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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울의 금욕철학과 전도여행(I) - 안디옥에서 빌립보까지
    성서와 UFO 2019. 6. 29. 09:07


    사도 바울은 크리스트교를 전파함과 아울러 스스로 만들어낸 나름대로의 철학도 전파했다. 그것에 이름을 붙이자면 '자족(self-Sufficiency)의 철학'으로, 쉽게 말해 욕심 부리며 살지 말자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오랜 전도 여행에 있어서도 교인들의 돈에 의지하지 않고 제 스스로 경비를 충당한 듯 보이니, 그 바탕은 자족의 철학이요, 수단은 그가 배운 천막 만드는 기술이었다.(사도행전 18:2-3)


    그는 이와 같은 금욕 사상을 그리스 철학계(系) 견유학파(Cynic)의 아우타케이아(autarkeia)라는 용어를 사용해 설명하기도 했는데,(빌립보서 4:11)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 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빌립보서 4:11-15)


    그의 철학사상이 담겨 있는 빌립보서는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로서, 그것이 쓰여진 곳과 시기는 확실치 않으니, 고린도(50년 경), 에베소(54-57년), 가이사랴(58-60년) 로마(60-63년) 중의 하나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듯 그 장소와 시기는 막연하나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초기 선교의 산물임은 분명하니, 사도행전(16:33)은 이곳이 마케도니아에서 최초로 세례를 베푼 곳임을 명기하고 있다.


    앞서 바울의 1차 전도여행(☞ '바울의 치유능력은 또 웬 거?') 이후, 바울과 그의 동역자 실리는 1차 전도 여행 때 방문했던 도시들을 다시 방문하기 위해 길을 떠나니, 이른바 2차 전도 여행의 시작이었다. 바울이 이번에 선택한 길은 바닷길이 아닌 육로였다. 안티오크에서 출발, 더베를 지나 루스드라에 이른 바울은 그곳에서 디모데라고 하는 기독교인을 만나 할례를 베푼다.(디모데는 요즘 말로 모태신앙인 사람이었는데, 당시로는 매우 드문 경우였다) 그리고 그곳 여러 고을의 교회를 방문해 초석을 다진다.(사도행전 16:1-5)





    이후 그들은 루스드라에서 이고니온으로 향했는데, 그때 갑자기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들 앞에 나타난 외계인으로부터 더 이상 아시아에서 전도를 하지 말라는 얘기를 듣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사이의 땅을 관통해 터키 반도 북서쪽의 무시아에 이르게 되는데, 그곳에서 그들은 북쪽 비두니아로 가고자 했으나 이번에도 예수의 영(☞ '바울의 다마스쿠스 사건을 해부한다'), 즉 UFO가 나타나 진로를 항구도시 드로아로 변경시킨다.


    이어 바울은 드로아 항에서도 또 한 번의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니, 밤에 나타난 마케도니아(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보고(홀로그램과 같은 외계인의 트릭으로 여겨짐) 마케도니아 땅으로 목적지를 전환하게 된다. 그것을 마케도니아에서 전도를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생각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곧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이튿날 마케도니아의 네압볼리(네오폴리스) 항에 도착, 거기거 다시 빌립보에 이르게 된다. 이상의 내용이 살려 있는 사도행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사도행전 16:6-12)


     

    바울이 배를 탄 드로아 항


    드로아의 성벽 유적

    드로아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안티고노스(BC 382-301)가 '알렉산드리아 트로아스'라는 이름으로 건설한 도시로, 한때 셀레우쿠스 왕조의 수도이기도 했다. 남아 있는 성벽의 길이만 9.8Km에 이르는 바, 거성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드로아의 바울

    바울은 3차 전도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다시 드로아에 들러 집회를 연다. 바울은 이때 3층에서 떨어져 죽은 유고아라는 청년을 기도로 살려내지만 기적은 아니다. 사도행전(20:10)에는 분명 그에게 숨이 붙어 있었다고 서술돼 있다. 늘 말하지만 죽은 사람은 그 누구도 살려내지 못한다. 

     

     

    드로아의 성문 유적



    당시는 아시아와 유럽의 기준이 물론 없었겠지만 아무튼 빌립보는 바울이 세례를 행한 최초로 유럽 도시가 되겠다.(사도행전 16:33) 그런데 그에 앞서 바울과 실라는 몹시 고초를 당하니 그들이 빌립보의 전통 풍속을 깨뜨렸다는 모함을 받아 심하게 매를 맞고 옥에 갇히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바울은 또 한번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니, 그가 기도를 마치자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감옥이 흔들리고 감옥 문이 모두 열려 버린 것이었다. 이것은 가히 기적이라 할 만한 것인데,(예수 때도 이런 기적은 없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때 바울을 비롯한 모든 죄수들의 포승도 벗겨졌다는 사실이었다.


    이후 바울은 감옥을 나와 간수와 그 가족에게 세례를 베푼 후, 자신들이 로마시민권자임을 당당히 밝히고 석방된다. 이상 보았다시피 바울에게는 누군가의 조력이 계속 뒤따르고 있음인데, 그 조력자가 누구인지는 새삼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그 조력자가 요술방망이 같은 것을 휘둘렀을 리는 없을 터, 나는 천사 특공대의 포로 구출 작전이 연상되었다) 아무튼 이에 관한 사도행전의 내용은 다음과같다.


    여종의 주인들이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 갔다가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하게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하지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사도행전 16:19-34)



    빌립보 공회당의 비잔틴 시대 기둥

    빌립보는 로마 퇴역 군인들을 위한 식민도시로 개발되었으며 콜로니아 율리아 필립펜시스(Colonia Julia Philippensis)가 정식 명칭이다.


    빌립보 도시 유적

    이곳을 처음 개척한 사람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2세로, BC 357년 크레니데스의 금광을 노려 정복한 후 자신의 이름을 붙여 필리피로 명명했다.

     


    감옥 유적

    바울 일행이 갇혔던 곳이라 전한다.


    원형극장 유적
    30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으며 기독교 박해 시절 많은 희생자가 생긴 곳이다.


    로마로 통하는 에그타니아 대로


    바울의 교회 유적

    바울은 두번 째 방문 때 교회를 건립했는데, 최근 그 당시의 것으로 추정되는 교회 터가 발굴됐다.


    빌립보 아카데미아 유적

    빌립보에는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가 수학한 곳으로 알려진 유명한 의학교가 있었다.


     * 그림 및 사진의 출처: google 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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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스페르츠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