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美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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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와 '빛의 제국'미학(美學) 2022. 3. 13. 04:57
르네 마그리트는 1898년 11월 21일, 벨기에의 레신이라는 마을에서 양복 재단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미술가로서의 길을 반대한 다른 대부분의 부모들과 달리 마그리트의 아버지는 아들의 예술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지했으므로 그는 그리 질곡 없는 예술가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졸업 후 벽지공장의 디자이너로서 한동안 원하지 않는 일을 한 적은 있지만) 그래서 그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인지 그림에는 양복과 중절모가 중요 모티브로 등장한다. 환경이 작품에 투영됨은 모든 장르의 예술을 막론하고 나타나는 일일 터, 마그리트 역시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뭔가 심오한 내면의 깊이가 느껴지는 '양복과 중절모'의 일련의 그림들은 따로 '볼러 햇 맨'(Bowler hat man) 시리즈로 불려지며 인기가 높은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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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 화가 뒤샹 ·달리·미로· 마크리트미학(美學) 2022. 3. 12. 06:59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의 표현이 난해함에도 초현실주의 화가의 그림은 의외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그림들을 자주 보아왔기 때문이다. 아래의 그림들은 상업광고에서도 자주 인용되는 초현실주의 화가의 작품으로 누구나 한두 번쯤은 보았을 그림이다. 엊그제, 지금껏 유럽에서 팔린 그림 중 둘째로 비싼 가격으로 낙찰돼 화제가 된 '빛의 제국'의 작가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역시 초현실주의 화가로, 마르셀 뒤샹, 살바도르 달리, 호안 미로 등과 함께 20세기 초현실주의를 대표한다. 문학에 있어 초현실주의는 '비합리적 인식과 잠재의식의 세계를 추구하고 표현의 혁신을 꾀한 전위적 문예사조'로 정의되나 말 자체는 좀 어렵다. 하지만 미술에 있어서는 이해가 쉬우니, 문자 그대로 초현실적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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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간송미술관이 내놓은 불상과 불감미학(美學) 2022. 1. 15. 07:01
어제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국보 불상과 불감이 케이옥션에 출품됐다. 국보가 상업 경매에 나온 첫 사례인지라 세간의 관심이 매우 뜨겁다. 간송미술관이 자식과도 같은 미술품을 내놓은 이유는 전과 마찬가지로 재정난 때문인데,(☜ '경매에 나온 간송미술관의 불상 2점') 이번에는 그에 대한 논평 없이 작품만을 논해 보기로 하겠다. 시장에 나온 미술품은 국보 제73호 금동삼존불감(1962년 지정)과 국보 제72호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1962년 지정)으로, 먼저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부터 살펴보자.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金銅癸未銘三尊佛立像)은 6세기 초 동아시아에서 호신불로 많이 제작된 일광삼존불(一光三尊佛立)의 형태로서 삼성재단이 소유하고 있는 금동보살삼존상 · 금동신묘명금동삼존불입상과 함께 북위(北魏)의 영향을 받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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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광창과 √2 구도의 문제미학(美學) 2021. 4. 25. 13:59
예전 창문 위에 눈썹이 달린 집에 산 적이 있다. 아래 사진처럼 2층 창문 두 개에 모두 눈썹이 붙어 있었는데 지붕은 사진의 집보다 훨씬 더 튀어나와 있었다. 따라서 눈썹 위는 눈비를 막을 수 있는 공간이 되었던 바, 동네 비둘기들의 둥지가 되어 그곳에서 태어난 새끼까지 설쳐댔다. 창문을 열면 새똥 가루가 날아들었고, 사방에 깃털이 날리는 것이 마치 터진 오리털 이불을 덮고 사는 집 같았다. 그래서 결국 철망을 둘러치는 대공사를 해야 했는데 요즘도 옛 한옥 건물이나 문화재 건물 현판 주변에 둘러 쳐진 철망을 보면 그때 생각이 난다. 내가 뜬금없이 이런 얘기를 꺼낸 이유는 석굴암 광창의 유무를 말하기 위해서이다. 앞서 '석굴암 원형 탐구 - 광창(光窓)과 홍예석의 문제'에서도 말했거니와 나는 석굴암에 광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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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하후(唐破風) 도리이 돌이 얹혀진 석굴암 기둥미학(美學) 2021. 4. 18. 06:19
