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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짜 이강석 사건과 가짜 김용태
    그리 멀지 않은 옛날의 우화 2025. 6. 29. 19:48

     

    소시적 즐겨 읽던 삼성당 세계문학전집이라는 소설책이 있었다. 볼륨이 상당했던지라 전부를 다 읽지 못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책에 손 때를 묻혔는데, 지금 기억에 남는 것은 단 두 권뿐이다. 그 첫 번째는 프랑스 작가 스탕탈의 <적(赤)과 흑(黑)>이고, 두 번째는 러시아 작가 막심 고골의 <검찰관>이다. <적과 흑>은 영화로도 재미있게 보았는데, 그 주인공들 역시 기억에 남는다.

     

     

    1964년 영화 <적과 흑>에서 레날 부인 역의 다니엘 다류
    1997년 영화 <적과 흑>에서 레날 부인 역의 카롤 부케
    1997년 영화 <적과 흑> 줄리앙 소렐 역의 킴 로시스투아르트

     

    하지만 오늘 말하려는 것은 막심 고골의 <검찰관>이다. 원래 1830년대 희곡으로 쓰인 이 소설의 내용은 아래와 같이 단순하다. 

     

    「20대 청년 플레스타코프는 도박으로 돈을 다 잃고 빈털터리가 되어 시골 여관에 나타나 숙박비도 못 내고 있는데, 읍장이 그를 중앙정부에서 밀파된 검찰관으로 오인하여 융숭히 대접한다. 부패한 관리들이 자신을 검찰관으로 떠받들자, 그는 이들을 마음껏 우롱하기로 한다.

     

    학교 공금을 착복하는 장학관, 엉터리 재판으로 백성들에게 뇌물을 요구하는 판사, 약품과 양식을 횡령하는 자선병원 원장, 뇌물을 받아먹는 경찰서장 등을 차례로 우롱하고 읍장의 아내와 딸까지 희롱한 후, 뇌물로 받은 돈을 호주머니에 두둑이 채우고는 이들을 비웃는 편지를 남기고 유유히 사라졌다. 뒤늦게 속은 것을 안 지방 관리들이 분해서 어쩔 줄 모르는데 이번에는 진짜 검찰관이 나타나 이들을 아연실색하게 한다.」 (법률신문 시놉)

     

    <검찰관>은 1836년 상뜨 페테스부르크에서 초연됐고, 이후 니콜라이 1세 황제도 관람한 후 공감을 표했다고 한다. 하지만 고위층을 희화화한 이 연극이 입소문을 나며 서민들까지 관람대열에 서자 결국 공연 금지를 당했다.

     

     

    2018년 수원대 러문학과에서 공연한 검찰관 포스터

     

    <검찰관>과 같은 일이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던 바, 그것이 1957년 일어난 유명한 '가짜 이강석 사건'이다. <법률신문>이 소개한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1957년 8월 30일 한 청년이 경주경찰서에 나타나 자신이 대통령 이승만의 양아들인 이강석이라고 소개하면서 "아버지의 명을 받고 경주지방 상황을 살피러 왔다"고 거짓말했다. 당시 경주경찰서장은 '대통령 각하의 아드님께서 여기까지 와주셔서 소인 한평생의 영광입니다'라고 극존칭을 써가며 온갖 아첨을 했다.

     

    이강석을 사칭한 강○○은 경주경찰서장의 극진한 대접에 경호차까지 제공받아 경주를 관광하고 난 후, 영천경찰서에서도 마찬가지의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 경북도지사에게 가짜임이 들통났다. 그의 아들이 이강석과 서로 안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강○○은 가짜 행각 3일 만에 사기죄 등으로 체포되었다.

     

    그는 "고교 졸업 후 가출해 떠돌아다니다가 '이승만의 양아들인 이강석과 닮았다'는 얘기를 자주 듣던 차에, 언젠가 서울에서 이강석이 헌병의 뺨을 치고 행패를 부리는데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을 보고 이를 한번 흉내 내본 것이며, 권력이 이렇게 좋은 것인 줄 비로소 알았다"라고 진술했다.

     

     

    가짜 이강석은 징역 10월을 먹었다.

     

    진짜 이강석은 원래 서울시장 이기붕의 아들이었는데, 대통령 이승만이 자식이 없는 데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노구가 되자 제 아들 강석을 양자로 밀어 넣고 대통령의 권세를 같이 향유하였다. 위의 '가짜 이강석 사건'은 당시의 호가호위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예(例)인데, 이 사건이 일어난 지 채 3년도 지나지 않아 4.19혁명이 일어나며 제1공화국은 몰락했다.

     

     

    진짜 이강석

     

    이때 이강석은 자신의 친부모인 이기붕과 박마리아, 그리고 동생까지 권총으로 죽이고 본인도 자살하여 세간에 큰 충격을 주었다. 1960년 일어난 3.15부정선거의 원흉이던 이기붕의 집은 오래전 4.19혁명기념도서관이 되었다. 이기붕 일가는 성난 시민들이 몰려오자 집단자살했으나 그 사망에 대해서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무엇이 있다. 이기붕 가족은 아들 이강석의 총에 의해 살해되고 이강석은 스스로 총을 쏴 자살했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나 그렇게 믿기에는 사건의 정황이 너무도 석연치 않다.  

