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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구릉 석재는 경복궁 영제교의 것이 맞을까?
    서울의 다리 2022. 3. 15. 09:07

     

    올해 1월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전나나 학예연구사가 국립문화재연구소가 펴내는 학술지 <문화재> 최신호에 "구릉에 있는 석조문화재 부재가 경복궁 광화문 월대와 영제교의 것"이라는 주장을 실어 조용한 파문을 일으켰다. 사실 여부를 파악하기 앞서 우선 놀랐다. 

     

    집주소가 '동구릉로'로 되어 있을 만큼 사는 곳이 동구릉과 가깝고, 까닭에 자주 산책을 가는 곳이지만 그 입구에 놓인 석물을 보면서도 그와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 다만 그곳에 놓인 석물의 일부가 명성황후를 시해 후 일제가 급조한 무덤의 돌이라는 견해를 밝힌 적은 있다.'명성황후 시해사건 전말 III - 살해범들은 어찌됐나?')

     

    그와 같은 생각을 못한 이유에는 그 석물 앞 안내문의 내용이 선행되니, 내용은 다음 같다.

     

    이곳에 전시된 석물들은 1970년대 해체된 동구릉 외금천교 부재와 동구릉 내에 왕릉을 조성하고 보수하거나 옮기는 과정에서 사용하지 않게 된 석물들이다. 외금천교 부재의 일부는 홍예모양을 복원하여 전시하였다. 다른 석물들은 난간석, 귀틀석, 은장석, 주초석, 장대석 등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있는데, 그 출처나 쓰임을 정확히 알 수 없다. 

     

     

    동구릉 석물부재
    꽤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써 있는 안내문

     

    전나나 연구사가 논문에서 주목한 것은 영제교보다는 광화문 월대 난간이다. 1920년대까지도 광화문 사진에서 확인되는 월대는 이후 도로를 넓히는 과정에서 사라졌는데, 전 연구사는 난간석 장식물이 난간석주(欄干石柱) 40점, 죽석(竹石)과 동자석(童子石)이 각 38점으로 좌우 한 쌍을 이뤘다고 설명했다. (난간석주는 난간에서 기둥 역할을 하는 돌이며, 죽석은 횡렬의 긴 석재, 동자석은 죽석을 받치는 돌이다)

     

     

    광화문 월대

     

    현재 광화문 앞에는 월대가 약식으로 복원돼 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중 난간석주 1점은 오리지널로 여겨지는 것이 있다. 원래 국립민속박물관 마당에 있던 것을 가져다 쓴 것으로 전 연구사는 이 난간석주에 대해 "근대 사진에 보이는 광화문 월대 석물과 형태가 같아 고종 당시 제작된 난간석 원형으로 여겨진다"고 말하며 동구릉에 이와 매우 유사한 난간석주 18점, 난간석주와 일체를 이루는 유물로 짐작되는 동자석 20점과 용두석(龍頭石) 2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 주장은 매우 타당하니, 이 광화문 월대와 동구릉 석물을 비교해보면 같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약식으로 일부 복원된 광화문 월대
    광화문 월대의 오리지널 난간석주
    동구릉 석물
    높이 152㎝, 하단부 너비 65㎝, 죽석이 들어가는 팔각형 구멍 크기 가로 22㎝ 세로 23㎝로 광화문 난간석주와 동일하다.

     

    한마디로 문화재 당국도 모르고 있던 사실을 전 연구사가 밝혀낸 것이데, 그는 광화문 월대의 부재가 동구릉에 놓여지게 된 까닭에 대해, "1923∼1925년에 전차 선로 개설과 도로 정비 등 이유로 해체된 월대가 조선총독부 청사가 건립되면서 경복궁 어딘가에 모여 있다가 1940∼1970년대에 옮겨진 것 같다"고 추정했다.  

     

     

    전 연구사가 말한 동구릉 용두석
    동구릉 내 휘릉 가는 길의 난간석주 / 광화문 난간석주와는 확실히 모양이 다르다.
    휘릉 / 인조의 두 번째 부인인 장렬왕후 조씨의 능으로 홀로 있어 쓸쓸하나 단아한 분위기를 풍긴다.

     

    문제는 난간석주 옆에 있는 홍예석 2점으로, 전 연구사는 이 역시 경복궁 영제교의 홍예석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그것이 이것이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그렇다고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 정확히 말하자면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다. 광화문 난간석주처럼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니, 지금의 경복궁 영제교는 일제가 조선총독부를 건설하면서 없앤 것을 아래 <조선고적도보>의 사진을 근거로 2001년 흥례문과 함께 복원한 것이다.

     

    하지만 느낌 상으로는 동구릉의 것은 영제교 사진과 거의 동일한 바, 만일 이것이 경복궁 영제교의 것이라면 아래의 무책임한 안내문들은 모두 사라져야 마땅하다.  

     

     

    《조선고적도보》의 경복궁 영제교 사진
    동구릉의 홍예석 (앞면)
    동구릉의 홍예석 (측면)
    동구릉 외금천교의 홍예라고 설명되어 있는 안내문
    1914년도의 지적도와 최근의 항공사진을 중첩해 외금천교와 외연지를 설명해놓은 안내판
    안내판 아래에는 창덕궁 금천교와 비교해놨다.
    동구릉 입구의 외연지(外蓮池) 터
    동구릉 내의 금천과 내금천교
    이 금천이 밖으로 흘러 외연지로 들어가기 전,
    이 다리 있는 곳에 외금천교가 있었다는 것인데, 지금은 왠지 믿음이 안 간다. / 사진은 외연지쪽에서 찍은 동구릉 입구 사진이다.
    경복궁 영제교
    비교할 수 있는 사진을 여러 장 올렸다.
    동구릉 석물은 광화문 월대의 것이 맞는지 다 가져갔다. 지금 광화문은 월대 공사가 한창이다. / 2023년 7월 12일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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