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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가 외계인의 자식이 아닐 경우 생겨날 문제점들(IV)
    성서와 UFO 2019. 3. 14. 06:22


    중·근세에는 하나님도 예수의 그늘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당시를 풍미하던 삼위일체론의 정점에 선 건 오히려 예수였는데, 그들이 빌려온 구약(유대교)의 하나님보다 자신들이 만든 신약의 하나님 예수를 더욱 사랑했음은 아마도 인지상정과 같은 것이었으리라.(동로마 제국과 서유럽 제국에서 가져다 쓴 유대의 구약은 요즘으로 치면 심각한 저작권법 위반이다)


    하지만 이상은 그들만의 잔치일 뿐 일반 민중들은 여전히 뭔가 뭔지를 알 수 없었다. 요즘 교회에서 흔히 행해지는 세뇌식 주문과 마찬가지로 예수를 믿으면 천당 가고 복받는다는 식의 분위기에 무턱대고 믿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를 냉소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또한 허다했다. 그 대표적 일례가 앞서 I편에서 언급한 데카메론에 실린 마리아의 일화로서, 그 책에서 마리아는 성모가 아닌 천사 가브리엘과 간통한 부정한 여인이었다. 물론 예수는 그들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일 뿐이다.




    15세기 프랑스 파리쉬 성당의 그림은 웬지 에로틱하다.



    단테의 신곡(神曲)에서는 예수를 안 믿으면 지옥에 가 무지 고생한다. 하지만 신곡에 비겨 인곡(人曲)이라 불려지기도 하는 보카치오의 대서사시 데카메론에서는 소설의 무대가 되는 피렌체의 한 별장에서 7명의 숙녀와 3명의 청년이 모여 질펀한 음담패설을 쏟아내는데, 그 속에서의 천국은 조크의 대상이며 성직자들은 남녀를 떠나 그저 발정난 개에 지나지 않는다.


    데카는 그리스어에서 10이란 뜻으로서 소설은 제목 그대로 소설의 주인공들이 떠든 10일간의 이야기다. 그들이 별장에 모인 것은 당시 유럽 사회를 휩쓸던 공포의 흑사병을 피해서였는데, 따분하다 보니 자연히 모여서 이것저것 재미난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었고, 또 그러다 보니 자연히 음담패설을 늘어놓게 된 것이었다.(그래서 그 책은 언뜻 야설집처럼 보이지만 각 이야기마다 촌철살인의 골계미를 발산한다)



    1638년 판 데카메론. 희귀한 17세기 에디션이다.


    영국 화가 죤 와일러가 책 속의 분위기를 그림으로 옮겼다.(1916년 작 'a tail from the Decameron)



    이야기는 10일 동안 하루 10가지씩 이어졌는데, 흑사병이라는 세기말적 분위기 탓인지 거침이 없었고(곧 죽을지도 모르니 즐기고나 가자는 식이다) 왕이나 귀족, 독실한 기독교 신자나 성직자의 이중성 또한 마구잡이로 까발려졌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식이었다.


    * 아브라함이라 불리는 한 유대인은 주변 기독교인의 끈질긴 권유에도 자신의 종교인 유대교를 고집한다. 그러자 그 기독교인은 아브라함에게 기독교 세계를 둘러볼 기회를 준다. 당신이 우리의 고결한 진리의 세계를 경험하고 나면 반드시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이에 아브라함은 교황청과 성직자가 사는 곳을 둘러보게 되는데, 아니나다를까, 그 세계를 경험하고난 아브라함은 즉시 기독교로의 개종을 선언한다. 자기가 본 세상은 온갖 협잡과 사기, 매춘과 남색 등이 드글대는 세상이었음에도 이런 세상이 망하지 않는 것은 진실로 하나님이 계셔서 지켜주기 때문이라는 것!


    * 한 수도원에 있는 젊은 수도사가 동네 처녀를 꼬셔 한바탕 일을 치른다. 그리고 이 여자를 처리할 궁리를 하는데, 그 방법은 여자를 수도원장의 집무실 앞에 세워두는 것이었다. 아니나다를까, 이 여자를 본 수도원장도 바로 이 여자를 따먹는다. 그러자 이때 나타난 수도사는 '아직 어려 이런 수도의 방법이 있는줄 몰랐다'며 순진한 척 짐짓 능청을 떨고는 자신도 이 방법을 배우겠다고 나선다. 그래서 그들은 이후 줄곧 함께 섹스를 즐기게 된다.


