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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홍수와 노아에 관한 진실 (III)
    성서와 UFO 2017. 10. 1. 00:11


    앞선 I, II 편에서는 방주의 제작에 관한 의문과 지금껏 별 문제가 되지 않았던 노아의 인간성을 들여다 보았다. 이어 이 III 편에서는 대홍수의 허구성에 대해 언급해보려 한다.(참고로 대홍수 이야기는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 모든 민족과 부족들이 공유하는 설화로서, 그 버전이 무려 500가지 정도나 된다 한다) 


    1922년~1929년, 세계 최고(最古)의 수메르 문명 유적과 아브라함의 도시 우르를 발굴해 세상을 놀라게 했던 레너드 울리는(* '아브라함이 만난 UFO와 가나안 이주의 진실 I' 참조) 이에 그치지 않고 더 오래된 문명의 흔적을 찾아나섰다. 울리는 시굴구(試掘溝) 방식으로써 계속 땅을 파내려갔지만 더 이상 문명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는데, 대신 마지막 바닥에서 뜻밖의 성과를 일궈냈다. 물에 의해 형성된 순수한 퇴적 점토층을 발견한 것이었다. 


    직감적으로 그것이 대홍수 시대의 퇴적층이라 생각한 울리는 발굴을 서둘렀는데, 아니게 아니라 그 3m 아래 지점에서 선사시대의 쓰레기 더미와 질그릇 파편이 발견되었다. 울리는 이 점토 퇴적물이 기원전 3300년 전 대홍수의 흔적이라 발표했고, 영국과 미국의 신문들은 일제히 '노아의 홍수가 발견되다'라는 톱기사를 실었다. '아브라함의 도시'에의 흥분이 되살아나는 순간이었다. 



       

       울리가 발굴한 우르 홍수층 


       

    하지만 울리는 이번만큼은 도전에 부딪혔다. 비슷한 시기에 J. 졸단이라는 학자가 우르크에서 BC 2800년 경에 형성된 1.5m 두께의 퇴적층을 발견했고(1929년), S. 랭턴도 키시에서 0.5m 두께에 엷은 침전층이 연속된 BC 2800년 전의 퇴적층을 발견했으며(1930년), 슈루파크에서도 E. 슈미트에 의해 랭턴이 주장한 시기와 거의 동시대에 형성된 0.6m의 퇴적층이 발견됐던 것이다.(1931년).


    당연히 학자들은 저마다의 이유를 들어 자기 것이 진짜 대홍수의 흔적이라 주장했을 터인데, 이에 그치지 않고 1932년에는 R. C. 톰프슨과 M. L. 마로안이 니느웨에서 발견한 BC 3300년경의 점토층을 들고 나와 싸움에 가세했다. 이후로도 많은 고고학자와 탐험가들이 가세했을 것임은 살펴 보지 않아도 알 일이었다. 


    수메르 유적과 아브라함 고향의 발굴 공로로 영국 왕실로부터 경(Sir)의 칭호를 받고, '고고학의 아버지'라고 하는 별칭까지 얻어낸 울리였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이번 싸움에서 승자가 되지 못했다. 성서의 대홍수가 바로 이것이라고 증명할 수 있는 이렇다 할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물론 그것은 다른 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성서의 대홍수 흔적을 찾겠다고 나선 그들이었지만 성서 자체도 증거로서 제시할 만한 이렇다 할 무엇을 담고 있지 못해서였다.   



       https://i.pinimg.com/736x/7c/9f/4f/7c9f4f54d4606bde9ede7a5fb1322a40--archaeology-present-day.jpg

          울리 경의 사진(1880-1960)



