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야할 우리역사 고구려
-
아차산 고구려정(亭) 기와가 붉은 이유지켜야할 우리역사 고구려 2020. 7. 19. 07:16
고구려 정자가 서울 하늘 밑에 있다고 하면 믿기 힘들겠지만 분명 있다. 이름도 풋풋하게 고구려정(亭)이다. 물론 재현된 정자이나 근방에서 발견된 고구려 기와를 토대로 하였던 바, 아주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기와편은 애써 찾으려 하지 않아도 그냥 눈에 띄는데, 아래 집안 고구려 와당(마구리 기와) 사진 밑의 회청색 기와편은 아차산 석실고분을 찾다가 발끝에 걸린 것이고, 붉은 색 기와편은 홍련봉 고구려 보루 근방에서 주운 것이다. 사실 아차산성 일대에서는 고구려 와당도 발견됐고 지금도 파손된 기와편이 심심찮게 나온다. 역사를 더듬자면 아차산성은 백제 개로왕이 남진한 고구려 장수왕을 맞아 싸우다 목이 달아난 곳이며 고구려 온달 장군이 신라군과 싸우다 화살을 맞고 전사한 곳으로, 1,500년이 지난 지금까..
-
역사전쟁 중국 동북공정(III)-고구려의 후예 묘족지켜야할 우리역사 고구려 2020. 7. 9. 00:40
중국 역사에서 묘족(苗族)이 출현 한 건 송나라 이후이다. 단언컨대 송나라 이전의 역사 책에서 묘족이 출현한다면 그것은 동남공정을 꾸리는 어용 역사학자들의 창작품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묘족은 668년 고구려 멸망 후 중국으로 강제 이주됐던 많은 고구려인들이 현지에서도 계속적인 저항을 하다 남방 끝까지 쫓기고 쫓겨 와 현지인과 어울려 만들어진 종족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중국의 국경을 넘기도 하고 중국 내에 머무르기도 했는데,(당시는 지금처럼 국경선에 명확한 게 아니었으므로) 중국 내의 고구려인들이 터전을 잡은 곳이 지금의 귀주성(貴州省)이다.* * 2000년 중국의 인구조사 통계에 따르면 중국 내의 묘족 인구는 894만 116명으로 중국 소수민족 가운데 4위이다. 주로 양쯔강 이남 9개..
-
역사전쟁 중국 동북공정(II)-고구려어와 만주어지켜야할 우리역사 고구려 2020. 7. 2. 00:26
앞서 고구려의 화폐에 대해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 결론은 유감스럽게도 고구려에는 주조 화폐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고조선과 달리 고구려의 화폐는 이제껏 발견된 것이 없으며 역사적으로도 화폐 사용에 대한 흔적이나 기록이 없기에 화폐가 없었다고밖에 할 수 없다. 다만 현물 화폐의 사용은 짐작되는 바,( 온달전) 고구려 700년 역사와 거의 수명을 같이한 오수전(五銖錢)을 현물 화폐와 함께 사용된 고구려의 통용 화폐로 결론내렸던 것이다.(☞ '가장 오래 통용된 화폐 오수전') 하지만 학자들은 여전히 고구려 돈의 발견을 기대하고 있는 바, 고구려는 아직도 밝혀질 것이 많고 밝혀야 할 것이 많은 수수께끼의 나라인 듯하다. 일환으로 오늘은 고구려의 언어를 들여다보려 하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구려는 고구..
-
가장 오래 통용된 화폐 오수전(五銖錢)지켜야할 우리역사 고구려 2020. 6. 24. 07:09
오수전(五銖錢)은 기원전 119년인 한무제 원수(元狩) 4년에 처음 주조되어 당나라 초기인 621년까지 사용된 화폐로 장장 740년 간이나 사용됐다. 세계와 비교해보지는 못했지만 이 정도면 타의 추종이 불가하지 않을까 여겨지는데, 우연찮게도 고구려의 존속기간과 거의 일치한다. 그래서 나는 일단 그것을 고구려의 통화로 던져놓은 바이다.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의 발굴에서 고구려의 화폐라 할 만한 것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것은 처치곤란할 정도로 많이 출토된 고조선의 돈 명도전(明刀錢)과 비교되어 더욱 의아하게 생각된다.(☞ '고조선의 돈 명도전') 그럼 지금부터, 많이 들어 귀에는 익으나 정작 뜻은 알 수 없었던 오수전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자. 먼저 명칭을 풀이하자면 오수전은 '다섯 오'(五) 자에 '무게 단..
