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대가 시작된 그곳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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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포해전, 연안부두 상트페테르부르크 광장과 러시아영사관한국의 근대가 시작된 그곳 인천 2023. 7. 7. 01:18
구한말 러시아는 기실 일본보다 더 간절히 인천의 패권을 원했다. 1898년 중국의 여순(旅順)과 대련(租借)을 조차한 마당이었으니 인천을 손에 넣는다면 서해의 반을 먹은 셈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일찍이 팔미도에 진을 쳤다. 러시아 함대가 인천항에 직접 들이대지 못한 것은 1861년 일본의 쓰시마섬(對馬島)을 점령했다가 영국의 간섭을 부른 탓이었으니,* 이에 대한 반면교사로서 인천항에 직접 배를 대지 않고 팔미도 근방에서 얼쩡거렸던 것이다. * 러시아의 쓰시마 점령에 대해 잠시 피력하자면, 1861년 2월 3일 러시아 군함 포사드니크호(號)가 대마도 번주(藩主) 소 요시요리(宗義和)의 반대에도 아랑곳없이 선체 수리를 이유로 무단 상륙을 감행했다. 그리고 제멋대로 막사를 지어 장기 주둔에 들어갔는데 일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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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영국영사관과 최초 해관을 찾아서한국의 근대가 시작된 그곳 인천 2023. 7. 5. 23:55
앞서도 말했거니와 1882년 우리나라와 미국 간에 맺은 조미수호통상조약의 체결 장소가 확인된 것은 비교적 최근인 2013년의 일이다. 그전에는 선교사 존스 목사의 서술 기록을 근거로 병영(兵營)인 화도진을 유력한 장소로 여겨 19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100주년 기념비가 세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전권대사로서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미국 아시아함대 사령관 로버트 슈펠트(Robert W. Shufeldt) 제독이 1886년 아펜젤러 목사에게 서술한 장소, 즉 해관(세관) 관리관 사택 부근에 천막을 치고 조약을 체결했다고 하는 바로 그 장소가 쓰여 있는 지도가 2013년 발견됨으로써 그 새로운 장소에 표석이 세워지게 되었다. 지금이라도 오류가 시정된 것은 매우 잘 된 일이다. 하지만 아직도 개항기의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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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류백제, 경인운하 & 인천 용현동 트릭아트 계곡한국의 근대가 시작된 그곳 인천 2023. 7. 4. 17:49
인천광역시 미추홀구(彌鄒忽區)는 남구(南區)에서 변경된 이름이다. 2018년 7월부로 바뀌어진 이름으로, 뉴스에서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대번에 '참신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사안일과 복지부동(伏地不動)으로 대표되는 공직사회에서 그래도 누군가는 생각하며 움직이고 있구나 하는 기분 좋은 느낌도 받았다. 오랜 행정구역의 명칭을 변경하는 일이니 나름 반대도 많았을 텐데 멋지게 개명을 이루어낸 것이다. 미추홀구로의 개명은 물어보나 마나 그 역사성에 기인했다. 미추홀구는 문헌에 나타나는 인천 최초의 지명이다. 백제본기의 백제 시조 온조왕 즉위년조에 따르면, 고구려 추모왕이 유리를 태자로 세우자 소서노의 아들 비류와 온조는 유리가 자신들을 받아들이지 않을까 두려워 어머니 소서노와 함께 많은 신하와 백성들을 데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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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신흥동에 남은 이토 히로부미의 흔적?한국의 근대가 시작된 그곳 인천 2023. 7. 3. 17:48
옛 부도여곽의 입구가 보이는 신흥시장 사거리에서 서쪽(바닷가 쪽)으로 조금만 걸으면 옛 남인천역, 즉 수인역이 있던 곳이다. 그 수인역에서 대해서는 이미 '수인선 협궤열차 추억 여행 I'에서 탈탈 털어 더 이상 설명할 것은 없고, 다만 앞서 싣지 못했던 남인천역의 사진을 올려본다. 수인사거리에서 한 블록을 이동해 다시 신흥동으로 와 보았다. 앞서 '인천 동본원사와 서본원사 & 신흥동 정미소'에서 말한 바와 같이 신흥동은 과거 가토(加藤) 정미소외 리키다케(力武) 정미소를 비롯한 대형 정미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창출된 넉넉한 주머니를 노린 수명루(水明樓)와 명월루(明月樓) 같은 고급 요정이 들어섰으니, 특히 수명루는 '인천 제일루'라 불릴 정도로 풍광 빼어난 곳에 자리한 최고급 요정으로 이름이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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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창(公娼) 신흥동 부도여곽과 숭의동 옐로하우스한국의 근대가 시작된 그곳 인천 2023. 7. 1. 20:20
