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美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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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사 산령각 탱화미학(美學) 2024. 5. 13. 01:44
앞서 북한산 삼천사를 말하며 눈이 가는 것이 마애여래입상밖에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생각해 보니 산령각 탱화인 아미타삼존도를 간과한 것 같다. 그래서 다시 가보았으나 며칠 사이에 공양미가 놓여 그림 아래에 있는 화기(畵記)를 읽을 수 없었다. 겨우 몇 자 읽기는 했는데, 작가의 이름은 없는 듯했고 불기(佛紀) 2563년의 글자만 확인했다. 그러니까 불과 3년 전인 2020년에 제작된 탱화이다. 비록 오래된 불화는 아니나 그림 솜씨는 매우 뛰어나다. 언뜻 남양주 봉영사 탱화를 그린 응성당(應惺堂) 환익(幻翼)이 문하가 그린 것도 같고, 사불산 화파 한규(翰奎)의 문하가 그린 듯도 한 빼어난 불화다. 옛 절터에서 수습된, 앞서 말한 대지국사(大智國師) 법경(法鏡)의 비편(碑片)을 보면 삼천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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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치오 젠틸레스키의 사실적인 성화와 비사실적인 성서미학(美學) 2024. 5. 9. 18:20
오라치오 젠틸레스키(Orazio Gentileschi, 1563~1639)는 17세기 이탈리아 바로크 화풍 시대의 화가로서 피사에서 태어났다. 그는 당시의 화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성서의 내용을 화폭에 옮기는 종교화를 많이 그렸는데, 다분히 카라바조 풍이다. 카라바조 풍은 성서의 내용을 그리되 성(聖)스럽게보다는 '속'(俗)스럽게 표현하는 작법으로, 이탈리아 바로크 시대를 개막한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1571~1610)가 채용한 작법이라 하여 그렇게 불린다. 그렇지만 '속'(俗)스럽다 하여 저속하게 그린 것은 결코 아니고 그저 그 당시의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이를테면 의상이나 생활양식을 고대가 아닌 현실에서 가져오는 식이었다. 따라서 그림의 이해가 쉬웠다. 이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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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여신 모건티나의 비너스(혹은 페르세포나)미학(美學) 2024. 5. 6. 16:46
모건티나(Morgantina)는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 가운데에 있는 고대 그리스·로마 유적지이다. 모건티나 유적은 크게 두 곳으로 분류되는데, 이중 시타델라 지역은 BC 11세기부터 BC 450년경까지 존속했으며, 셀라 올란도 지역은 BC 450년부터 AD 50년경까지 존재했다. 모건티나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BC 465?~400?)의 것이며, 로마의 역사가 테이투스 리비우스(BC 59?~17)가 남긴 '이 땅이 2차 포에니 전쟁 중 스페인 용병에게 전리품으로 주어졌다'는 기록이 주목받는다. 20세기 초 발굴조사 중 발견된 HISPANORUM이라고 각인된 동전 속 주인공이 그 용병이라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다. 로마 정치가 키케로는 이 땅을 무르겐티니(Mugentini)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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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수의 명동과 임인식의 가회동미학(美學) 2024. 4. 29. 00:03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임인식, 정범태, 한영수, 홍순태, 황헌만, 다섯 명의 사진작가가 찍은 서울 아이들의 모습이 담긴 기획전 이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최되고 있다. (2024년 4월 26부터 6월 30일까지) 임인식과 한영수 등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라 이번에는 빨리 전시회를 찾았다. 한남동 라니서울에서 개최되었다가 어제 끝난 한영수 작품의 전시회 'INNOCENCE: 순수의 시간'은 차일피일하다 그야말로 막차를 탔던지라 이번 전시회는 서둘러 나섰던 것이다. 차제에 말하자면 'INNOCENCE: 순수의 시간'은 기존에 알고 있던 한영수의 세계가 아닌 초현실을 다룬 전시회여서 이색적이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잠시 썰을 풀자면 내가 한영수를 알게 된 것은 아래의 '폭우 속의 청계천' 때문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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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클림트의 '리저 양의 초상'미학(美學) 2024. 4. 25. 18:44
