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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과 UFO(III) - 밝혀지지 않은 초기 행적. 그는 어디에 있었나?성서와 UFO 2019. 7. 20. 00:18
바울의 컨버전(Conversion) 사건, 즉 예루살렘 교회를 초토화시킨 그가 다시 다마스쿠스의 예수쟁이들을 잡으러 갔다 그 초입에서 예수가 탄 UFO로부터 레이저 빔을 한 방 먹은 일, 이후 개심(改心)하여 열혈사도가 된 일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밝혔다.(더 이상 언급하면 쓰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모두 지겨울 듯해 이에 대해서는 그만 말하겠다) 그러면서 앞의 2편에서는 '내가 바울과 같은 경우를 당했다면 나도 틀림없이 회심하여 그와 같은 열혈사도가 됐을 것이다. 아니 누구라도 그리 됐을 것이다'라는 견해를 붙이기도 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레이저 광선 한 방이 강력했음은 분명하지만 동기유발의 요인으로는 조금 부족했을는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레이저 빔을 맞은 그가 다마스쿠스에서 아나니아의 치료를 받고 개안(開眼)하게 되는 일은 사울(바울) 개인적으로 볼 때는 놀랍고 충격적인 일이었겠으나 컨버전(회심)으로 이어짐에는 2%의 부족함이 느껴지는 까닭이다. 그가 시력을 잃고 절절히 후회한 시간이라 해봐야 고작 3일인 바,(사도행전 9:9) 이후 시력을 회복한 사울이 그저 후회 속에 집으로 돌아갔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따지고 보면 사실 이럴 개연성이 더 높다. 물론 이후로 예수쟁이 잡으러 다니는 일은 꿈도 꾸지 않겠지만)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이후 사울은 바울이라는 로마식 이름으로 개명하고(세계 전도를 위한 의지의 표명으로) 열혈사도가 되어 세상 곳곳을 누비게 되는 바, 그가 로마에서 죽지 않았다면 당연히 제국의 서쪽 끝 스페인 코르도바까지 갔을 것이며* 어쩌면 지브로올터를 건너 모로코, 리비아, 이집트에서 전도하고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왔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이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목숨을 건 3차례의 전도 여행으로 인해 듣보잡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로서의 기틀을 마련된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 무라토리언 정경 등을 근거로 바울이 로마에 가기 전 스페인에 전도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무라토리언 정경은 AD 170년에 기록된 그리어스로 성서로, 4대복음서를 비롯한 신약성서 22권을 담고 있다. 1740년, 이탈리아 역사학자 루드비코 무라토리(Ludovico Antonio Muratori)가 밀라노 암브로시스 도서관에서 발견하였으며 발견자 무라토리의 이름을 따 Muratorian Canon, 혹은 Muratorian Fragment로 불린다.
무라토리언 정경(Muratorian Canon)
** 바울의 전도 여행은 마지막 로마로 가기까지 모두 4회를 행했는데, 아래의 복잡한 대장정(大長程) 루트가 그 멀고도 힘든 노정을 말해준다. 화살표로 표시된 구간 거리(←1차 여행 ←2차 여행 ←3차 여행 ←로마 여행)를 모두 합하면 1만 6천 km에 이른다고 말한 학자도 있다. 서울 런던 간을 왕복하는 상상하기 힘든 거리다. 기간은 대강 AD 47년부터 65년까지 약 20년 간으로서 마지막 여행지인 로마에서 2년간 투옥된 후 순교한다.
바울의 전도 여행 지도
아테네의 바울과 아크로폴리스
바울은 아테네에서 스토아 학파, 에피쿠로스 학파 등의 철학자와 논쟁한다.
바울이 설교 연설을 한 아레오파구스
사도행전(17:19, 22)의 ‘아레오바고’가 이곳 아레오파구스(Areopagus)로, 오른쪽 동판에 그에 관한 설명을 새겼다.
아레오파구스에 오르는 계단
아레오파구스는 '아레스의 바위'라는 뜻으로서, 전쟁의 신 아레스는 로마에서는 마르스로 불린 까닭에 이곳도 일명 '마르스의 언덕'이다.
