하나는 동쪽 사면을 흘러내려 경복궁의 왼쪽을 감아흐르는 삼청동천이다. 이 삼성동천은 그 유역에 조선시대 중등교육기관인 중부학당(中部學堂=중학)이 있어 중학천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앞서 말한 혜정교도 말하자면 삼청동천에 걸려 있던 다리였다.(☞ '한양의 핫 플레이스 혜정교를 아시나요?')
* '말하자면'이라는 단서를 달은 것은, 백운동에서 발원해 경복궁 안을 거쳐 흘러나오는 또 하나의 물줄기가 중부학당 앞에서 삼청동천과 합류해 혜정교로 흘러들기 때문이다.
삼청동천(三淸洞川)의 다리를 하류부터 짚어보면 혜정교(惠政橋), 중학교(中學橋), 십자각교(十字閣橋), 장생전교(長生殿橋), 장원서교(掌苑署橋), 소격서교(昭格署橋) 북창교(北倉橋)가 있었다. 그중 북창교가 가장 상류에 있었고, 선혜청의 북쪽 창고이자 군기시(軍器寺)의 창고가 있던 북창(北倉) 앞에 위치해 북창교로 불렸다. 즉 지금의 삼청동길과 가회동길은 모두 옛 삼청동천을 복개해 만들어진 도로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북창교는 지금의 한국금융연수원 앞에 있었으며 그곳에서부터 북쪽 삼청공원 방향으로 가다보면 주택가 사이에서 복개되지 않은 삼청동천을 발견할 수 있다.
북창교는 삼청동천에 놓였던 다리들과 함께 1957년 중학천 복개과정에서 사라졌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남아 있는 사진은 없지만 1770년 경에 그려진 <한양도성도>에서는 선혜 북창 앞에 놓인 북창교가 매우 선명히 표시돼 있다. 일제 시대에 촬영된 장생전교와 비교컨데 다리의 형태는 장생전교와 같은 난간 없는 평교(平橋)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삼청동을 말하면서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역사의 괴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로, 1979년 12.12군사반란을 일으킨 신군부가 5.17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후 설치한 임시 행정 기구였다. 입법권도 없었음에도 초법적 법령의 제정 및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 약칭 국보위로 불린 이 전대미문의 기구에서는 국보위 위원장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만들었으며, 더불어 삼청교육대(三淸敎育隊)라고 하는 살아 있는 지옥을 만들었다.
5.16군사혁명 후의 깡패 소탕을 흉내 낸 삼청교육대는 표면상으로는 조직폭력배와 같은 사회악을 일소시키겠다는 명분이었으나 사실상 마구잡이로 끌려간 4만 명 이상의 사람이 지옥과 같은 공포와 가혹행위와 강제노역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이중 340명 이상이 죽었으며 3천 명 이상이 정신이상자나 불구가 됐다.
이 계획을 설계한 사람은 당시 신군부의 실세로서 이른바 '3허(許)' 중의 하나였던 보안사 대령 출신의 국보위 정화분과위원회 간사 허삼수였다. 그가 그 지옥을 삼청교육대로 명명한 까닭은 국보위 본부가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 25-1 중앙교육연수원에 있었으며 그의 사무실 또한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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