     

     이기붕 일가 사망 미스터리

     

    계엄사의 발표대로 1960년 4월 28일 오전 5시 40분 이강석이 부모와 동생에게 먼저 총질을 하고 자신을 쏘았다면 3발의 총성이 나고 잠시 간격을 두었다 2발의 총성이 나야 하는데, 이날 발표는 잇달아 4~5발의 총성이 울렸다고 했다. 그런데,

     

    ▲다른 가족은 모두 한 발에 갔고 이강석만은 자신의 가슴과 머리에 2발을 쐈다고 했는데, 검시 결과 양쪽 다 단번에 숨을 거둘 수 있는 급소였다. 따라서 검시관은 1발을 쏜 후 머리나 복부에 다시 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전했다. ▲사건 당시 이무기 비서가 바로 옆방에 있었는데 사건 이후 홀연히 사라졌다. 그리고 그의 행적은 밝혀지지 않았다. ▲식구 중 어느 누구도 한 줄의 유서나 한마디 유언도 남기지 않았다.

     

     

    서대문 이기붕의 집
    이기붕의 집 세간살이를 끌어내 붙태우는 4.19혁명 때의 사진
    4.19도서관이 된 이기붕의 집

     

    위의 우화 같은 사건들을 다시 반추함은 엊그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 김용태에 관련한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의 젊은 국회의원 김용태는 5월 쌍권의 한덕수 대통령 후보 옹립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에서 김문수 후보를 지지한 공로로 얼떨결에 국민의힘 당대표(비대위원장)가 되었다. 이후 대통령 선거에서  김문수 후보가 낙선했음에도 그는 자리에 연연하는 늙은이 같은 행동을 보여 실망을 주었다.  

     

    이후로도, '계엄 공개 사과'라는 철 지난 물건을 팔겠다며 떠들거나, 서울시장이 마련한 만찬장에 참석한다거나, 옛 보스였던 이준석의 코치를 받는 듯한 태도를 보이거나 (107석 정당 대표가 5석 정당 보스의 코치를 받는다?) 하는 이해되지 않은 행동을 보였다. 그러다 최근 이재명이 부른 자리에서 대통령 이재명이 5년 임기를 마치면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 것을 마치 젊은 당대표의 용기와 위상을 과시한 양 으스댔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 발생했던 연장선상의 죄가 있으면 당장 재판을 받아야지 김용태가 무슨 자격으로 5년 후를 말하는 것일까?)

     

    그리고 9월까지 해먹지 못한 당대표 자리가 못내 아쉬워서일까, 지금은 지방 순시에 나서 각 기관장들을 만나며 대통령 놀이에 빠져있다. 그건 나중에 제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해도 늦지 않은 일일 터, 당장은 그 무엇보다의 현안인 국회 법사위원장 자리를 놓고 민주당과의 그야말로 실전과도 같은 싸움을 벌여야 될 때임에도 대통령 놀이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것인데, 급기야 김용태를 사칭한 자의 노쇼 사기 사건이 일어났다. 김용태와 그 일행의 지방 순시를 이용한 숙박업소 노쇼 사건에 피해를 입은 충남과 통영의 펜션 업주들이 피해를 호소하며 알려지게 된 일이다. 

     

    이에 국민의힘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은 28일 자신의 SNS에 이 같은 상황을 알리며, "(사기범이) 제 서명을 위조한 결제확인서까지 첨부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속지 마시라"는 메시지를 냈다. 김 위원장이 첨부한 사진을 보면, 국민의힘 당직자를 사칭한 것으로 보이는 사기범은 문자로 "결재를 받았다. 현장에서 법인카드 결제하겠다"며 결제확인서를 업주에게 보냈기도 했다는데, 이것저것을 떠나 이 모든 것은 모두가 김용태의 부적절한 행동에서 기인된 것이다. 남은 시간은 얼마 안 되지만 제발 야당 당대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 앞길이 구만리 같은 창창한 젊은이이기에 드리는 고언이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이 그러고 다닐 때냐? 그리고 국힘 의원들도 무슨 귀족처럼 굴지 말고 이제는 제발 야성(野性)을 회복해 주길 바란다. 오죽하면 민주당에서조차 김민석 청문회에 있어서도 앉아서 탁상공론만을 일삼는 꼴이 우스웠는지, "(한심하다) 우리라면 벌써 중국 칭화대에 가서 관련 서류 검토를 마쳤을 것이다"라는 말을 했겠는가? 낙마시킬 건수가 차고도 넘침에도, 자살한 부부의 계좌와 주변인들은 찾아보지도 않은 채, 그 많은 채권자들을 한 명 만나 보지 않은 채, 칭화대에는 가보지도 않은 채 그저 감 떨어지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낙마를 기대하고 있으니 그저 가여울 뿐이다. 

     

     

    국민의힘이 공개한 당직자를 사칭한 사기범이 펜션 업주에게 보낸 결제확인서 / 김용태 비대위원장의 서명이 돼 있다.
    얼굴값도 못하는 김용태 비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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