    * 돈을 밝히던 한 성직자가 어느 날 부자집을 방문했다가 돈을 욹어낼 찬스를 잡는다. 그 부자가 좋은 포도주를 내오며 '이 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좋아하실 만한 술'이라는 말을 뱉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성직자는 그 말은 신성모독이라며 종교재판에 회부시켜 화형을 시키겠다 협박한다. 당연히 부자는 살려줄 것을 빌며 제 발로 거금을 들고와 바친다. 성직자는 목적을 이루었지만 그대로 가기는 속이 너무 보이는지라 자신의 수도원에 들어가 일정 기간 기도하며 회개할 것을 명한다. 이렇게 해 부자는 기도원에 가게 되나 거기서의 비리를 보고 이를 역으로 협박해 돈을 되찾아 집으로 돌아온다.


    * 장사를 마치고 돌아오던 청년이 귀향길에 세 남자를 만나게 된다. 청년은 그 남자들과 길동무를 하게 되는데, 이때 그 남자 중의 한 명이 독실한 기독교인임을 강조하며, 당신은 평소 어떤 기도를 하는가를 묻는다. 그러자 청년은 여행길의 잠자리가 편하기를 기도한다고 답하는데, 그 순간 남자들이 본색을 드러낸다. 그들은 바로 그의 돈을 노린 강도였던 바, 청년의 돈은 물론 입던 옷까지 빼았아버린다. 그리고는 오늘 밤 너와 우리 가운데 누가 더 좋은 잠자리를 갖게 될는지(과연 네 기도가 통하는지) 한번 보자는 더티한 농담까지 던진다. 청년은 그렇게 알몸뚱이로 헤메다 다행히 한 아름다운 과부 여인의 집에 묵게 되는데, 이 여인은 청년이 죽은 제 남편과 닮았다며 융숭한 대접을 한다. 하룻밤을 같이 보낸 것은 물론이었다. 다음 날 청년은 어떤 성을 거치게 되는데, 거기에 강도들이 붙잡혀 있었다. 그들은 곧 교수형에 처해질 운명이었다.


    * 한 룸펜 청년이 우연히 수녀원 정원사로 있던 자의 푸념을 듣게 된다. 9명 수녀들의 성격이 너무 까다로워 도무지 비위을 맞출 재간이 없는 까닭에 결국 그만 두고 말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청년은 오히려 여자들 사이에서 일하면 즐거울 것도 같고 또 이 기회에 취직도 할 겸 수녀원을 찾는데, 그냥 가면 채용이 힘들 듯한지라 한 가지 꾀를 낸다. 벙어리인 척해 수녀들의 동정을 사자는 것이었다. 운좋게도 그 꾀가 통해 그는 수녀원의 정원사로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그것이 결코 운이 좋았던 게 아니니 호남이었던 정원사 청년에 흑심을 품은 수녀들이 하나 둘 그를 잠자리에 끌어들인다. 벙어리이니 비밀이 새나갈 염려가 없다 여겼던 것인데, 급기야는 원장 수녀마저 그를 불러들인다. 그 10명의 수녀들을 밤낮없이 상대해야 했던 청년은 마침내 일을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다시 꾀를 내 원장 수녀에게 말한다. 수녀원에서 일하다보니 놀라운 신의 은총으로써 말을 하게 되었노라고. 그러자 비상이 걸린 수녀들은 그를 붙잡기 위해 지혜를 짜내는데.....


    책에는 이런 식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이상은 모두 서두에 불과하니 나머지 이야기는 얼마나 재밌겠는가) 그리고 여섯 번 째 날, 마지막 이야기로 앞서 말한 가브리엘과 마리아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그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 한 교회에 새로온 말 잘하는 수도사가 선남선녀 앞에서 설교 말씀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 역시 돈을 밝히는 성직자였던지라 노골적으로 많은 헌금을 요구하는데,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하는 게 아니라 제법 그럴 듯한 보상을 내건다. 헌금이 많이 걷혔을 경우, 마리아 처녀에게 다녀갔던 가브리엘이 그 당시 떨어뜨리고 간 천사의 날개 깃털를 보여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천사가 왜 깃털을 빠뜨리고 갔는지 알죠?'라는 농담을 곁들인다. 날개 깃털이 빠져나갈 정도의 격렬한 섹스 현장에의 증거품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그것을 탐낸 한 청년이 수도사의 방에 몰래 들어가지만 아무리 찾아도 깃털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헌금에 만족한 수도사는 그 깃털을 음흉스러운 미소와 내보이면 자랑스럽게 떠들었다. "이것이 내가 어렵게 입수한 천사 날개 깃털입니다. 마리아 처녀의 방에 떨어뜨리고 갔던 바로 그 가브리엘의 것이죠." 사람들은 신기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커다란 거위 등 털에 다름아니었다.