    이에 학자들은 걸프 해역을 기준으로 북서쪽으로 길이 640km, 너비 160km에 이르는 지역을 대홍수의 침해 지역으로 간주하는 선에서, 말하자면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는 선에서 암묵적 합의를 보았다.(그 안에는 각 학자들 저마다의 발견 지점이 포함돼 있었으므로) 다만 그 시기만큼은 이견을 보였던 바, 보다 구체적인 증거가 출현할 때까지 미루어 놓기로 했는데, 물론 그 구체적 증거라는 것은 아직까지 출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것이 종교적 사고만의 결과물은 아니었으니 나름대로의 학자적 양심이 가미되었다. 이를테면, 성서에서는 대홍수가 아랏산산의 중턱 이상을 위협했던 엄청난 수위였다고 기록돼 있었지만 학자들은 이것을 터무니없는 내용으로 여겼다. 성서를 의지하자면 홍수의 침해 지역은 아라랏산이 포함된 아래 그림 1의 대부분의 지역이 해당되겠지만 그저 붉은 색 실선 안 만이 침해를 받았다는 합리적인 해석을 내린 것이었다. 


     

    그림 1



    그리고 이는 그저 추정이 아닌 '비옥한 초생달 지역'에 위치한 주요 도시들의 홍수 침해 유무를 조사한 결과이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스라엘의 제리코(여리고)로, 그곳은 성서상의 여리고 성을 찾느라 이미 유수의 고고학자들이 들쑤셔놓은 곳이기에(* '아브라함이 만난 UFO와 가나안 이주의 진실 II'  참조) 비교적 빠른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었다. 제리코는 무려 만 년이 넘은 도시국가였음에도 그곳에서는 대홍수의 흔적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이것은 매우 합리적인 해석이었다. 그렇지 않고 성서 그대로 '물이 넘쳐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다'는 내용을 좇았다면 곧 엄청난 사고(思考)의 혼란을 겪어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대홍수의 내용을 그대로 존중한다면 당시의 인류는 노아 일가를 제외하고는 멸절했어야 옳았을 터,(적어도 위 그림의 실선 안에 살던 모든 사람은) 하지만 성서는 곧바로 노아의 손자들과 그들이 세운 수많은 도시국가들을 나열했던 것이었다.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홍수 후에 그들이 아들들을 낳았으니 야벳의 아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다라스요, 고멜의 아들은 아스그나스와 리밧과 도갈마요, 야완의 아들은 엘리사와 달시스와 깃딤과 도다님이라. 이들로부터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어서 각기 언어와 종족과 나라대로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더라.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구스의 아들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라아마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며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그가 여호와 앞에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개는 여호와 앞의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을 건설하였으니 이는 큰 성읍이라. 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밈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더라(가슬루힘에게서 블레셋이 나왔더라).



    이렇듯 노아의 세 아들은 자신들의 후손을 퍼뜨리며 분화해 나갔는데, 이 장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그 속에서 드러난 성서의 허구성이다. 이것은 우리가 성서를 읽으면서도 대관(大觀)에 휩쓸려 선뜻 눈치 채지 못한 사실이기도 한데, 다름 아닌 이 장에서 순식간에 불어난 인구의 문제이다. 


    다시 말하자면 노아의 자손들은 불과 2~3대만을 거쳤음에도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구의 증가를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니, 메소포타미아 북부를 아우르는 큰 왕국을 건설했다는 니므롯은 노아의 아들 함의 손자 대(代)에 지나지 않는다. 노아의 아들 3명이 아무리 다산을 하고 또 그 자식들이 다산을 했다 하더라도 고작 3대를 거쳐서는 국가와 민족은커녕 작은 도시 하나도 이루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새삼 말할 것도 없을 터, 여호와의 대홍수 심판 때 지상의 모든 혈육 있는 자는 다 죽고 오직 살아남은 사람은 노아와 그 가족뿐이라고 되어 있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그 가족들은 3대째 이르러 넓은 영토의 왕국을 건설하였고, 그것도 넘쳐나 각기 방언과 종족과 나라대로 흩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엄청난 모순도 성서를 읽는 자의 경도성을 극복하면 쉽게 해결된다. 즉, 대홍수의 심판 때 많은 사람들이 죽기는 했으되 대부분이 저지대에 살던 사람들이었고, 고지대에 살던―이를테면 아르메니아 고원이나 아라랏 산 등지의―사람들은 다행히 화를 피할 수가 있었다는 말이다.(비가 장기간 지속되기는 했으되 강수량은 겨우 15규빗, 즉 6,840mm 정도였다는 설명을 이미 마친 바 있다). 물론 여기에는 창세기의 시대에 살던 사람이 아담의 후손만이 아니라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이를 더 이상 거론하는 것은 불필요할 듯 보인다.  


