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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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흡의 '입추야사'(立秋夜思)와 저자도작가의 고향 2022. 9. 11. 20:08
서울로 돌아온 김창흡이 주거지로 선택한 곳은 본래 그가 살던 양반가 한양 서촌이 아니라 한강변의 저자도(楮子島)였다. 앞서도 소개한 죽은 아내를 생각하며 쓴 김상문에 따르면 그는 서촌으로 돌아와 병중의 어머니를 모시다가 63세가 되는 1714년 이후 저자도로 들어와 집을 짓고 산 것으로 보인다. 아, 나의 반생은 바람에 나부끼는 쑥대 같았으니, 한 곳에 머무르는 일도 수월치 않았소. 금강산을 미친놈처럼 돌아다니다 내가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당신은 차분히 나를 기다려주었지.... 경신년(1680년)과 계해년(1683년) 막내아우와 누이동생이 잇달아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는 상심한 나머지 속병이 생기자 나도 어쩔 수 없이 산문(山門)을 떠나 어머니 곁에 머물다 한강 저자도에 집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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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흡의 '갈역잡영'(葛驛雜詠)과 내설악작가의 고향 2022. 9. 8. 23:57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은 우리가 아예 모를 뻔한 시인이었으나 그의 산문 '낙치설'( 落齒說)과 연작시 '갈역잡영'(葛驛雜詠) 중의 하나가 교과서에 실리며 알려지게 되었다. ('갈역잡영'은 392수의 연작시이다) 김창흡은 그렇듯 존재감이 미미하나 그의 집안은 자못 빵빵하니 대강만 훑어봐도 놀랄만하다. 일단 에 소개된 김창흡의 대강을 들여다보자. 김창흡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학자이며 시인이다. 본관은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익(子益), 호는 삼연(三淵). 시호는 문강(文康). 서울 출신으로 좌의정 김상헌의 증손이며 영의정 김수항의 셋째 아들이다. 또한 영의정 김창집, 예조판서 지돈녕부사 김창협의 동생이며, 순조 때 우의정을 지낸 김달순의 고조부이다. 조선후기 노론을 대표하는 가문으로서 이이(李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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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을 받은 친일파 모윤숙작가의 고향 2022. 9. 6. 23:28
모윤숙은 일제시대 말기부터 대한민국 근·현대를 아우르는 대표적인 여류시인이자 문필가로서, 과거 국어교과서에는 대표작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을 비롯한 많은 작품이 오르거나 내리거나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정치·외교·여성운동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여 직함 또한 다양했고 화려했다. 에서 간추린 이력만도 아래와 같다. 1950년 대한여자청년단 단장, 1954년 한국 펜클럽 부회장, 1955년 서울대학교 강사 및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최고위원 등을 역임했고 1957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1958년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 총회 한국대표, 1958년 아시아 여성단체연합회 총회 한국대표, 1962년 여성단체협의회 이사, 1969년 여류문인협회 회장, 1970년 국제 펜클럽 서울대회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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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월정 이정(李婷)의 마포범주(麻浦泛舟)작가의 고향 2022. 9. 3. 06:24
풍월정 이정(李婷)은 우리에게 생소한 이름이다. 하지만 그의 군호인 월산대군을 대면 거의가 알 터, 국어 교과서에 그의 시조가 실렸던 까닭이다. '가을 강에 밤에 드니'로 시작되는 아래의 시조인데, 그는 이 시조 이외도 한시 500수가량을 지은 다작(多作)의 시인이다. 추강(秋江)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오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오노매라 그는 다작이었을 뿐 아니라 중국의 사신들을 놀라게 했다는 기록이 전할 만큼 기량도 빼어났다. 그래서 이정의 시는 명나라에도 소개되어 등에도 수록되어 전한다. 당시의 임금인 성종은 그가 죽자 유고를 수집케 하여 이라는 문집을 간행했는데, 여기에는 이정의 시 488수를 포함, 성종이 찬한 '어제기존형화상찬'(御製記尊兄畫像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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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의 글쟁이 독립투사 김광섭작가의 고향 2022. 8. 30. 04:00
