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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이 서린 수표교
    서울의 다리 2022. 2. 26. 23:54

     

    청계천 수표교(水標橋)는 1406년(태종 6)에 처음 세워진 다리로 청계천 7개의 다리 중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는 유일하다. 하지만 지금의 다리가 태종 때의 것은 아니니, 창건 당시 나무로 만들어져 마전(馬廛, 우마에 관련된 물품을 파는 시장) 부근에 걸렸던 마전교(馬廛橋)가 돌다리로 대체된 것이 곧 수표교이다.

     

     

    수표교

     

    수표교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짐작으로는 1441년(세종 23) 청계천 수위 측정을 위해 세운 수표(水標) 이전, 혹은 그와 거의 동시에 만들어졌을 것이라 여겨진다. 수표교라는 다리 이름이 바로 그 수표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수표교의 수표는 지금 청량리 세종대왕기념관에 옮겨져 보물 제838호로 보존돼 있는데, 수표교를 살펴보기 전, 다리 이름이 연유된 그 수표부터 들여다보자. (※ 지금의 수표는 영조 때 만들어진 것이다) 

     

     

    수표교의 수표 / 수표는 높이 약 3m, 너비 약 20㎝의 화강석 돌기둥으로, 1척에서 10척까지 눈금을 새겼고, 뒷면의 3척, 6척, 9척 되는 눈금 위에 ○표를 파서 수량 측정의 표지로 삼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수표교에 척(尺)과 촌(寸)의 수를 새겨 강우량을 측정하게 했다"고 돼 있는 바, 척만 새겨 있는 지금의 것과는 다름을 알 수 있다. 세종 때의 것이 훨씬 정밀했다는 얘기다.

     

    수표의 역할은 측우기(測雨器)와 비슷했다. 언뜻 별것 아닌 듯 보이는 세종 때의 측우기는 의외로 세계 최초의 것이며 획기적인 발명품이라고 한다. 기록된 빗물의 양은 농사의 시기 및 장마 · 가뭄 등을 예측할 수 있는 중요 지표가 되는 바, 세종대왕은 측우기와 수표 등의 기구를 만들어 백성들의 농사에 도움을 주고자 했던 것이었다. 즉 1441년의 수표는 1442년의 측우기, 1443년 창제한 훈민정음 등과 더불어 세종대왕의 지극한 애민정신을 엿볼 수 있는 기구라 할 수 있는 것이다.

     

    * 참고로 세종 때 측우기는 영국 건축가이자 천문학자인 크리스토퍼 렌(Christopher Wren, 1632~1723)이 1662년 서양 최초로 제작한 측우기(Rain gauge)에 220년 앞선다.  

     

     

    크리스토퍼 렌의 측우기
    세종 때의 측우기는 전하지 않고 영조 46년에 제작된 '대구 경상감영 측우대' 등이 보물로 지정돼 전한다.
    창덕궁 측우기
    구한말의 수표교
    일제 강점기 때의 수표교와 수표
    1950년대의 수표교와 수표

     

    앞서 말한 광통교와 달리 수표교는 옛 사진이 여러 장 남아 있다. 구한말 조선에 왔던 선교사들이나 일제시대의 왜인들이나 하찮아 보이는 개천 물줄기에 걸린 뜻밖의 미려한 다리에 주목했다는 얘기다. 그것이 이색적이긴 했을 터, 사실 수표교는 청계천에는 어울리지 않는 고급진 다리로, 청판 양 옆으로 긴 석제 난간이 설치된 것 자체가 궁중에서나 볼 수 있는 양식이었다. 말하자면 세종대왕은 궁중의 상류 문화를 서민에게도 선사하고 싶었던 것이니, 청계천 수표교는 그의 애민정신이 서린 또 하나의 유물이라 할 수 있겠다.

     

     

    조선시대 평민이 귀족이 되는 단 하루 / 남자는 사모관대에 말을 탈 수 있었고, 여자는 원삼 족두리에 가마가 허용되었다.
    세종대왕은 백성들에게 귀족의 삶을 365일 누리게 했다.

     

    청계천에 이와 같은 다리는 그 전에는 물론이고 이후로도 없다가 이명박 시장 시절 청계천이 복원되며 2004년 옛 무교(武橋, 무교동이 유래된) 자리에 모전교(毛廛橋)라는 이름으로서 수표교를 능가하는 다리가 생겨났다. 하지만 예전에는 이와 같은 다리가 없었다. 지금의 청계천 첫 다리 모전교는 경복궁 영제교를 모방한 것으로서, 그야말로 궁중에 있어야 할 다리가, 난간과 청판은 영제교의 모습으로, 교각은 초현대식으로 부활되며 고금(古今)에 없는 퓨전 브릿지가 만들어졌다. 광통교를 이상하게 복원시킨 삼성건설과 대림산업의 또 하나의 작품이다. (이것도 혹시 서민에게 시혜를....?)

     

     

    모전교
    모전교 교각
    장충단 공원의 수표교

     

    지금 청계천 수표교는 장충단 공원에 놓여 있다. 1958∼1961년에 걸쳐 청계천이 복개될 때 해체되어 1965년 장충단 공원 내의 하천(옛 남소동천)에 놓였으나 청계천이 복원된 후에도 사이즈가 맞지 않아 되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장충단 공원의 수표교를 원래의 수표교 자리인 청계2가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생겨났고, 이를 위한 서울시의 기술용역이 진행된 적이 있다. 결론은 다음 같았다.

     

    "현 장충단 공원의 수표교는 교각의 노후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축물에 초음파 등을 통과시켜 결함 정도를 판단하는 비파괴 검사를 한 결과 2005년에 비해 교각 상태가 절반가량 나빠졌다. 이런 상태에서 해체 복원해 가져올 경우 또 다른 훼손이 우려될 뿐더러 외관의 변형 또한 불가피하다. 아울러 수표교 이전에 따른 대규모 공사와 장교구역 12지구 등 주변 지역에 대한 보상 등으로 800억 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이다."

     

    그래서 청계천 수표교는 나무 다리로서 어정쩡하게 복원된 채 지금껏 오고 있는데, 아마도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남아 있을 것 같다.   

     

     

    청계천2가의 나무 수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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