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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른바 포경이라는 것에 대하여
    성서와 UFO 2019. 2. 23. 07:17


    작년 12월 26일 오전, 일본은 요시히에 관방장관의 담화를 통해 국제포경위원회(IWC/Internatinal Whaling Commission)의 탈퇴를 전격적으로 선언했다. 이에 포경을 반대하는 대표 국가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외무 장관 명의의 즉각적인 비난 성명을 내었고, 영국 환경부 장관을 비롯한 각국의 비난 성명이 이어졌다.


    일본의 탈퇴 결정은 작년 9월 14일 브라질에서 열린 IWC 총회에서 자신들이 제출한 제한적 상업 고래잡이 허용안이 부결된 데 따른 조치였다. 당시 한국 정부는 기권표를 행사했는데, 이때 기권을 한 나라는 한국과 러시아뿐이었다고 한다.(러시아는 소신으로, 한국은 특유의 눈치보기로)





    바다 고기를 즐기기는 하지만 고래는 웬지 친근감을 주는 동물이라 이후 잠시 이에 대한 국내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그 반응이 의외로 생각 밖이었다. 우리나라 역시 일본을 크게 비난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고래 잡이를 옹호하는 형국이었다. 물론 일본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일 만큼 적극적인 반대를 표명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개는 대상의 덩치 차이가 있을 뿐 고래를 잡는 것과 낚시를 하는 것이 뭐 다를 게 있냐는 식이었다. 덩치를 논하자면 우리가 좋아하는 참다랑어(일반적으로 참치라 불리는)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그중 잘 정리된 글을 하나 올려보면 다음과 같다.


    '포획 수 관리에 의해 개체수와 생태계를 제대로 유지할 수 있다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포경 반대 국가는 그에 대한 논리적 반대도 못하고 '포경은 구식', 또는 불쌍하다는 감정적 이유, 즉 자신들의 가치관에 상반된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반면 반대론자의 정리된 입장은 '짧은 인간의 미감(味感)을 만족시키기 위해 애꿎은 동물 하나가 오랜 시간 고통 속에 몸부림치다 죽어야 하는가'이다. 




    IWC (International Whaling Commission)

    출처: https://hse30.tistory.com/274 [정원]
    IWC (International Whaling Commission)

    출처: https://hse30.tistory.com/274 [정원]


    나의 입장은 좀 애매하다. 양쪽 말에 다 일리가 있기 때문이니, 고래 고기를 한번 맛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도(아직 한번도 못 먹어봤다) 작살을 맞고 다량의 피를 흘리며 괴로워 하는 고래를 떠올리면 그런 생각이 싹 사라져버린다. 거대한 흰 고래를 잡으려는 외짝 다리 에이 허브 선장의 집념을 그린 소설 모 비딕(Moby Dick), 그리고 그것을 영화화한 '백경(白鯨)'과 '하트 오브 더 씨(In the Heart of the Sea)'를 두루 훑었는데, 영화에서는 모두 거대한 흰 향유고래가 동물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 고래의 눈은 백상아리처럼 사납지 않고 동네 아이의 눈처럼 선량하다.






    아무튼 이것이 나의 포경에 대한 확실치 못한 입장이지만, 또 다른 포경에 대해서는 그 입장이 견고하다. 사실 그것이 내가 글을 쓰게 된 동기로서 그 다른 포경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내가 오늘 포경에 대해 글을 쓰게 된 것은 당연히 앞의 글 '여호와는 왜 모세를 죽이려 했는가'에 대한 부연일 터이다. 따라서 당연히 그 할례라는 것이 사람을 죽일 만큼의 무엇이 있는가를 설명해야겠지만, 그에 앞서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여호와는 왜 그렇게 할례에 집착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 여호와의 집착을 다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연약이 되려니와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창세기 17:10-14)


    이에 히브리인들은 예외 없이 할례를 받았으며, 받지 않는 자와는 통혼(通婚)도 하지 않는다. 