    지오바니 보카치오(1313-1375)


    소설의 내용이 함축된 데카메론의 20세기 출간본 표지


    온라인 희귀도서 플랫폼 Abebooks에 나온(us$8.95) 1931년 뉴욕 출간본. 어찌 보면 이 표지가 더 잘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와 같이 골계미 풍부한 이야기들을(그것도 100개 씩이나) 보카치오가 전부 창작해냈다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그는 필시 시중에 떠도는 여담들을 채록해 살을 붙였을 터, 이것을 보면 당시 사람들이 성모 마리아라 불리는 성(聖)처녀의 임신을 어떻게 여겼는지 쉬 알 수 있다. 나아가 예수의 아버지가 가브리엘이라는 생각을 가졌을 것임 또한 쉬 짐작할 수 있다. 그 짐작을 앞서 쓴 글 '정조대에 관한 진실'에서 빌려보자.


    그 글에서 언급한 바도 있거니와 파리 클뤼니 박물관은 한때 정조대 박물관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근세기 정조대를 전시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단 1개만을 남기고 모두 폐기되었다. 정조대는 실재했던 물건이 아니라 픽션의 산물이며, 그 물건의 거의 100%가 신흥 자본가들의 변태 취미에 편승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써 만들어진 것이라고 판명났기 때문이다. 그 판단의 한 근거가 된 것이 바로 이 데카메론이라는 책이다.


    데카메론에는 십자군 전쟁에 참전했던 군인이나 기타 원정을 나갔던 왕과 귀족, 그리고 긴 장사길을 떠난 상인의 이야기들이 수도 없이 등장하지만 그 내용들 중에 정조대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즉 이 책이 당시의 시대상을 알게 해주는 바로미터가 된 것이니 위의 이야기들이 단지 창작의 소산이 아님을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을 터이다.



     폐기되는 클뤼니 수도원의 정조대


    중세 유물이 전시된 파리 클뤼니 박물관 (☞ '정조대에 관한 진실' 참조)  



    지금까지 중·근세기 민초들의 눈에 비친 예수의 모습을 살펴보았는데, 내가 이글을 쓴 이유는 우리의 일반적 생각 달리 당시 민초들의 생각 속의 예수 모습은 그리 성스럽지 않았음을 말하고자 하는 데 있다. 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성스러운 예수의 모습은 오직 초기 기독교에서 만들어낸 기득권의 허상일 뿐인데, 그것이 지금까지 종교의 이름으로 이어져 오고 있을 따름이다.


    아래의 '만종(晩鐘)'과 같은 그림을 보면 근세의 민초들에게도 기독교적 사고가 깊은 뿌리를 내린 듯보이나 내가 보기에 그것은 오직 통치 이데올로기화한 종교에 이용당한 연약한 민초의 모습에 불과할 뿐이다. 이삭줍기로 연명해야 했던 그들에게 있어(애써 수확한 농작물은 지주 귀족들에게 빼앗기고) 그래도 기댈 곳은 예수님밖에 없었을 것이니 이 또한 시대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밀레의 '만종(l'Angelus)'



    * 프랑스 화가 장 프랑스와 밀레가 1859년에 그린 이 그림은 밀레의 고향 플로방스의 한 부부가 멀리 성당에서 들려오는 저녁 종소리에 일손을 멈추고 기도를 올리는 장면을 묘사한 명작으로, 제목 안젤루스는 '삼종(三鐘)미사'란 뜻이다. 여기서 삼종이란 처녀 마리아의 잉태, 즉 예수 강림의 신비를 민중들에게 주지시키기 위해 전통적으로 하루 3번 종을 울리게끔 한 것인데, 사람들은 그 종소리가 울리게 되면 무조건 배포된 기도문을 읊으며 기도를 해야 했다. 안젤루스는 그 라틴어 기도문의 첫 단어이기도 하다.


