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통명전의 보다리
    서울의 다리 2022. 2. 19. 05:19

     

    단언하건대 창경궁 통명전 옆 돌로 만든 보다리는 서울에서 가장 아름답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는 아직 생각 안 해봤는데 선암사 승선교 정도....? (물론 주관적인 생각이다)  통명전 옆 보다리는 정식 명칭은 아니고 '들보가 기둥 위에 놓인 다리'라는 뜻으로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결구 형식의 돌다리이다. 통명전 옆의 지당(池塘, 연못)이 너무 작아 이름이 없는 듯하데, 지당 자체도 이름이 없다.

     

     

    통명전 옆 보다리
    선암사 승선교

     

    보다리가 위치해 있는 창경궁 통명전은 궁궐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왕의 침전이다. 역할이 그러한지라 당연히 창경궁 건립 첫 해인 성종 15년(1484)에 지어졌으나 임진왜란 등의 전란과 화재로 여러 번 불타고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순조 34년의 건물이다. 하지만 보다리는 성종조 창건 때 만들어졌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북쪽 언덕에서 자연적으로 솟아나는 샘물로부터 화강암 홈돌의 수로를 만들어 지당의 물의 조성했으며, 지당 위에 길이 5.94m, 폭 2.56m의 간결한 돌다리를 동서로 설치했다.

     

    그 다리가 아름다운 것은 바로 그 지당 때문이니, 화강암 장대석을 쌓아 만든 남북 길이 12.8m, 동서 길이 5.2m의 장방형 연못 위에 돌난간을 정교하게 조각하여 둘렀으며, 다리를 받치는 기둥과 들보, 그리고 수석을 받치는 돌받침 2기를 정교하게 다듬어 설치했다. 샘물의 물은 이 장방형 지당에 낙수(落水)되게 만들었던 바, 다리를 걷는 주인공은 작은 폭포 떨어지는 연못 위를 걷는 신선이 되는 것이다.

     

     

    창경궁 통명전 / 왕의 침실인 까닭에 용마루가 설치되지 않았으며 권위를 상징하는 넒다란 월대 기단를 깔았다. 월대가 있는 창경궁의 유일한 전각이다.
    창경궁 통명전
    지당 위의 돌다리
    지당 난간과 돌다리
    지당

     

    창경궁의 원래 이름은 수강궁으로 1418년 세종이 즉위하면서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해 지은 별궁이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남자보다는 여자가 오래 살았던 바, 성종조에 이르러서는 대비가 3명이나 되었다. 즉 대왕대비인 세조의 비 정희왕후 윤씨, 성종의 생모 소혜왕후 한씨, 예종의 계비 안순왕후 한씨로서, 이에 이들을 모시기 위해 수강궁을 확장해 새로운 궁궐을 만드니 이것이 곧 창경궁이다.

     

    이중 소혜왕후 한씨가 가장 오래 살았는데 이분이 바로 유명한 인수대비로, 종국에는 손주 연산군에 의해 욕을 보게 된다. 연산군의 생모인 성종비 윤씨(폐비윤씨)를 폐서인 시키고 사사(賜死)한 까닭이니 이 일로 인해 창경궁에는 한바탕 피바람이 일게 된다. 이후로도 창경궁은 여러 가지 비극의 무대가 되었다가 영조 때 사도세자가 제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는 조선왕조 최대의 참극이 벌어진다. 그 장소인 문정전 뜰이 옥천교 너머에 있다. 

     

     

    옥천교 / 창경궁의 금천교로 성종 15년에 세워졌다.
    옥천교와 명정문
    참극이 벌어진 문정전 앞 뜰 / 사도세자는 이곳에서 뒤주에 들어가게 되고 며칠 후 선인문 앞으로 옮겨져 죽는다.

    댓글

아하스페르츠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