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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살던 푸른 눈의 원시인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 2020. 4. 19. 06:23
전편에 이어 과거 한반도에 살았던 푸른 눈의 서양인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뜬금없지만 그에 앞서 일본을 무대로 한 영화 두 편을 먼저 소개하겠다. 1976년 영화 '쇼군'(將軍)은 일본 전국시대 때 난파해 들어오게 된 영국 선원(리처드 챔벌레인)이 도쿠가와 이에야스 휘하에서 입신양명하는 과정과 통역이었던 일본인 유부녀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린 제임스 클라벨 감독의 대작으로, 훗날 드라마로도 제작돼 공전의 히트를 쳤다.
미국 퇴역군인(톰 크루즈)이 세이난(西南) 전쟁에 휘말려들어 사이고 다카모리를 위해 활약하는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2003년)는 '쇼군'의 오마쥬로 여겨질 만큼 닮은 구석이 있다. 앞서도 말했지만 세이난 전쟁은 가고시마의 번주(藩主) 사이고 다카모리가 정한론(征韓論)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에 불복하여 일으킨 전쟁이다.(정한론은 시기상조라 하여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결국 일본은 한국을 쳐들어와 점령했다)
'쇼군'과 '라스트 사무라이'의 포스터
일본은 신구(新舊) 강국인 미국과 영국을 좋아하고 또한 약하다. 아니, 전반적으로 백인에 약하다. 까닭에, 만일 푸른 눈의 원시인이 선사시대에 존재했다면 영화의 차원이 아니라 필시 민족 개조의 차원으로 달려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미개한 아시아 족속이 아니라 위대한 백인 코카소이드(Caucasoid)의 후예라는 것을 자랑스럽고 과장스럽게 떠들며.....
~ 실제로 1901년 일본이 약진할 무렵 다구치 우키치(田口卯吉)라는 학자는 일본이 아리안 인종의 본가(本家)라는 주장을 했다. 아리안족은 히틀러가 게르만 민족의 뿌리로 여긴 백인종인데 일본인이 실은 그 백인종의 원류라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주장은 당시를 지배한 탈아론(脫亞論, 아시아에서 벗어나 서구 열강에 편입되자는 이론으로 1885년 일본의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가 주창했다) 및 러일전쟁의 승리와 맞물리며 고양됐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일본열도에서는 그와 같은 원시인의 인골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선사시대의 상한(上限)이라 해봐야 3만 년 전, 아무리 길게 잡아도 6~7만년 전을 넘지 못한다.(이와 같은 열등감을 만회하기 위한 그릇된 몸부림을 '세계사를 바꾼 한반도의 구석기 시대'에 실었다)
'쇼군'의 스틸컷
'라스트 사무라이'의 스틸컷
북한의 경우는 역(逆)으로 떳떳하지 못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평양시 승호지역 만달리 동굴에서 나온 '만달인'은 장두형(長頭型)이 분명한 코카소이드 계의 인골이었음에도 북한은 그걸 '조선 옛유형 사람'으로 정해 한민족의 조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평양에 살던 서양인 호모 사피엔스') 그래서인지 '만달인'의 복원된 얼굴은 동양인도 서양인도 아닌 애매한 모습이다.
만달인 복원상
하긴 예전에 남북군사회담 참석을 위해 제주도를 찾았던(2000년 9월 25~26일) 북한대표와 나눈 대화를 보면 그와 같은 정치적 판단도 무리는 아니다.(당시 남북한의 무난한 관계를 반영하듯 회담 전 가벼운 주제의 대화가 오갔는데, 그러다 문득.....)
김일철 북한 인민무력부장 : (정색을 하며) 기런데 요즘 장가 못 간 남조선 총각들이 외국 처녀들을 데려온다면서요? 이거 안 됩네다.
조성태 우리나라 국방장관 : (약간 당황한 얼굴이지만 대수롭지 않다는 듯) 뭐, 그저 조금..... 사실 몇 안 됩니다.
김일철 북한 인민무력부장 : (갑자기 언성을 높이며) 몇 명도 안 됩네다! 우리 조선은 단일 민족이야요. 피 한 방울도 섞이면 안 돼요!
조성태 우리나라 국방장관 : (어안이 벙벙해서) 예? 아, 예~ (혼잣말로) 허, 참.....
