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와 UFO

민수기 속의 전염병과 여호와

기백김 2020. 8. 9. 06:47

 

앞서 민수기를 다루며 세 가지를 주목했다. 첫째는 성막 속에서 행해지는 지극히 무속적(巫俗的)인 행동, 즉 여호와의 장난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샤머니즘, 둘째는 배고픔에 불만이 고조된 백성들을 위해 여호와가 메추라기를 몰아 그들을 장막에 떨어뜨린 수고와 그것이 UFO의 바람으로부터 비롯됐다는 것(11~12장), 셋째는 여호와가 엄청난 대식가라는 점이다(15장). 앞서 말은 안 했지만 게다가 여호와는 입맛이 매우 까다롭기도 하니, 번제물에 꼭 다음과 같은 전제가 붙는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는 내가 주어 살게 할 땅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화제 번제 서원을 갚는 제사나 낙헌제나 정한 절기제에 소나 양을 여호와께 향기롭게 드릴 때에 그러한 헌물을 드리는 자는 고운 가루 십분의 일에 기름 사분의 일 을 섞어 여호와께 소제로 드릴 것이며

 

번제나 다른 제사로 드리는 제물이 어린 양이면 전제로 포도주 사분의 일 을 준비할 것이요, 숫양이면 소제로 고운 가루 십분의 이에 기름 삼분의 일 을 섞어 준비하고 전제로 포도주 삼분의 일 을 드려 여호와 앞에 향기롭게 할 것이요, 번제로나 서원을 갚는 제사로나 화목제로 수송아지를 예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에는 소제로 고운 가루 십분의 삼 에바에 기름 반 을 섞어 그 수송아지와 함께 드리고, 전제로 포도주  을 드려 여호와 앞에 향기로운 화제를 삼을지니라.

 

수송아지나 숫양이나 어린 숫양이나 어린 염소에는 그 마리 수마다 위와 같이 행하되 너희가 준비하는 수효를 따라 각기 수효에 맞게 하라. 누구든지 본토 소생이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를 드릴 때에는 이 법대로 할 것이요, 너희 중에 거류하는 타국인이나 너희 중에 대대로 있는 자나 누구든지 여호와께 향기로운 화제를 드릴 때에는 너희가 하는 대로 그도 그리할 것이라.(민수기 15:1-14)

 

이와 같은 까다로움을 보자면 목회자들이 입맛대로 요구하는 뻔뻔스러움은 아무 것도 아니다. 보고 배운 게 이런 거니 당연한 거 아니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먹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구색 다양한 헌금을 말함이다) 그런데 이상 12장 과 15장 사이에는 더욱 놀랄만한 두 개의 사건이 숨어 있다. 오늘은 그걸 말하려 하는데, 먼저 키 워드를 드리자면 '네피림'과 '전염병'이다.

 

성서의 네피림은 요즘 말로 가성비 갑의 단어다. 성서에 단 두 번(창세기 6:4과 민수기 13:33) 등장했음에도 인류 역사상 꾸준히 주목을 받아왔고 지금도 인터넷에는여러 종의 네피림이 넘쳐난다. 이에 본인은 오히려 인터넷에 떠도는 그것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고 다니기 바쁘니, 본 카테고리에서도 몇 차례나 그 허구성을 언급한 바 있다. 즉  

 

"UFO를 타고 날아 온 하나님의 아들들"

"대홍수와 노아에 관한 진실 (I)"

"에녹서 심층 해부 (II)"

 

등에서 인데, 그럴 때 대개 인터넷 상의 아래와 같은 사진들을 가져온다. 하지만 이러한 거인들은 한마디로 말이 안 되는 것들로 이는 성서의 문맥을 대강 훑어보아도 알 수 있다. 