    * 그림을 보면 자연적으로 느끼게 되는 뛰어난 서정성과 사실성에 감탄하게 되는데, 그것은 그 부부의 수확물이 작은 바구니 속의 감자라는 것도 한몫을 한다. 그런데 그의 첫 그림에는 그것이 감자 바구니가 아니라 죽은 아기를 넣은 작은 관이었다고 한다. 농부 부부는 봄의 수확을 고대하며 감자를 심었으나 그예 아기는 굶어죽었던 것이니, 우리가 느끼게 되는 감동은 어쩌면 그의 밑그림에 기초한 것인지도 모른다.(그림의 지나친 사실성에 경악한 밀레의 친구가 아기의 관을 바구니로 고쳐 그리게 했다나 뭐라나.... 그런데 최근 X-ray 감정 결과 그 밑그림에서 아기의 관 비슷한 것이 발견됐다나 뭐라나..... 그림의 제목 만종(晩鐘)은 '저녁 종소리'라는 의미인데 일본 마츠카타 컬렉션에서 붙였다나 뭐라나.....(☞ '미학/ '칼레의 시민', 우리 것도 진짜다' 참조)


     

     밀레의 '이삭줍기(Des Glaneuses)'


    * 이 그림에서는 언뜻 추수 후의 한가함이 느껴지지만 그건 그야말로 한가한 소리다. '이삭줍기'는 속에는 그 주운 이삭으로 한 겨울을 나야 되는 민초들의 절박함이 담겨 있다. 게다가 이같은 이삭줍기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 관청에서 허락한 극빈의 노인이나 어린 아이, 혼자 사는 여인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인데, 오른 쪽 여인은 그나마 힘겨워 엉거주춤 허리를 펴고 있다. 사진을 더블클릭하면 오른쪽 멀리 이삭줍기를 감시하는 말 탄 관리의 모습도 살필 수 있으며 왼쪽으로 산더미처럼 쌓인 건초를 확인하는 관리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그 위로는 건초를 쌓는 농부들의 모습도 볼 수 있으나 그 건초의 풍요와 그들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모르긴 해도 이 여인들 또한 시절을 고단함을 기도로 달랬을 것이다.(사진은 두 작품 모두 오르셰 박물관의 진품을 컬렉션했다)


    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이 같은 아이러니는 근·현대의 필리핀에서 증명된다. 마젤란의 대항해로 필리핀이란 나라의 존재를 알게 된 스페인의 필리페 2세는 몇 안되는 군사를 보내 그 섬나라를 점령해버렸고, 이후 그 나라는 장장 333년 간이나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다.(필리핀이란 국호도 스페인 국왕 필리페 2세에서 유래됐다. ☞ '지브로올터 해협에 관한 이야기/대항해 시대의 개막' 참조) 그러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스페인이 패하며 미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는데, 그 오랜 식민 통치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필리핀의 카톨릭이다.(지금 필리핀 국민의 83%가 스페인의 통치 이데올로기였던 카톨릭을 믿는다.(나머지 10%는 개신교를 믿으니 전체 국민 거의 다가 예수를 믿는 셈이다)


    정확한 통계는없지만 피사로에게 점령되어 맥없이 스페인의 식민지가 된 라틴 아메리카 제국에서도 카톨릭은 여전히 대세다.(☞ '잉카제국의 천문대/남 아메리카 I' 참조)



    파라구아이에서 온 아비가일 

    한국에서 맹활약 중인 그녀의 이름은 필시 구약성서의 인물에서 따온 것일 텐데, 사무엘기와 역대 중 어느 것에서 비롯됐는지는 모르겠다.

     


    20세기 들어, 동정녀 탄생은 그저 하나의 소설에 불과함을 주지시키려는 운동이 일어났다.(기타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기적들을 포함해) 그 대표적인 움직임이 미국 내쉬빌 밴더빌트 대학교 종교학 교수 로버트 펑크(Rovert W. Funk)가 설립한 '예수 세미나'로서,(1985년) 그 단체의 주장에 따르면 신약성서의 기록 중 예수의 행적으로 믿을 만한 것은 불과 18%에 지나지 않는다.(복음서의 예수의 말씀 중 그가 한 말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리라'는 마가복음의 단 한 줄뿐이며 나머지는 모두 그가 다른 데서 빌려온 말이거나 후대 사람들의 창작이다)


    그외 미국의 무신론 운동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American atheists'라는 단체도 있으며(☞ '크리스마스의 진실' 참조/국외의 단체들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 한국의 반기련(반기독교시민운동연합)의 활동도 괄목할 만하다.(☞ '세계의 무신론 버스 광고' 참조) 그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다만 그들은 그것을 입 밖으로 표현하지 않을 뿐인데, 학계에서는 이를 '침묵 논증(argument from slience)'이라 부른다.


