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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라치오 젠틸레스키의 사실적인 성화와 비사실적인 성서
    미학(美學) 2024. 5. 9. 18:20

     
    오라치오 젠틸레스키(Orazio Gentileschi, 1563~1639)는 17세기 이탈리아 바로크 화풍 시대의 화가로서 피사에서 태어났다. 그는 당시의 화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성서의 내용을 화폭에 옮기는 종교화를 많이 그렸는데, 다분히 카라바조 풍이다. 카라바조 풍은 성서의 내용을 그리되 성(聖)스럽게보다는 '속'(俗)스럽게 표현하는 작법으로, 이탈리아 바로크 시대를 개막한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1571~1610)가 채용한 작법이라 하여 그렇게 불린다.
     
    그렇지만 '속'(俗)스럽다 하여 저속하게 그린 것은 결코 아니고 그저 그 당시의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이를테면 의상이나 생활양식을 고대가 아닌 현실에서 가져오는 식이었다. 따라서 그림의 이해가 쉬웠다. 이에 로마의 고위 성직자들은 카라바조의 그림을 좋아했던 바, 한편으로는 당시 종교개혁의 태동으로 세력이 약화되고 있는 로마 가톨릭에 반등의 기회가 제공될지도 모른다는 기대심도 작용했다. 
     
     

    카라바조가 그린 '엠마오에서의 저녁 식사' / 엠마오 마을에서 제자들 앞에 나타난 부활한 예수를 그렸다. 예수는 초췌하지 않고 당시 보통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제자들 또한 당시 사람들의 모습인데, 성서의 내용 대로 다들 예수를 못 알아보았기에 시큰둥한 얼굴이다. 오른쪽에 앉아 있는 사람이 도마(토마스)다.
    '그리스도의 체포' / 카라바조가 1602년에 그린 그림으로, 유다가 로마군인에게 예수를 알리기 위해 입맞춤을 시도하고 있는 모습이다. 예수를 붙잡으러 온 군인들이 로마시대 복장이 아니라 중세 기사복장을 하고 있다. 예수 왼쪽에 나 몰라라 달아나고 있는 베드로를 그렸다.

     
    오라치오 젠틸레스키는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다 프랑스 파리를 거쳐 1629년 영국 런던으로 가 궁정화가가 되었다. 그러면서 궁중 초상화와 함께 성화를 많이 그렸는데, 그의 종교화는 카라바조 풍이기는 하되 자극적이지 않고 온화하다. 그의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그러면서도 할 말을 다 하는 표현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일 터,  그의 작품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고 있는 아래의 <롯과 그의 딸들>에서는 그 특질이 두드러진다.
     
     

    ' 롯과 그의 딸들' / 젠틸레스키가 1621년경 그린 그림으로 앞서 말한 LA 게티 미술관 소장품이다.

     
    <롯과 그의 딸들>은 구약성서 창세기 중 패악한 인류의 멸망을 담은 소돔과 고모라의 후일담을 그린 것이다. 죄악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는 여호와가 내린 유황과 불의 비에 파괴되고 롯과 그의 딸은 산의 동굴에 은신하게 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환경은 어쩔 수 없는 근친상간을 가져오게 되는데, 그 상황을 오라치오 젠틸레스키는 술을 마시고 딸의 무릎을 베고 잠든 롯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두 딸은 아비규환의 소돔과 고모라를 바라보는 모습으로 근친상간의 패륜을 피해 간다.
     
    그의 표현방식은 이렇듯 점잖다. 하지만 당대의 다른 화가들에게는 이들 부녀의 근친상간이 에로티시즘으로 표현되었던 바, 독일화가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Albrecht Altdorfer, 1480~1538)의 그림 속에서는 전나(全裸)의 부녀가 겹쳐 누운 상태로서 롯이 음탕한 시선을 보내고 있고, 오스트리아 화가 존 미카엘 로트미어(Johann Michael Rottmayr, 1656~1730)의 그림 속에서는 롯이 탐욕적으로 딸의 가슴을 헤치고 있다. 15~18세기의 다른 회화들 역시 에로틱한 표현 일색이다.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가 1537년에 그린 '롯과 그의 딸들' / 너무 야해 반쪽만 올렸다.
    미카엘 로트미어가 그린 '롯과 그의 딸들'
    시몬 뷔에(Simon Vouet)가 1633년 그린 '롯과 그의 딸들'

     

    한편으로 오라치오 젠틸레스키의 그림은 성서의 내용에 충실하기도 했다. 창세기에 따르면, 부녀의 근친상간은 자신들의 베필이 될 사람이 이 땅에 없는 까닭에 아버지의 씨앗으로 하여금 후손을 이어가려는 딸들의 의도에서 비롯된 일일뿐 롯의 의지는 전혀 개입된 바 없다. 젠틸레스키의 그림에 그려진 술병과 잠든 롯의 모습은 딸들이 먹인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당시의 상황 및 그런 일을 벌일 수밖에 없는 딸들의 입장을 손가락질과 시선, 어두운 구름으로 설명하고 있다. 