 

 

<사진 1>

2007년 10월 <내셔널지오그래픽> 표지 사진인데 당연히 합성이다. 이 정도 덩치면 지구상 먹이사슬 안에 존재할 수가 없다.(해골 빵꾸난 데도 한 사람이 들어가 있다. ^^)

 

<사진 2>

 

<사진 3>

<사진 2>와 <사진 3>도 물론 합성이지만 <사진 3>의 경우는 그래도 좀 양심적(?)이다.

 

 

(히브리인 무리 중에서의 한 정찰대가)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가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수기 15:1-14)

 

앞서의 민수기 해설을 읽은 분들은 이해가 더 쉽겠지만, <사진 3> 정도의 거인족이면 어떨지 모르겠으나 <사진 1>과 <사진 2> 속의 거인은 절대 존재할 수가 없다. 이집트를 탈출한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향해 갈 때 그들은 과거 이집트에 있을 때 먹던 고기와 떡을 그리워하고,(출애급기 16:3) 또 그 시절에 먹은 생선과 야채를 떠올릴 정도로 배가 고팠다.(민수기 11:5) 그만큼 광야는 산물이 제한적인 곳이었는데, 그러한 곳에서 정찰대가 본 것이 자신들이 메뚜기 정도로 여겨질 만큼 체격이 장대한 자들이었다는 것을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심리적으로 볼 때 상대방에 겁을 먹으면 그 상대는 커 보인다. 지치고 허기져 있는 마당의 정탐꾼의 눈에는 생전 처음보는 이민족이 상대적으로 커 보였을 수도 있을 것이고, 또한 (젖과 꿀의 땅을 기대했으나) 이집트를 벗어난 후 지속되는 기아 속의 행군에 열받은 그들이 자신들이 정탐한 땅을 그야말로 악평(bad report/NIV 해석)하고 과장하여 말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말이 악평이요 과장이라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벗어나 가나안에 이를 때까지 그들 거인족이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증명된다.

 

다만 한가지, 그때까지 그들 이스라엘인의 뇌리 속에 외계인과 지구인 여자 사이에서 탄생한 네피림(창세기 6:4)의 후손인 아낙 자손들에 대한 기억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놀랍다.(창세기 6장 네피림 이후 곧바로 하나님의 대홍수 심판이 등장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대홍수는 네피림이라는 잡종강세의 신인류를 멸망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특단의 조치였다. 고대의 용사로서 명성 있던 새로운 파워엘리트들을 쓸어버리기 위함이었으니 공격목표가 된 네피림들은 그때 모두 전멸되었다. 다만 안타깝게도 그 대홍수에 휩쓸려 애꿎은 지상의 인간들이 희생된다. ☞ '대홍수와 노아에 관한 진실 III'/'UFO를 타고 왔던 하나님의 아들들은 그후 어떻게 되었나?')

 

억지로 설명하자면 거인족인 이들 아낙 자손이 전염병에 의해 멸절되었을 수는 있다. 네피림의 후손과 같은 거인족들을 보았다는 정찰대의 말에 이스라엘 회중은 크게 뒤집혀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개중에는 이집트로 되돌아가자는 소리가 나오고 또 실제로 지휘관을 선발해 이집트로 돌아가려는 행동까지 보인다. 그러자 이에 찬동하는 무리와 반대하는 무리가 서로 대립하고, 이집트로 되돌아가기를 반대하는 여호수아와 같은 자를 돌로 쳐죽이려 하는 순간 여호와가 나타나 이들의 싸움을 말린다. 그러면서 이르기를, 자신이 전염병으로 그들(거인족)을 쳐서 멸하고 너희들에게 그들보다 더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만들겠다 호언한다.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네게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민수기 13~14장)


앞서도 말했지만 당시의 광야, 즉 시나이 반도에 거인족이 살았다고 가정하는 것은 무리다. 무엇보다 먹고 살 것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민족에 겁을 먹은 이스라엘 정찰대는 그렇듯 과장되게 설명했고 이에 이스라엘 민족은 크게 동요한다. 그러자 여호와가 나타나 재차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노를 표한 후 자신이 그 이민족에게 전염병을 퍼뜨려 멸하겠노라고 말한다.

