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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초 최고의 미(美)를 뽐내는 파주 인천이씨의 묘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5. 5. 3. 18:03

     
    왕릉을 제외하고 이제껏 돌아다니면서 본 유택(幽宅) 중에 가장 단아하고 아름다운 무덤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파주 교하면 파평윤씨 정정공파(貞靖公派) 묘역에 있는 인천이씨의 묘를 들 것 같다. 이름 없이 '인천이씨 묘'라 불리는 것은 여성의 무덤이기 때문일 터인데, 그 위에는 남편 윤번(尹璠, 1384~1448)의 묘가 있다. 그런데 인천이씨의 묘는 남편인 윤번의 묘에 비해 이례적으로 크고 석물도 다양하다. 조선시대에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파주 교하면 인천이씨의 묘 / 뒤로 남편 윤번의 묘가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부부의 신원부터 살펴보아야 하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윤번은 세조의 국구(장인)이다. 즉 세조의 부인인 정희왕후의 아버지가 윤번인 것이다. 아울러 덕종과 예종의 외할아버지이기도 하다. 화려한 족보에 비해 이력은 그리 화려하지 못하니 신천 현감, 군기시판관(軍器寺判官) 등을 거쳐 1440년(세종 22) 우참찬·공조판서에 오른 것이 최고직이다. 공조판서는 요즘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 해당하니 결코 낮은 직위라 할 수 없지만 삼정승에는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고 파평부원군(坡平府院君)에 추봉되었다. 시호는 정정(貞靖)으로, 이곳 묘역이 파평윤씨 정정공파 묘역이라 불리는 것도 그의 시호로부터 기인했다. 반면 부인 인천이씨는 정1품이나 종1품인 문무관 아내의 봉작인 정경부인에서 →순화군대부인 →흥녕부대부인으로 사가(私家)의 여인으로서는 오를 수 있는 자리까지 올랐다.
     
    언뜻 수수께끼 같지만 연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윤번은 수양대군이 왕(세조)으로 등극하기 전에 죽었고 인천이씨는 수양대군이 왕이 된 1456년(세조2) 10월에 죽었기 때문이다. 까닭에 인천이씨는 왕비인 정희왕후의 어머니이자 국왕의 장모로  예장될 수 있었으니 무덤도 그에 걸맞게 꾸며지게 되었던 것이다.
     
    묘역은 상단에 윤번 묘역이 있고 하단에 부인 인천이씨 묘역이 있다. 아마도 수양대군이 왕이 되지 않았다면 쌍분이나 합장분이 되었을 법하나 상하로 따로 조성됐고, 봉분도 일반 사대부 묘보다 훨씬 크다. 물론 윤번의 묘도 작지 않으니 방형분 봉분 1면의 길이는 가로 400.4cm, 세로 547cm이고 장대석을 이용한 방형호석(네모난 형태의 호석)을 둘렀다. 석물은 묘표 1기, 장명등 1기, 문석인 2기에 계체석이 3단으로 구분 되어 있다.

     

     

    윤번 묘
    윤번 묘의 장명등 / 높이 135cm
    윤번 묘의 묘표

     

    부인 인천이씨의 묘 역시 장대석을 두른 방형호석의 봉토분이나 가로 497cm, 세로 690cm로 윤번의 묘보다 더 크고, 긴 장대석을 2단으로 조성해 훨씬 번듯해 보인다. 석물은 묘표 1기, 상석 1기, 장명등 1기, 문인석 2기, 계체석이 3단인데, 장명등은 균형미와 규모가 조선 전기의 묘 가운데 단연 최고이며, 남편 윤번의 것보다도 1m 이상 크다.  
     
    3단의 계체석 역시 이례적인 것으로, 여성의 무덤에서 상계(上階)·중계(中階)·하계(下階)의 3단 계체석이 조성된 예는 거의 본 적이 없는 듯하다. 전문 석공의 말로는 인천이씨의 묘에 사용된 석물 또한 양질의 것이라고 한다. 석물 재료의 선택에 있어서부터 최고의 돌을 골랐다는 얘기이다.  

     

     

    인천이씨 묘
    곡면 처리한 봉분 윗 장대석
    장명등 / 높이 237cm로 사가(私家)의 것으로는 조선 전기 묘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다.
    대리석 묘표
    문석인
    인천이씨 묘 앞쪽에 놓인 윤번 신도비 / 전체 높이 약 3.8m


    인천이씨의 묘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봉분 전면 호석과 상석 사이에서 발견된 묘지석(墓誌石)이다. 이 묘지석은 두껑돌이 덮힌 사각형 석함 속에 순백자 지석 2장과 청화백자 지석 4장이 들어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청화백자일 뿐더러 묘지(墓誌)에 쓰여진 경태(景泰) 7년(1456년) 등의 기록이 편년의 획기적 자료로 인정되어 2012년 석함과 함께 보물(제1768호)로 지정되었다.  
     

     

    인천이씨 흥녕부대부인 묘지석 / 가로 72cm, 세로 54cm, 높이 48cm의 크기이다
    묘지석이 들어 있던 석함 / 묘지석과 일괄해 보물로 지정됐다.