    야곱의 아들들이 그들에게 말하되, 우리는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할례 받지 아니한 사람에게 우리 누이를 줄 수 없노니 이는 우리의 수치가 됨이니라. 그런즉 이같이 하면 너희에게 허락하리라. 만일 너희 중 남자가 다 할례를 받고 우리 같이 되면 우리 딸을 너희에게 주며 너희 딸을 우리가 데려오며 너희와 함께 거주하여 한 민족이 되려니와 너희가 만일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우리는 곧 우리 딸을 데리고 가리라.(창세기34: 14-17)


    그런데 여기서 포피를 베어 언약의 징표로써 삼는 것은 아무래도 좀 해괴하며, 나아가 엽기적이며 징그럽기까지 하다. 징표를 삼을 게 없어 남자의 성기를 징표로 삼나 하는 생각도 든다. 차라리 팔이나 다리 같이 보이는 곳에 문신을 새기거나 불 도장과 같은 징표를 남기는 게 '언약의 표징'으로서는 더 적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수반된다. 그 옛날 여호와가 카인에게 내린 징표처럼. 하지만 무슨 영문인지 여호와는 굳이 좆 껍데기 제거를 요구하는데, 그것이 언약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인지 못내 아리송하다. 또 이 과정에서 여자는 자연스럽게 언약에서 배제된다.(그야말로 극심한 성차별이다)


    하지만 그것이 거역할 수 없는 여호와의 명령이니 만큼 히브리인들은 모두 할례를 받았고, 그 의식은 지금까지 이어져 유대인들은 예외없이 할례 의식을 거친다. 쉽게 말해 포경수술을 받는다는 것인데, 여기서 한가지 신기한 것은 세계에서 포경수술이 일반화된 나라는 오직 이스라엘과 우리나라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생각할 수록 신기하고 의아스러운 일이다. 이스라엘이야 민족적 전통이니 그러려니 해도 우리나라는 왜 포경 수술을 해대고 있는 걸까? 우리나라도 여호와의 언약과 상관 관계가 있는 걸까?


    예전에 '25시'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지금은 외려 덜하지만 학창시절에는 내노라는 영화광이어서 당시의 헐리웃 키드들이 거치는 지방원정은 그야말로 다반사였다. 지방은 영화비가 싸서 라면 먹고 차비하면 조금 남는 경우도 있었고, 게다가 지방이 오히려 개봉이 빠른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공부할 새가 어디 있었겠냐만은 아무튼 그때 집적된 영화 상식들을 가끔 이 블로그에서 썰을 푼다. 아! 갑자기 사설이 길어졌다. 죄송....^^)


    '25시'는 루마니아의 작가 버질 게오르규의 동명의 화제작을 앙리 베르누이가 필름에 옮겼는데, 그 영화 속에서는 나치 독일군들이 남자들의 바지를 내려 조사하는 광경이 자주 등장한다. 포경인지 아닌지, 즉 유태인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것이니, 이것을 보더라도 유태인의 할례 전통은 면면히 이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영화의 스토리를 초 축약해 말하자면, 유태인으로 둔갑되어진 선량한 루마니아 농부 안소니 퀸이(마을 경찰서장이 미녀인 안소니 퀸의 아내를 차지하기 위해 그를 유태인으로 고발함으로써) 갖가지 역정을 거치다 마침내 자유인으로 아내와 재회한다는 것인데, 영화에서 강조되지는 않았지만, 장기간 독일군의 부역까지 한 그가(그것도 독일인의 조상인 정통 아리안족의 후예로 둔갑되어져) 자유인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할례를 받지 않은 비 유대인이기 때문이었다.(영화 속에서 안소니 퀸도 당연히 바지가 내려졌는데, 그때 검사장교의 표정이 애매모호했던 것을 보면 그 포피 상태도 애매모호했던 듯하다)




    두고 두고 회자된 '25시'의 라스트 씬

    '스마일'을 강요하는 신문기자의 요구에 부인은 고개를 떨구고, 남편은 웃는지 우는지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을 짓는다. 이 같은 주인공의 애매한 표정과 그가 안은 해맑은 아이의 표정이 컨트라스트됐는데, 그 노랑머리 아이는 주인공이 끌려갔을 당시 아내가 소련군에 겁탈당해 낳은 아이다. '스마일'을 강요하는 신문기자의 거듭된 요구에 결국은 우는 얼굴이 된 주인공의 표정이 이 영화의 유명한 엔딩 장면이다.