    혹 아직도 성서 기록의 진실성을 믿고자 하는 사람은 외국 사이트에 떠도는 흡사 장난과도 같은 아래 질문에 답해야 한다. 

     

     

     

      "아라랏산의 두 봉우리 중 노아나 함이 살았던 곳은 어디일까?"

      "마슈산은 두 개의 봉우리로 된 산으로 우트나피시팀이라고 하는 늙은이가 살았다. 맞는가?"

      "니무쉬산은 우트나피시팀의 방주가 머문 곳이다. 맞는가?"


    이 같은 물음은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산과 같은 높은 산까지 오르지 않았다는 확신을 깔고 있는 것이다. 사실 성서의 아라랏산이 지금 터키 동부에 있는 아라랏산이라는 증거는 없다. 지금 터키 ·아르메니아 · 아제르바이잔의 국경 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이 산을 이곳 사람들은 우라르투(Urartu)산이라 부른다. 이는 본시 앗시리아어에서 유래된 말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산'이라는 뜻이라 하는데, 실제적으로는 기원전 9세기에서 기원전 595년까지 존속했던 셈계 민족인 우라르투 왕국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그림 2)



    https://sites.google.com/site/kingdomofurartu1/_/rsrc/1467887119505/geography-climate/urartu%20map.gif

    그림 2. 우라르투 왕국의 영토 


    https://i.pinimg.com/600x315/81/6b/c5/816bc51022c6bb198937679d6c0f4440.jpg

    우라르투 왕국의 수도 투쉬파의 요새


    https://t1.daumcdn.net/cfile/blog/9937143359CC95C011

    우리나라 중앙박물관 특별전에 나들이 온 우라르투 왕국의 철심 박힌 청동검(일본 히로시마 대학 소장)



    현재 이곳에 살고 있는 쿠르드 족은 특정한 산이 아닌 일대의 산지를 통틀어 우라르투라 부르는데,(그림 3) 본시 모음이 없던 히브리어에 적당한 모음을 넣어 만들어진 단어가 아라라트(arart)이고 이것이 아라랏산이 된 것을 보면 지명으로서는 우라르투가 훨씬 더 설득력있게 느껴진다. 



     그림 3. 쿠르드인들이 말하는 우라르투 지역(타원형 실선 안)




    그렇게 보자면 이 일대의 산은 모두 아라랏산이 될 수 있는 것일 터, 실제로 이슬람 꾸란에서는 쥬디산(Mt. Judi)이라고 해서 현재의 아라랏산 아래의 쿠디산(Mt. Cudi)을 노아의 방주가 도착한 곳으로 여기고 있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그 남쪽의 앨번드산이나 데머번드산도 노아의 산으로서 주목 받고 있으며 기타 주변의 다른 산들도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http://www.ancient-origins.net/sites/default/files/styles/large/public/holy-mountains-map.jpg?itok=wJ77YApW

    그림 4. 노아의 방주가 도착한 곳으로 추정되고 있는 산들 

     


     

    쿠디산은 티그리스강 상류에 위치한 산으로 터키 동부의 아라랏산으로부터 400km 아래 위치한다. 현재 쿠디(쥬디)산은 아라랏산보다 훨씬 지명도가 높은데, 덩달아 그 아래 배 모양의 지형도 노아의 방주로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또 위 질문에서 거론되고 있는 마슈(Mashu)산*은 앞서 말한 길가메쉬 서사시에 나오는 지명으로, 영생을 찾아 구도(求道)의 길을 떠난 우루크 왕 길가메쉬가 오랜 방랑 끝에  영생의 노인 우트나피시팀을 만나게 되는 곳이다. 그리고 길가메쉬는 거기서 우트나피시팀로부터 다음과 같은 대홍수의 이야기를 듣는다.  