아레오파구스에서 본 아크로폴리스 언덕
신화에서는 아레스가 자신의 딸을 겁탈한 포세이돈의 아들 할리오티오스를 살해한 죄로 신들의 재판에 회부되어 재판을 받은 곳이다. 아레스는 신들 중에서는 최초로 법정에 회부되는 불명예를 안았으나 아비의 비통함이 참작되어 무죄를 선고받는다.
아레오파구스에서 본 아테네 시
바울은 아테네에 혼자 갔을까,(사도행전 17:15-18:5) 동역자인 디모데와 함께 갔을까?(데살로니가 전서)
바울이 전도 여행을 다닌 곳들은 사도행전과 그가 여행 중에 보낸 편지들로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장소와 동역자(同役者)에 있어 사도행전과 편지 글의 내용이 상충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위의 아테네 역시 그 가운데 하나이다. 사도행전에는 동역자인 실라와 디모데는 베뢰아에 남았다고 했는데,(17:14-15) 데살로니카 전서에서는 디모데와 같이 간 걸로 되어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이는 특별히 성서를 연구하지 않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좀 억지스럽긴 해도 베뢰아에 있는 디모데를 아테네로 불러들일 수 있는 방법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바울의 2차 전도 여행 지도
안디옥에서 빌립보까지는 '바울의 금욕철학과 전도여행 I' 참조
하지만 바울의 초기 행적, 즉 컨버전 이후에의 행적은 억지로라도 꿰맞추기 어렵다. 사도행전에서는 그가 회심 직후 다마스쿠스에서 예수의 제자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후 곧장 예루살렘으로 가서 예수의 사도들을 만났다고 적고 있다.(사도행전 9:19-30)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니, 이것이 자연스런 수순으로 여겨지는 까닭이다. 아래의 그림은 회심한 바울을 죽이려 유대인들이 성문을 지키자 다마스쿠스의 예수 제자들이 그를 광주리에 담아 성벽 밖으로 내려보내는 광경을 그린 것이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바울은 그렇게 다마스쿠스를 탈출해 예루살렘으로 갔다.
다마스쿠스를 탈출하는 바울
바울이 이런 식으로 다마스쿠스를 탈출한 사실은 그의 편지에서도 등장한다.(고린도후서 11:32-33)
다마스쿠스 옛 성벽
하지만 성을 탈출한 그가 예루살렘으로 갔다는 것은 누군가 지어낸 허구로 보인다. 바울은 편지글에서 자신은 그후 곧장 아라비아로 갔다고 여러번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자신은 컨버전 이후 다른 사도들을 만나러 예루살렘에 가지 않았으며 곧바로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마스쿠스로 되돌아갔다고 말한다.(고린도후서에도 그것을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 실려 있다) 예루살렘으로 가서 게바(베드로)를 만난 것은 적어도 회심 후 3년이 지난 후였다. 그는 이 사실이 거짓이 아님을 하나님 앞에 맹세하기까지 한다. 누구 말이 옳은 줄은 모르겠으나 둘 중 하나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다.(갈라디아서 1:11-120)
여기서 말하는 3년이라는 세월이 컨버전 이후부터를 말하는 것인지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마스쿠스로 되돌아 온 이후를 말하는 것인지 그것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가 근 3년 동안 예루살렘에 있는 베드로 같은 예수의 직계 사도 및 야고보 같은 직계 형제를 만나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 사실을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는 그 3년 동안 대체 어디에 가 있었던 것일까? 자신의 말로는 아라비아(사막)에 갔다 왔노라 했는데, 그 사막에서 그는 대체 뭘했을까? 예수님을 알기 위해 성서 공부를 했을까?(유감스럽게도 그때는 아무런 복음서도 만들어진 것이 없었다) 아니면 흔히 말하는 (동양식의) 도를 닦았을까?
