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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세기의 수수께끼 단어 '우리', 그 비밀의 열쇠를 찾아서 (I)
    성서와 UFO 2017. 10. 1. 00:12

     

    1960년, 연해주에 있는 발해의 옛 절터에서 진흙으로 빚은 십자가가 출토되었다. 이 유물은 러시아의 연해주 고고학 전문가인 샤프쿠노프 박사가 아브리스크 성의 발굴 과정에서 수습한 것인데, 그 모양이 영락없는 시리아 기독교식의 십자가 형태였다. 아울러 발해 5경의 하나였던 동경용원부에서도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있는 석제 삼존불상이 발견됐는데, 학자들은 이 모두를 기독교의 전래 흔적으로 보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세계적인 대제국을 형성했던 당나라에서는 초기 기독교의 한 종파였던 네스토리우스(Nestorius)교가 경교(景敎)라는 이름으로 한때 성행하였던 바, 대당(對唐) 문물교류와 함께 네스토리우스 기독교가 발해에 유입됐다고 보는 데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그렇다 해도 유럽 문명의 산물인 기독교가 아시아 대륙의 끝자락인 연해주까지 유입되었다는 사실인즉 매우 신기하게 여겨진다) 

       

    연해주 아브리스크 성 절 터에서 발견된 동 시리아식 십자가.   진흙으로 빚은 것으로 네스토리우스교의 십자가로 추정된다.
      위 십자가가 발견된 절터의 평면도

     

     

    발해 동경용원부 터에서 발견된 삼존불상. 주불과 좌 협시불의 목에 걸린 십자가 문양이 뚜렷하다. 

     

    (또 한 가지, 기독교의 동방 전래의 유물로서 거론되는 것이 현재 숭실대학교 ‘한국 기독교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데, 1956년 경주 불국사에서 나왔다는 석제 십자가를 비롯한 3종의 십자가이다. 그 박물관을 세운 김양선 목사는 1971년 ‘한국 기독교사 연구’라는 책을 출간하며 이것을 통일신라시대에 기독교가 전래된 증거로 인용하였다. 아울러 같은 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불보살 형태의 인물 조각상도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상이라고 주장하였으나, 유감스럽게도 이상은 모두 그 출처와 진위가 명확치 않은 유물인 바,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겠다)

     

    그렇지만 내가 이 챕터에서 말하려는 것은 초기 기독교의 동방 전래 사실이 아니다. 서두는 그렇게 시작했으되 나는 그 신기한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초기 기독교의 정립과정과 그 과정에서 벌어진 헤게모니 다툼식의 종교재판, 그리고 그 싸움에서 패해 중국으로 이주한 네스토리우스교를 주목하고자 함이다.

     

    아울러 또 그것은 구약성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수수께끼의 단어 ‘우리’에 대한 비밀을 풀고자 함이다. 이 ‘우리’라는 단어는 지난 3천 년 동안 성서 속에 봉인돼 왔다. 그 어휘가 겉으로 드러나 있기는 했으되 아무도 그 뜻을 풀지 못했으니 봉인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그런데 이 ‘우리’는 성서 속에 봉인된 모든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와도 같은 낱말인 바, 우선은 그 낱말 속의 비밀부터 찾아야 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세기 1:26)

     

    이상은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이 그 마지막 날에 우리’라고 하는 자신을 포함한 대상에게 행한 제안이었으며, 아래는 그렇게 만들어진 인간들이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였던 바, 이를 걱정하여 같은 ‘우리’에게 한 말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善惡)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창세기 3:22)

     

    그 외에도 성서에는 ‘우리’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오나 각설하고, 위의 ‘우리’만을 논해보자. 교계(交界)에서는 이 ‘우리’를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이라 설명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일체가 곧 하나님이므로 ‘우리’라는 말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외 다른 설명은 없다. 