석굴암 주실 입구 본존불 앞 기둥에 얹힌 홍예석이 본래부터 있었는가의 문제는 오래전부터의 숙제였다. 그리고 그 숙제를 아직도 풀지 못한 탓에 지금도 홍예석은 어엿해 차마 보기 안습이다. 이미 결론을 말했거니와 그 홍예석은 일제가 석굴암 1차 공사를 한 1913~1915년 사이 얹힌 것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전 사진에는 없던 돌이 공사 후 갑자기 생겨났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하지만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고(故) 성낙주 선생이다.(작년 6월, 조금 이른 나이에 돌아가셨다) 성낙주 선생은 석굴암 원형탐구에 나름 이바지하신 분이다. 그분은 평생을 교직에 봉직하면서도 따로 '석굴암미학연구소'를 차려 석굴암 원형 찾기에 천착했다. 그리하여 2014년 마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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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관람 유감 - 조속한 전실 개방을 촉구한다미학(美學) 2021. 4. 17. 06:02
석굴암 원형 탐구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이어보려 한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석굴암 관람에 대해 문화재 당국에 건의드릴 게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입장료 6000원이라는 비싼 관람비용에 대한 대가를 국민들에게 지불해달라는 것이다.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우리가 애써 토함산을 올라 비좁은 목조 전각 안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유리 보호막 속으로 보이는 석굴암 전실과 주실 안의 본존불 모습뿐이다. 방금 말한 거대한 유리가 전면을 통째로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유리막은 1971년 설치됐다) 여러 번 말했거니와 관람객들은 이 유리막 밖에서도 절대 사진을 찍을 수 없다. 플래시 빛이 석굴암에 손상을 주기 때문일 것이라 짐작되나 그렇다고 다른 문화재처럼 플래시 없이 찍는 것이 허락되지도 않는다. 일일이 제재하기 귀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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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원형 탐구(I) - 광창(光窓)과 홍예석의 문제미학(美學) 2021. 4. 16. 08:11
석굴암은 따로 말이 필요 없는 우리나라 최고의 걸작 문화재요, 나아가 동양 무비(無比)의 예술품이다. 신라 경덕왕 10년(751년) 김대성이 20여 년에 걸쳐 완성시킨 이 석굴은 이후 천년의 사랑을 받았으니 조선조 불교의 쇠퇴 속에서도 그 사랑이 이어졌다. 그러던 석불에 한일합병 직후 일제가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1912년부터 일제에 의한 대규모 보수 공사가 진행됐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이때 석굴암의 원형이 훼손되었는데, 그중 지금까지 문제가 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점들이다. 1. 석굴암 전체를 시멘트로 덮어버린 것 → 당시는 최초 석굴암에 대한 건축원리를 파악하지 못했고 연구 또한 부족했음에도 빗물과 세월로부터의 보호를 구실로 그 전체를 1미터 두께의 시멘트로 덮어버렸다. 이는 석굴암을 숨 쉬지 못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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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회루 차경(借景)의 미(美)미학(美學) 2020. 7. 11. 23:50
한국의 예술과 건축을 논할 때 자연과의 관계를 빼놓으면 딱 절반만 얘기하는 것이다. 한국의 예술과 건축은 규모가 크던 작던 간에 자연과의 조화를 최우선으로 쳤던 바, 그것이 반(半)을 먹고 들어간다. 이렇듯 자연이 예술과 건축을 좌우하는 나라는 아마도 우리나라 외에는 없을 듯싶다. 우리는 그것을 늘 보아 왔고 그래서 너무 눈에 익은 탓에 오히려 모르는 경우가 있지만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예술·건축과 자연과의 조화를 경탄해마지 않는다. 그것을 흔히 차경(借景)이라 부른다. '(예술과 건축에) 경치를 빌려다 놓는다'는 것인데 이런 말 역시 우리나라밖에 없을 듯싶다. 얼마 전 문득, 새삼 그 차경을 느낀 뷰(view)가 있어 포스팅하려 한다. 언젠가는 쓰일 때가 있겠거니 해서 찍어온 사진들을 훑어보다가 스쳐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