(김일철은 제주도 도깨비 도로의 착시 원리에 대해서도 한바탕 썰을 푼 후 다금바리 회를 포식하고 갔다)
제주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1차 남북 국방장관 회담
남한에서도 코카소이드 계의 인골이 출토된 적이 있다. 1962년 3월 충북 제천군 황석리 고인돌 군(群)에서 국립박물관 초짜 학예사 이난영 씨가 발굴해낸 청동기 시대의 인골이다. 그 인골은 개석(덮개돌)이 파손된 고인돌 아래의 석관 속에서, 발목 아래의 상태만 흐트러진 거의 완벽한 상태로써 발견되었는데, 키 174cm에 두개골 및 쇄골, 상완골 등이 현대 한국인보다 큰, 한마디로 신체건장한 남자였다.
황석리 출토 인골
그 완전한 발견보다 사람들을 놀라게 만든 것은 장두형의, 그것도 두개지수(頭蓋指數, Cephalic Index)가 66.3이나 되는 초단두형의 두개골이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면, 우선 두개지수는 이마와 뒤통수까지의 길이 & 귀와 귀 사이 길이의 비율을 나타내는 수치로서, 이 두개지수가 100 : 70이면 장두형으로 머리통이 앞뒤로 긴 모양이고, 100 : 80이면 단두형으로 머리통이 옆으로 넓은 모양이다.
이 두개지수는 한국인의 경우 100 : 80~82가 나오며, 서양인은 100: 70~73이 나오는데, 위의 황석리 인골의 경우 두개지수가 무려 100 : 66.3이었다. 이와 같은 수치는 한국인에게서는 나오기 힘들며 유럽에서도 북구인(北歐人)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초단두형의 머리 형태였던 바, 이 인골의 얼굴을 복원한 한서대 조용진 교수는 "황석리 인골은 이마가 볼록하고 코가 높으며 얼굴이 긴 형태를 가진 알타이 지방에서 내려온 서양인의 형질을 지닌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한마디로 서양인의 피를 지닌 이주민이라는 것이다.
조용진 교수(사진 왼쪽)가 복원한 황석리 출토 인골의 얼굴. 전형적인 서양인이다.
인골이 출토된 황석리 고인돌 석관
그밖에도 정선 아우라지 고인돌과 평창군 하리 고인돌에서도 서양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인골이 출토되었는데, 이상을 보면 청동기 시대에 이르러서는 유럽에서 이주한 호모 사피엔스가 한반도에 대거 거주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지금껏 세계에서 유래가 드문 단일민족이라 배워왔고, 한편으로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내세우지만, 한반도에서 발견된 인골들은 우리가 배워온 것과 다른 내용을 증언하고 있다.(앞서도 말했지만 한반도는 강산성 토양인 탓에 인골 화석이 매우 드물다)
두개골과 대퇴부 뼈가 발견된 아우라지 고인돌
2006년 발견된 이 인골에 대한 DNA 분석 결과 현재 영국인과 비슷한 염기서열이 확인됐다.
2016년 평창군 하리 고인돌에서 발견된 160.5cm의 백인 여성 인골(강원대 박물관)
롱다리에 깊은 눈과 오똑한 콧날, 장두형 머리를 가진 서양인임을 금방 알 수 있다.
부장품은 한민족을 대표하는 비파형동검이....(사진출처: 단비뉴스)
지금껏 한반도의 고대 사람들에 대해 몇 차례 섹션을 나눠 알아보았다. 짧게나마 하고 싶은 말들을 피력했는데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은 우리 한국인의 어쭙지않은 민족 우월 의식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감은 없어보이니 가장 공정해야 할 미디어마저 백인 젊은이들은 예능 프로그램으로 보여주고 다문화가정의 젊은이들은 다큐 프로그램으로 보여준다.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 아니라 다만 힘이 없어 남의 나라를 지배한 경험을 지니지 못했으며, 우월하기는커녕 콤플렉스 덩어리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일본이 싫다면서 왜 이런 건 기를 쓰고 따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신기한 게 있다. 현재 다수의 다문화가정을 이루고 있는 베트남인과 우즈베키스탄인의 유입이 8천 년 전 한민족이 형성될 무렵과 거의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는 점이다.(한민족의 게놈 분석결과 바이칼 호 서쪽에서 온 북방계와 베트남 지방에서 온 남방계의 혼혈임을 이미 말한 바 있는데, 그간의 우리 상식과 달리 북방계보다 남방계 유전자가 더 많이 섞여 있었다. ☞ '악마의 문' 인골은 한민족의 조상인가?') 어찌됐든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을 우리가 품지 못하면 결국 우리는 도태될 수 없다. 그들은 남이 아니라 곧 우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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