       *마슈는 쌍동이란 뜻으로 두 개의 비슷한 봉우리를 갖고 있는 산을 말하는 것이니 아마도 시날 평원 너머의 최북단에 위치한 아라랏산을 지칭하는 말일 가능성이 높다.  



    어느 날, 바빌로니아 슈루파크에 살고 있던 우트나피시팀은 '인간들의 행태에 분노한 최고 신 엔릴이 조만간 인류를 멸망시킬 대홍수를 일으킬 것'이라는 신의 전언(傳言)을 듣게 된다. 


    우트나피시팀은 신의 지시대로 배를 만들었고 배가 완성되자 자신의 가족들과 생명이 있는 모든 씨앗을 배에 태운다. 그러고 나니 곧 비가 쏟아졌고, 이후 6일 동안 계속된 비는 7일 째 되는 날에 비로소 멈췄는데, 세상의 생명 있는 것들이 모두 멸절된 상태였다.


    우트나피시팀의 배는 7일째 되는 날 니무쉬산 꼭대기에 걸렸으나, 그는 배에서 내지 않고 물이 땅에서 사라졌는지를 확인한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비둘기 한 마리를, 다음에는 제비 한 마리를, 끝으로는 까마귀 한 마리를 날려 보냈는데 돌아오지 않았다. 드디어 땅이 마른 것을 확인한 그는 가족들과 배에서 나와 신들에게 제물을 올리게 된다. 


    이상 길가메쉬 서사시에 나오는 우트나피시팀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노아 이야기의 판박이다. 정말로 누가 누구의 것을 베꼈는지 알 수 없는 지경인데, 하지만 그 문제는 일단 뒤로 미루고 우선 여기에 나오는 지명만을 살펴보자.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르크 왕 길가메쉬가 우트나피시팀을 만난 곳은 분명 마슈산이다. 그런데 우트나피시팀의 배가 도달한 곳은 니무쉬산으로 현재 그가 살고 있는 곳이 아니다. 우트나피시팀이 이주를 했거나 혹은 뭔가를 잘못 적은 것인데, 이에 관한 설명은 찾을 길 없다. 


    점입가경인 것은 이와 같은 이야기가 '지우수드라 설화'라고 하는 길가메쉬 서사시에 앞선 설화에도 거의 같은 내용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로 옮길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정말로 거의 유사한 내용인데, 거기서 몇 가지 확실히 다른 것은 주인공의 이름과 홍수가 일어난 범위 및 배가 도착한 산의 이름이다.(지우수드라 설화의 주인공은 슈루파크의 지우수드라 으로, 홍수의 범위가 일대의 도시국가에 한정되며 배가 도달한 곳은 니시르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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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우수드라 설화가 새겨진 수메르 점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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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토판의 확대본인 이 사진에서는 지우수드라를 노아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 연대도 길가메쉬 점토판을 1천 년이나 상회한다. 발견된 지역명을 좇아 에리두 창세기로 불리기도 한다.  



     

    사실 여기서 이 대동소이한 이야기들의 원전(原典)을 찾는 일은 사실 무의미한 일인는지 모른다.  일전에도 말했듯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은 시대와 주인공을 달리하며 얼마든지 돌고 돌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주목하고자 하는 점은 홍수 범위의 확장인데, 그 범위가 수메르 시대의 도시국가에서(지우스드라 설화) 슈루파크 평원으로(길가메쉬 서사시), 그리고 종국에는 높이 5,000m에 이르는 아라랏산으로까지 넓혀졌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점점 과장되진 것이다.  


    다행히도 이 이야기들은 근세에 들어 다시 원상회복 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앞에서 설명한대로 걸프 해역을 기준으로 북서쪽으로 길이 640km, 너비 160km에 이르는 지역이 대홍수의 침해 지역으로 규정되었던 것이다. 모든 학문이 다 그러하듯 성서고고학 역시 옳음을 지향할 터, 그렇게 볼 때 이는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 않았다면 권선징악을 표방하는 성서의 논리는 다음과 같은 막무가내의, 그러면서도 논리적인 듯한 질문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왜 홍수를 일으키고 방주를 만들라시는 그런 번거로운 수고를 하셨을까요? 노아 일가를 제외하고 그냥 집단 심장마비 같은 걸 일으켜 죽게 했으면 간단했을 것을."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통틀어 이렇게 설명한다. 