-
역사전쟁 중국 동북공정(I) - 이젠 백제사도 중국사라고?지켜야할 우리역사 고구려 2020. 6. 22. 06:06
동북공정은 중국 동북3성의 역사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 프로젝트로, 쉽게 말하자면 우리 한민족의 나라인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및 그 땅에서 이어진 금, 요, 후금의 역사를 중국의 것으로 편입시키기 위한 역사 왜곡 작업으로 보면 된다. 동북공정의 정식명칭은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 동북 변경 지역의 역사와 현황에 대한 연속 연구 공정)이며, 고구려와 발해가 주요 타깃이지만 가끔 백제와 신라가 공격 목표가 되기도 한다. 중국사회과학원의 발표자료에 의하면 동북공정은 2002년 2월 연구팀이 조직되며 시작됐다. 하지만 그들의 역사공정은 1983년 중국사회과학원 산하에 '변강역사지리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이 설립되면서부터인데, 중국의 대표 소수민족..
-
동명성왕(주몽)의 성(姓)은 무엇일까?지켜야할 우리역사 고구려 2020. 6. 18. 09:43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의 건국 스토리를 다룬 몇 해 전 드라마 '주몽'은 국민드라마로 상당한 시청율을 구가했다. 총 81부작으로 무려 1년 동안이나 방영되었으며 한 회 방영시간이 1시간 20분으로 영화와 맞먹었다. 국민 두 명 중 한 명은 본다는 인기 드라마였던지라 거기 나온 탤런트들은 탑(Top)이었거나 탑이 되었는데 문득 생각해보니 몇 해 전이란 표현은 어폐가 있는 듯하다. 거기서 주몽의 부인으로 나왔던 방년(芳年)의 송지효 씨가 마흔 살이 되었다 하니 말이다. 세월이 참 빠르다는 말밖에..... MBC '주몽'은 우리나라에서 고구려를 시대적 배경으로 한 최초의 드라마로도 기억되는데, 그에 힘입어 방송 3사의 드라마에서 이른바 '삼국시대 상품'들이 쏟아졌던 것도 기억이 난다. 아무튼 '주몽'은 인기 있..
-
다민족 다문화 국가 고구려지켜야할 우리역사 고구려 2020. 6. 17. 00:00
우리 민족의 뿌리가 예맥(濊貊)족인가, 한(韓)족인가의 문제는 이제 정리가 된 듯하다. 북쪽의 예맥족과 남쪽의 한족이 합쳐 지금의 한민족이 형성됐다고 보는 지금의 관점은 꽤 무난하다. 그런데 예맥족이 한 족속인가, 아니면 예(濊)족과 맥(貊)족의 별개의 족속인가 하는 것은 여전히 쟁점인데 그저 다른 지역에 살던 같은 족속으로 보면 그 역시 무난할 것 같다. 정약용이 맥은 종족 명칭이고 예는 지역명(혹은 강 이름)이라고 한 것이나, 대만 사학자 능순성(凌純聲)이 예는 예수(濊水)지역에 거주했던 맥족이라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여기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한 학자들은, '사서의 기록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맥은 종족명을 나타내고 예는 지명으로 쓰인 경우가 많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이렇듯 예맥이..
-
한국사 빈출문제 '미천왕의 서안평 공격' 미스터리지켜야할 우리역사 고구려 2020. 6. 4. 07:53
서기 313년 고구려는 낙랑군을 공격해 멸망시키고 남녀 2천 명을 포로로 잡았다. 그 이듬해에는 대방군까지 무너뜨려 무려 421간이나 이 땅에 군림하던 한족(漢族) 세력들을 몰아냈는데, 그것들에의 축출이 얼마나 지난(至難)했던지가 '낙랑공주와 자명고(自鳴鼓)' 설화에 잘 녹아 있다. 세상에 '스스로 울리는 북'은 없을지니 미천왕이 낙랑군을 멸망시키는 데 힘겨웠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대방군은 상대적으로 쉬었던 듯하다. '다민족 다문화의 나라 고구려'에 대해 쓸 요량으로 윗글을 시작했으나 막상 써놓고 보니 좀 어색했다. '서기 313년 미천왕의 서안평 공격'은 '327년 소수림왕의 불교 공인'만큼이나 자주 등장하는 고구려사의 패러그래프임에도. 아무튼 그래서인지 연대를 지금껏 외우고 있는데, 써놓고 보니 ..