김광섭은 '성북동 비둘기'와 '저녁에'라는 시로 우리에게 친숙한 시인이다. '성북동 비둘기'가 익숙한 것은 그것이 교과서에 실렸기 때문일 것이다. '저녁에'라는 시는 제목을 들어서는 잘 모를 수도 있겠으나 본문을 보면 바로 어떤 시인가를 알 수 있다. 과거 유심초라는 듀오 가수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제목으로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그분들이 벌써 70순이라 하니 세월 참 빠르다 하는 말밖에.....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광섭 「저녁에」 전문 그런데 이 시는 사실 김환기 화백에게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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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사라진 시인 박정만작가의 고향 2022. 8. 24. 04:09
시인 박정만은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한수산 필화사건'에 연루돼 세상을 떠났다. 그에 대해서는 앞서 '카프(KARF)를 이끌던 시인 임화'에서 언급한 바 있다. 옮겨 쓰면 다음과 같다. 박정만은 '한수산 필화사건'에 연루돼 온갖 고문을 당하고 풀려난 뒤 고문 후유증과 당시 겪은 충격을 술로 달래다 세상을 떠났다. 그는 죽기 전 '나는 사라진다 /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를 썼다.(이것이 전부인 단 2행뿐인 짧은 시이다) '한수산 필화사건'은 1981년 5월 중앙일보 연재 중이던 소설 '욕망의 거리'의 내용이 문제 돼 작가 한수산을 비롯해 중앙일보 권영빈 편집위원, 도서출판 고려원 편집부장 겸 시인 박정만 등 6명이 보안사로 연행돼 가혹행위를 당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 한수산은 혹독한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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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KARF)를 이끌던 시인 임화작가의 고향 2022. 8. 14. 06:31
예전 학교 다닐 때 과거의 시인들을 거론하다 보면 꼭 튀어나오는 '카프'(KARF)라는 단어가 있었다. '카프'는 1928년 결성된 조선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의 영문 이니셜로, 요즘 말로 하자면 좌빨 문학인 단체명이다. 그래서 '카프'는 대한민국 문학사에 있어서는 꼭 따라다니는 문학집단이었지만 그저 앞과 같이 단어의 해석으로 만족해야지 더 이상 깊게 들어가면 골치 아픈 일이 따를 수도 있었다. 붙잡혀 갔다 풀려나면 다행이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닌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박정만 시인 같은 경우이다. 박정만은 '한수산 필화사건'에 연루돼 온갖 고문을 당하고 풀려난 뒤 고문 후유증과 당시 겪은 충격을 술로 달래다 세상을 떠났다. 그는 죽기 전 '나는 사라진다.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를 썼다. 제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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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검으로 전한 여류시인 이옥봉의 러브레터작가의 고향 2022. 7. 23. 23:58
최근 TV에서 방영하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를 다시 보았다. 원래 볼 의도가 아니었고, 또 중간쯤부터 시청한 까닭에 끝까지 볼 것 같지 않았는데, 이야기의 힘에 끌려 나카야마 미호가 보내는 러브레터를 끝까지 읽게 됐다. 역시 이 러브 스토리의 압권은 라스트 신이다. 조선시대에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 못지않은 연서(戀書)가 있었다. 사모의 심정과 애절한 구애(求愛)를 담은 미사여구 늘어지는, 그래서 자칫 구질구질한 느낌을 줄 수 있는 그런 연서가 아니라 애뜻하면서도 임팩트 강한 칠언절구의 한시이다. '몽혼'(夢魂, 꿈속의 넋)이란 제목을 가진 시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요즘의 안부를 묻습니다. 어떻게 지내시나요? 달빛 내려앉은 창가에 그리움만 가득 합니다 만일 꿈속의 넋에게 자취를 남기게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