    이렇듯 유대인을 제외하곤 거의가 포경수술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다른 나라의 청소년들은 우리나라 청소년과 같이 포경에 대한 강박도 없으며 스트레스도 따로 받지 않는다. 당연히 비용부담에서도 자유롭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으니, 우리 때의 청소년들은 한참동안 고민하다 만만치 않은 돈을 마련해 병원을 찾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결국 군대에 가서 강제수술을 받았다.(여기서 강제라 함은 원치 않는 사람에게도 적용됐다는 의미다)


    * 흔히 군에서의 포경수술은 적어도 인턴 과정은 마친 군의관의 손을 거치는 걸로 알고 있지만, 실제 가위를 잡는 사람은 의무병과의 일반 사병들로, 당연히 그 솜씨 또한 무지무지 거칠었다.(고통이야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다) 아울러 위생상태도 엉망이어서 파상풍 감염 등의 피해를  입는 사람도 적잖던 시절이었다.


    전성기 때인 지난 8, 90년대 부모들은 남자 아기가 태어나면 의당 포경수술을 시켰다. 이에 산모 병동에서 신생아 포경수술 광고를 보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 그 광고들의 요지는 '고래는 신생아 때 잡는 게 가장 좋다'는 식이었다. 따로 입원 비용에 포함시키지 않고 서비스를 해주는 병원도 있었다.(그때는 요즘과 달리 산부인과의 경쟁이 치열하던 시절이었다)


    '신생아는 생후 8일에 포경수술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데, 그때가 생리적으로 출혈이 가장 적기 때문'이라는 가짜 뉴스들도 실제적으로 판을 쳤다.(필시 성서의 내용에서 따온 듯한) 그 8일이라는 날짜가 그대로 이행됐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때의 신생아들은 대부분 포경수술을 거쳤던 바, 신병교육대에서 겪는 또 다른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어찌됐든 행운아임에는 분명했다. 


    그들이 행운아라는 또 다른 이유가 아래 그래프 상에 존재한다. 그것은 영아 시절의 포경수술이 신생아 돌연사 증후군(SIDS/Sudden Infant Death Syndrome)을 야기시키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되기 때문인즉, 아래 그래프는 놀랄 만한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이 그래프는 신생아의 남아 사망률이 여아의 그것보다 높다는 사실에 주목한 영국 셰필드 대학의 에란 엘하이크 박사가 여러 데이터를 바탕으로 선형 회귀 분석을 한 결과이다. 





    그래프는 신생아 포경수술 비율(Male neonatal circumcision rate)과 신생아 1000명 당 SIDS 발병률 사이의 상관계수가 0.7임을 나타내는데, 이는 '지능과 학업성취도와의 비교 상관계수'와 일치하는 것으로서 그 상관도가 매우 높음을 말해준다. 엘하이크 박사의 연구 결과는 또 다음과 같다. 

    영국 셰필드대 에란 엘하이크 박사는 영아 사체 부검이 의무인 15개 나라 데이터를 가지고 포경수술 비율과 신생아 돌연사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조사했습니다. SIDS로 사망하는 젖먹이 중 약 60%가 남자 아이니까 아들과 딸의 차이에 대해 의문을 품었던 겁니다. 엘하이크 박사가 전 세계 15개국 데이터를 토대로 선형 회귀 분석을 실시한 결과 아래 그림처럼 나타났습니다.

    출처: https://kuduz.tistory.com/1076 [kini'n creations]