     

    이 묘지석은 세조가 장모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직접 명을 내려 제작한 것으로, 총 6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묘지석은 지역박물관에 가면 그 지방에서 출토된 것을 볼 수 있는데, 특히 용인 경기도박물관에는 다양한 묘지석이 전시돼 있다. 인천이씨 묘지석은 조선 세조 시기부터 청화백자가 만들어졌음을 증명하는 중요한 실물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다. (크기도 백자 묘지석 중 가장 커서 후대의 것들에 비해 세로가 10cm 이상 크다)

     

    나아가 이 묘지석은 백자 묘지석의 초기 제작 양상과 매장법 등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 줌은 물론, 조선 전기 생활사를 들여다 볼 수 있는 학술적·미술적·역사적 가치가 매우 큰 유물로 평가받고 있다. 인천이씨 묘지석은 현재 고려대학교박물관에 전시 중인데, 잘 정리된 아래와 같은 자료를 배포한 적이 있다.  

     

     

    고려대학교박물관의 안내문

     

    정정공파의 묘역은 윤번과 인천이씨 묘 외에도 약 600여 기가 조성되어 있는 큰 묘역으로 그중 96기가 경기도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윤번과 인천이씨 묘는 당연히 들어갔고 중종의 비 장경왕후 윤씨의 부친 윤여필(尹汝弼, 1466~1555), 문정왕후 윤씨의 부친 윤지임(尹之任, ?~1534) 묘 등도 당연히 포함되었는데, 이중  정승 묘가 7기, 판서 묘가 8기, 참판 묘가 30기로 무척이나  화려하다.  

     

    참극도 있었으니 윤지임 부부의 쌍분은  2008년 처참히 도굴되었다. 당대의 권력가 문정왕후와 윤원형 남매의 부모 무덤이니 값어치 있는 부장품이 묻혀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인데, 실제로 묘지석과 양질의 자기가 도굴된 것으로 판명됐다.  

     

     

    파산부원군 윤지임 부부의 쌍분
    후경
    신도비 / 전체높이 290cm, 폭 105cm이다. 최근 급 마모된 듯 두전 외 글씨가 거의 사라졌다. 보호가 시급해보인다.
    도굴 당시의 사진 / 한겨레 DB

     

    ▼ 기타 주목해 살펴본 묘

    파원부원군 윤여필 묘 / 중종 비 장경왕후 윤씨의 부친이다.
    윤여필 묘표
    파릉군 윤보의 묘 / 성종 때 영의정을 지내 인물로서, 실록의 부정적인 기록으로 인해 살펴보았다.
    원한이 많았던 듯 누군가 묘표의 이름을 쪼아 뭉갰다. / <성종실록>의 사신(使臣)이 논평하기를, "윤보는 윤사윤의 아들인데, 욕심이 많고 비루하며 용렬하고 어리석었다"고 폄훼했다.
    윤여해와 부인 광양이씨의 묘
    윤여해 신도비 / 윤여해는 윤여필의 동생이다. 충청병마절도사 등을 지낸 윤여해는 소윤(小尹) 윤원형 일파가 대윤 윤임 일파를 제거하는 '을사사화' 때 윤원형 편에 섰다. 신도비에는 '을사사화' 후 사람들이 그의 선견(先見)에 감복하였는 내용이 실려 있는데, 그것이 과연 감복할 일이었는 지는 모르겠다.
    윤원형의 묘 / 말이 필요 없는 희대의 간신이다. 누이인 문정왕후의 비호 아래 아래 온갖 전횡을 일삼았다. 반대파에 대한 피의 숙청을 벌인 '을사사화'가 대표적이다. 뒤에 보이는 무덤은 애첩인 정난정의 무덤이다.
    정난정의 무덤 / 앞면은 '초계(草溪) 정난정의 묘'라고 고상하게 표기됐지만 뒷면에는 윤형원의 첩실이라고 밝혀놓았다.
    윤원형 묘의 문석인
    갑자기 오래된 드라마 <여인천하>와
    2022년 뇌출혈로 급서한 강수연 배우가 생각난다.
    윤욱의 묘 / 윤원형의 할아버지로 윤원형 묘 근방에 있다.
    윤욱의 묘명비 / 왕실에 음식물을 공급하는 내자시의 판관 등을 역임하다 27세의 나이로 졸했다. 역사의 족적은 미미하고 비문도 희미하나 구름문양의 머릿돌과 안상무늬의 받침돌이 인상적이라 눈이 간다.
    묘역 입구의 교하향사 / 2007년 파평윤씨 문중에서 세운 제향시설이다.
    묘역에서 만날 수 있는 고인돌
    당하리 6호 고인돌 안내문 / 과거 이 근방에는 100여 기가 넘는 고인돌이 있었으나 현재는 20여 기가 남아 있으며, 그 중 상태가 양호한 6기가 경기도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파주로의 파평윤씨 정정공파 묘역 표지판

    * 인천이씨에 관해서는 아랫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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