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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건설된 서울의 다리 금청교서울의 다리 2022. 3. 8. 01:59
서울에 고려시대 다리가 있었다고 말한다면 생소하게 들릴는지 모르겠지만 경복궁 동쪽 자하문로 초입에는 고려 충숙왕(재위 1313∼1330년) 때 건설된 돌다리가 놓여 있었다. 그것은 모양도 특이하게 3개의 아치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일제시대인 1928년 백운동천을 복개하는 과정에서 없어졌으니 무려 600년 이상을 버텨온 셈이다.
그 다리의 이름은 금청교(禁淸橋) 혹은 금교(禁橋)로, 필시 조선시대에 붙여진 이름일 게다. 근방에 조선시대 5군영의 하나인 금위영(禁衛營)이 있었던 까닭인데, 어쩌면 고려시대의 이름일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근방에 고려시대 남경(南京)의 도성이 있었던 까닭이니 통상적으로 궁궐 앞을 흐르는 물길은 금천(禁川), 금천에 놓인 다리는 금천교(禁川橋)이다. (☞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창덕궁 금천교') 그것이 혹 고려시대에는 금청교라 불렸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고려시대 수도 개경 및 서경(西京, 평양)과 더불어 3경(三京) 체제를 이룬 남경에 대해서는 그간 구체적인 위치가 적시되지 않았다. 그래서 <태조실록>에 이오는 '신왕조의 정궁인 경복궁을 고려 남경의 남쪽에 건설했다'는 기록에 의거, 막연히 경복궁 북쪽 일대를 남경의 궁성이 있던 곳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남경의 궁성은 생각보다 컸던 듯, 지난 2007년 광화문 자리 일대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그 지표면 아래서 고려 시대의 배수로와 고급 청자편, 명문(銘文) 기와 등이 수습되었다.
이렇게 보자면 지금의 서쪽 체부동과 동쪽 통의동을 나누는 '자하문로'라는 도로 이름은 뜻이 깊다. 앞서 '탕춘대성과 창의문'에서 말한 바 있거니와 자하문은 경복궁 서북쪽에 있는 창의문의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지금도 자하문 터널이나 자하문로와 같은 지명이 쓰이고 있는데, 이 이름이 바로 개경 자하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앞서 소개한 창의문 안내문을 다시 보면 다음과 같다.
창의문은 인왕산과 백악산이 만나는 곳에 있는 문이다. 사소문 중 유일하게 조선시대에 지어진 문루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문루는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741년(영조 17)에 다시 세운 것으로, 문루를 새로 지으면서 인조반정 때 반정군이 이 문으로 들어온 곳을 기념해 공신들의 이름을 새긴 현판을 문루에 걸어 놓았다. 이 문 부근의 개경(開京)의 승경지(勝景地)인 자하동과 비슷하다고 하여 자하문이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불렸다. (보물 제 1881호)
즉 창의문과 연결되는 자하문로는 고려의 개경과 남경을 연결하는 도로로서, 고려시대에는 이 도로의 끝에 궁성으로 들어가는 다리 금청교를 놓았던 것이니, 아마도 충숙왕 이전에도 금청교에 앞서는 다른 다리가 있었을 것이다. 남경은 고려 숙종(재위 1095~1105년) 때 건설됐고, 그때도 인왕산 옥류동과 백운동에서 발원한 옥류동천과 백운동천은 남경의 도성 앞으로 흘렀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고려시대에는 자하문 고개를 넘으면 (물론 그때는 문이 없었다) 청풍계 계곡을 만나고 그 물줄기 옆으로 난 길을 따라오면 남경에 이르렀던 것인데, 마지막으로 다리를 건너면 도성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듯 유동인구가 많았던 곳이니 마을 또한 형성되었을 터, <태조실록> 태조 5년 2월 기사에는 금천교(=금청교) 일대에서 화재가 발생해 민가 80여 호가 불탔다는 내용이 보인다. 당시 이 근방에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는 얘기다.
조선시대에는 그 금청교와 청풍계가 모두 오롯했으련만 지금은 그것들이 모두 다 사라지고 종로구 청운동 54번지 일대 주택가 속에 '백세청풍(百歲淸風)'의 글씨를 새긴 바위 하나만 겨우 살아 남았다. 그저 세월이 무상하다는 것 외에는 할 말이 없다.
▼ 개성 선죽교(善竹橋)
919년 태조 왕건이 개경을 정비하며 세운 다리이다. 1392년 고려왕조의 마지막 버팀목이었던 정몽주가 이방원이 보낸 자객에게 철퇴를 맞아 숨진 곳으로 유명한데, 1780년(정조 4) 정몽주의 후손이 교각 보존을 위해 돌난간을 설치해 통행을 막고 바로 옆에 새 다리를 놓았다. 아래 사진은 2015년 7차 만월대 발굴조사 개성 답사팀이 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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