     

    그런데 이것이 말이 되는 것일까? 다른 사람은 모르겠으되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말의 뜻이 해득되지 않았다. 그래서 오랜 시간동안 삼위일체설에 대해 공부하였는데, 아무리 꿰맞추려 해도 삼위일체설은 그것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학설이었다. 그것을 알기까지 무려 20년이 걸렸다. 한마디로 전혀 엉뚱한 삽질을 한 셈이었다. 하지만 그 비밀은 풀었는데, 그것이 조금은 허무했지만 그때 나는 자위했다. ‘그 비밀을 풀기 위해서는 누구라도 어쩔 수 없이 이렇듯 힘들고 먼 길을 걸어야 했을 거라고.....’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분들께서는 ‘다빈치 코드’라는 소설을 보듯, 혹은 ‘인디아나 존스’라는 영화를 보듯, 가벼운 마음으로서 재미있고 다이내믹하게 비밀에 접근해 주셨으면 한다.(경험상으로 보자면 이 여정이 워낙에 길고 힘든지라 이런 마음가짐이 없으면 쉬 지치고 낙오될 수 있기에 이 같은 노파심을 덧붙이는 바이다. 그리고 차제에 말씀이거니와 본인은 외계인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그 어떤 종교집단과도 무관하며, 그 자체를 어불성설로 여기는 사람임을 밝혀둔다)

     

    그러면 지금부터 여러분과 같이 흥미로운 탐험의 길을 떠나보려 한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이것은 모세의 십계명 석판이 들었다는 히브리족의 성궤(聖櫃)를 찾거나 예수의 최후의 만찬 때 쓰였다는 성배(聖杯)를 찾는 일보다도 더 재미있고 보람 있을 수 있다. 레이더스나 인디아나 존스라는 영화에서 보았듯 그것은 손에 넣을 수가 없지만, 성서의 비밀은 반드시 찾아 주머니 속에 넣을 수 있을 것이기에.....

     

    잠시 주제가 흐트러져 앞의 말을 재론하거니와, 지금의 기독교는 원래부터 하나의 이론으로서 정립되었던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제 각각의 이론을 가진 종파들이 수차례의 치열한 교리 논쟁과 재판을 거쳐 만들어진 종교로서,(나는 그래서 기독교를 '창작된 종교이자 진화하는 종교‘라 부른다) 그 시작은 다음과 같은 이단 논쟁에서부터였다.  

     

     

      1. 최초의 이단자 아리우스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이단의 시비가 매우 잦다. 또한 그 재단의 수위도 매우 높은 편이어서 정립된 기존의 교리와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가차 없이 매도 하다. 이른바 '이단'이라는 이름으로.(무써워 ;; 하지만 종교를 빙자해 재물을 모으려는 쓰레기 같은 놈들로 인해 그것이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다는 슬픈 현실

    )

     

    그런데 과거의 이단에의 재단은 이보다 훨씬 심했고, 게다가 순수하게 종교적 차원에서 진행되기보다는 정치 사회적 편향과 힘의 우열에 의해 판정되는 경우도 빈번했다. 아래에 열거된 역대의 유명한 이단자들 역시 그러한데, 아리우스(Arius: 256-336)는 이와 같은 이단자의 원조격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그가 어느 나라 어느 지역 사람인지는 알려진 것이 없으나, 그의 활동 지역을 보아 북아프리카 리비아 출신으로 추론된다. 수도사였던 그는 초기 교회인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사제가 되었는데, 수도사가 되기 전 안티오키아의 루키아노스*에게 가르침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리아 출신의 작가이다. 종교에 관심을 가져 '신들의 대화', '죽은 자와의 대화' 같은 작품을 남기고 신학자 오리네게스와 교류하였으나 다만 선악에 대한 관심에서 일뿐 종교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뿌리 깊은 그리스 철학을 기반으로 한 그의 헬레니즘 사상은 아리우스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바, 이에 근간한 아리우스의 합리적 사고는 '성부 성자 동질설' 같은 비합리적 이론과는 애초부터 화합될 수 없는 것이었다. 