 

그들 이민족에게 정말로 전염병을 퍼뜨렸는지 어쨌는지는 더 이상의 설명이 없어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들 거인족들은 다시는 성서에 출현하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자신들이 정탐한 땅에 대해 악평하여 회중을 혼란스럽게 한 자들은 모두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다는 사실이다.(민수기 14:36-37) 다만 정찰대에는 속했으나 이집트로 돌아가는 데 반대한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구명된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때 여호와를 열뻗치게 한 죄로 엄청난 벌을 받게 되는 바, 정찰대가 정찰한 날짜인 40일의 하루를 1년으로 상정해 40년을 광야에서 방랑해야 되는 벌이 내려진다.(민수기 14:33-35) 늘 얘기하지만 편협한 여호와에게 공짜 점심은 없다. 그래서 나는 늘 그것이 못마땅한데 좁은 사나이 반도에서의 40년 방랑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는 자치하고서라도 이민족에게는 함부로 전염병을 퍼뜨려 죽이고 자기 민족에게도 자신의 뜻을 거역하는 자는 어김없이 재앙을 내려 죽이는 여호와가 그저 시시껍절하게 여겨질 뿐이다.(이런 존재가 무슨 신인가?)

 

 

남한 땅과 광야의 크기 비교

이 좁은 땅을 40년 동안 헤멨다고? 이게 말이 되니? 40년이면 지구를 한바퀴 돌아도 돌겠다.('엑소더스,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I')

 

 

더불어 말하고 싶은 것은 성서 속에서 여호와가 즐겨 내리는 재앙의 방편인 전염병에 관한 것이다. 출애급기 12장을 필두로 하여 여호와가 언급하거나 퍼뜨린 전염병은 실로 성서 곳곳에 출현하는데,(민수기 14:22/사무엘하 24:13/시편 91:6/예레미야 21:6-7/에스겔 38:22/아모스 4:10/누가복음 21:11/사도행전 24:5) 다음 편에서는 이와 같은 전염병에 대해 집중적으로 고찰해보기로 하겠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이자면, 나는 이와 같은 내용을 보면 버트란트 러셀이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Why I Am Not a Christian)>에서 언급한, "종교는 인간의 두려움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말이 왜 명언이 될 수밖에 없었는가, 새삼 공감한다. 아울러, 여호와는 전염병을 퍼뜨리기를 즐겨하지만 정작 지금 세상에 퍼져 있는 코로나 19라는 전염병에는 속수무책일 뿐더러 감염의 매개체가 되고 있는 교회에 대해서도 아무런 징벌도 내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의문스러워진다.(2차 감염으로 다른 사람에게도 피해를 주고 있음에도) 

 

오히려 어느 유명 교회 목사님은 "코로나는 하나님의 징벌"이라는 설교를 해 사회적 파장을 불러오기도 했는데, 아무튼 그 목사는 자신의 발언을 수습하느라 애 좀 먹었다. 혀를 찰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종교는 인간의 두려움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그 두려움을 가장 조장하는 종교는 역시 기독교다.

 

 

~ 러셀 명언의 전문

"생각컨데 종교는 인간의 두려움에 기반을 두고 있다. 종교는 부분적으로는 잘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고, 당신의 곤경과 잘못을 싸고돌아줄 든든한 큰 형님의 존재를 바라는 소망이다. 나은 세상은 지식, 온정, 용기가 필요하지, 과거에 대한 애석한 동경이나 아주 오래전 무지한 사람들에 의한 '자유로운 지성의 구속'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Religion is based, I think, primarily and mainly upon fear. It is partly the terror of the unknown and partly, as I have said, the wish to feel that you have a kind of elder brother who will stand by you in all your troubles and disputes. A good world needs knowledge, kindliness, and courage; it does not need a regretful hankering after the past or a fettering of the free intelligence by the words uttered long ago by ignorant men.)

 

 

버트란트 러셀(1916-19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