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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과 UFO(IV) - 밝혀지지 않은 비행 공간성서와 UFO 2019. 8. 1. 08:45일반적으로 사도 바울이 썼다고 알려진 14개의 서간문 중 갈다이아서,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서, 빌레몬서의 7개만 그가 쓴 것이고 나머지 7개(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데살로니가후서, 골로새서, 에베소서, 히브리서)는 타인의 글임은 이미 설명한 바 있다. 오늘 말하려는 고린도후서는 그 1장 1장에 바울이 고린도와 아가야에 있는 성도들에게 보내는 글이라고 명시돼 있는 바, 그가 쓴 서간문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마게도냐와 아가야
다만 학자들은 고린도후서의 갑작스런 상황변환과 바뀌어진 논조에 적잖이 당황하고 있다. 사실 그 점은 전문 학자가 아니더라 고린도후서를 읽는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기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내놓은 결론은 대개 두 가지로 함축되는데, 첫째는 고린도후서가 하나의 편지글이 아니라 바울이 고린도와 아가야 지역의 교회들에 보낸 여러 개의 편지글을 하나로 묶어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의 편지글이 오랫동안에 걸쳐 쓰여진 것으로, 그래서 그동안의 상황변화가 그 속에 담겨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나는 후자를 지지하는 편으로, 그 쓰여진 시기와 장소는 AD 55년 경의 마케도니아(마게도냐)로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고린도 후서의 여러 곳(2:23, 7:5, 8:1)에서 바울이 마케도니아 여러 지역을 돌며 이 편지를 썼다는 정황증거가 나타나기도 한다. 오늘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울의 UFO 탑승기는 고린도후서의 12장 1장부터 시작되는데, 여기서는 아닌 척, 겸손한 척, 제 할 말 다하는 특유의 글솜씨가 되살아 나는 바, 그의 글이 아니라고 생각할 1%의 여지도 주지 않는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나는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도 아니나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고린도후서 12:1-12)
보는 바와 같이 바울은 자신이 본 주의 환상과 계시를 은근슬쩍 자랑하고 있다. 그리고 주의 환상(성서의 '주의 환상'이나 '이상'이 UFO를 지칭한다는 것은 이미 여러차례 주지했음)을 타고 셋째 하늘(첫 번째 하늘도 아니고 두 번째 하늘도 아닌 아주 높은 하늘)로 이끌려 가 낙원까지 갔음을 말하고 있는데, 그 형언할 수 없는 세계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라는 함축적인 문장으로 대변한다.(바울은 이 문장을 두 번씩이나 반복함으로써 당시의 황홀함을 반추시킨다)
Look up on the sky
the third heaven
그가 환상의 안에 있었는지 밖에 있었는지 모른다는 말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바울이 쓴 아포리스메노스(ἁΦωρισμἐνος), 즉 '택정함을 입었다'(to be set apart)는 말은 그가 남다른 특별한 임무와 사명을 부여받았음을 느끼게 해준다.*(로마서 1:1) 앞서도 말했지만 그는 부활한 예수를 만난 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말한다.(고린도전서 15:3-8) 그런데 사도행전이나 그의 편지글에서 바울이 예수를 만나는 장면은 없다. 그는 다만 예수의 목소리를 들었을 뿐이다.(사도행전 9:4-5) 그리고 그 3년 후 이방인들과의 전도 사역 전장(戰場)에 뛰어든다.
* '아포리스메노스'는 헬라어로 '임무를 띠고 전쟁 터에 배치된다'는 뜻이다.
바울이 예수를 만난 기록이 없는 까닭에 사람들은 위 사도행전의 내용을 바울과 예수의 만남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이걸 과연 만났다고 할 수 있을까?(다시 말하지만 바울은 여기서 예수의 목소리만을 들었을 뿐이다) 그들의 만남은 위에서 인용한 고린도후서의 행간 속에 숨어 있다. 앞서 말했듯 예수는 다마스쿠스에서 탈출해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의 먼저 된 사도들을 만나러 간 것이 아니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갔다.(갈라디아서 1:14-24) 예수는 이 무렵 바울 앞에 나타났는데,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타났는지는 기술하지 않고 있지만 아포칼륍사이(ἀποκαλὐψαι)라는 단어를 사용해 자신만의 득의(得意)의 요소를 내포해 보인다.
* '아포칼륍사이'는 헬라어로 '베일에 가렸졌던 은밀한 것(음모나 비밀 따위의 것)이 드러난다'는 뜻이다.
하지만 바울의 초기 행적, 즉 컨버전 이후에의 행적은 억지로라도 꿰맞추기 어렵다. 사도행전에서는 그가 회심 직후 다마스쿠스에서 예수의 제자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후 곧장 예루살렘으로 가서 예수의 사도들을 만났다고 적고 있다.(사도행전 9:19-30)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니, 이것이 자연스런 수순으로 여겨지는 까닭이다. 그렇지만 바울 자신은 갈라디아서에서 이것을 한사코 부인하고 있다. 다마스쿠스에서 탈출한 자신은 예루살렘으로 가서 먼저 사도가 된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과 UFO - 밝혀지지 않은 초기 행적. 그는 어디에 있었나?')