      

      

       아리우스의 초상

     

     

     그의 주장은 하나님은 오직 유일신이라는 것으로, 하나님과 예수의 완전한 동질성을 부정하고 오히려 아버지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로서의 예수 크리스트의 인성(人性)을 강조했다. 그같은 주장은 당시 힘을 얻고 있던 아타나시우스*의 성부 성자 동질설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이어서, 318년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알렉산드로스가 소집한 알렉산드리아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판정되었다.

     

    초기 크리스트교 교부.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사제로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크리스트는 동질이다'라는 이론을 주창하여 예수의 신성을 확립했다. 

     

    하지만 이에 불복한 아리우스는 각지의 교회를 돌며 항의 연설을 하고 다님으로써 전 세계의 교회에 교리 논쟁을 불붙였다. 아울러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의 심각한 고민도 불러 일으켰던 바, 크리스트교를 공인한 지 얼마되지 않아 교회가 양분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상고심 격으로서 열린 것이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소집한 325년의 니케아 공의회였다. 여기서 니코메니아의 주교 에우세비우스(위의 에우세비우스와는 동명이인)가 아리우스파를 대표하여 아타나시우스파와 맞서 싸웠으나 지원을 기대했던 카이사에라의 에우세비우스*가 어중간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아리우스파의 이단이 확정되었다.*

     

     * 카이사레아에라의  주교로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종교 자문 역할을 담당했다. 교리 논쟁에 있어서는 시종 중립적이었으나 종국에 아타나시우스파의 의견을 지지했다. 니코메니아의 주교 에우세비우스와 구별해 카이사레아의 에우세비우스라 불린다. 


    * 논쟁은 결국 투표로 결정나게 됐는데, 황제가 미는 아나타시우스파가 일방적 우세의 예상되는 하나마나한 투표였다. 결과 역시 그러했으니 '예수는 신은 아니다'를 주장한 아리우스파는 단 3표만을 얻었고, 처음에 지지를 표명했던 카이사에라 에우세비우스파 역시 아타나시우스 파를 지지한 듯, 아타나시우스파에게는 300표의 몰표가 쏟아졌다. 다만 기권 15표라는 일부 양심표가 있었다.

     

    이때 저 유명한 '니케아 신조(信條)’라는 믿음의 조항이 확립되어졌는데, 그 요지인즉 ‘그리스도는 창조되지 않은, 성부와 동일 본질인 존재’라는 것이었다.(다만 아직까지는 삼위일체설이 확립되지 않았던 듯, 성령에 대해서는 ‘우리는 성령을 믿는다’라는 구절만이 추가되었다)

     

    하지만 니케아 공의회의 이단 판결에도 불구하고 아리우스의 세력은 끈질기게 살아남아 아리우스파의 율필라스는 북쪽으로 가 게르만 부족에게 전도 하였으니, 이것은 게르만족에의 기독교 전도라는 역사적 전기를 이루었다.(내가 볼 때, 알렉산드리아 공의회에서 니케아 공회의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알렉산드리아 교회를 장악하기 위한 주교 알렉산드로스와 장로 아리우스 간의 헤게모니 다툼이 그 발단으로 여겨진다)


     

    http://stnicholaschurchnyc.org/uploads/3/5/1/0/35103436/6382008.jpg

      니케아의 위치

     

    니케아 공의회를 묘사한 그림

    제정된 니케아 신조가 중앙에 강조된 가운데 바닥에 (아리우스파를 대표해 싸운) 에우세비우스가 KO된 형상을 그려넣었다. 

     

     

    공의회가 열렸던 니케아 성당

    지금은 이스탄불 대성당과 같은 이름인 소피아 성당이라 불리며, 지진과 화재와 전쟁 등으로 수차례 파괴된 것을 재건하였다. 뒤에 보이는 첨탑은 이슬람 교도에 의해 세워진 것이다.  

     

     

     * '창세기의 수수께끼 단어 우리, 그 비밀의 열쇠를 찾아서 (II)'로 이어짐.

     

      

    성서의 불편한 진실들
    국내도서
    저자 : 김기백
    출판 : 해드림출판사 201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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