    지상의 인류를 몰살시킨 대홍수가 과연 어느 신의 소행인가는 중요치 않다. 또 그에 관한 기록을 누가 누구의 것을 베꼈는지도 중요치 않다. 내가 중요시 여기는 것은 아주 옛날, 그러니까 이 땅에 문명이 태동할 즈음에 행해졌던 저들 외계인의 무모한 행동이다. 


    내가 힘주어 말하고 싶은 것은, 자신들이 만든 인간의 후손에게 지구를 경락시키려는 욕심으로써 이 땅에서 진화해 문명의 문턱에까지 온 많은 인류를, 그리고 자신의 지구 경략 플랜에 대한 뜻밖의 걸림돌로 등장한 신인류 네피림 족속을 몰살시키고자 했던 저들 외계인의 무자비함이다. 


    그것도 그나마 제 뜻대로 되었으면 좋았으련만, 그 모든 것을 다 덮지 못하고 그저 시날 평원 저지대만을 휩쓸어 애꿎은 사람들을 몰살시켰으니, 그 중에는 정말로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철부지 어린아이들도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신이라면 이렇게 하지 않는다. 아니 이렇게 할 수 없을 터, "나는 자신의 창조물을 심판한다는 신을 상상할 수가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은 종교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오히려 조롱이었을는지 모른다.(* 'UFO를 타고 왔던 하나님의 아들들은 그후 어떻게 되었나?' 참조)


    외계인의 능력은 그렇게 유한하다. 성경은 그 유한한 외계인들을 여호와와 천사로 분장시켰기에 수시로 신으로서의 능력의 한계를 드러낸다. 인공강우로써 저지대의 인류들을 몰살시키는 데는 성공한 저들 외계인이었지만, 앞 장의 설명대로 악이 소멸된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는 그 당대부터 실패를 맛보아야 했던 것이다. 


      다만 저들은 자신들의 발달된 선진과학의 능력으로써 계속 이 땅의 역사에 간섭할 수 있었던 바, 이 땅에 핵폭탄을 투하해 사해 5도시를 멸망시키고,(* '소돔과 고모라를 폭격한 UFO' 참조)  바다를 갈라 히브리족의 이집트 탈출을 도왔으며,(* '엑소더스 당시의 UFO/여호와는 정말 바다를 갈랐을까?' 참조) 천상의 예수를 내려보내 이 땅의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기도 했다.(* '예수 승천 때 출현한 UFO의 모선' 참조)

     

    그리고 때로는 예의 잔재주로써 사람들을 현혹하고,(* '호렙 산의 UFO/모세를 속인 여호와의 절묘한 트릭' 참조)  UFO로 사람을 끌어올려 감동을 주기도 했으며(* '예수 승천 때 출현한 UFO의 모선'/ 'UFO의 모선에 끌어올려진 선지자 엘리야' 참조) 때로는 무지개를 만들어 대홍수에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도 했다.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창세기 9:11-17)


    보다시피 이것은 대홍수가 끝난 후 하나님이 노아에게 무지개를 만들어 보이며 한 약속으로, 내레이션이 자못 장엄하다. 이에 기독론자들은 이 대목에 있어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영원한 희망의 약속'이라는 거룩한 의미를 부여하지만, 실은 그저 태양을 마주한 비행선(UFO)이 수증기를 머금은 배기가스를 대기 중에 방출한 것에 불과할 터, 비행사들이 'Pilot's Glory' 혹은 'Glory Rainbow'라 부르는 광학 현상과도 유사한 현상이리라.

    「airplane rainbow」の画像検索結果





    'Pilot's Glory' 이미지



    성서의 불편한 진실들
    국내도서
    저자 : 김기백
    출판 : 해드림출판사 201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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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스페르츠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