앞에서도 말했거니와 이때 자신은 아라비아 사막으로 갔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무언가를 타고) 제3천(the third heaven)까지 올라가 낙원을 구경하고 온다.(고린도후서 12:1-4) 먼저 사도가 된 자들이 하지 못했던 이와 같은 놀라운 경험은 그에게 다음과 같은 자신감을 제공한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사도행전 19:1-7)
바울은 예수의 제자가 된 사람에게까지 성령을 받았는가, 아니 받았는가를 새삼 따져 묻는다.(그러자 신도들은 성령 자체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고 답한다. 요즘처럼 너나 나나 성령의 은혜를 외치는 주변보다 그래도 당시 사람에게는 순수함과 솔직함이 묻어난다) 그리고는 요한에게서 이미 세례받은 사람에게조차 예수의 이름으로 다시 세례를 주었던 바, 성령의 실체를 확실히 경험한 자의 자신감이었다.(여기까지는 사도행전의 저자가 눈으로 보았거나 들은 사항이고 다음 문장, 즉 '바울의 안수를 받은 자에게 성령이 임해 열두 사람쯤이 방언도 하고 예언도했다는 것'은 사도행전의 저자의 주관적 관점으로 크게 믿을 바는 못된다.(그것이 상식선에서 너무 벗어난 까닭이니, 까놓고 말해 100% 구라로 봐도 무방하다)
아울러 그의 남다른 경험과 그로부터 비롯된 자신감은 회당에 들어가 석달 동안 이빨을 깔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하기도 했는데,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사도행전 19:8-12)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다'는 말은 그저 100% 구라로 보면 된다. 이유는 전(前)과 동(同)이다.(나 원 참, 예수에게도 볼 수 없었던 능력을....? )
'바울, 두란노 서원에서 강의하다'
바울이 강의했다는 두란노(Tyrannus) 서원은 에페수스 켈수스 도서관의 왼쪽 공간으로 비정된다.(화살표 참조)
켈수스 도서관 전경
바울은 에베소에서 3개월 정도 유대교 회당에서 설교했으나 일부 유대인의 반대가 있자 이곳 도서관의 두란노 홀을 이용하게 되었다.(사도행전 19:9) 두란노(티란누스)는 에페수스 출신의 밀레투스 학파의 학자로 보이며 두란노 홀은 그가 만든 철학 강의실이었던 것 같다. 바울은 그곳에서 그리스 철학 강의가 없는 시간에 복음을 설파한 것으로 추정된다.(성서 베자 사본 1) 2
소 원형극장 오데온(Odeon)
영어 오디오(Audio)의 어원이 된 곳이다. 바울의 동역자 가이오와 아리스다고가 끌려간 곳이 여기인지 아래 대 원형극장인지 분명치 않으나(사도행전 19:29) 아무래도 아르메테스 신전과 가까운 이곳이지 않나 싶다.에페수스 대 원형극장.
로마 시대에는 에페수스항 가까이 있었으나 이후 토사가 유입되며 바다에서 멀어졌다. 3단 각 22층의 구조로 약 2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극장이다.터키 우표 속의 아르테미스 신전
고대 에페수스 지도
도시 위쪽의 아르테미스 신전은 고대 7대 불가사의 중의 으뜸이라 일컬어졌다.
아르테미스 신전 상상도
바울은 이곳 에페수스에 머물 때(AD 52-54) 우상숭배를 반대하였다. 이에 사도 행전(19:23-40)에는 아르테미스 여신의 모형이 팔리지 않는다며 분노한 상인들이 바울 일행을 위의 원형극장으로 끌고가는 장면이 나오나, 이때는 이미 신전이 무너졌을 때 같다.
신전이 있던 자리에는 그저 이것뿐.....
18m 127개의 신전 기둥이 있었다는데 겨우 달랑 1개만 남았다. 상전벽해, 인상무상..... (뭐 이런 말로도 부족하다)
셀축 에페수스 박물관의 아르테미스 상
아르테미스는 달의 여신이자 다산과 풍요의 여신이며 사냥의 여신이다. 이에 가슴은 출산을 상징하고 머리와 다리 등의 동물들은 사냥감과 풍요를 상징한다.
또 다른 형태의 아르테미스 상
1956년 에페수스 관청 유적지에서 위 2개의 아르미테스 상이 발견되었다. 데메드리오 등이 만들어 판 모형도 아마 이러했으리라.(사도행전 19:24)
로마 신화의 달의 여신 다이아나 상
루브르 미술관의 또 다른 다이아나 상
다산과 풍요와 사냥의 여신인 아르테미스(다이아나)는 당대의 가장 중요한 것들을 관장하는 신이었다. 그녀의 신전이 세상의 가장 큰 신전이 될 수 있는 이유가 거기 있었다.
바울이 이끌려 간 셋째 하늘(고린도후서 12:2)
* '사도 바울과 UFO - 최후의 여행'으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