     

    앞서 말한 대로 딸들의 손가락 끝과 시선이 가리키는 곳은 아비규환의 소돔과 고모라이며, 어두운 구름은 그 도시가 멸망 중임을 상징한다. 그 음습함을 밝은 파스텔톤 색상으로 처리했다는 것도 놀랍다. 그가 그린 아래 <모세의 발견>이라는 그림 역시 성서의 내용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으며 특유의 파스텔톤 색상이 사용된다. 우선 <모세의 발견>과 성서 출애급기의 내용을 보자. 

     

     

    젠틸레스키가 1630년경에 그린 '모세의 발견'

     

    ..... 그러므로 바로(파라오)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하였더라. 레위(고대 이스라엘에서 제사장을 역임하던 족속)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어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가 갈대 사이에 두고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나일 강 가를 거닐 때에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그의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하매 그 소녀가 가서 그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오니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오라치오 젠틸레스키의 그림 속에서는 가운데 바구니 속 아기가 나일강에서 건져진 아이라는 것을 시녀들의 시선과 손가락질로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아기를 거두려는 애급(이집트) 공주의 의지와 이를 걱정하는 시녀들의 마음 역시 손가락질과 시선으로 설명하고 있다. 강물에서 건져 올려 키워진 이 아이가 바로 모세로서, 훗날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파악하고 이집트 내에서 고생하는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출애급을 감행한다. 

     

    그리고 이를 전후로 애급에는 히브리인의 신 여호와가 내린 10가지 재앙이 닥치고 (피, 개구리, 이, 파리, 가축 전염병, 악성 종기, 우박, 메뚜기, 어둠, 파라오 아들의 죽음) 바닷물이 갈리지는 기적이 일어나, 그 결과로 히브리인들은 오랫동안 노예로 지냈던 애급 땅을 벗어나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 모두가 허구라는 사실이 최근에 밝혀졌다.

     

    우선 강물에서 건져낸 아기 이야기는 바빌로니아 악카드제국의 첫 임금인 사르곤 1세(재위: BCE 2334~BCE 2279년)의 이야기라는 것이 이라크 니네베 (성서의 니느웨) 아슈르바니팔 도서관(Library of Ashurbanipal)의 토판 발굴로 인해 밝혀지게 되었다. 모세의 이야기는 사르곤 1세 설화의 표절이었던 것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히브리인들의 이집트 탈출 자체가 허구라는 사실이다.

     

    출(出)애급에 관한 기록은 오직 성서에만 있을 뿐, 이집트를 비롯한 주변 어떤 나라의 기록에서도 그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지 않다. 그래서 출애급기의 내용은 지금껏 그 진위를 의심받아 왔는데, 1967년 제 3차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15년 간 사나이 반도를 점령하며 출애급기를 비롯한 출애급에 관련된 성서의 여러 내용(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에 실려 있는)이 전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시나이 반도 점령 15년 간 이스라엘의 고고학자들은 모세와 히브리인들의 출애급의 흔적을 찾으려 시나이 반도를 이잡듯 뒤진 적이 있었다. 알다시피 시나이 반도는 출애급의 무대가 되는 땅이며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다는 시나이 산도 바로 그곳에 있다. 성서에 따르면 히브리인들이 시나이 반도에 머문 것이 장장 40년, 하지만 이스라엘 고고학자들은 이에 관해 전혀 찾아낸 것이 없었고, 그것은 미국·영국·프랑스 등 서구제국의 고고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모세와 히브리인들의 출애급 이야기는 사실이 아닌 허구라고 판명되었고, 결국 서구 기독교에서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나라는 세계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할 듯싶다) 하지만 <모세의 발견>을 그린 오라치오 젠틸레스키는 아무런 죄가 없다. 그는 당시까지의 성서에 충실했던 훌륭한 화가일 뿐으로, 그가 그린 <수태 고지>(마리아에게 수태를 알리는 천사 가브리엘을 그린 그림) 역시 수태 고지 회화 중의 걸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젠틸레스키의 또 다른 대표작 '어나운시에이션'(수태고지) / (286x196cm/토리노 사보이 갤러리)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 걸린 '모세의 발견' (242x28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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