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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쪽샘지구에 잠든 신라 소녀
    수수께끼의 나라 신라 2022. 4. 22. 06:15

     

    2007년 경주 쪽샘지구가 발굴된다고 했을 때 내심 기대가 대단했었다. 쪽샘지구는 경주시 황오동, 황남동, 인왕동 일대에 조성된 무덤군으로 일찍부터 초기 신라(4~6C)의 왕족・귀족 무덤으로 추정되어 왔다. 왕릉급 무덤군인 노동・노서동, 그리고 대릉원에 인접해 있으되 그보다는 고분의 규모가 작았기에 그리 여겨지게 된 것이다. 까닭에 이곳은 그간 다른 곳에 비해 좀 만만하게 여겨졌는지 터미널 여관 주택 등이 들어서며 훼손이 진행했다. 

     

     

    지명이 유래된 쪽샘지구 인근의 신라시대 쪽샘

     

    그래도 그때는 그것을 바라만 보아야 했다. 그후 국가유산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고 시(경주시)가 어느 정도 재정자립도가 이루진 2000년대 이후, 국비 지원 하에 일대의 사유지들을 매입하기 시작했고, 2007년부터 발굴에 들어갔다. 신문에 발굴 공고가 났을 때 나는 정말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무덤의 규모로 볼 때 과거 인근 대릉원의 98호 고분과 155호 고분에서 금관을 비롯한 온갖 유물이 쏟아지던 그 무렵(1973~74년)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계림로(대릉원과 쪽샘지구 사잇길)에서 출토된 황금보검이나 차륜토기와 같은 발굴을 기대한 까닭이다.  

     

    * 대릉원 일대 고분의 일련번호는 일제 때 일본인 학자들이 붙인 것으로 73호와 155호는 각각 황남대총과 천마총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렇지만 나머지 일련번호는 놀랍게도 지금껏 통용된다.   

     

     

    1973년 황남동 미추왕릉지구 배수로 공사 현장에서 발견된 황금보검
    마찬가지로 계림로에서 출토된 차륜토기

     

    하지만 쪽샘지구에서는 2009년 6월, C10호묘로 명명된 곳에서 마갑(馬甲, 말 갑옷)과 찰갑(札甲, 무사가 착용한 비늘식 갑옷) 일체가 온전한 형태로 출토된 것 외에 이렇다 할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경주 고분이라고 해서 파면 다 나오는 것은 아니구나' 하고 생각할 즈음, 2020년 12월, 괄목할 만한 발굴이 있었다. 일제시대 넘버링되었던 44호묘 적석목곽분(돌무지덧널무덤)에서였는데, 일찍이 중형분의 규모가 주목되어 돔을 씌워 발굴하고 있는 곳이었다. 

     

     

    쪽샘 목곽 무덤에서 나온 5세기 신라 무사의 말 갑옷
    쪽샘지구의 신라고분들
    2018년 8월에 찍은 44호분

     

    44호묘는 신라 마립간(麻立干) 시기에 조성된 무덤으로 왕릉급은 아니나 준왕릉급 정도로는 짐작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금동관과 금드리개, 금귀걸이 등의 금제 장신구가 발견되었으며, 최상위 계층의 무덤에서만 나오는 가슴걸이 및 금·은 팔찌 수십 점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특이한 형태의 비단벌레 장신구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앞서 '기마민족국가 신라의 유물 3점'에서 말한 바와 같이 비단벌레를 사용해 만든 마구(馬具)나 화살통과 같은 무구(武具)는 출토된 적이 있으나 장신구는 처음 발견된 까닭이다.  

     

     

    키 150~155cm로 여겨지는 피장자 곁에서 발견된 유물들
    금드리게
    가슴걸이
    물방울 모양의 비단벌레 장신구
    복원된 모습

     

    그리고 귀걸이 반지 팔찌 등의 모양새와 사이즈로 보아 무덤의 주인공은 소녀인 것으로 추정되었는데, 특이하게도 부장품으로 바둑돌이 다량 출토돼 '바둑을 즐긴 신라 소녀'로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스토리를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소녀는 병약했고, 그로 인해 오랫동안 약을 복용하다 죽었다. 필시 왕족이나 귀족의 자제였을 소녀였으나 끝내 병을 극복 못하고 죽고만 것이니 그래서 문득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발굴된 바둑돌

     

    무덤에서는 뼈가 전혀 발견되지 않아 사실 성별도 사인(死因)도 알 수 없다. (요즘은 뼈조각이 발견되면 성별은 물론이고 웬만큼의 사인 추적도 가능하다 한다) 하지만 부장품으로 볼 때 여성인 것은 거의 확실하며, 또 특이한 껴묻거리로서 발견된 이래의 약용(藥用) 절구는 피장자의 생전에 대한 추정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간 돌절구와 절구공이가 일습으로 발견된 예는 앞서 말한 황남대총의 경우가 유일한데, 그 무덤이야 온갖 것이 다 나왔으니 절구가 특이하게 여겨지지 않았지만 44호묘의 경우에는 머리맡 솥 옆에 놓여진 절구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작은 사이즈의 반지와 팔찌
    높이 13.5cm, 폭 11.5cm의 돌절구

     

    지금 서울 한성백제박물관에서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와 체결한 학술교류 협약에 따른 지원으로써 '서울에서 만나는 경주 쪽샘 신라고분' 특별전시회가 열리고 있다.(6월 12까지) 서두에 말한 5세기 신라 무사의 말 갑옷 등 쪽샘지구의 대표 유물이 모두 전시되고 있는데, 역시 서두에서 말한 대로 쪽샘지구 유물 자체가 빈약해 이렇다 할 유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B 18호묘 등에서 발견된 '동물무늬 굽다리 긴목 항아리' 경질토기는 아름다움이 확실히 발군이다. 앞서 말한 병약했던 소녀가 사용했던 그릇 같다. 

     

     

    동물무늬 굽다리 긴목 항아리
    금귀걸이
    그릇받침
    쪽샘지구 출토 무기류
    시중에서 20만원에 거래되는 쪽샘지구 41호묘 출토 동물무늬 굽다리 긴목 항아리의 복제품
    쪽샘지구 44호묘 출토 토기에 새겨진 신라인 행렬도를 도안으로 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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