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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서 속의 UFO/야곱이 목격한 거대한 비행선
    성서와 UFO 2017. 5. 2. 04:16

     

    야곱은 구약성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인물로, 이삭의 아들이며 아브라함의 손자다. 성서에 따르면 야곱은 그 아비 이삭이 60세에 이르러 겨우 얻은 아들인데, 이는 이삭의 나이가 많아서가 아니라 그의 아내 리브가(레베카)의 불임에 기인한다. 이에 이삭은 하나님 여호와에게 자식을 간구하였고, 그 결과 리브가가 잉태를 하게 되는데, 우연찮게도 쌍둥이로 야곱은 그 중의 동생이었다. 


    위 이야기는 구약성서 창세기 25장에 나오는 내용을 축약한 것이다. 그런데 본인이 여기서 '우연찮게'란 표현을 쓴 것은 리브가의 임신에 작용하였을 '어떤 힘'을 말하고자 함이다. 


    본인의 블로그에서 내내 강조하는 것은 '여호와=외계인'이라는 등식이다. 따라서 '어떤 힘'이란 당연히 외계인이 행한 불임 해소 시술이 될 터이고, 그 시술 방법은 아마도 현대 의학에서도 흔히 사용되는 시험관 수정방식이 채택됐을 가능성이 크다. 


    이같은 인공수정의 방법에 대해서는 앞선 챕터인 '예수 승천 때 출현한 UFO의 모선'에서 이미 여러번 언급하였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경우를 예로 든 적이 있는 바, 아브라함에게서 추출한 조직세포를 배아 단계의 원시세포로 만들어 사라의 자궁에 착상시키는 방법을 썼을 것이라 추측하였다. 


    하지만 이삭의 아내 리브가의 경우는 그렇게 복잡한 방법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을 터, 늙은 사라의 경우와는 달리 리브가는 가임 연령이었기 때문이다. 본인이 시험관 수정방식을 들먹인 것도 우선은 그 때문인데, 그러면서 '우연찮게'라는 표현을 쓴 것은 그 결과로서 왕왕 출산되는 이란성 쌍둥이가 리브가의 경우에도 통용된 까닭이다. 



    그 쌍둥이 형의 이름은 에서(에사오)이고 아우는 야곱이니,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했다.(창세기 25:25-26)      


    히브리어로 발꿈치를 뜻하는 단어가 아게브(ageb)이므로 그 이름이 야곱(Yagob)이 됐다는 의미이리라. 하지만 그와 유사한 단어 가운데는 '사취하다' '찬탈하다'라는 의미의 agab가 있다는 것 또한 흥미롭다. 아닌게아니라 창세기에는 동생 야곱이 형 에서가 가진 장자의 권리(primogeniture)를 사취한 이야기가 길게 실려 있는데,(창세기 27:1-40) 야곱이 거대한 UFO와 조우하게 되는 것은 그가 형의 보복을 피해 동쪽 땅 하란으로 가는 도중에서의 일이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것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게로 삼고 누워 자더니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게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창세기 28:10-19)


    '야곱의 꿈' 또는 '야곱의 사다리'라 불리는 위 창세기의 대목은 보다시피 별 내용이 없어 보임에도 기독교에서 가히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독단적 견지', 이른바 도그마에 속한다. 그것에 신의 계시 또는 신탁으로서의 가치를 부여했음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그 도그마를 깨보려 하는 바,  거두절미하고 그 실체부터 단계적으로 파악해보자.  


    먼저 짚어볼 점은 여기에 등장하는 사다리가 매우 뜬금없다는 것인데, 게다가 그조차 꿈에 불과하다. 기독교에서는 이런 밑도 끝도 없는 꿈 이야기를 도그마로 묶고 믿으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믿으면 몰라도 합리적 이해에는 뭔가 많이 부족하다. 그 부족한 뭔가를 채워줄 고찰이 필요하다는 얘기이다. 


    이에 첫째로 살펴볼 점은 이것이 정말로 꿈인가 하는 것인데,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야곱은 꿈을 꾼 것이 아니라 자다가 깨어 밤하늘에 닿을 듯한 높은 사다리와 그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사자들, 그리고 그 사다리 위에 서 있는 하나님을 보았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그것들이 사라진 후 야곱이 비몽사몽에서 깨어나 그곳에 머물렀던 거대한 물체, 즉 하나님의 집을 인식한다는 문장으로도 증명된다.  


    둘째로 살펴볼 점은 그가 목도한 하늘에 닿을 듯한 긴 사다리는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인데, 단언커니와 이는 저들 UFO의 거대한 모선으로부터 내려진 긴 트랩임이 분명하다. 야곱은 단지 그것을 밤에, 그리고 누운 채로 보았으므로 머리 위에 펼쳐진 비행선의 평탄한 바닥이 검은 하늘인 양 보였던 것이며, 비행선 출입구로부터의 불빛으로 인해 긴 트랩을 오르내리는 천사들과 출입구 쪽에 서 있는 여호와의 모습을 접하고, 또 육성을 듣게 되었던 것이다. 


    그 다음 설명은 이제 불필요하다. 



    야곱이 올려다 보았을 하늘

    야곱은 이같은 UFO를 '하나님의 집'이라고, 그리고 트랩이 내려진 문을 '하늘의 문'이라고 생각하였다.                                                             

      

    말한 바 대로 기독교에서는 위 내용을 '천국에 이르는 계단을 야곱에게 꿈으로써 보여준 것'이라는 도그마로서 묶었다. 까닭에 이 꿈 역시 역대 많은 화가들의 붓끝을 거쳐갔는데, 그림에서는 한결 같이 하늘에 닿은 높은 사다리나 계단을 오르내리는 날개달린 천사들이 등장한다. 꿈의 내용이 그러한즉 그림의 내용 또한 그러할 것은 당연한 일일진대, 그 그림들을 보노라면 나는 한결같이 다음과 같은 의문에 빠져든다. 


    날개 있는 천사들이 왜 굳이 힘들게 사다리를 오르내릴까? 그리고 저 천사의 날개는 각종 폭풍우가 난무하는 하늘에서 과연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까? 



    니콜라 디프르가 그린 '야곱의 사다리'  15세기, 프랑스 아비뇽 프디 팔레 미술관 소장

    (천사의 날개나 사다리 중, 둘 중의 하나는 불필요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마르크 샤갈의 '야곱의 꿈'. 20세기, 프랑스 국립 마르크 샤갈 성서 미술관 소장

    (초현실주의 작가답게 샤갈의 그림에서는 천사가 사다리를 껴안고 있거나 둥둥 떠다닌다. 나는 이 그림을 좋아하는데, 그림 왼쪽의 천사들은 폭풍에 날리기도 하고, 안 날리려 사다리를 붙들고 버티는 반면, 오른쪽 UFO를 탄 이는 천상에서 아래를 여유롭게 내려보는 것이 재미있어서이다. 야곱은 아무 것도 모른 채 잠만 자고..... 물론 나 혼자만의 해석이다. ^^)


    벧엘 풍경


    벧엘 풍경(혹시 야곱이 잠을 잤던 곳?)


     * 사진 및 그림의 출처: Google Jp Images

     
    성서의 불편한 진실들
    국내도서
    저자 : 김기백
    출판 : 해드림출판사 201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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