    그들이 성서의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않는 그 믿음의 서두에는 언제나 동정녀 탄생이 위치한다. 어떤 이는 마리아의 처녀생식(Parthenogenesis)은 오히려 예수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와 같은 홑몸의 단성생식은 진딧물이나 호박말벌류와 같은 하등생물이 보여주는 열등한 생체번식법이기에.....(그들도 그 나름대로의 생명탄생법이니 꼭 열등하다고 하기는 뭐하지만)


    * 처녀생식을 뜻하는 파르테노제네시스의 파르테노(Partheno)는 그리스어로 처녀의 의미인 파르테노스(παρθενσs)에서 나왔다.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은 처녀 신인 아테나 여신에게 헌정된 신전이다.(☞ '미학/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참조) 제네시스(genesis) 역시 그리스어의 창조라는 의미의 게네시스(γένεσις)에서 나온 말로 영역성서 창세기는 제네시스로 표기된다.


    * 현대 자동차의 제네시스도 여기서 따온 것이니 자동차의 신기원을 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 담긴 이름이다.(너무 거창한가? 나는 그 회사와 아무 관련도 없는데^^ 하지만 애국 기업이라고는 생각하고 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미국 록히드마틴사가 만든 같은 이름의 사설 우주선도 있었는데, 2004년 지구로 귀환하다 추락했다.


    * 최근 바퀴벌레도 처녀생식을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아무리 잡아도 줄지 않는 이유가 그건 지도 모르겠다. 지구 멸망시에도 살아 남을 최후의 생명체가 될 것이라는 소리도 있는데, 이것들이 정말로 영화 '스타쉽 트루퍼스'에 나오는 버그와 같은 괴물 생명체가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외계인의 생김새는 우리와 닮았을까?'에 이에 관해 썰을 풀어놓은 게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말하자면, 나는 물론 그들과는 생각을 달리 한다. 처음부터 성서를 깊게 믿었기에 지금와서 새삼 그들과 같은 길을 걸을 수는 없는 것인데, 그렇다고 내가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거나 혹은 기존 기독교계의 생각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주장하는 것은 그저 '예수=외계인'이라는 이론이다. 그것만이 동정녀 탄생을 비롯한 성서의 모든 비합리성을 합리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만일 그것이 부정되면 성서와 기독신앙은 다음과 같은 심각한 오류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바, 나는 내 나름대로 그것을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다.


    ―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신약성서 복음서의 기록은 모두 거짓이 된다.


    ―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녀는 성처녀가 아닌 다만 부정한 범죄자일 뿐이다.


    ―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말한 삼위일체설의 한 축이 무너지게 되는 바, 기독교 교리는 새로 정립돼야 한다.


    ―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예수가 성서에서 언급한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모두 거짓말이 되며, 따라서 (적어도) 구약의 신과는 단절되어 예수는 그 뿌리를 잃게 된다.


    ―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는 신의 자식이 아니므로 그의 이름으로 표방된 모든 죄 사함은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예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은 모든 죄인은 범죄자로 환원된다.


    ―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기존의 죄 사함이 환원됨은 물론이요, 앞으로의 구원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최후의 심판 같은 것은 더더욱 기대할 수 없다)


    ―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신과의 매개자로서 부여한 그의 자격은 자연히 상실되게 되는 바, 기도를 할 필요가 없게 된다. 이에 신앙인들은 억지라도 구약의 하나님에게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는데, 그 기도의 효력은 별로 기대할 수가 없다. 구약의 하나님는 매개자 없이 사람과 자신이 직접 통교하는 것을 무지 싫어하기에.


    -end-


     * 그림 및 사진의 출처: google jp.


    성서의 불편한 진실들
    국내도서
    저자 : 김기백
    출판 : 해드림출판사 201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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