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의 나라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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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왕의 순수비에는 무엇이 쓰여 있나?수수께끼의 나라 신라 2020. 8. 25. 06:19
앞서 '진흥왕순수비 개관'에서 말했지만 진흥왕순수비에 적혀 있는 그의 직함은 태왕(太王), 즉 황제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순수비가 세워진 568년은 진흥왕의 재위 29년, 나이 36세 되던 해로, 그는 그때 연호를 개국(開國)에서 태창(太昌)으로 바꾼다. '(나라가) '크게 번창한다'는 뜻으로서 태왕(太王)'으로서의 자신감의 피력이었다. 태왕이란 동방에서의 '황제'의 개념으로, 만주 집안(集安)의 광대토태왕비에서 그 연혁을 찾을 수 있다. 이에 진흥왕의 척경 사업은 고구려 광개토대왕에 비견되기도 한다. 지금껏 별로 주목을 못받았지만 이 태왕의 호칭은 황초령비와 마운령비에 '태창 원년'의 연호와 함께 뚜렷이 기록돼 있다. 북한산비 또한 마찬가지로 태왕의 호칭이 분명하나 다만 연호가 새겨진 부분의 글씨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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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순수비 개관수수께끼의 나라 신라 2020. 8. 23. 23:59
신라 24대 임금 진흥왕(眞興王, 재위 540-576) 김심맥부(金深麥夫)는 법흥왕의 동생이자 지증왕의 차남인 갈문왕(葛文王) 김입종(金立宗)의 아들로 태어났다.(법흥왕은 진흥왕에게 큰아버지이자 외조부가 된다) 진흥왕 본기에 따르면 540년 7세의 나이로 법흥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으며 김입종의 비(妃)가 태후로서 섭정을 했다. 진흥왕은 18세가 되는 551년 친정(親政)으로 전환하며 법흥왕 시절부터 사용해온 건원(建元)이라 연호를 개국(開國)으로 바꾸었다. 신라라는 나라를 새롭게 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그는 곧 적극적인 대외정복사업을 전개하였던 바, 남한강 유역인 죽령(竹嶺) 이북 10개 군을 고구려로부터 빼앗고 한강 중류지역으로 진출하였다. 이후 백제 성왕과 연합해 한강유역을 공격하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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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총은 진평왕의 무덤이다수수께끼의 나라 신라 2020. 8. 20. 00:49
진평왕의 무덤이 서봉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그 이유 서문에 스스로 "책의 문장과 내용이 머리말처럼 거칠고 성글며 장황하다"고 언급하더니 과연 그러했다. 국립안동대학교 민속학과 임재해 교수가 쓴 라는 책에 대한 이야기다. 임재해 교수는 2008년 신라 금관의 기원에 관한 책을 펴냈는데 그것이 무려 700쪽이나 된다. 뒤늦게 그 책을 접하였지만 '거칠고 성글며 장황한' 매력에 빠져 내리읽었다. 그와 같은 매력은 책을 펴는 순간 곧바로 느끼게 되니 속 표지 다음, 아무런 사설 없이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금관과 함께 아래의 설명이 뒤따른다. 신라 금관 가운데 가장 화려한 것으로 '곧은 줄기 굽은 가지' 나무 세움장식 3개와 '굽은 줄기 곧은 가지' 나무 세움장식 2개로 구성되어 있다. 김알지 신화의 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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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무왕릉을 찾아서수수께끼의 나라 신라 2020. 8. 7. 20:37
장보고와 신무왕에 대해 쓴 김에 신무왕의 무덤을 한번 찾아보고자 한다. 물론 신무왕릉이라고 전승되는 무덤이 없는 것은 아니니 경주시 동남쪽 동방동에 있는 조금 작은 능묘가 그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신무왕릉이라 불려질 이유는 박약한 바, 근거라고는 에 '능은 제형산(弟兄山) 서북에 있다'고 언급된 것뿐이다. 현재 경주에서 제형산이라 불려지는 뫼는 없으므로 형제봉 서쪽의 옛 무덤이 그곳인가 하여 누군가가 비정한 것이다. 그래서 이 무덤의 안내문에는 아래과 같은 내용을 써 놓았다. 이곳이 신문왕의 무덤일 가능성을 문화재 당국에서도 믿지 않는다는 소리다.(지금 경주에 있는 26개 왕릉 중에서 확실하다고 할 수 있는 능묘는 선덕여왕릉, 태종무열왕릉, 흥덕왕릉뿐이고, 좀 더 넓히자면 문무왕릉, 성덕왕릉, 원성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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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와 핼리혜성수수께끼의 나라 신라 2020. 8. 5. 07:18
76.3년 주기의 핼리 혜성이 근자에 출현했던 건 지난 1986년 4월로, 나는 운 좋게 그것을 볼 수 있었지만 기대와 달리 김이 팍 샜다. 평생 한번 보는 것이니 만큼 적어도 아래의 광경을 상상했으나 소문과는 달리 밝기가 떨어졌고(2.1 등급) 지구에서(특히 북반구에서) 멀리 날아 아쉬웠다. 역사상 최악의 관측 조건이었다고 한다. 우~ C;; 다음은 출현은 2061년인데, 한국에서 가장 확실히 관찰될 수 있는 날짜는 2061년 7일 28일로, 0.3등급의 매우 밝은 밝기를 자랑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것을 볼 수 없는 나로서는 괜히 억울한 기분이다. I'm pissed off! 핼리 혜성이 유명한 것은 그것이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역동적이며 가장 밝은 유일한 천체이기 때문이다. 더러 더 밝은 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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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와 신라 하대 왕위쟁탈전수수께끼의 나라 신라 2020. 8. 2. 17:22
장보고는 우린 귀에 익숙한 인물이기는 하나 그의 동상을 보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멀리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해 전, 이 장보고 상(像)을 한 달도 안 된 기간에 우연히, 그것도 각각 다른 곳에서 보게 되어 신기해 했던 기억이 있다. 첫번 째는 완도에서 제주도 행 화물차량의 계측을 위해 계측소를 찾다가 우연히 보게 된 동상이었고, 두번 째는 제주도 서귀포에서 법화사라는 고찰(古刹)을 찾았다가 그 입구에서 만나게 된 석상이었다. 옛 청해진 터에 세워진 장보고 동상 법화사는 원나라가 제주도를 직접 통치하던 때인 고려 원종 10년(1269년) 대규모 중창불사를 벌였던 기록이 남아 있는 절로 한창 때는 노비만도 382명이었다는 사찰이다. 지금도 절 뒤편에서는 옛 사지(寺址)에서 발굴된 건물터와 초석,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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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 장육존상은 어떻게 생겼었을까?수수께끼의 나라 신라 2020. 5. 23. 19:58
『신라 최대 사찰 황룡사의 장육존상은 어떻게 생겼었을까?』 우리 글 문법에서 대과거가 있느냐 없느냐, 쓰는 게 맞느냐 틀리느냐의 문제가 채 정리되지 않은 줄 안다. 하지만 '쓰지 말자'는 쪽으로 기운 것 같고, 또 쓰면 '문장이 졸렬해진다'는 쪽으로 몰아붙이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대과거를 쓰지 않을 수 없겠으니 황룡사 장육존상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걸 마치 현재 있는 것처럼 '황룡사 장육존상은 어떻게 생겼을까?'로 쓸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미 오래전에 사라져 버린 불상이기에 '생겼었을까'가 시제에 더 어울린다는 얘기다. 그런데 반전이라면 반전이랄까, 황룡사 9층탑과 더불어 황룡사와 신라를 대표했던 그 불상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오래 존속했던 것 같다. 황룡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