    신생아는 전체 혈액이 11온스(약 312g)에 불과한데 포경수술을 받을 경우에는 1~2온스(약 28~57g)의 피가 출혈로 빠져나가게 되고, 2온스를 기준으로 하면 이는 전체 혈액의 18.3%라는 많은 양이 일거에 소실되는 셈이다. 이것을 성인 남자와 비교하면 전혈 헌혈을 연속으로 2, 3번하는 것과 같다. 몸에 피가 부족하면 혈압이 떨어지게 되며 이를 상쇄하기 위해 심장은 많은 운동을 해야 하는데, 그와 같은 비정상적인 빠른 심박동은 아직 심장이 제대로 발달되지 못한 아기들에게는 심각한 사항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이에 엘하이크 박사는 '포경수술이 10% 늘어나면 신생아 1만 명 당 1명 꼴로 SIDS 발병율이 올라가는 것'이라며 신생아 포경수술 위험성을 강조한다.(* 이상 블로그 Kin'in Creations의 그림과 글 참조) 더불어, 신생아 때는 통증을 모른다는 말과는 오히려 엄청난 통증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이것이 외상후 증후군(트라우마)로서 자리잡는다는 주장 또한 제기됐다.





    지금은 우리나라도 포경수술의 무용성을 깨닫고 있는 듯하지만,(병적 치료 외에는 정말로 할 필요 없는 짓이다) 아직도 이것을 성인통과 의례로 여기는 분위기가 남아 있다. 이런 것을 보면 그동안의 잘못된 관행이 우리의 인식 속에 얼마나 뿌리 깊히 박혔는가를 알 수 있는데, 한 가지 다행은 군대에서의 수술이 지금은 아예 사라졌다는 점이다. 적어도 강제수술로부터는 해방됐다는 얘기다.


    그런데 대체 누가 이런 발상을 했을까? 우리 조상네들은 그런 것 안 했어도 얼마든지 애 잘 낳아 잘 살았고, 포경수술이 유행하지 않던 5, 60년 대의 인구 증가율은 역대 최고였다. 아니 오히려 그때는 그 같은 인구 증가가 국가의 큰 골치거리였을 정도다. 그래서 알아보니 우리나라에 포경 수술을 처음 들여온 사람은 한국전쟁 당시의 미국 군의관이었다고 한다.(필시 크리스챤 군의관이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의 미국 사람들은 한국의 높은 포경수술율에 깜짝 놀란다고 하니, 웬지 놀림을 당하는 기분이다.


    이에 관한 그래프는 따로 존재하지 않겠지만 억지로 만들어보자면 지난 8, 90년 대의 기독교 인구 팽창율과 포경 수술의 증가율도 거의 비슷해 보일 것으로 여겨진다. 우연의 일치일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독교 인구의 감소와 함께 수술도 줄었다. 어찌됐든 우리는 그동안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한 셈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할례는 저들 외계인이 자신들과의 동질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자신들의 후예들(아울러 그들에 동조하는 자들), 즉 자신들 세력에 대한 특별한 표식의 부여였다.(쉽게 이해하자면 과거 조폭들이 자신들의 몸에 요란한 낙서를 해댄 것과 유사한 경우로 보면 될 것 같다) 우리나라는 하등의 상관도 없는 그들의 의식(儀式)에 덩달아 놀아났던 셈이고.....


    오랜 시간에 거쳐 개체변이가 고착화 된 것인지, 원래 생물학적으로 포경이 없는지 그것까지는 모르겠으되 그 옛날 이 지구에 왔던 외계인들은 포경이 아니었고, 따라서 그들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 만든 아담 역시 포경이 아닐 것이며 그로부터 이어졌던 그 후손들도 당연히 그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다수의 지구인들과 교합하면서 인류(지구 상에서 진화한 인류)가 가지고 있던 포경이 우성으로 되살아났고,* 이에 동질성 회복이 시급한 외계인 여호와는 할례라는 해괴한 의식을 행하게 된 것이었다.


    *노아 이후 불과 2~3대만에 도시를 이룰 만큼 불어난 폭발적인 인구의 증가를 상기하자.

     마찬가지로 유전학적으로 해석하자면 개중에는 아주 드물게 포경이 아닌 자도 존재했으리라.


    그런데 이 같은 할례는 동질성 확보라는 본래의 목적을 벗어나 때로는 집단 살인의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하였으니, 다음 회에는 성서에 기록된 그 교활하고 잔인한 집단 학살의 현장을 찾아가 보기로 하겠다.


    * 그림 및 사진의 출처: google jp.


    성서의 불편한 진실들
    국내도서
    저자 : 김기백
    출판 : 해드림출판사 201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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