이번에는 배다리를 지나 신흥동 신흥시장 쪽으로 가보았다. 일본인이 만든 인천 옛 공창(公娼) 부도유곽(敷島遊郭, 시키시마 유가쿠)의 흔적을 찾아서이다. 배다리에서 신흥시장 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배다리 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세인빌라 골목으로 들어가는 편이 가장 빠른데, 그 골목을 지나다 보면 아래와 같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와 조우하게 된다. 신흥시장은 1961년 인천시에서 선화동 1-49번지에 개설한 시장으로, 그전에는 이 일대에 일본인들이 개설한 공창(公娼) 개념의 윤락가가 있었다. 공창은 우리에게는 생소한 단어이지만 흔히 사창가라 부르는 사창(私娼)의 개념은 익숙하다. 공창과 사창은 국가나 공공단체가 행하는 관리의 힘이 미치는가(보건 위생 세금 등)의 유무에 따라 구별이 되는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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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 우각로 문화역사기행한국의 근대가 시작된 그곳 인천 2023. 6. 30. 21:23
앞서 말한 우각리에 있던 알렌의 별장, 그리고 금곡리에 있던 성냥공장 조선인촌주식회사의 이야기를 했지만 개항 후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인천의 배다리 동네는 내내 다운타운에서 밀려나 있었다. 당시 인천 다운타운의 첫번 째는 당연히 조계지 일대로, 관공서 외 일본인들이 운영하는 은행, 호텔, 상점, 병원 등이 밀집해 있었고 일본인 주택가들도 형성되었다. 그리고 두번 째로는 축현역(동인천역)에서 가까운 데라마찌(寺町, 지금의 신포동, 신흥동, 율목동에 두루 걸쳤던 동네)가 다운타운으로 자리했다. 까닭에 그들에 밀린 한국인들이 데라마찌 외곽인 배다리와 우각로(쇠뿔고개길) 근방에 자리잡게 된 것인데, 사실 그곳은 두 곳 모두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배다리는 때로는 바닷물이 밀려들어 주교(舟橋, 배다리)를 놓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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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인촌성냥공장과 인천 배다리성냥마을박물관한국의 근대가 시작된 그곳 인천 2023. 6. 29. 19:48
인천을 이야기할 때 성냥공장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1886년 인천에서 첫 생산된 러시아산 성냥은 가히 혁명적인 것으로서 머리에 붉은 인(燐)이 붙은 작은 나뭇가지를 곽(廓)에 대고 그으면 곧바로 불길이 일어났다. 얼마나 신기했을까? 말하자면 수천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단숨에 근대 문명시대로 온 것이니 그 경이는 혁명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리라 여겨진다. 그런데 살펴보면 원시시대에서 곧바로 근대로 온 것은 아니고 '부시'의 시대를 거쳤다. '부시'는 돌에 그어 불꽃을 일으키는 철편(鐵片)으로 영어로는 파이어스틸(Firesteel), 또는 파이어스트라이커(Fire Striker)라고 부른다. 즉 이 '부시'와 돌이 부딪힐 때 일어나는 불꽃을 재빨리 검불이나 탄화 숯과 같은 물질(Tinder)에 옮겨 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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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최대 이권을 주물렀던 선교사 알렌과 우각현 별장한국의 근대가 시작된 그곳 인천 2023. 6. 28. 07:34
이미 몇 차례에 걸쳐 말했듯 호러스 알렌은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에 앞서 입국한(1884년) 미국 북장로회 소속 선교사로, 개신교 한국 전래의 효시로 보아도 큰 무리가 없는 인물이다. 당시는 조선이 외국 선교사의 선교활동을 금하고 있던 때라 그는 공식적으로는 선교사가 아닌 미공사관의 직원 신분으로 활동을 했다. 처음에는 고종도 그를 경계해 초대 미국공사 루시어트 푸트에게 알렌이 정말로 선교사가 아닌가를 물었을 정도였는데, 푸트는 "NO. 그는 정말로 공사관의 무급 의사(Physician to the Legation with No pay)입니다"라는 준비된 답변으로 고종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알렌은 입국한 지 불과 1년도 안 돼 의심에서 벗어나 오히려 고종과 민왕후의 사랑을 담뿍 받는 존재가 되니, 그 배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