오스트리아 출신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의 그림은 나올 때마다 화제다. 앞서도 언급한 바 있는 '젊은 여인의 초상'(Portrait of a Lady)은 지난 2019년, 도둑맞은 지 22년 만에 그 도둑맞은 이탈리아 미술관의 외벽 속에서 고스란히 발견돼 크게 화제가 되었다. (☞ '기적적으로 발견된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 그런데 엊그제,(현지시간 24일) 모두가 사라진 줄 알았던 클림트의 그림 한 점이 임 킨스키 경매에 나왔고, 3000만 유로(약 441억원)에 팔려 다시금 화제가 되었다. 클림트가 1917년에 그린 '리저 양의 초상'(Portrait of Fräulein Lieser)이라는 그림이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 그림은 클림트가 사망하기 1년 전에 오스트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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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역사문화공원의 권진규미학(美學) 2024. 1. 4. 21:19
지금은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이름이 바뀐 망우리 묘지 내의 이중섭 화백 묘소에 성묘를 다녀온 이야기를 앞서 실은 바 있다. 그때도 말했거니와 나는 그와 아무런 친인척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성묘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다만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그곳에 간 이유는 집에서 멀지 않기 때문으로, 요즘도 산책 삼아 가끔 간다. 재삼 느끼는 바이지만 그의 무덤가는 참 운치가 있다. 오늘은 처음으로 권진규의 무덤을 찾았다. 사실 권진규는 망우리 묘지를 가게 되면 보고 싶지 않아도 보게 되는 인물이다. 재작년 망우역사문화공원 입구에 관리사무소와 시민휴식공간이 건립되며 그 앞에 그의 자소상 두상을 조성해 놨기 때문에 오가는 모든 사람의 눈 속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그가 누구인지 알든 모르든. 하지만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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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동의 어두웠던 현실과 빛나는 지하 '홍제유연'미학(美學) 2023. 8. 23. 23:49
앞서 홍제동의 어두웠던 과거를 말했다. 연원을 따지자면 그 옆 홍은동도 임금의 은혜가 조금은 미쳤다고 할 수 있으니, 홍은동은 홍제동에 고양군 은평면이 합쳐져 생긴 이름이기 때문이다. 물론 홍은동이 생겨난 것은 훨씬 이후인 1950년으로 은평면의 구석을 떼어 홍제동의 마을 하나와 합쳐져 만들어졌다. 그러고보면 당시의 은평면은 엄청났던 듯하니, 지금은 서울시가 된 녹번리・응암리・역촌리・신사리・대조리・불광리・갈현리・구산리・구기리・평창리가 모두 속했다. 하지만 임금의 은혜 따위는 어디까지나 역설이고, 오히려 관(官)의 횡포가 유독한 땅이었을 듯하니 근방의 홍제원이 이를 방증한다. 한양 서쪽의 홍제원은 남쪽의 이태원, 동쪽의 보제원·전관원과 더불어 서울을 대표하는 4대 역원이었는데, 특히 홍제원은 중국 사신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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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의 수원 그림미학(美學) 2023. 6. 26. 19:51
나혜석은 1896년 4월 18일, 경기도 수원군 신풍면 신창리(현재의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신풍동 45번지)에서 태어났다. 근자에 복원된 화성행궁 바로 옆이다. 그가 태어난 해에 무능한 임금 고종이 저 혼자 살겠다고 러시아대사관으로 도망갔고, 그러면서 분풀이의 대상으로써 4차례씩이나 총리대신이 되어 난국을 이끌었던 김홍집에 대한 타살(打殺) 명령을 내려 결국은 길거리에서 맞아 죽게 만들었다. 서방 외교관들이 몹시 무능하게 본 고종은 도망가 목숨을 늘였고, 반면 인격적으로나 능력적으로 출중하다 평가했던 김홍집은 친러군인과 보부상에게 맞아 죽었다. 정월(晶月) 나혜석이 태어난 해는 그렇듯 조선이 본격적으로 망가지던 무렵이었다. 나혜석의 집안은 대대로 양반으로, 증조부가 호조 참판을 지냈고 이때부터 그의 집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