이것이 나만 궁금했을 리는 없었을 터, 그래서 영국 성공회의 주교 토마스 라이트(N. T. Wright)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가설이 만들어졌다.(라이트는 그가 시나이 산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모델 삼아 구도·求道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껏 아라비아에서의 3년 세월에 대한 대답 중 사람들을 속시원히 만족시킨 것은 없었다. 이것은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며 오늘 말하려는 나의 가설 또한 그러할 것이다.(그러고 보니 바울은 우리에게 무척 큰 숙제를 남겨준 셈이다)
나의 생각을 말하기 앞서 먼저 언급하고 싶은 것은, 바울은 이에 대해 왜 더 이상의 언급을 피했으며 그러면서도 이 사실을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까지 했을까 하는 것이다. 바울 주장의 요지인즉, 자신은 회심 후 3년 정도나 되는 긴 시간 동안 베드로 같은 예수의 사도나 야고보 등의 형제를 만나지 않았고,(즉 그들로부터 교육을 받지 않았고)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았음을 말하고 싶음이었다.(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해)
다시 말해 이것은 베드로나 야고보에 대한 실력행사와 비슷한 개념이니, 하나님께 직접 계시를 받은 자신의 권위가 예수의 직계인 베드로나 야고보와 동등하거나 그들에 앞섰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함이었다. 이것이 일반적이 해석이기도 한 바, 저명한 성서학자 바트 어만(Bart D Ehman)의 설명에는 이에 대해 좀 더 설득력이 실린다. 그는 사도행전과 갈라디아서의 내용이 서로 다른 이유, 그리고 갈라디아서에서 스스로 강조한 바울 자신의 차별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바울은 자신의 메시지가 예수를 통해 하나님에게서 직접 오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어한다. 바울은 다른 사람을 통해, 즉 예수의 사도들을 통해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지 않았다. 그러므로 복음에 대해 그와 의견이 다른 사람은 그에게 반발하는 게 아니라 결국 하나님께 반발하는 것이었다.
반면 사도행전의 저자는 초기 제자들과 바울, 즉 예수의 진정한 사도들 사이에는 모든 점에서 완전한 연속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한다. 따라서 사도행전에서는 그들이 서로 만나 의견을 나누고 합의를 본다는 말이 되풀이 된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하나님과 직접 교통하는 자신의 권위가 걸린 문제였다. 바울은 누구와도 의논하지 않았고 사도들을 만나지도 않은 것이다.
두 저자는 지향하는 목표가 달랐기에 똑같은 사건을 다르게 이야기했다. 이런 이유에서 흥미롭지만 중요한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럼 우리는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까? 이 경우에 나는 바울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바울은 자기 자신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알기도 했지만, 거짓말이 아니라고 하나님 앞에서 맹세까지 했기 때문에, 바울이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다만 바트 어만도 바울의 3년 간의 행방불명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다. 그렇지만 그의 설명을 믿자면 바울의 행방불명에 대한 나의 생각에 좀 더 힘이 실린다. 바울은 컨버전 후 부름을 받아 아라비아로 갔을 것이며,(다마스쿠스와 아라비아 사막은 멀지 않다) 그리고 이번에는 UFO에 직접 동승해 저들의 세상을 다녀왔을 것이다.(AD 34~37의 3년간) 우주의 시공간에서는 찰나와 같은 시간이기 때문일까? 3년이라고는 하나 그가 보고 느낀 것은 오히려 과거의 요나가 겪은 3일보다도 적다.(☞ '1492년 콜럼부스가 발견한 UFO') 하지만 바울은 자신의 편지에서(고린도 후서) 제3천(第三天, 아주 높은 하늘)에 올라 낙원으로 이끌려 갔음을 자랑스럽게 밝히고 있다.
바울은 3년 동안 이 사막에서 홀로 무얼 했으며 생계는 또 어찌 해결했을까?(사진출처: Robert Van Waarden. Vanwaardenphoto.com)
믿기 힘든 것이 어찌 UFO 뿐이겠는가?
2018년 1월 미국 애리조나 사막에 출현한 구형(球形) UFO(사진출처: facebook.com/UFO at Section 51)
* '사도 바울과 UFO(IV) - 밝혀지지 않은 비행 공간(Flight space)'으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