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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9년 일어난 인현동 호프집 화재사건과 그후
    한국의 근대가 시작된 그곳 인천 2023. 10. 26. 17:21

     

    오는 30일은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사건이 일어난 지 24년이 되는 날이다. 이후로도 작년의 이태원 참사를 비롯해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일어났지만 이 사고에 대한 나의 기억은 각별하다. 사고의 참혹함도 있지만 희생자의 유족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 사건은 금방 잊히는 다른 사고와 달리 사회적으로 지금껏 메모리되고 있고, 인현동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 주변의 모뉴먼트는 늘 관리되고 있다. 이번에 가보니 희생자 이름을 새긴 표석도 바뀌었고 전에 없던 안내 표석도 생겼다. 

     
     

    인현동 화재 참사 위령비
    희생자 이름이 새겨진 표석
    인현동 화재참사 추모공간 안내 표석

     
    1999년 10월 30일 토요일 오후 7시경, 인현동 주점 골목에 있는 2층 라이브 호프집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지하 노래방에서 인화된 불이 옮겨 붙은 것인데 전기가 나가며 56평의 호프집은 순식간에 암흑천지가 되었다. 당시 안에는 인천 지역 13개 고교축제를 마친 고등학생 120명가량이 가득 들어차 뒤풀이를 즐기던 참이었다. 창문마저 보드로 밀폐되었던 이 호프집 안으로 곧 불길과 연기가 밀려들었고 깜깜한 실내는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불은 화재 신고 13분 만에 진화되었다. 그러나 사상자는 137명이나 됐다. 화재의 원인은 지하 노래방 아르바이트 학생의 불장난이었다. 당시 지하 노래방은 인테리어 공사 중이었는데, 아르바이트 학생 2명이 인테리어 공사에 쓰이는 시너를 보고 시너와 라이터 휘발유 중 어떤 것이 더 불이 잘 붙는지 장난 삼아 시험했다가 발화한 불이 우레탄 장식 벽에 옮겨 붙었고, 그것이 굴뚝효과로써 계단을 타고 순식간에 2층과 3층으로 인화된 것이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사상자가 난 이유는 우레탄 장식에서 발생한 유독가스 때문이었다. 당시 이 호프집 주인은 앞서 미성년자에게 술을 판 일로 영업정지를 당한 상태였음에도 불법영업을 하고 있었는데, 이를 감추려 창문에 보드를 대 철저히 밀봉해 폐쇄시킨 상태였다. (불이 났을 당시 3층 당구장에 있는 사람들은 창문으로 뛰어내리기도 했지만 2층은 밀봉된 보드로 인해 그럴 수도 없었다)
     
    비상구는 없었고 탈출구는 호프집 출입문이 유일했다. 하지만 호프집 지배인이 문을 막았다. 술값을 내고 나가라는 것이었다. 그 사이 연기와 불길은 더욱 번져갔고 그로 인해 안에 있던 120명의 학생 중 52명이 유독가스에 질식돼 숨졌다. 이 건물에서 발생한 사상자는 137명이고 사망자는 57명이었는데, 그중 52명이 호프집에서 발생했다. (지배인은 상황이 위급해지자 학생들을 내버려 두고 그대로 달아났다) 

     
     

    대참사의 현장 (인천일보 사진)

     

    그날밤 부모들은 밤새 인천 시내 병원들을 찾아다녔으며 대부분은 차가운 시신과 대면했다. 호프집 사장 정성갑(당시 34살) 역시 토꼈다가 지명수배되자 자수했는데 의외로 미안함 없는 당당한 모습이어서 유가족과 세인들의 분노를 샀다. 정성갑은 좋게 말해 청년실업가였다. 당시 그는 호프집 이외에도 PC방, 콜라텍 등 8개의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화재가 처음 일어난 지하 노래방도 그가 운영하던 곳이었다.
     
    평소 그는 관련 경찰에게 정기적으로 뇌물을 찔러주는 나름대로의 수완을 부려 '높은 사람'을 많이 알고 있는 빽 있는 사업가로 통했다. 실제로 한 경찰 간부는 정성갑의 집에서 거의 공짜로 세를 살았다. 그래서인지 그는 시종일관 당당했는데, 철면피의 유전자도 지녔던 듯, 5년의 실형을 먹고 복역한 후에는 복음성가 가수로 변신, 전국을 돌며 재소자 등을 대상으로 공연함으로써 다시금 유족들의 분노를 샀다.

     
     

    수배된 정성갑
    자수 후 체포된 그가 기자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가스펠 싱어 정성갑

     

    사고 뒤 희생자에 대한  인천시의 보상이 있었으나 그중 한 학생은 홀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일도 생겨났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이던 지혜는 사고 호프집 아르바이트생이라는 이유로 보상받지 못했고, 오히려 지혜 어머니는 장례 때 사용한 경비(식대, 장례용품, 기타)를 배상하라는 독촉 공문에 시달리다 결국 타지방으로 이사를 했다.
     
    그는 시를 상대로 소송을 냈으나 패소했고 원고가 소송 비용을 부담하라는 판결에 따라 소송비 독촉 고지서까지 안아야 했다. 지혜 어머니의 말로는 사고가 난 그날은 지혜가 아르바이트를 나간 첫날이었다고 하는데, 이것저것을 다 떠나서 아르바이트생은 왜 보상에서 제외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것은 어쩌면 인격살인으로, 지혜에 대한 2차 가해에 다름아니다. 
     
    사고 불감증과 비양심, 권력유착이 원인으로 제공된 인현동 참사는 지혜 어머니와 같은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냈다. 다만 사고 후 재발 방지에 대한 노력은 이어졌으니, 청소년들의 건전한 문화창달을 위한 공간으로서 인현동에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이 건립되고 추모공간이 마련됐다. 그곳이 동인천역에서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어 인천에 갈 때면 꼭 들르게 되는데, 어느 날엔가는 하늘나라에 있는 학생들이 찾아온 듯한 햇무리가 피었다.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 앞의 '기억의 싹 ' 모뉴먼트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고 유족의 아픔을 나누며 생명 존엄과 공공의 기억을 미래세대와 함께 하고자' '기억의 싹'을 세웠다.
    '기억의 싹'을 비추는 햇무리
    참사가 일어난 골목
    여기도 햇무리가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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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스페르츠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